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시간]㉜ 정경심 재판, 40분 만에 집에 돌아간 증인

입력 2020.07.06 (07:01) 수정 2020.07.06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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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증인 한인섭'의 특별한 요청…"변호인과 같이 앉게 해달라"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21번째 공판, 두 번째 증인은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었습니다. 한 원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자녀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활동 증명서 등을 받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한 원장은 지난 5월에도 한 차례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유관기관장 회의가 있다며 법정에 나오지 않았는데요. 당시 재판부는 "부당하다"며 과태료 5백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잡힌 기일 이틀 전, 한 원장은 다소 이례적인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합니다. 바로 '변호인선임신고서' 그리고 '변호인참여신청서'입니다. 피고인이 아니라 증인 신분인 한 원장이 변호인과 함께 앉아서 신문에 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그 이유로 든 게 바로 '증언거부권'인데요. 한 원장이 조 전 장관 자녀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했다는 의혹으로 이미 피의자 입건된 터라, 법정에서 말한 내용이 수사자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증언 과정에서도 피의자로서 방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형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규칙에, 증언거부권을 가진 증인이 미리 변호인과 상의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한 원장이 극심한 불안을 느낄 수 있는 범죄 피해자처럼 변호인 동석을 요구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도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원장의 변호를 맡은 양홍석 변호사는 "우리 법에 증인의 변호인 선임권이 없어, 받아들여 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문제 제기 차원에서 신청했다"며 "피의자인 증인의 경우 방어권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이게 우리 법의 한계"라고 밝혔습니다.

■ "'피의자 증인'의 취약성을 알아달라"…한인섭의 5분 스피치

한 원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자신이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명하겠다는 건데요. 준비해온 의견서를 토대로 검찰 수사의 부당함과 법정 문화의 한계를 주장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한 원장은 우선 형사소송법 제148조에서 '자신이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현재 피의자 신분이라 공소제기를 당할 염려가 있고, 148조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재판부가 검사의 질문사항을 미리 받아보고 증언거부권 대상인지를 판단했다고는 하지만, 검찰이 가진 증거 전체를 본 게 아니므로 판사의 판단을 확실히 믿고 의지할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참고인 조서나 피의자 조서를 재판부가 다 검토해본 것도 아니고, 재판부는 기소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검찰 판단은 또 다를 수 있다는 거죠.

한 원장은 검찰이 자신의 법정 증언을 모아 증거를 보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습니다. 수사가 일단락된 지 반년 이상이 지나도록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자신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런 증거 수집은 편법적인 방법이라고도 지적했습니다.

또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피의사실을 특정해주지 않고 2009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있었던 일을 광범위하게 물어본 데다,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도 또 다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얘기해줬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대체 무슨 혐의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원장은 '피의자 증인'의 어려운 처지를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손쉽게 피고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에, 통상 증인보다 훨씬 취약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검사의 심기를 거스르면 거듭 검사실로 출석을 요구받고, 별건 수사나 기소 위협에 시달릴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는 거죠. 그런 심리적 위축 상태에선 양심에 따른 증언도 하기 어렵다고 재차 설명했습니다. 법정에서 증언을 강요당한다면, 피의자 증인은 법정을 마치 검찰 조사실의 연장처럼 느낄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최소한 피의자 증인에게는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거부권과 상응하는 법정 증언거부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한 원장 발언의 골자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증언거부권을 '눈치 보며 불안하게'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정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검찰은 반박했습니다. 이날 재판에서 물어보려 했던 2009년 조 전 장관의 딸 조민 씨에게 허위 인턴십 증명서를 발급해줬다는 의혹은, 공소시효가 지나 문제가 안 되고 형사입건 대상도 아니라는 겁니다. 한 원장 말대로 피의자 신분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과 한 원장 두 사람의 진술을 듣지 않고는 당시 있었던 일을 도저히 확인할 수가 없는데, 조 전 장관도 마찬가지로 진술을 거부했다며 "그럼 저희가 어떻게 사건을 조사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정 교수 변호인은 이날 한 원장의 발언을 두고 "아주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법학자답게 한인섭 교수님께서 증언거부권의 취지를 아주 감동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 원장이 이날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는 형사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법조인들이 반드시 보고, 사법 현실에 반영해야 할 내용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재판에 주요 증인이 나올 때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40분 만에 집에 간 한인섭…'증인 철회'에도 과태료는 그대로?

원래 한 원장이 정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온 건, 정 교수 측이 한 원장의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원장이 증언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변호인들이 다시 논의한 결과, 조서에 동의하더라도 사실관계 입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에 정 교수 변호인은 "저희가 지금 한 원장에 대한 진술조서에 대해 동의하면 이 문제가 좀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재판부는 논의를 위해 20분가량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한 원장에 대한 증인 신청을 철회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증인 채택을 취소했습니다. 결국 한 원장은 40여 분만에 증언 없이 귀가했습니다.

