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시간]㊾ 막 내린 재판, 다가온 ‘운명의 날’…정경심 마지막 말은?

입력 2020.11.08 (07:01) 수정 2020.11.0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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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34번의 재판, 막 내린 '법원의 시간'…12월 23일 '운명의 날'

지난 5일 , 정경심 교수는 유독 지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법정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미 저녁 7시를 넘긴 시각이라 바깥이 어두워졌지만 정 교수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법원 건물 밖으로 길게 줄을 늘어서서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리거나 서로를 껴안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검찰 역시 담담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마지막 재판을 마무리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는 34번째 공판을 끝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정경심 교수에 대한 모든 재판 절차를 마쳤습니다. 검찰이 정 교수를 처음 기소했던 지난해 9월부터 1년 넘게 숨 가쁘게 이어져 온 재판은, 이제 재판부의 판단만을 남겨뒀습니다.

재판부는 오는 12월 23일 오후 2시, 정 교수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일 저녁,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정 교수가 자신을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지난 5일 저녁,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정 교수가 자신을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검찰 "학벌과 부의 '대물림' 꿈꾼 사회 지도층…노력 대신 특권"

검찰은 정 교수 혐의를 크게 입시비리, 사모펀드, 증거인멸 등 3가지로 나눈 뒤 각 범행의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배경엔 '사회지도층', '기득권', '최고 엘리트 계층'이라는 정 교수 가족의 지위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력과 공정 대신 반칙과 특권을 이용해 혜택을 누리려 했다는 겁니다. 많은 국민이 '그들만의 캐슬'에서 벌어진 기회의 불평등에 깊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꼈다고도 꼬집었습니다.

검찰은 정 교수의 행동이 '도덕적 비난'의 영역일 뿐 '범죄'의 영역은 아니지 않으냐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듯, 정 교수 혐의의 중대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범행을 저지른 점을 볼 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는 심각한 법 경시 태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도 비판했습니다.


특히, 구형에 앞서 정 교수에게 '집행유예의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한 점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점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범행을 반복한 점 ▲범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점 ▲증거은폐를 시도한 점 등을 보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검찰은 정 교수에게 징역 7년과 벌금 9억 원, 추징금 1억 6천여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 검찰 "'국정농단'과 비슷한 사건…시작은 '검찰' 아닌 '시민'이었다"

검찰은 이날 최종 의견에서 갖가지 비유와 사례를 들었습니다.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이 언급됐습니다. 언론 등 시민사회가 제기한 살아있는 권력의 부정부패 의혹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자 형사법 집행권이 발동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 교수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이 닮아있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수사의 시작점이 검찰이 아닌 시민사회였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후보자 지명 이후 검증 과정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됐고, 시민사회가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검찰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또 입증이 부족하거나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의혹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고, 그냥 눈감고 넘어갈 수 없는 부정부패만 선별해 기소했다고도 부연했습니다. '정치적 수사', '과잉 수사', '먼지털기식 수사'였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변인 셈입니다.

여기서 특별한 그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표창장 위조 의혹 하나를 밝히려고 수십 곳을 압수수색했다", 조 전 장관과 정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흔히 많이 하는 얘깁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일축했습니다. 70여 회에 이르는 압수수색은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했고, 범행에 가담한 인적·물적 자원이 방대하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입니다. 표창장 위조 의혹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거죠.


검찰은 또,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수사에 착수하고 기소했다는 견해 역시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오곤 했다며, 조 전 장관 일가를 수사함으로써 개인이나 검찰 조직에 이익이 되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또 당시 장관을 낙마시킨다고 검찰개혁의 방향이 급선회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며, 그렇게 생각한단 건 정말 '어리석은 판단'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은 오히려 최고 엘리트 계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정당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패막이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 검찰 "이대 정유라·숙명여고 쌍둥이 사건보다 심각"…최근 대법원 판례 주목

검찰은 또 정 교수 사건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보다 중대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두 사건은 표창장이나 확인서 등을 직접 위조한 정 교수보다 오히려 가벼운 사건인데도 모두 징역 3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다는 겁니다.

