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리포트] ⑭ “내 방식대로 산다!”…꿈을 좇는 청년들

입력 2016.03.22 (06:57) 수정 2018.07.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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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돼있습니다. 순서와 상관없이 관심 가는 내용부터 보셔도 됩니다.

① “대학 수석졸업생은 토스트 구우면 안 되나요?”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① “대학 수석졸업생은 토스트 구우면 안 되나요?”

 소통의 삶 꿈꾸는 이준형 씨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교 후문 앞에 위치한 허름한 토스트 가게. 방학과 한파로 한동안 닫혀있었던 가게 문이 열리자 삼삼오오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오랜만이네요. 공부는 잘돼요?”,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고향이 영주라고 했죠?”

가게를 운영하는 이준형(28) 씨는 토스트를 구우며 무심한 듯 친숙한 말투로 손님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돈이 모자라서 다음에 오겠다는 학생들에겐 “재료 남겨서 뭐하겠느냐”며 토스트를 공짜로 주기도 했다. 토스트 맛은 훌륭했다. 2,000~2,500원짜리 치고는 양도 많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토스트 굽는 연기엔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간판 ‘광.인.수.집’(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의 집)간판 ‘광.인.수.집’(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의 집)


간판부터 범상치 않은 이곳은 나름 이 동네의 명소다. 이 씨는 2년 전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가게를 차리기 전 이 씨도 직장을 다녔다. 재학 시절 인턴으로 입사한 취업컨설팅회사에서 2년 만에 정규직 팀장 자리에 올라 월 300여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잦은 출장과 늦은 퇴근이 반복되면서 인생을 소모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가족들도 그의 뜻을 존중해줬다.



특별한 기술과 큰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업종으로 토스트 장사를 택한 이 씨는 재학시절 몸담고 있던 기독교 동아리 선배의 조언으로 지난해 3월 학교 앞에 둥지를 틀었다. 인문학도로서 학교 후배들에게 ‘좋은 형’이 돼주고픈 마음에서였다.

처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인문대 졸업생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슬프다”, “학교 망신시킨다”, “사람들 이목 끌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도 많았다. 일부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 있는 시도”라며 이 씨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6㎡(2평) 남짓한 가게엔 손님들이 남긴 응원메시지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고 단골도 많아졌다. 5~6시간씩 고민 상담이나 잡담을 하고 가는 후배들도 생겼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응원 메시지들손님들이 남기고 간 응원 메시지들




광인수집의 ‘스토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장사도 제법 잘 됐다. 한창땐 하루 20~30만 원씩 벌었다. 주 5일 장사를 고집하면서 ‘공무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여러 단체에서 의뢰가 들어와 수차례 강연도 했다. 몇몇 언론에 소개되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까지 생겼다. 그럴수록 직업에 대한 그의 철학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게 ‘남다른’ 1년을 보낸 이 씨는 이제 새로운 도전의 길목에 섰다. 최근 가게를 정리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도 왔지만 거절했다. 토스트 장사를 더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이 씨의 목표는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면서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 구체적인 그림이 아직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당분간 책도 쓰고 마음껏 고민해볼 작정이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하는 그의 미소가 유쾌한 에너지를 전했다.



☞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우주비행을 꿈꾸는 이동진 씨



히말라야 5,800m 등정, 울진-독도 간 240km 수영 횡단, 아마존 정글 마라톤 222km 완주, 미 대륙 자전거 6,000km 횡단, 말 타고 몽골 2,500km 횡단 등… 말 그대로 ‘무한도전’을 실천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일명 ‘청년 모험가’로 불리는 이동진(28) 씨다.



10대 학창시절 이 씨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싫어 거울도 잘 안 봤다고 한다. 학창시절 내내 그런 ‘찌질한’ 모습을 바꾸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입 실패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독한 마음으로 공부해 대학에 합격한 이 씨는 성취의 달콤함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자기 변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뮤지컬 동아리 활동은 그의 소심한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행동하면서 바뀌는 자신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이 씨는 마라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도전의 스케일을 좀 더 키워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위에 열거한 이력은 그 시기에 채운 것들이다.

도전이 성공할 때마다 자신감은 더해졌고 두려움과 망설임은 사라져 갔다.
그의 도전기가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2012년에는 아시아나항공 메인 모델로 광고 촬영을 하고 대한민국 청년 인재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도전기를 담은 책도 냈다.

