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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리포트] ⑯ “영어에 주눅들지말고 당당하게 부딪쳐라”
입력 2016.03.29 (06:54) 수정 2018.07.20 (10:58) 청년리포트
[청년 리포트] ⑯ “영어에 주눅들지말고 당당하게 부딪쳐라”
내 무대는 미국 중북부의 최대 도시 시카고다. 한국 토종인 내가 지금 미국의 H마트라는 미국 최대 아시안 마트에서 일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1 토종 강성하(32), 미국 유통업체를 뚫다.

강성하 씨강성하 씨


대학에서 유통학을 전공한 나는 일찌감치 해외 취업에 뜻을 품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국내 유통업체에서 일하면서도 아시아권의 현지 한인 사이트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이력서를 냈지만, 답이 오는 경우도 드물었다. 간간이 오는 제안 중에는 생활이 어려운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겠다는 것 뿐이었다.

나는 더 큰 시장을 보기로 했다. 세계 유통 중심지 미국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어학 능력은 부족하지만 실무 경험이 풍부했다. 이론 공부를 위해 유통대학원에도 다녔다. 몇 개의 해외 구직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영어 이력서를 제출했고, 자기소개서에 공을 들였다.

미국의 한인유통업체 HMART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비자 문제가 걸렸다. 미국 취업비자(H-1B)는 매년 4월에만 접수를 받으며, 6만5000개 쿼터 이상의 비자 신청서가 접수되면 무작위 추첨을 한다. 자격 조건 또한 매우 까다롭다. 나를 스폰해 줄 고용회사의 업종과 나의 대학교 전공 또는 최소 6~12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 운 좋게도 나는 이 과정을 잘 넘겼다. 유통대학원을 다닌 경력도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내 해외취업의 성공 요인을 말하자면 풍부한 실무 경험과 치밀한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부족한 어학을 전문적인 업무 능력으로 메웠다. 나만의 유통시장 조사 자료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미국 기업은 어학보다는 자기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을 뽑는다.

급여는 한국보다 조금 높지만 전체적인 생활 수준은 한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 직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요즘 한국 마트의 경쟁력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은 치열한 경쟁 속에 다양한 시스템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고, 다양한 영업 개선활동과 분석,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발주 시스템이나, 진열, 마케팅 등이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래서 이 곳 미국에선 더 기회가 있다고 본다. 많은 청년들이 이 길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2 뉴욕 박물관 헤드 디자이너가 된 '예스걸'

황지은 씨황지은 씨


2005년, 나 황지은(36)은 예술의 전당에 근무하던 직장인이었다. 미대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더 큰 무대에서 내 꿈을 펼치겠다는 ‘무모한’ 꿈을 꿨다. 하지만 토종인 나를 갑자기 미국 회사가 그럴듯한 자리를 주며 부를 가능성은 없었다.

방향을 못 잡던 나는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취업을 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2005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제2회 미국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면서 정신이 들었다. 영어 같은 지원자격은 까다롭지 않았고,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자리였다. 기본 생활비와 숙식은 제공되는 자리였다. "바로 이거야!"

그렇게 해서 나는 태평양을 건너왔다. 미 워싱턴 D.C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3개월간 그래픽 디자인 인턴으로 일하면서 미국 생활은 시작됐다.

인턴 생활은 나에게 해외취업의 꿈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준 계기였다. 3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면서 나는 워싱턴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부지런히 다녔다. "한국인 특유의 세밀함을 발휘하면 미국 박물관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스펙을 더 쌓을 필요가 있었다. 28세, 남들은 늦었다는 나이에 뉴욕의 대학원에서 디자인과 그래픽을 공부한 뒤 나는 뉴욕의 역사박물관(The New-York Historical Society Museum &Library)에 들어가는데 성공하게 됐다. 1804년 개관한 뉴욕 최초의 박물관이다.

더 큰 관문은 비자였다. 나는 박물관에서 3개월 인턴십으로 시작한 뒤, 1년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비자 스폰서를 받는 외국인 근로자가 됐다. 비자를 받기 위해 나는 이 회사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박물관에서 번거롭게 취업 스폰서를 해주려면 그럴 이유가 충분해야 해주는 게 미국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지속적으로 신소재를 조사해 전시 설치 분야에서 경제적인 방법을 제안했고, 주말에는 늘 다른 박물관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내가 절약하게 된 전시비용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계산해 나의 인사평가 노트에 첨부하기도 했다.