이어진 재판에서 정 교수 변호인은 그럼 한 원장에 대한 과태료 5백만 원 처분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재판부에 물었는데요. 재판부는 한 원장이 과태료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1주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처분이 확정되는 바람에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며, 과태료 결정문을 그대로 검찰에 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 "징계 무서워 시키는 대로 적었다"…'검찰 강압' 주장한 동양대 조교

이번엔 두 번째로 증언대에 선 증인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동양대 조교 김모 씨와 행정지원처장 정모 씨 얘깁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에도 증인으로 나와, 지난해 동양대 강사 휴게실에 있던 정 교수 PC를 검찰에 임의제출한 과정에 대해 증언했었죠.

그런데 김 씨가 증언 이후 유튜버 '빨간아재'와 인터뷰를 하며 당시 검찰이 징계를 운운하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하자, 변호인 측은 김 씨를 다시 한번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재판부는 불확실한 부분을 확인하겠다며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법정에 다시 나온 김 씨는 임의제출 당시 검찰이 "관리자가 관리도 못 하고 징계를 줘야겠다"고 말하자, 실제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 달랐던 부분들을 짚어줬는데요.


검찰 말대로 '인수인계를 받았다'라고 받아 쓰긴 했지만 사실은 '구두로 들었던' 것에 불과하고, '임용받자마자 확인했다'기보단 '존재 자체만 확인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가지고 있었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고, '그냥 거기에 뒀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씨를 'PC 소유자', 즉 '임의제출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검찰이 입맛에 맞는 진술서를 불러줬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변호인은 그동안 김 씨에게 PC를 임의제출할 권한이 없고, 따라서 PC 자체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해왔는데, 이 주장에 힘을 싣는 증언인 거죠. 김 씨는 자신은 관리자가 아니라서 PC를 검찰에 넘겨줄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고, 임의제출이 아닌 압수수색인 줄 알고 PC를 내준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정 교수 변호인은 김 씨가 '압수수색'인 줄 알고 검찰에 협조했을 뿐,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임의제출'인 줄 알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라며, 동양대 PC가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 '분위기 좋았다'는 말에 울먹인 조교…"진짜 있었던 일 맞다"

하지만 김 씨와 함께 증인으로 나온 행정지원처장 정 씨는 180도 다른 증언을 내놨습니다. 김 씨가 주장했던 '징계를 운운한 대화'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며, 당시 김 씨가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초콜릿을 건네주는 등 분위기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는 겁니다.

또 두 사람이 진술서를 처음 쓰다 보니 방법을 잘 몰라 검사에게 질문을 했고, 검사는 여기에 답변을 해준 것뿐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반드시 불러주는 대로 쓰게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면 좋을지 조언을 준 쪽에 가깝다는 증언입니다.

이에 김 씨는 정 씨 증언이 자신의 기억과 다 다르다며, "그 일은 진짜 있었다"고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증언 중간중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지난 3월 증언과 다른 주장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재판부는 증인신문 말미에 "사람의 기억이란 게 본인이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은 건 그 다음에 물어보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며 "증인이 그 부분에 관해서 상심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위로했습니다.

■ 검찰 "정경심 재판서 조범동 1심 바로잡겠다" VS 정경심 "오해와 편견 걷어내"

한편 지난달 30일,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이자 일부 혐의에 대해 정 교수의 공범으로 적시된 조범동 씨에 대해 징역 4년과 벌금 5천만 원이 선고됐었죠. 정 교수에겐 유리한 판단이 많이 나왔습니다.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빼고는 모두 공모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데다, 권력형 범죄도 아니라고 재판부가 설명했으니까요.

검찰은 지난 2일 이 판결에 항소하며 1심 판단에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있고, 양형도 너무 가볍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어질 정 교수 재판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는데요.

정 교수가 받고 있는 횡령 혐의 등이 처음부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던 정 교수 변호인은 "당연한 내용을 다른 법정에서 확인해줬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권력형 비리'는 아니라는 조 씨 재판부의 판단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오해나 편견을 걷어내는 데 도움을 줬을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조 씨 재판부가 정 교수를 증거인멸 교사 혐의의 공범으로 본 것에 대해선 앞으로 무죄를 입증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정 교수 재판은 한주 숨 고르기를 한 뒤, 오는 16일에 다시 열립니다. 이날은 동양대 직원 9명과, 정 교수 딸 조민 씨가 다녔던 한영외고의 유학반 디렉터 김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다음 [법원의 시간]에서도 재판 내용을 충실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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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의 시간]㉜ 정경심 재판, 40분 만에 집에 돌아간 증인
    • 입력 2020-07-06 07:01:16
    • 수정2020-07-06 07:02:16
    취재K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증인 한인섭'의 특별한 요청…"변호인과 같이 앉게 해달라"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21번째 공판, 두 번째 증인은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었습니다. 한 원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자녀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활동 증명서 등을 받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한 원장은 지난 5월에도 한 차례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유관기관장 회의가 있다며 법정에 나오지 않았는데요. 당시 재판부는 "부당하다"며 과태료 5백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잡힌 기일 이틀 전, 한 원장은 다소 이례적인 서류를 재판부에 제출합니다. 바로 '변호인선임신고서' 그리고 '변호인참여신청서'입니다. 피고인이 아니라 증인 신분인 한 원장이 변호인과 함께 앉아서 신문에 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겁니다.

