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시간]⑪ 정경심과 KIST 초등 동창의 금 간 우정…“공식 증명서 아니다”

입력 2020.04.10 (14:51) 수정 2020.04.1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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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증인으로 나온 정경심 초등학교 동창

지난 8일 열렸던 정경심 교수의 오후 재판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이 모 박사가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이 박사는 정 교수의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정 교수의 딸 조민 씨를 KIST 인턴으로 추천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이 박사의 추천으로 2011년 대학생이었던 조민 씨는 KIST 정 모 박사의 밑에서 인턴을 하게 됩니다. 앞서 지난달 18일 증인으로 출석한 정 박사는 조 씨를 인턴으로 받아줬지만 사흘만 KIST에 나온 뒤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아 인턴을 취소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공식 증명서가 아닌 레퍼런스 레터"

정경심 교수는 딸 조민 씨의 KIST 인턴 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해 의전원 입시에 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 교수가 '없는 증명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조민 씨가 의전원 입시를 앞둔 2013년, 정 교수는 조민 씨를 KIST 인턴으로 추천해준 초등학교 동창 이 박사에게 연락해 인턴 확인서를 써달라고 합니다. 주목할 것은, 실제로 조민 씨의 지도교수였던 정 박사에 연락을 한 게 아니라 추천만 해준 이 박사에게 연락을 했다는 겁니다.

정 교수는 이 박사에게 메일로 확인서에 들어갈 구체적인 문구를 알려줬고, 이 박사는 정 교수가 요구한 대로 확인서를 써줬습니다. 지난해 검찰 수사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박사는 초등학교 동창을 위해 허위로 인턴 확인서를 써줬다는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재판에 출석한 이 박사는 "이 부분은 제가 법정에서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작심한 듯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해당 프로그램은 인턴이 아닌 실습·견학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써준 건 KIST의 공식 인턴 증명서가 전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작성한 건 공식 증명서가 아니고, 이 학생이 어떤 일을 했다고 소개하는 추천서 혹은 레퍼런스 레터(reference letter)라고 부르는 개인적 서한입니다. 저희 분야에서 이런 서한은 활용책임자나 지도교수가 이 학생을 지도하는 데 참고하라는 의미로 써줍니다."

이 박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KIST에서 실제로 발급된 다른 증명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3개의 KIST 증명서

검찰은 이 확인서가 마치 공식 증명서인 것처럼 조민 씨의 의전원 입시에 제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정 교수는 이 확인서를 그냥 낸 게 아닙니다. 검찰은 3개의 다른 KIST 증명서가 존재한다며 이를 모두 법정에서 공개했습니다.


맨 위에 있는 것이 이 박사가 써준 원본입니다. 정 교수는 이를 차의과대 의전원 입시에 내면서 '(월~금 9-6)'이라는 문구를 덧붙이고, 하단에 이 박사의 연락처도 추가했습니다. 이 박사가 잘못 기재한 학과명도 수정했습니다. 몇 달 뒤인 서울대 의전원 입시에 제출할 때는 조금 더 과감한 수정이 이뤄집니다. '주 5일 8시간 근무, 총 120시간'이라는 문구가 추가됐고, '성실하게'라는 문구도 삽입됐습니다. 조민 씨의 주민번호도 기재됐습니다.

"수정해도 된다고 승낙한 적 없다"

이 박사는 자신이 이 같은 수정을 허락한 적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정경심 교수의 말을 듣고 추정해 보더라도 자신이 잘못 기재된 학과명만 고치라고 했겠지, 다른 것까지 수정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경심 교수는 제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확인서한을 공식적인 문서로 보이게 하려고 막 갖다 붙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이 박사가 아닌 지도교수였던 정 박사에게 연락해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할 텐데, 정 교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정경심 교수는 뭐라고 했을까요? 법정에서 공개된 정 교수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보겠습니다.

"그건 KIST가 해명할 부분이죠. 이번에 이○○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사실은 내가 발급권자가 아닌데 실수를 했다고요. 그건 이○○이 알아서 한 것이지 저에게 물어볼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박사의 설명과는 전혀 다릅니다. 법정에서 해당 진술을 본 이 박사는 "내가 실수를 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과의 우정에 금이 가는 순간입니다.