2010년, 나는 헤드 그래픽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인턴으로 입사한 지 3년만에 온 행운이었다.

비결이라는 게 있을까. 굳이 묻는다면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 기업 문화는 실리적이기에 한국의 기업 문화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인 고유의 근성이 이곳에서도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직원들의 생일파티나 경조사에 내가 손수 디자인한 카드를 돌렸고, 도움이 필요한 직원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줬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 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해 ‘예스 걸’ (yes girl)이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지금은 5명의 미국인 어시스트 디자이너와 2명의 인턴을 데리고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디지인한 전시의 홍보물이 뉴욕의 지하철이나 신문에 크게 실리는 것을 보는 건 보람된 일과가 됐다.

더 멀리, 그리고 길게 보면 기회는 더 많이 온다고 후배들에게 충고해주고 싶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이처럼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취업자수는 6542명 수준이다. 2014년의 3266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 취업의 질이 높지 않고, 나라의 범위도 넓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시장에 좀 더 관심을 둘 것을 충고한다.

한식 조리사 김다희씨도 아시아 국가에 관심을 두고 두드린 끝에 해외 취업에 성공한 경우다.


#3 싱가포르의 '한식 전도사' 김다희(24)씨

김다희 씨김다희 씨


4년제 대학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문대 조리과를 들어간 내가 해외 취업을 생각한 건 대학 2년 때다. 캄보디아 봉사활동이 계기가 댔다. 열흘간의 봉사활동은 내 요리기술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요리를 하는 국경없는 요리사의 꿈을 키우게 했다.

졸업 무렵부터 나는 해외 취업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월드잡 플러스 사이트(http://www.worldjob.or.kr)에도 수시로 들어가 채용 공고를 확인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난 홍콩의 한 한식당에 취업하게 됐다. 걱정도 많았지만 와서 일해보니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대우도 나쁘지 않았고, 내가 만드는 한식을 외국 사람들이 먹는 것도 신기했고, 한식에 대한 외국인 반응도 좋았다.

그럼에도 외국에서 한식이란 아직은 ‘ 값 싸고 낯선’ 음식에 불과하다. 일식은 비싼 돈을 내고도 사먹지만, 한식은 아직 그렇지 않다.

한식은 조금만 가격을 올려도 금방 손님이 준다는 씁쓸한 얘기는 내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한식 공부를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한국의 사이버대학교 3학년에 편입해 주경야독했고, 홍콩에서 쓰는 영어와 광동어 공부도 틈틈히 했다. 내 꿈인 '국경 없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들이다.

1년간의 홍콩생활을 마치고 나는 지금 싱가포르의 한 레스토랑에 취직해 있다. 경력직 한식조리사를 채용한다는 얘기를 듣고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오게 됐다. 물론 조건은 이전 직장보다 좋다. 이제 싱가포르에 온지 7개월, 아직도 내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민족국가인 이 곳에서 한식으로 우리나라를 알리고, 봉사하는 일에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

요리에 관심있는 청년들이라면 더 넓은 무대에서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해외취업을 하는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현지 한인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외 취업 경험자들은 의외로 현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서 일할 경우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이진아씨도 그런 경우다.

#4 뉴질랜드에 K뷰티를 심는 이진아(30)씨

이진아 씨이진아 씨


작년에 나는 뉴질랜드로 날아왔다. 20대의 마지막 해였다.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나는 내 고향 한국을 떠나 낮선 남쪽 나라로 가고 있을까.

미용사 자격증이 있던 나에게는 경쟁이 덜 치열한 해외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봤다. "한국인들의 세밀한 손기술과 미용 실력은 외국에서는 분명히 경쟁력이 있을 거야!"

이곳저곳 해외 취업을 타진했다. 해외 구직사이트 등을 통해 태국, 미국, 브라질, 아일랜드 등에서 취업이 가능한지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기회는 왔다. 정부 해외 취업 지원 프로그램인 'K-무브'를 통해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뉴질랜드로 오게 됐다.