그 이유로 든 게 바로 '증언거부권'인데요. 한 원장이 조 전 장관 자녀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했다는 의혹으로 이미 피의자 입건된 터라, 법정에서 말한 내용이 수사자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증언 과정에서도 피의자로서 방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형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규칙에, 증언거부권을 가진 증인이 미리 변호인과 상의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한 원장이 극심한 불안을 느낄 수 있는 범죄 피해자처럼 변호인 동석을 요구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도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원장의 변호를 맡은 양홍석 변호사는 "우리 법에 증인의 변호인 선임권이 없어, 받아들여 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문제 제기 차원에서 신청했다"며 "피의자인 증인의 경우 방어권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이게 우리 법의 한계"라고 밝혔습니다.

■ "'피의자 증인'의 취약성을 알아달라"…한인섭의 5분 스피치

한 원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자신이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명하겠다는 건데요. 준비해온 의견서를 토대로 검찰 수사의 부당함과 법정 문화의 한계를 주장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한 원장은 우선 형사소송법 제148조에서 '자신이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현재 피의자 신분이라 공소제기를 당할 염려가 있고, 148조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재판부가 검사의 질문사항을 미리 받아보고 증언거부권 대상인지를 판단했다고는 하지만, 검찰이 가진 증거 전체를 본 게 아니므로 판사의 판단을 확실히 믿고 의지할 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참고인 조서나 피의자 조서를 재판부가 다 검토해본 것도 아니고, 재판부는 기소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검찰 판단은 또 다를 수 있다는 거죠.

한 원장은 검찰이 자신의 법정 증언을 모아 증거를 보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했습니다. 수사가 일단락된 지 반년 이상이 지나도록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된 자신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런 증거 수집은 편법적인 방법이라고도 지적했습니다.

또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피의사실을 특정해주지 않고 2009년부터 2019년 사이에 있었던 일을 광범위하게 물어본 데다, 공소시효가 끝난 것으로 보이는 사안에 대해서도 또 다른 혐의를 적용할 수 있어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얘기해줬다고 비판했습니다. 결국 대체 무슨 혐의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 증언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 원장은 '피의자 증인'의 어려운 처지를 강조했습니다. 검찰이 손쉽게 피고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에, 통상 증인보다 훨씬 취약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검사의 심기를 거스르면 거듭 검사실로 출석을 요구받고, 별건 수사나 기소 위협에 시달릴 거라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는 거죠. 그런 심리적 위축 상태에선 양심에 따른 증언도 하기 어렵다고 재차 설명했습니다. 법정에서 증언을 강요당한다면, 피의자 증인은 법정을 마치 검찰 조사실의 연장처럼 느낄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최소한 피의자 증인에게는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거부권과 상응하는 법정 증언거부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한 원장 발언의 골자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증언거부권을 '눈치 보며 불안하게'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행사할 수 있도록 법정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검찰은 반박했습니다. 이날 재판에서 물어보려 했던 2009년 조 전 장관의 딸 조민 씨에게 허위 인턴십 증명서를 발급해줬다는 의혹은, 공소시효가 지나 문제가 안 되고 형사입건 대상도 아니라는 겁니다. 한 원장 말대로 피의자 신분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서 조국 전 장관과 한 원장 두 사람의 진술을 듣지 않고는 당시 있었던 일을 도저히 확인할 수가 없는데, 조 전 장관도 마찬가지로 진술을 거부했다며 "그럼 저희가 어떻게 사건을 조사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정 교수 변호인은 이날 한 원장의 발언을 두고 "아주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법학자답게 한인섭 교수님께서 증언거부권의 취지를 아주 감동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 원장이 이날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는 형사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법조인들이 반드시 보고, 사법 현실에 반영해야 할 내용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는데요. 앞으로 재판에 주요 증인이 나올 때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40분 만에 집에 간 한인섭…'증인 철회'에도 과태료는 그대로?

원래 한 원장이 정 교수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온 건, 정 교수 측이 한 원장의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원장이 증언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변호인들이 다시 논의한 결과, 조서에 동의하더라도 사실관계 입증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에 정 교수 변호인은 "저희가 지금 한 원장에 대한 진술조서에 대해 동의하면 이 문제가 좀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재판부는 논의를 위해 20분가량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한 원장에 대한 증인 신청을 철회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증인 채택을 취소했습니다. 결국 한 원장은 40여 분만에 증언 없이 귀가했습니다.

