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올해 1월 피츠버그와 계약하고자 미국으로 출국하며 "류현진(28·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투수들에게 문을 열어줬으니, 나는 타자 쪽에서 메이저리그로 가는 길을 만드는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강정호는 약속을 지켰다.
공교롭게도 넥센 히어로즈에서 함께 뛴 박병호(29)가 '수혜자'가 됐다.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에 뛰어든 박병호는 1천285만 달러를 적어낸 미국 구단과 연봉 협상에 돌입한다. 포스팅 금액과 연봉이 비례하는 전례를 볼 때 박병호의 연봉 협상은 한결 수월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스프링캠프까지만 해도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연착륙에 의문을 품던 미국 언론은 강정호의 기량을 확인한 뒤 "피츠버그의 강정호 영입은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계약"이라고 평가했다.
강정호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126경기에 나서 타율 0.287, 15홈런, 58타점을 기록했다.
'루키'라는 꼬리표를 떼도, 3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는 내야수로서는 무척 준수한 성적이다.
미국 ESPN은 "피츠버그가 강정호를 영입하고자 포스팅 응찰액(500만2천15 달러)을 포함 4년 1천600만 달러를 썼다. 그런데 첫해에 1천600만 달러를 웃도는 효과를 봤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강정호의 활약은 한국인 야수를 바라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놨다.
사실 국내에서도 "투수라면 모를까,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1994년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메이저리그 구단은 한국 투수에 관심을 보였다.
김병현, 서재응 등이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면서 '한국인 투수'에 대한 좋은 평가가 꾸준히 나왔다.
사상 최초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류현진이 다저스 3선발로 자리 매김하면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는 KBO리그 투수들도 늘었다.
하지만 2012년 류현진이 2천573만7천737달러33센트의 포스팅 응찰액을 기록한 것과 달리 지난해 말 포스팅에 나선 김광현(SK 와이번스)이 200만 달러,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150만 달러(추정액)의 실망스러운 금액을 제시받았다.
류현진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 류현진만큼 메이저리그 구단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한국인 투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한국인 타자들의 미국행 의욕이 더 커졌다.
강정호는 500만2천15 달러의 포스팅 응찰액을 기록하며 미국에 입성했다. 박병호는 2배가 넘는 1천285만 달러를 제시받았다.
강정호에 앞서 추신수는 2013년 12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3천만 달러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했다.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며 긴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딘 추신수는 초대형 계약으로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를 들썩이게 했다.
3년 연속 미국 언론은 '한국인 야수의 계약'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강정호와 추신수의 성공은 박병호를 아시아 야수 역대 두 번째인 1천280만 달러의 포스팅 응찰액 기록자로 만들었다.
이제 박병호 차례다.
타격과 주루, 수비에 능한 한국인 외야수(추신수), 힘을 겸비한 내야수(강정호)는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도 통했다.
힘과 정확도, 즉 타격 능력을 무기로 빅리그 타석에 설 박병호가 성공한다면 '한국인 거포'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평가도 한층 높아질 수 있다.
박병호도 메이저리그 입성을 꿈꾸는 후배에게 넓은 길을 만들어줄 수 있다.
역대 한국야구 MLB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