처음 이곳 뉴질랜드에 왔을 때 모든 게 낯설었다. 영어도 서툴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주로 알아봤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조금씩 적응하면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현지인 가게에 더 좋은 조건과 더 많은 기회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 현지인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개인 서비스업도 그렇지만, 미용사로서 일하기에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장점이 더 많다. 뉴질랜드 미용실은 한국과는 다른 단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커트를 할 경우, 샴푸와 드라이, 차 대접 등의 모든 서비스가 포함되지만 뉴질랜드는 다 별도의 요금을 받는다. 육체적 피로도가 덜하다.

직장내 동료들이 모두 수평적인 관계고, 초과 근무 수당이나 휴일 수당은 당연하다. 일하기 전 근로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다.

물론 다 좋은 건 아니다. 한국의 역동성과 활기참은 여기서는 보기 힘들다. 그래도 포기하고 떠나기엔 이 곳 뉴질랜드는 너무나 매력적인 땅이었다. 내가 사는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는 깨끗한 자연환경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해외 취업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영어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부딪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영어가 부족해도 서양인들의 문화와 예절, 사고 방식을 잘 알면 그들을 이해하고 친해지는데 큰 문제가 없다.

◆갈 길 먼 해외취업, 맞춤형으로 공략해야



정부는 지난해 말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연간 1만명을 해외에 취업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해외취업예산을 87억원 증액한 454억원을 책정해 해외취업의 길라잡이가 될수록 국가별, 직종별 맞춤현 정략을 수립해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지난해 해외취업자 수 6542명은 청년실업의 대안으로 해외취업을 얘기하기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더 문제는 취업의 질이다. 해외취업을 했다지만 상당수는 단순 서비스업에 취직하는 경우다. 더욱이 대다수가 선진국 위주로만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경우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직종별로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 언어나 취업 경력 등이 부족하면 취업하기 쉽지않은 만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미국의 경우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치과기공사 등 틈새유망 업종을 노릴 필요가 있고 일본의 경우 IT수요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공략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취업전문가들은 말한다. 호주는 특수기능, 기능분야의 인력 수요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아시아 시장의 경우 대다수 구직자들이 싱가포르와 홍콩 취업을 바탕으로 선진국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쉽지 않고, 무엇보다 경력 1~2년 정도는 있어야 취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신흥국들은 일자리도 많고, 진취적인 청년이라면 현지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크지만 진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해외 취업은 정부의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는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맞춤형 교육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K-Move 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 일자리 발굴과 상담을 위해 세계 11개소에 K-Move 센터를 운영중이다. 여러 부처의 해외 구인정보를 모은 사이트인 월드잡 플러스 사이트 (http://www.worldjob.or.kr)도 정보가 풍부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 일자리지원국 이우진 팀장은 “선진국만 볼 게 아니라 신흥국의 중간관리자로 해외 청년 취업으로 목표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며 “동남아시아 신흥국이나, 중동의 간호사, 기술 인력 등 눈을 돌리면 해외 취업의 기회는 많다”고 충고했다. 



☞ [청년 리포트] ① “내 청춘은 아직도 일용직”
☞ [청년 리포트] ②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 [청년 리포트] ③ 비싼 등록금에 “3년에 빚이 3000만 원”
☞ [청년 리포트] ④ “33살, 대학 3학년생”…빚 때문에 졸업도 못해
☞ [청년 리포트] ⑤ “청춘은 슬픔? 백지?”…혼돈의 청년들
☞ [청년 리포트] ⑥ “왜 모두 대학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 [청년 리포트] ⑦ 대학 대신 내 길 갔지만…“고졸로 살기 쉽지 않아요”
☞ [청년 리포트] ⑧ “취업 때까지는 연애하지 않을 겁니다”
☞ [청년 리포트] ⑨ “공감한다…청년 행복한 나라 만들어야”
☞ [청년 리포트] ⑩ ‘대딩이냐 공딩이냐’…당신의 선택은?
☞ [청년 리포트] ⑪ 은행 고졸 채용 5년, 능력은 대졸 못지 않다지만…
☞ [청년 리포트] ⑫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당신이라면?
☞ [청년 리포트] ⑬ 청년 창업 증가한다지만…생존율은?
☞ [청년 리포트] ⑭ “내 방식대로 산다!”…꿈을 좇는 청년들
☞ [청년 리포트] ⑮ “아가씨가 농사짓는다고요? 거짓말 말아요”