아시아나항공 CF 출연 화면아시아나항공 CF 출연 화면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의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무모해 보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강연 등으로 모은 돈 500여만 원을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도전과 성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담은 제안서를 들고 미국 비행학교 10곳을 찾아다닌 끝에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한 비행학교와 협력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한 달여 만에 이뤄낸 쾌거다.

이 씨의 남다른 열정과 계획에 마음이 움직인 학교는 전액 장학금까지 약속했다. 이 씨는 4월 중순부터 1년간 비행학교에 다니며 개인 비행 면허 취득에 도전한다. 이 씨의 도전기는 매주 한편씩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공개되고 10개월 후 영화와 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도 도전기를 전한다. 비행학교는 이 씨의 이런 활동을 통해 홍보 효과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이 씨는 미국 Coast Flight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이 씨는 미국 Coast Flight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 씨는 중·장기 도전 과제도 설정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우선 미국 50개 주를 횡단할 작정이다. 다음엔 전 세계 100개국 세계 일주를, 이후에는 영국의 우주여행 업체인 ‘버진 갤럭틱’에서 우주 비행사 훈련을 받아 우주로 나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SNS와 블로그를 통해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런 이 씨도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선배들 대부분이 행복이나 꿈과는 멀어진 채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모습을 본 후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 씨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로 낙천적인 성격을 꼽았다. 조금은 남다른 길을 가는 그에게 걱정, 불안, 인내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계속될 수 있는 건 바로 그 긍정의 에너지 덕분인 듯했다. 인터뷰 내내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던 이 씨의 표정에서 그의 가슴 떨리는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이메일 주소도 ‘heartbeat’을 쓴다.



☞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전공 대신 취미를 택한 김병준 사진작가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병준(28) 씨는 대학 4년을 장학생으로 다니다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한 뒤 전역해 바로 대기업 건설사에 취업했다. 계속된 취업난 속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순조로운 행보였다.

하지만 2년 후 그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김 씨는 어차피 불안하게 살 거면 나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결심이 서자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떠났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해외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마음껏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진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김 씨는 화장실 청소나 육류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주로 했다. 일부러 새벽 4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일하는 시간대를 택했고 일이 끝나면 길거리로 나가 온종일 사진을 찍었다. 도심 속 일상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다양한 피사체를 쫓던 카메라는 점점 사람에 집중됐다. 특히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 타깃이 됐다. 말 그대로 그림이 되는 데다,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촬영하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작품 사진작품 사진


그렇게 3개월 정도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우연한 기회에 국내의 한 사진 관련 웹진과 인터뷰하는 기회도 얻게 됐다. 김 씨는 그때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자신처럼 길거리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후 패션 사진에 특화한 작업을 이어갔고 수개월 만에 500명 이상의 현지 패션업계 관계자들과 교류하게 됐다. 그가 찍은 사진이 국내외 매체에 팔리면서 조금씩 수입도 늘어났다. 국내 스트리트 웹매거진 빅 3업체인 M사, H사, L사에 고정적으로 사진을 납품하면서 각종 PPL 촬영 작업도 했다. 덕분에 이젠 직장 생활할 때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작품 사진작품 사진


특히 매년 1~3월과 8~10월 뉴욕과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4대 패션위크는 김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터’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걸 핑계로 여기저기 여행 다닐 수 있어서다. ‘떠돌이 사진가’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1년 4개월간의 호주 생활을 접고 지난해 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최근 스튜디오 사업자 등록을 하고 동료 2명을 맞이했다. 스튜디오를 안정궤도에 올리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김 씨가 지금의 성과를 내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퇴직금을 털어서 산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통째로 도둑맞기도 했고 호주의 한 흑인클럽에선 의뢰받은 사진을 찍어주고 돈도 못 받고 내쫓긴 적도 있었다. 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문을 두드렸다. 먼저 그를 찾아준 업체는 없었다. 공들여 찍은 사진이 퇴짜 맞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진을 전공한 게 아니다 보니 실력을 쌓기 위해 하루 3시간 정도 자면서 공부하는 건 기본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은 만성질환처럼 달고 산다.