이어진 재판에서 정 교수 변호인은 그럼 한 원장에 대한 과태료 5백만 원 처분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재판부에 물었는데요. 재판부는 한 원장이 과태료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1주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아 처분이 확정되는 바람에 더 이상 다툴 수 없다며, 과태료 결정문을 그대로 검찰에 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 "징계 무서워 시키는 대로 적었다"…'검찰 강압' 주장한 동양대 조교

이번엔 두 번째로 증언대에 선 증인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동양대 조교 김모 씨와 행정지원처장 정모 씨 얘깁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에도 증인으로 나와, 지난해 동양대 강사 휴게실에 있던 정 교수 PC를 검찰에 임의제출한 과정에 대해 증언했었죠.

그런데 김 씨가 증언 이후 유튜버 '빨간아재'와 인터뷰를 하며 당시 검찰이 징계를 운운하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하자, 변호인 측은 김 씨를 다시 한번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재판부는 불확실한 부분을 확인하겠다며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법정에 다시 나온 김 씨는 임의제출 당시 검찰이 "관리자가 관리도 못 하고 징계를 줘야겠다"고 말하자, 실제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 달랐던 부분들을 짚어줬는데요.


검찰 말대로 '인수인계를 받았다'라고 받아 쓰긴 했지만 사실은 '구두로 들었던' 것에 불과하고, '임용받자마자 확인했다'기보단 '존재 자체만 확인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는 '가지고 있었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고, '그냥 거기에 뒀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씨를 'PC 소유자', 즉 '임의제출 권한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검찰이 입맛에 맞는 진술서를 불러줬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변호인은 그동안 김 씨에게 PC를 임의제출할 권한이 없고, 따라서 PC 자체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해왔는데, 이 주장에 힘을 싣는 증언인 거죠. 김 씨는 자신은 관리자가 아니라서 PC를 검찰에 넘겨줄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고, 임의제출이 아닌 압수수색인 줄 알고 PC를 내준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정 교수 변호인은 김 씨가 '압수수색'인 줄 알고 검찰에 협조했을 뿐,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임의제출'인 줄 알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거라며, 동양대 PC가 증거능력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 '분위기 좋았다'는 말에 울먹인 조교…"진짜 있었던 일 맞다"

하지만 김 씨와 함께 증인으로 나온 행정지원처장 정 씨는 180도 다른 증언을 내놨습니다. 김 씨가 주장했던 '징계를 운운한 대화'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며, 당시 김 씨가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초콜릿을 건네주는 등 분위기가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는 겁니다.

또 두 사람이 진술서를 처음 쓰다 보니 방법을 잘 몰라 검사에게 질문을 했고, 검사는 여기에 답변을 해준 것뿐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반드시 불러주는 대로 쓰게 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면 좋을지 조언을 준 쪽에 가깝다는 증언입니다.

이에 김 씨는 정 씨 증언이 자신의 기억과 다 다르다며, "그 일은 진짜 있었다"고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증언 중간중간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지난 3월 증언과 다른 주장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재판부는 증인신문 말미에 "사람의 기억이란 게 본인이 특별하게 인식하지 않은 건 그 다음에 물어보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다"며 "증인이 그 부분에 관해서 상심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위로했습니다.

■ 검찰 "정경심 재판서 조범동 1심 바로잡겠다" VS 정경심 "오해와 편견 걷어내"

한편 지난달 30일,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이자 일부 혐의에 대해 정 교수의 공범으로 적시된 조범동 씨에 대해 징역 4년과 벌금 5천만 원이 선고됐었죠. 정 교수에겐 유리한 판단이 많이 나왔습니다.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빼고는 모두 공모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데다, 권력형 범죄도 아니라고 재판부가 설명했으니까요.

검찰은 지난 2일 이 판결에 항소하며 1심 판단에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있고, 양형도 너무 가볍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어질 정 교수 재판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는데요.

정 교수가 받고 있는 횡령 혐의 등이 처음부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던 정 교수 변호인은 "당연한 내용을 다른 법정에서 확인해줬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권력형 비리'는 아니라는 조 씨 재판부의 판단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오해나 편견을 걷어내는 데 도움을 줬을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조 씨 재판부가 정 교수를 증거인멸 교사 혐의의 공범으로 본 것에 대해선 앞으로 무죄를 입증해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정 교수 재판은 한주 숨 고르기를 한 뒤, 오는 16일에 다시 열립니다. 이날은 동양대 직원 9명과, 정 교수 딸 조민 씨가 다녔던 한영외고의 유학반 디렉터 김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다음 [법원의 시간]에서도 재판 내용을 충실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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