이 박사는 지난해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정 교수가 전화를 해서 "인턴을 3주 한 것으로 해명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증인은 한마디로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

변호인은 뭐라고 반박했을까요? 이 박사의 기억을 문제 삼았습니다. 사실 이 박사는 2013년에 이 같은 확인서를 써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정 교수가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하자, 자신은 전혀 기억을 못해 "그런 게 있었냐"라고 되물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확인서를 써 주게 된 건지도 검찰이 제시한 정경심 교수의 부탁 메일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정 교수가 확인서를 수정하도록 허락한 기억이 없다는 증언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기억이 안 나니까 '없다'고 말한 것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또 이 박사가 학과명을 확인서에 잘못 적어서 정 교수가 "학과명을 수정하겠다"라고 이 박사에 알렸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일관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 교수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이 교수님 같은 경우는 오늘 법정에서 사실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라며, "정 교수의 부탁을 받아서 조민을 소개한 것은 기억나지만, 나머지는 언론보도가 되고 사건이 커지고 검찰이 각종 이메일을 보여줘서 이메일을 보면서 추측한 내용이라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0년 연구경력이 이런 불명예스런 일로 얼룩지게 된 게..."

이 박사가 증언을 마치면서, 재판부는 이 박사에게 "증인은 피고인(정경심)과 가까운 관계였다가 진술 때문에 관계도 이상해졌을 수 있는데, 마지막으로 이번 일 겪으며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박사의 마지막 발언을 소개합니다.

"허위 인턴 증명서를 쓴 것처럼 보도돼서 굉장히 곤혹스러웠고, 지난 6개월 동안 여러 일을 겪으며 많은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뜻이 있는 학생에 기회를 주려 했던 게 의전원 입시에 이용되고 말았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말이 많은 걸 보면 실제로 (조민 씨가)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결국 잘못된 내용의 서한을 작성하게 만든 점들이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이런 개인적 서한을 공식적인 서류인양 사용한 것이 큰 논란을 일으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30년 연구경력이 이런 불명예스런 일로 얼룩지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다음 재판에는 조민 씨가 인턴을 했다는 공주대 대학원생과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다음 [법원의 시간]은 공주대 인턴 의혹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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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0 14:51:00
    • 수정2020-04-10 20: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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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증인으로 나온 정경심 초등학교 동창

지난 8일 열렸던 정경심 교수의 오후 재판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이 모 박사가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이 박사는 정 교수의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정 교수의 딸 조민 씨를 KIST 인턴으로 추천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이 박사의 추천으로 2011년 대학생이었던 조민 씨는 KIST 정 모 박사의 밑에서 인턴을 하게 됩니다. 앞서 지난달 18일 증인으로 출석한 정 박사는 조 씨를 인턴으로 받아줬지만 사흘만 KIST에 나온 뒤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아 인턴을 취소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공식 증명서가 아닌 레퍼런스 레터"

정경심 교수는 딸 조민 씨의 KIST 인턴 증명서를 허위로 작성해 의전원 입시에 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 교수가 '없는 증명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조민 씨가 의전원 입시를 앞둔 2013년, 정 교수는 조민 씨를 KIST 인턴으로 추천해준 초등학교 동창 이 박사에게 연락해 인턴 확인서를 써달라고 합니다. 주목할 것은, 실제로 조민 씨의 지도교수였던 정 박사에 연락을 한 게 아니라 추천만 해준 이 박사에게 연락을 했다는 겁니다.

정 교수는 이 박사에게 메일로 확인서에 들어갈 구체적인 문구를 알려줬고, 이 박사는 정 교수가 요구한 대로 확인서를 써줬습니다. 지난해 검찰 수사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 박사는 초등학교 동창을 위해 허위로 인턴 확인서를 써줬다는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재판에 출석한 이 박사는 "이 부분은 제가 법정에서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작심한 듯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해당 프로그램은 인턴이 아닌 실습·견학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써준 건 KIST의 공식 인턴 증명서가 전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작성한 건 공식 증명서가 아니고, 이 학생이 어떤 일을 했다고 소개하는 추천서 혹은 레퍼런스 레터(reference letter)라고 부르는 개인적 서한입니다. 저희 분야에서 이런 서한은 활용책임자나 지도교수가 이 학생을 지도하는 데 참고하라는 의미로 써줍니다."