이어 "우리 사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지난 9월 24일 선고된 최신 대법원 판례(2017도19283)도 언급했습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인 학부모는 한 병원에서 딸의 봉사활동확인서를 허위로 발급받아 고등학교에 제출했고, 이 때문에 딸은 학교에서 봉사상을 받았는데요.

대법원은 학교에서 학생의 봉사활동확인서가 허위라는 점을 알기는 어렵고 당연히 확인서가 진실함을 전제로 봉사상 심사를 했기 때문에, 잘못은 피고인 측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확인서가 위조됐는지까지 학교가 심사할 의무는 없다고 본 거죠. 결국, 피고인이 학교장의 봉사상 선정 업무를 방해할 위험을 일으켰다며, 대법원은 업무방해 혐의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검찰 주장대로, 이 사건이 정 교수 사건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변호인 "조국 낙마 위한 '표적 수사'…무차별적 공격"

변호인도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특히 사건의 시작부터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개입됐다고 꼬집었는데요.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의 낙마를 목적으로 수십 명의 검사와 수사관을 투입해, 일가를 대상으로 '표적 수사'를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정 교수 가족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과 수모를 겪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법리적인 문제점도 하나하나 언급했습니다. 우선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선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서증조사에서 말했듯, 이 사건의 공소사실이 대부분 '정성적 평가'에 관한 것이라는 거죠.

변호인은 "검사는 단 한치의 허위나 과장도 없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공소사실을 구성한 것 같다"라며 "평가 대상이 되는 그 활동의 실질이 존재하는데, 평가자 주관이 개입된 과장일 수는 있어도 허위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펙을 요구하는 입시제도 아래 학원,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렸고, 이런 일이 정 교수 가족만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공소사실 대부분이 '오래된 과거'에 속해있다는 것도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됐습니다. 변호인은 ▲증거의 소멸 ▲기억의 한계 ▲파편적으로만 존재하는 사실관계 ▲완전한 사실관계 복구의 어려움 ▲추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위험성 ▲남아있는 사실관계는 전체 중 극히 일부라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애초부터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해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공소사실에 기재된 경력을 쌓고 이를 의전원 입시에 낸 사람은 정 교수의 딸 조민 씨입니다. 그런데 정작 피고인은 엄마인 정 교수죠. 당사자가 아닌 정 교수가 어디까지 알았는지, 또 어디까지 범행을 주도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 변호인 "정경심은 자본시장 조작 세력의 피해자…탈법 목적 없었다"

변호인은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서도 자신감 있게 변론을 이어갔습니다. 우선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에게 미공개 정보를 전달받아 주식을 샀다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정 교수가 '피해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씨 등 자본시장 조작 세력의 본심을 몰라보고, '장밋빛 전망'을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는 겁니다. 사기적 부정거래에 이용당한 피해자를 기소한 것은, 검찰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애초에 정 교수가 받은 정보가 시장이 모르는 미공개 정보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예컨대 2018년 1월 'WFM 군산공장 가동' 정보의 경우, 공장 부지를 매수하거나 공장 시설물이 들어왔다는 등의 사실이 이미 공시된 상황이라 가동을 시작한다는 게 그다지 새로운 중요 정보가 아니었다는 설명입니다. 변호인은 "마치 제가 자동차를 사고 면허를 땄는데, 운전할 예정이라는 게 미공개 중요정보라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빗대 표현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좋은 수익을 얻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코링크PE의 횡령이나 금융위 보고 과정 등은 잘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차명계좌를 이용해 투자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소량의 주식을 단기에 매각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탈법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증거인멸 관련 혐의 역시, 야당과 언론의 사모펀드 관련 과도한 의혹 제기를 우려했을 뿐 형사사건의 증거를 없앨 고의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정경심 "검찰 수사로 발가벗겨진 삶…주어진 혜택 무비판적 수용 반성"

1년간 이어져 온 재판의 마지막 순서는 정 교수의 '최후진술'이었습니다. 앞서 코링크PE 관계자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한 차례 직접 질문을 한 것을 제외하면, 정 교수가 법정에서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준비해 온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던 정 교수는 발언 도중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정 교수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검찰이 '첩첩이 덧씌운 혐의'가 벗겨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고도 했습니다. 수사와 재판으로 겪었던 고통,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과, 그리고 긴 시간 끝에 깨달은 반성도 담겼습니다. 정 교수의 최후진술 내용은 더함이나 뺌 없이, 이 자리에서 그대로 전해드리려 합니다.