☞ 청년리포트 인터뷰 모음 보기

  • [청년 리포트] ⑯ “영어에 주눅들지말고 당당하게 부딪쳐라”
    • 입력 2016.03.29 (06:54)
    • 수정 2018.07.20 (10:58)
    청년리포트
[청년 리포트] ⑯ “영어에 주눅들지말고 당당하게 부딪쳐라”
내 무대는 미국 중북부의 최대 도시 시카고다. 한국 토종인 내가 지금 미국의 H마트라는 미국 최대 아시안 마트에서 일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었다'

#1 토종 강성하(32), 미국 유통업체를 뚫다.

강성하 씨강성하 씨


대학에서 유통학을 전공한 나는 일찌감치 해외 취업에 뜻을 품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국내 유통업체에서 일하면서도 아시아권의 현지 한인 사이트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이력서를 냈지만, 답이 오는 경우도 드물었다. 간간이 오는 제안 중에는 생활이 어려운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겠다는 것 뿐이었다.

나는 더 큰 시장을 보기로 했다. 세계 유통 중심지 미국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어학 능력은 부족하지만 실무 경험이 풍부했다. 이론 공부를 위해 유통대학원에도 다녔다. 몇 개의 해외 구직 사이트를 통해 꾸준히 영어 이력서를 제출했고, 자기소개서에 공을 들였다.

미국의 한인유통업체 HMART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러자 비자 문제가 걸렸다. 미국 취업비자(H-1B)는 매년 4월에만 접수를 받으며, 6만5000개 쿼터 이상의 비자 신청서가 접수되면 무작위 추첨을 한다. 자격 조건 또한 매우 까다롭다. 나를 스폰해 줄 고용회사의 업종과 나의 대학교 전공 또는 최소 6~12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 운 좋게도 나는 이 과정을 잘 넘겼다. 유통대학원을 다닌 경력도 큰 도움이 된 것이다.

내 해외취업의 성공 요인을 말하자면 풍부한 실무 경험과 치밀한 준비라고 말할 수 있다. 부족한 어학을 전문적인 업무 능력으로 메웠다. 나만의 유통시장 조사 자료와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미국 기업은 어학보다는 자기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을 뽑는다.

급여는 한국보다 조금 높지만 전체적인 생활 수준은 한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 직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요즘 한국 마트의 경쟁력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은 치열한 경쟁 속에 다양한 시스템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고, 다양한 영업 개선활동과 분석,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발주 시스템이나, 진열, 마케팅 등이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래서 이 곳 미국에선 더 기회가 있다고 본다. 많은 청년들이 이 길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2 뉴욕 박물관 헤드 디자이너가 된 '예스걸'

황지은 씨황지은 씨


2005년, 나 황지은(36)은 예술의 전당에 근무하던 직장인이었다. 미대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더 큰 무대에서 내 꿈을 펼치겠다는 ‘무모한’ 꿈을 꿨다. 하지만 토종인 나를 갑자기 미국 회사가 그럴듯한 자리를 주며 부를 가능성은 없었다.

방향을 못 잡던 나는 정부가 지원하는 해외 취업을 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2005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제2회 미국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면서 정신이 들었다. 영어 같은 지원자격은 까다롭지 않았고,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자리였다. 기본 생활비와 숙식은 제공되는 자리였다. "바로 이거야!"

그렇게 해서 나는 태평양을 건너왔다. 미 워싱턴 D.C의 한 비영리단체에서 3개월간 그래픽 디자인 인턴으로 일하면서 미국 생활은 시작됐다.

인턴 생활은 나에게 해외취업의 꿈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준 계기였다. 3개월간 인턴으로 일하면서 나는 워싱턴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부지런히 다녔다. "한국인 특유의 세밀함을 발휘하면 미국 박물관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스펙을 더 쌓을 필요가 있었다. 28세, 남들은 늦었다는 나이에 뉴욕의 대학원에서 디자인과 그래픽을 공부한 뒤 나는 뉴욕의 역사박물관(The New-York Historical Society Museum &Library)에 들어가는데 성공하게 됐다. 1804년 개관한 뉴욕 최초의 박물관이다.