이 박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KIST에서 실제로 발급된 다른 증명서를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3개의 KIST 증명서

검찰은 이 확인서가 마치 공식 증명서인 것처럼 조민 씨의 의전원 입시에 제출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정 교수는 이 확인서를 그냥 낸 게 아닙니다. 검찰은 3개의 다른 KIST 증명서가 존재한다며 이를 모두 법정에서 공개했습니다.


맨 위에 있는 것이 이 박사가 써준 원본입니다. 정 교수는 이를 차의과대 의전원 입시에 내면서 '(월~금 9-6)'이라는 문구를 덧붙이고, 하단에 이 박사의 연락처도 추가했습니다. 이 박사가 잘못 기재한 학과명도 수정했습니다. 몇 달 뒤인 서울대 의전원 입시에 제출할 때는 조금 더 과감한 수정이 이뤄집니다. '주 5일 8시간 근무, 총 120시간'이라는 문구가 추가됐고, '성실하게'라는 문구도 삽입됐습니다. 조민 씨의 주민번호도 기재됐습니다.

"수정해도 된다고 승낙한 적 없다"

이 박사는 자신이 이 같은 수정을 허락한 적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정경심 교수의 말을 듣고 추정해 보더라도 자신이 잘못 기재된 학과명만 고치라고 했겠지, 다른 것까지 수정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경심 교수는 제가 개인적으로 작성한 확인서한을 공식적인 문서로 보이게 하려고 막 갖다 붙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이 박사가 아닌 지도교수였던 정 박사에게 연락해 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할 텐데, 정 교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정경심 교수는 뭐라고 했을까요? 법정에서 공개된 정 교수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보겠습니다.

"그건 KIST가 해명할 부분이죠. 이번에 이○○이 저에게 그러더라고요. 사실은 내가 발급권자가 아닌데 실수를 했다고요. 그건 이○○이 알아서 한 것이지 저에게 물어볼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박사의 설명과는 전혀 다릅니다. 법정에서 해당 진술을 본 이 박사는 "내가 실수를 했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과의 우정에 금이 가는 순간입니다.

이 박사는 지난해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정 교수가 전화를 해서 "인턴을 3주 한 것으로 해명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증인은 한마디로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

변호인은 뭐라고 반박했을까요? 이 박사의 기억을 문제 삼았습니다. 사실 이 박사는 2013년에 이 같은 확인서를 써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정 교수가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하자, 자신은 전혀 기억을 못해 "그런 게 있었냐"라고 되물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확인서를 써 주게 된 건지도 검찰이 제시한 정경심 교수의 부탁 메일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정 교수가 확인서를 수정하도록 허락한 기억이 없다는 증언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기억이 안 나니까 '없다'고 말한 것 아니냐"라고 물었습니다. 또 이 박사가 학과명을 확인서에 잘못 적어서 정 교수가 "학과명을 수정하겠다"라고 이 박사에 알렸다고도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일관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정 교수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이 교수님 같은 경우는 오늘 법정에서 사실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라며, "정 교수의 부탁을 받아서 조민을 소개한 것은 기억나지만, 나머지는 언론보도가 되고 사건이 커지고 검찰이 각종 이메일을 보여줘서 이메일을 보면서 추측한 내용이라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0년 연구경력이 이런 불명예스런 일로 얼룩지게 된 게..."

이 박사가 증언을 마치면서, 재판부는 이 박사에게 "증인은 피고인(정경심)과 가까운 관계였다가 진술 때문에 관계도 이상해졌을 수 있는데, 마지막으로 이번 일 겪으며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박사의 마지막 발언을 소개합니다.

"허위 인턴 증명서를 쓴 것처럼 보도돼서 굉장히 곤혹스러웠고, 지난 6개월 동안 여러 일을 겪으며 많은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에 뜻이 있는 학생에 기회를 주려 했던 게 의전원 입시에 이용되고 말았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말이 많은 걸 보면 실제로 (조민 씨가)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결국 잘못된 내용의 서한을 작성하게 만든 점들이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이런 개인적 서한을 공식적인 서류인양 사용한 것이 큰 논란을 일으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30년 연구경력이 이런 불명예스런 일로 얼룩지게 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다음 재판에는 조민 씨가 인턴을 했다는 공주대 대학원생과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다음 [법원의 시간]은 공주대 인턴 의혹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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