정경심 교수의 최후진술 (2020. 11. 5.)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님.

먼저 수십 차례 열린 재판을 진행하신 점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제게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 주신 점 역시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당당히 서려고 노력했지만, 이 사건이 가진 무게감으로 심신이 여전히 매우 힘든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작년 8월 초부터 시작해서 1년을 훌쩍 넘기며 진행되어온 이 사건의 중심에 제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공직에 임명된 제 배우자가 사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 사건 기소, 특히나 제가 표창장 위조했다는 것은 제가 아는 사실, 제가 가진 기억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제가 최성해 총장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총장님이 표창장 발급 사실을 어찌 아셨겠습니까. 제가 총장님 몰래 표창장을 위조했다면 왜 제가 왜 총장에게 표창장 주셔서 감사하다 인사를 드렸겠습니까. 그리고 제 말을 듣고 최성해 총장께서 “아, 부산대 말고 경북대 지원했다면 내가 전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는데” 라고 답변을 하겠습니까.

저는 결혼 이후 계속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업을 철저하게 챙기는 극성 엄마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제 딸 아이의 고3 담임 선생님은 “고3 자녀를 두고도 한 해에 어쩌면 학교를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그런 학부형이 있습니까?”라고 놀릴 정도였습니다.

사모펀드도 제가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한국투자증권의 전문가 김경록과 공직자윤리위 등 여기저기 문의하고 의견을 들어 공직에 있는 제 배우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고 선택한 것입니다. 작년 청문회 정국에서도 전 사모펀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 청문회 준비단이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진실한 정보를 구하여 전달하고자 동분서주하였습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 조작하거나 인멸하라고 이리저리 지시한 점 전혀 없습니다.

10년도 더 전,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딸 아이 입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저는 제 연구실 컴퓨터에 보관돼 있었던 백업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검토하여 당시 제기되는 문제를 해명하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제 개인자료를 제가 가져가는 것이 법적으로 증거인멸 등의 위법행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부족하겠지만, 제 나름대로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학자였던 저의 배우자가 공직자 된 뒤에는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물론 친정 식구와 시댁 식구까지 망라하는 온 가족이 수사대상이 되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파렴치한으로 전락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저와 가족 모두에 대한 컴퓨터 파일과 정보가 모두 검찰에게 압수되면서 예전 10여 년 이상의 삶이 발가벗겨졌습니다. 저에 대한 수사가 배우자로 번지고 자식들에게 깊고도 날카로우며 광범위하게 겨눠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일순간 사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을 지탱한 것은 그 스스로가 살아온 삶에 대한 신뢰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희망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현실에서 담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그동안 맺어온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저의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어느 누구도 시련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수사대상이 되면서, 저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위기와 파탄에 빠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수모와 고통을 겪은 여러 지인들께 고개 숙여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님.

저는 일 년이 넘는 힘든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저와 제 가족이 누려온 삶이 통상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예외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저희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왔다는 반성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님.

검찰 조사를 마친 후 법정에 출석하면서 저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검찰이 저에게 첩첩이 덧씌운 혐의가 벗겨지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저는 법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이런 희망이 이뤄질 것을 굳게 믿습니다.

부디 부족하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제출한 자료들을 꼼꼼히 검토하셔서 억울함이 없도록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원의 시간]도 그동안 정 교수 재판 내용을 빠트림 없이 기록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오는 12월 23일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또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충실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2020년의 끝자락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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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의 시간]㊾ 막 내린 재판, 다가온 ‘운명의 날’…정경심 마지막 말은?
    • 입력 2020-11-08 07:01:33
    • 수정2020-11-08 09:33:29
    취재K

이제 검찰의 시간은 끝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변호인, 2019.12.31.)

지난해 온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이 사건은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하는 법정에 당도했습니다. 공개된 법정에서 치열하게 펼쳐질 '법원의 시간'을 함께 따라가 봅니다.