최근 스위스 여행 사진최근 스위스 여행 사진


김 씨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생 행복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사는 것이다. 모델과 사진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라는 그의 철학이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인 듯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행동에 나서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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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22 06:57:41
    • 수정2018-07-20 10: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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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돼있습니다. 순서와 상관없이 관심 가는 내용부터 보셔도 됩니다. ① “대학 수석졸업생은 토스트 구우면 안 되나요?”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① “대학 수석졸업생은 토스트 구우면 안 되나요?”  소통의 삶 꿈꾸는 이준형 씨 지난 2월, 서울의 한 대학교 후문 앞에 위치한 허름한 토스트 가게. 방학과 한파로 한동안 닫혀있었던 가게 문이 열리자 삼삼오오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오랜만이네요. 공부는 잘돼요?”,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고향이 영주라고 했죠?” 가게를 운영하는 이준형(28) 씨는 토스트를 구우며 무심한 듯 친숙한 말투로 손님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돈이 모자라서 다음에 오겠다는 학생들에겐 “재료 남겨서 뭐하겠느냐”며 토스트를 공짜로 주기도 했다. 토스트 맛은 훌륭했다. 2,000~2,500원짜리 치고는 양도 많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토스트 굽는 연기엔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간판 ‘광.인.수.집’(광운대 인문대 수석 졸업자의 집) 간판부터 범상치 않은 이곳은 나름 이 동네의 명소다. 이 씨는 2년 전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가게를 차리기 전 이 씨도 직장을 다녔다. 재학 시절 인턴으로 입사한 취업컨설팅회사에서 2년 만에 정규직 팀장 자리에 올라 월 300여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잦은 출장과 늦은 퇴근이 반복되면서 인생을 소모적으로 살고 있다고 느꼈고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그는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가족들도 그의 뜻을 존중해줬다. 특별한 기술과 큰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업종으로 토스트 장사를 택한 이 씨는 재학시절 몸담고 있던 기독교 동아리 선배의 조언으로 지난해 3월 학교 앞에 둥지를 틀었다. 인문학도로서 학교 후배들에게 ‘좋은 형’이 돼주고픈 마음에서였다. 처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인문대 졸업생의 최후를 보는 것 같아 슬프다”, “학교 망신시킨다”, “사람들 이목 끌려고 별짓을 다 한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도 많았다. 일부 동네 어르신들의 따가운 눈총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 있는 시도”라며 이 씨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6㎡(2평) 남짓한 가게엔 손님들이 남긴 응원메시지가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고 단골도 많아졌다. 5~6시간씩 고민 상담이나 잡담을 하고 가는 후배들도 생겼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응원 메시지들 광인수집의 ‘스토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장사도 제법 잘 됐다. 한창땐 하루 20~30만 원씩 벌었다. 주 5일 장사를 고집하면서 ‘공무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여러 단체에서 의뢰가 들어와 수차례 강연도 했다. 몇몇 언론에 소개되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까지 생겼다. 그럴수록 직업에 대한 그의 철학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렇게 ‘남다른’ 1년을 보낸 이 씨는 이제 새로운 도전의 길목에 섰다. 최근 가게를 정리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도 왔지만 거절했다. 토스트 장사를 더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어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 한다. 이 씨의 목표는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면서 사는 길을 찾는 것이다. 구체적인 그림이 아직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당분간 책도 쓰고 마음껏 고민해볼 작정이다.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말하는 그의 미소가 유쾌한 에너지를 전했다.
☞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② “가만히 있는 천재보다 움직이는 바보가 낫다” 우주비행을 꿈꾸는 이동진 씨 히말라야 5,800m 등정, 울진-독도 간 240km 수영 횡단, 아마존 정글 마라톤 222km 완주, 미 대륙 자전거 6,000km 횡단, 말 타고 몽골 2,500km 횡단 등… 말 그대로 ‘무한도전’을 실천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 일명 ‘청년 모험가’로 불리는 이동진(28) 씨다. 10대 학창시절 이 씨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싫어 거울도 잘 안 봤다고 한다. 학창시절 내내 그런 ‘찌질한’ 모습을 바꾸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입 실패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독한 마음으로 공부해 대학에 합격한 이 씨는 성취의 달콤함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자기 변화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무턱대고 시작한 뮤지컬 동아리 활동은 그의 소심한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행동하면서 바뀌는 자신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이 씨는 마라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도전의 스케일을 좀 더 키워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위에 열거한 이력은 그 시기에 채운 것들이다. 도전이 성공할 때마다 자신감은 더해졌고 두려움과 망설임은 사라져 갔다. 그의 도전기가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2012년에는 아시아나항공 메인 모델로 광고 촬영을 하고 대한민국 청년 인재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자신의 도전기를 담은 책도 냈다. 아시아나항공 CF 출연 화면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의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무모해 보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도전도 시작했다. 