더 큰 관문은 비자였다. 나는 박물관에서 3개월 인턴십으로 시작한 뒤, 1년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식으로 비자 스폰서를 받는 외국인 근로자가 됐다. 비자를 받기 위해 나는 이 회사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박물관에서 번거롭게 취업 스폰서를 해주려면 그럴 이유가 충분해야 해주는 게 미국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다. 지속적으로 신소재를 조사해 전시 설치 분야에서 경제적인 방법을 제안했고, 주말에는 늘 다른 박물관을 다니며 자료를 수집했다. 내가 절약하게 된 전시비용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계산해 나의 인사평가 노트에 첨부하기도 했다.

2010년, 나는 헤드 그래픽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인턴으로 입사한 지 3년만에 온 행운이었다.

비결이라는 게 있을까. 굳이 묻는다면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미국 기업 문화는 실리적이기에 한국의 기업 문화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인 고유의 근성이 이곳에서도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직원들의 생일파티나 경조사에 내가 손수 디자인한 카드를 돌렸고, 도움이 필요한 직원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줬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 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해 ‘예스 걸’ (yes girl)이라는 별명을 가진 내가 지금은 5명의 미국인 어시스트 디자이너와 2명의 인턴을 데리고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디지인한 전시의 홍보물이 뉴욕의 지하철이나 신문에 크게 실리는 것을 보는 건 보람된 일과가 됐다.

더 멀리, 그리고 길게 보면 기회는 더 많이 온다고 후배들에게 충고해주고 싶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이처럼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청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취업자수는 6542명 수준이다. 2014년의 3266명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 취업의 질이 높지 않고, 나라의 범위도 넓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시장에 좀 더 관심을 둘 것을 충고한다.

한식 조리사 김다희씨도 아시아 국가에 관심을 두고 두드린 끝에 해외 취업에 성공한 경우다.


#3 싱가포르의 '한식 전도사' 김다희(24)씨

김다희 씨김다희 씨


4년제 대학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문대 조리과를 들어간 내가 해외 취업을 생각한 건 대학 2년 때다. 캄보디아 봉사활동이 계기가 댔다. 열흘간의 봉사활동은 내 요리기술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요리를 하는 국경없는 요리사의 꿈을 키우게 했다.

졸업 무렵부터 나는 해외 취업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운영하는 월드잡 플러스 사이트(http://www.worldjob.or.kr)에도 수시로 들어가 채용 공고를 확인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난 홍콩의 한 한식당에 취업하게 됐다. 걱정도 많았지만 와서 일해보니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많았다. 대우도 나쁘지 않았고, 내가 만드는 한식을 외국 사람들이 먹는 것도 신기했고, 한식에 대한 외국인 반응도 좋았다.

그럼에도 외국에서 한식이란 아직은 ‘ 값 싸고 낯선’ 음식에 불과하다. 일식은 비싼 돈을 내고도 사먹지만, 한식은 아직 그렇지 않다.

한식은 조금만 가격을 올려도 금방 손님이 준다는 씁쓸한 얘기는 내 도전 정신을 자극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한식 공부를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한국의 사이버대학교 3학년에 편입해 주경야독했고, 홍콩에서 쓰는 영어와 광동어 공부도 틈틈히 했다. 내 꿈인 '국경 없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들이다.

1년간의 홍콩생활을 마치고 나는 지금 싱가포르의 한 레스토랑에 취직해 있다. 경력직 한식조리사를 채용한다는 얘기를 듣고 화상 인터뷰를 통해 오게 됐다. 물론 조건은 이전 직장보다 좋다. 이제 싱가포르에 온지 7개월, 아직도 내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다민족국가인 이 곳에서 한식으로 우리나라를 알리고, 봉사하는 일에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

요리에 관심있는 청년들이라면 더 넓은 무대에서 도전하라고 권하고 싶다.

해외취업을 하는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현지 한인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외 취업 경험자들은 의외로 현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서 일할 경우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이진아씨도 그런 경우다.