■ 34번의 재판, 막 내린 '법원의 시간'…12월 23일 '운명의 날'

지난 5일 , 정경심 교수는 유독 지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법정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미 저녁 7시를 넘긴 시각이라 바깥이 어두워졌지만 정 교수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법원 건물 밖으로 길게 줄을 늘어서서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리거나 서로를 껴안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검찰 역시 담담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마지막 재판을 마무리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임정엽 권성수 김선희 부장판사)는 34번째 공판을 끝으로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정경심 교수에 대한 모든 재판 절차를 마쳤습니다. 검찰이 정 교수를 처음 기소했던 지난해 9월부터 1년 넘게 숨 가쁘게 이어져 온 재판은, 이제 재판부의 판단만을 남겨뒀습니다.

재판부는 오는 12월 23일 오후 2시, 정 교수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일 저녁, 결심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는 정 교수가 자신을 응원하는 시민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검찰 "학벌과 부의 '대물림' 꿈꾼 사회 지도층…노력 대신 특권"

검찰은 정 교수 혐의를 크게 입시비리, 사모펀드, 증거인멸 등 3가지로 나눈 뒤 각 범행의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배경엔 '사회지도층', '기득권', '최고 엘리트 계층'이라는 정 교수 가족의 지위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력과 공정 대신 반칙과 특권을 이용해 혜택을 누리려 했다는 겁니다. 많은 국민이 '그들만의 캐슬'에서 벌어진 기회의 불평등에 깊은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꼈다고도 꼬집었습니다.

검찰은 정 교수의 행동이 '도덕적 비난'의 영역일 뿐 '범죄'의 영역은 아니지 않으냐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한 듯, 정 교수 혐의의 중대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범행을 저지른 점을 볼 때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는 심각한 법 경시 태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도 비판했습니다.


특히, 구형에 앞서 정 교수에게 '집행유예의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범행 수법이 매우 불량한 점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점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범행을 반복한 점 ▲범행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점 ▲증거은폐를 시도한 점 등을 보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검찰은 정 교수에게 징역 7년과 벌금 9억 원, 추징금 1억 6천여만 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 검찰 "'국정농단'과 비슷한 사건…시작은 '검찰' 아닌 '시민'이었다"

검찰은 이날 최종 의견에서 갖가지 비유와 사례를 들었습니다.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이 언급됐습니다. 언론 등 시민사회가 제기한 살아있는 권력의 부정부패 의혹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자 형사법 집행권이 발동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 교수 사건과 국정농단 사건이 닮아있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수사의 시작점이 검찰이 아닌 시민사회였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조국 전 장관의 후보자 지명 이후 검증 과정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됐고, 시민사회가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요구함에 따라 검찰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또 입증이 부족하거나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의혹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고, 그냥 눈감고 넘어갈 수 없는 부정부패만 선별해 기소했다고도 부연했습니다. '정치적 수사', '과잉 수사', '먼지털기식 수사'였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변인 셈입니다.

여기서 특별한 그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표창장 위조 의혹 하나를 밝히려고 수십 곳을 압수수색했다", 조 전 장관과 정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흔히 많이 하는 얘깁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일축했습니다. 70여 회에 이르는 압수수색은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했고, 범행에 가담한 인적·물적 자원이 방대하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입니다. 표창장 위조 의혹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거죠.


검찰은 또,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수사에 착수하고 기소했다는 견해 역시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오곤 했다며, 조 전 장관 일가를 수사함으로써 개인이나 검찰 조직에 이익이 되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는 겁니다.

또 당시 장관을 낙마시킨다고 검찰개혁의 방향이 급선회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웠다며, 그렇게 생각한단 건 정말 '어리석은 판단'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은 오히려 최고 엘리트 계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정당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방패막이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 검찰 "이대 정유라·숙명여고 쌍둥이 사건보다 심각"…최근 대법원 판례 주목

검찰은 또 정 교수 사건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보다 중대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두 사건은 표창장이나 확인서 등을 직접 위조한 정 교수보다 오히려 가벼운 사건인데도 모두 징역 3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됐다는 겁니다.