강연 등으로 모은 돈 500여만 원을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도전과 성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담은 제안서를 들고 미국 비행학교 10곳을 찾아다닌 끝에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한 비행학교와 협력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한 달여 만에 이뤄낸 쾌거다. 이 씨의 남다른 열정과 계획에 마음이 움직인 학교는 전액 장학금까지 약속했다. 이 씨는 4월 중순부터 1년간 비행학교에 다니며 개인 비행 면허 취득에 도전한다. 이 씨의 도전기는 매주 한편씩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공개되고 10개월 후 영화와 책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서도 도전기를 전한다. 비행학교는 이 씨의 이런 활동을 통해 홍보 효과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이 씨는 미국 Coast Flight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 씨는 중·장기 도전 과제도 설정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우선 미국 50개 주를 횡단할 작정이다. 다음엔 전 세계 100개국 세계 일주를, 이후에는 영국의 우주여행 업체인 ‘버진 갤럭틱’에서 우주 비행사 훈련을 받아 우주로 나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SNS와 블로그를 통해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런 이 씨도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선배들 대부분이 행복이나 꿈과는 멀어진 채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모습을 본 후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이 씨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로 낙천적인 성격을 꼽았다. 조금은 남다른 길을 가는 그에게 걱정, 불안, 인내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 계속될 수 있는 건 바로 그 긍정의 에너지 덕분인 듯했다. 인터뷰 내내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던 이 씨의 표정에서 그의 가슴 떨리는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이메일 주소도 ‘heartbeat’을 쓴다.
☞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③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전공 대신 취미를 택한 김병준 사진작가 건축공학을 전공한 김병준(28) 씨는 대학 4년을 장학생으로 다니다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ROTC 장교로 군 복무를 한 뒤 전역해 바로 대기업 건설사에 취업했다. 계속된 취업난 속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순조로운 행보였다. 하지만 2년 후 그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김 씨는 어차피 불안하게 살 거면 나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결심이 서자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떠났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해외에서 좋아하는 사진을 마음껏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사진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진은 그의 유일한 취미였다. 김 씨는 화장실 청소나 육류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주로 했다. 일부러 새벽 4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일하는 시간대를 택했고 일이 끝나면 길거리로 나가 온종일 사진을 찍었다. 도심 속 일상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다양한 피사체를 쫓던 카메라는 점점 사람에 집중됐다. 특히 옷을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 타깃이 됐다. 말 그대로 그림이 되는 데다,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은근히 즐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촬영하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작품 사진 그렇게 3개월 정도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우연한 기회에 국내의 한 사진 관련 웹진과 인터뷰하는 기회도 얻게 됐다. 김 씨는 그때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자신처럼 길거리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후 패션 사진에 특화한 작업을 이어갔고 수개월 만에 500명 이상의 현지 패션업계 관계자들과 교류하게 됐다. 그가 찍은 사진이 국내외 매체에 팔리면서 조금씩 수입도 늘어났다. 국내 스트리트 웹매거진 빅 3업체인 M사, H사, L사에 고정적으로 사진을 납품하면서 각종 PPL 촬영 작업도 했다. 덕분에 이젠 직장 생활할 때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작품 사진 특히 매년 1~3월과 8~10월 뉴욕과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4대 패션위크는 김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터’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그걸 핑계로 여기저기 여행 다닐 수 있어서다. ‘떠돌이 사진가’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다. 1년 4개월간의 호주 생활을 접고 지난해 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최근 스튜디오 사업자 등록을 하고 동료 2명을 맞이했다. 스튜디오를 안정궤도에 올리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김 씨가 지금의 성과를 내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퇴직금을 털어서 산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통째로 도둑맞기도 했고 호주의 한 흑인클럽에선 의뢰받은 사진을 찍어주고 돈도 못 받고 내쫓긴 적도 있었다. 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문을 두드렸다. 먼저 그를 찾아준 업체는 없었다. 공들여 찍은 사진이 퇴짜 맞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진을 전공한 게 아니다 보니 실력을 쌓기 위해 하루 3시간 정도 자면서 공부하는 건 기본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은 만성질환처럼 달고 산다. 최근 스위스 여행 사진 김 씨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생 행복하게 사진을 찍으면서 사는 것이다. 모델과 사진을 보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라는 그의 철학이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용기의 원천인 듯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행동에 나서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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