#4 뉴질랜드에 K뷰티를 심는 이진아(30)씨

이진아 씨이진아 씨


작년에 나는 뉴질랜드로 날아왔다. 20대의 마지막 해였다. 10시간이 넘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나는 내 고향 한국을 떠나 낮선 남쪽 나라로 가고 있을까.

미용사 자격증이 있던 나에게는 경쟁이 덜 치열한 해외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봤다. "한국인들의 세밀한 손기술과 미용 실력은 외국에서는 분명히 경쟁력이 있을 거야!"

이곳저곳 해외 취업을 타진했다. 해외 구직사이트 등을 통해 태국, 미국, 브라질, 아일랜드 등에서 취업이 가능한지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기회는 왔다. 정부 해외 취업 지원 프로그램인 'K-무브'를 통해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뉴질랜드로 오게 됐다.

처음 이곳 뉴질랜드에 왔을 때 모든 게 낯설었다. 영어도 서툴고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을 주로 알아봤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조금씩 적응하면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현지인 가게에 더 좋은 조건과 더 많은 기회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 현지인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다른 개인 서비스업도 그렇지만, 미용사로서 일하기에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장점이 더 많다. 뉴질랜드 미용실은 한국과는 다른 단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커트를 할 경우, 샴푸와 드라이, 차 대접 등의 모든 서비스가 포함되지만 뉴질랜드는 다 별도의 요금을 받는다. 육체적 피로도가 덜하다.

직장내 동료들이 모두 수평적인 관계고, 초과 근무 수당이나 휴일 수당은 당연하다. 일하기 전 근로계약서를 쓰기 때문에 함부로 해고할 수도 없다.

물론 다 좋은 건 아니다. 한국의 역동성과 활기참은 여기서는 보기 힘들다. 그래도 포기하고 떠나기엔 이 곳 뉴질랜드는 너무나 매력적인 땅이었다. 내가 사는 뉴질랜드 북섬의 오클랜드는 깨끗한 자연환경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해외 취업에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영어에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부딪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영어가 부족해도 서양인들의 문화와 예절, 사고 방식을 잘 알면 그들을 이해하고 친해지는데 큰 문제가 없다.

◆갈 길 먼 해외취업, 맞춤형으로 공략해야



정부는 지난해 말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연간 1만명을 해외에 취업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해외취업예산을 87억원 증액한 454억원을 책정해 해외취업의 길라잡이가 될수록 국가별, 직종별 맞춤현 정략을 수립해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지난해 해외취업자 수 6542명은 청년실업의 대안으로 해외취업을 얘기하기는 아직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더 문제는 취업의 질이다. 해외취업을 했다지만 상당수는 단순 서비스업에 취직하는 경우다. 더욱이 대다수가 선진국 위주로만 문을 두드리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경우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직종별로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선진국의 경우 언어나 취업 경력 등이 부족하면 취업하기 쉽지않은 만큼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미국의 경우 진출이 상대적으로 쉬운 치과기공사 등 틈새유망 업종을 노릴 필요가 있고 일본의 경우 IT수요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공략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취업전문가들은 말한다. 호주는 특수기능, 기능분야의 인력 수요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아시아 시장의 경우 대다수 구직자들이 싱가포르와 홍콩 취업을 바탕으로 선진국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취업 관문을 통과하기 쉽지 않고, 무엇보다 경력 1~2년 정도는 있어야 취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신흥국들은 일자리도 많고, 진취적인 청년이라면 현지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크지만 진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해외 취업은 정부의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부는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맞춤형 교육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인 K-Move 스쿨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지 일자리 발굴과 상담을 위해 세계 11개소에 K-Move 센터를 운영중이다. 여러 부처의 해외 구인정보를 모은 사이트인 월드잡 플러스 사이트 (http://www.worldjob.or.kr)도 정보가 풍부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글로벌 일자리지원국 이우진 팀장은 “선진국만 볼 게 아니라 신흥국의 중간관리자로 해외 청년 취업으로 목표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며 “동남아시아 신흥국이나, 중동의 간호사, 기술 인력 등 눈을 돌리면 해외 취업의 기회는 많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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