이어 "우리 사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지난 9월 24일 선고된 최신 대법원 판례(2017도19283)도 언급했습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인 학부모는 한 병원에서 딸의 봉사활동확인서를 허위로 발급받아 고등학교에 제출했고, 이 때문에 딸은 학교에서 봉사상을 받았는데요.

대법원은 학교에서 학생의 봉사활동확인서가 허위라는 점을 알기는 어렵고 당연히 확인서가 진실함을 전제로 봉사상 심사를 했기 때문에, 잘못은 피고인 측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확인서가 위조됐는지까지 학교가 심사할 의무는 없다고 본 거죠. 결국, 피고인이 학교장의 봉사상 선정 업무를 방해할 위험을 일으켰다며, 대법원은 업무방해 혐의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검찰 주장대로, 이 사건이 정 교수 사건에도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변호인 "조국 낙마 위한 '표적 수사'…무차별적 공격"

변호인도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특히 사건의 시작부터 순수하지 않은 의도가 개입됐다고 꼬집었는데요. 검찰이 조국 전 장관의 낙마를 목적으로 수십 명의 검사와 수사관을 투입해, 일가를 대상으로 '표적 수사'를 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정 교수 가족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모욕과 수모를 겪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법리적인 문제점도 하나하나 언급했습니다. 우선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선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서증조사에서 말했듯, 이 사건의 공소사실이 대부분 '정성적 평가'에 관한 것이라는 거죠.

변호인은 "검사는 단 한치의 허위나 과장도 없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공소사실을 구성한 것 같다"라며 "평가 대상이 되는 그 활동의 실질이 존재하는데, 평가자 주관이 개입된 과장일 수는 있어도 허위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스펙을 요구하는 입시제도 아래 학원,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렸고, 이런 일이 정 교수 가족만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공소사실 대부분이 '오래된 과거'에 속해있다는 것도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됐습니다. 변호인은 ▲증거의 소멸 ▲기억의 한계 ▲파편적으로만 존재하는 사실관계 ▲완전한 사실관계 복구의 어려움 ▲추정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위험성 ▲남아있는 사실관계는 전체 중 극히 일부라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애초부터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해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공소사실에 기재된 경력을 쌓고 이를 의전원 입시에 낸 사람은 정 교수의 딸 조민 씨입니다. 그런데 정작 피고인은 엄마인 정 교수죠. 당사자가 아닌 정 교수가 어디까지 알았는지, 또 어디까지 범행을 주도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입니다.

■ 변호인 "정경심은 자본시장 조작 세력의 피해자…탈법 목적 없었다"

변호인은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서도 자신감 있게 변론을 이어갔습니다. 우선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 씨에게 미공개 정보를 전달받아 주식을 샀다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정 교수가 '피해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조 씨 등 자본시장 조작 세력의 본심을 몰라보고, '장밋빛 전망'을 믿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는 겁니다. 사기적 부정거래에 이용당한 피해자를 기소한 것은, 검찰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변호인은 애초에 정 교수가 받은 정보가 시장이 모르는 미공개 정보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예컨대 2018년 1월 'WFM 군산공장 가동' 정보의 경우, 공장 부지를 매수하거나 공장 시설물이 들어왔다는 등의 사실이 이미 공시된 상황이라 가동을 시작한다는 게 그다지 새로운 중요 정보가 아니었다는 설명입니다. 변호인은 "마치 제가 자동차를 사고 면허를 땄는데, 운전할 예정이라는 게 미공개 중요정보라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빗대 표현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좋은 수익을 얻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코링크PE의 횡령이나 금융위 보고 과정 등은 잘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차명계좌를 이용해 투자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소량의 주식을 단기에 매각했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탈법 목적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증거인멸 관련 혐의 역시, 야당과 언론의 사모펀드 관련 과도한 의혹 제기를 우려했을 뿐 형사사건의 증거를 없앨 고의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 정경심 "검찰 수사로 발가벗겨진 삶…주어진 혜택 무비판적 수용 반성"

1년간 이어져 온 재판의 마지막 순서는 정 교수의 '최후진술'이었습니다. 앞서 코링크PE 관계자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한 차례 직접 질문을 한 것을 제외하면, 정 교수가 법정에서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준비해 온 글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던 정 교수는 발언 도중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정 교수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검찰이 '첩첩이 덧씌운 혐의'가 벗겨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고도 했습니다. 수사와 재판으로 겪었던 고통,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과, 그리고 긴 시간 끝에 깨달은 반성도 담겼습니다. 정 교수의 최후진술 내용은 더함이나 뺌 없이, 이 자리에서 그대로 전해드리려 합니다.

정경심 교수의 최후진술 (2020. 11. 5.)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님.

먼저 수십 차례 열린 재판을 진행하신 점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제게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 주신 점 역시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당당히 서려고 노력했지만, 이 사건이 가진 무게감으로 심신이 여전히 매우 힘든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작년 8월 초부터 시작해서 1년을 훌쩍 넘기며 진행되어온 이 사건의 중심에 제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공직에 임명된 제 배우자가 사퇴를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 사건 기소, 특히나 제가 표창장 위조했다는 것은 제가 아는 사실, 제가 가진 기억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제가 최성해 총장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총장님이 표창장 발급 사실을 어찌 아셨겠습니까. 제가 총장님 몰래 표창장을 위조했다면 왜 제가 왜 총장에게 표창장 주셔서 감사하다 인사를 드렸겠습니까. 그리고 제 말을 듣고 최성해 총장께서 “아, 부산대 말고 경북대 지원했다면 내가 전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는데” 라고 답변을 하겠습니까.

저는 결혼 이후 계속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아이들의 학업을 철저하게 챙기는 극성 엄마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제 딸 아이의 고3 담임 선생님은 “고3 자녀를 두고도 한 해에 어쩌면 학교를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그런 학부형이 있습니까?”라고 놀릴 정도였습니다.

사모펀드도 제가 뭐가 뭔지 잘 몰라서, 한국투자증권의 전문가 김경록과 공직자윤리위 등 여기저기 문의하고 의견을 들어 공직에 있는 제 배우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고 선택한 것입니다. 작년 청문회 정국에서도 전 사모펀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 청문회 준비단이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진실한 정보를 구하여 전달하고자 동분서주하였습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 조작하거나 인멸하라고 이리저리 지시한 점 전혀 없습니다.

10년도 더 전,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딸 아이 입시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저는 제 연구실 컴퓨터에 보관돼 있었던 백업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검토하여 당시 제기되는 문제를 해명하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제 개인자료를 제가 가져가는 것이 법적으로 증거인멸 등의 위법행위와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부족하겠지만, 제 나름대로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학자였던 저의 배우자가 공직자 된 뒤에는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물론 친정 식구와 시댁 식구까지 망라하는 온 가족이 수사대상이 되어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파렴치한으로 전락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저와 가족 모두에 대한 컴퓨터 파일과 정보가 모두 검찰에게 압수되면서 예전 10여 년 이상의 삶이 발가벗겨졌습니다. 저에 대한 수사가 배우자로 번지고 자식들에게 깊고도 날카로우며 광범위하게 겨눠지는 과정을 보면서 저는 일순간 사는 것에 대하여 심각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한 인간을 지탱한 것은 그 스스로가 살아온 삶에 대한 신뢰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희망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현실에서 담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그동안 맺어온 인간관계일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지난 수십 년에 걸친 저의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어느 누구도 시련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수사대상이 되면서, 저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도, 직장도, 인간관계도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며, 위기와 파탄에 빠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수모와 고통을 겪은 여러 지인들께 고개 숙여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님.

저는 일 년이 넘는 힘든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저와 제 가족이 누려온 삶이 통상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예외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저희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왔다는 반성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님.

검찰 조사를 마친 후 법정에 출석하면서 저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검찰이 저에게 첩첩이 덧씌운 혐의가 벗겨지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저는 법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이런 희망이 이뤄질 것을 굳게 믿습니다.

부디 부족하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제출한 자료들을 꼼꼼히 검토하셔서 억울함이 없도록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원의 시간]도 그동안 정 교수 재판 내용을 빠트림 없이 기록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오는 12월 23일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또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충실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2020년의 끝자락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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