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표시·검역 ‘거미줄’…실효성 논란

입력 2008.06.24 (16:26)

정부가 24일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를 반영한 새로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고시에 앞서 원산지 표시와 검역을 강화하는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미국 정부의 보증 아래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한 추가협상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안전성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어 고시 이전에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하고 검역 권한을 추가로 강화한데 이어 원산지 표시와 검역을 강화하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과 반찬까지 원산지를 표시해야 할 정도의 거미줄 규제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과 인접한 혀와 내장(소장)의 조직검사방법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아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다.

◇ 원산지.검역에 추가 안전 장치 반영
정부의 원산지 표시.검역 강화 조치는 새로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의 고시에 앞서 추가협상 결과와 검역 대책 내용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검역 지침에 추가 안전장치를 반영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덜겠다는 차원이다.
실제 추가협상 결과 발표 이후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증 방식인 `한국 수출용 30개월령 미만 증명 프로그램(약칭 한국 QSA)'의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30개월 이상 쇠고기인지를 제대로 판별할 수 없고 유럽연합(EU)에서는 SRM으로 규정돼 수입이 금지되는 내장도 수입금지 품목에서 제외됐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는 이에 따라 100㎡ 이상 등 규모에 관계없이 소규모(100㎡ 미만) 등 모든 식당에 대해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도록 했고 현행 법상 원산지 표시 적용 대상이 아닌 50인 미만 보육시설.학교의 집단 급식소도 관련 부처의 내부 규정에 반영해 원산지 표시를 하도록 했다.
구이, 탕, 찜 뿐만 아니라 국, 반찬, 햄버거 등 쇠고기와 쇠고기 가공품을 이용한 모든 음식의 원산지도 표시하도록 해 소비자들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주고 특별단속도 하기로 했다.
검역차원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능검사 과정에서 개봉검사 수준을 호주나 뉴질랜드산보다 높이고 SRM과 인접한 혀와 내장(소장)이 들어오면 수입건별로 해동검사와 조직검사를 하기로 했다.
내장의 경우 30㎝ 간격으로 5개의 샘플 조직을 채취, 이 가운데 4개 이상에서 '파이어스패치'라는 림프소절이 확인되면 해당 물량을 반송키로 하는 등 검역도 강화하기로 했다.

◇ 500명이 64만곳 관리..실효성 논란
새로운 원산지 표시 제도는 한 마디로 '모든 식당.급식소의 모든 쇠고기 사용 음식은 원산지를 밝혀야한다'는 것이지만 단속의 현실적인 한계와 함께 소규모 식당의 반발이 우려된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원산지표시 대상 업소는 수는 약 64만3천여 곳에 이른다.
정부는 원산지 표시 대상 확대에 맞춰 농산물품질관리원의 특별사법경찰을 600명에서 1천명으로 확대하는 등 특별단속에 4천800명을 투입키로 했다.
문제는 오는 9월 이후 특별단속이 끝나면 500명의 상시단속반이 64만곳이 넘는 원산지 표시 대상 업소를 관리해야 한다.
더구나 원산지표시 대상 식품 범위는 애초 '소.돼지.닭고기, 축산물가공품을 이용해 구이.탕.찜.튀김 등으로 조리해 판매되는 것'으로 한정했으나 입법예고 과정에서 수렴된 의견을 반영해 '식육과 포장육 및 쇠고기 가공품을 이용해 조리한 모든 음식'으로 확대돼 실효성 논란을 더 키웠다.
현실적으로 소량의 쇠고기가 들어간 국이나 반찬 등까지 어떻게 일일이 원산지를 표시하고, 어떻게 단속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수의사연대 정책실장은 "국내 한우에 대한 생산이력추적제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산지 표시제를 강화해봤자 전시행정에 그치고 국내산과 호주산, 미국산 젖소를 구분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일선 식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 식당 주인은 "야채 볶음밥에 조금 들어가는 쇠고기 뿐만 아니라 밥, 김치, 돼지고기, 닭고기 등 대부분의 음식에 대해 원산지 표시를 하라는 것"이라며 "식당 벽이나 메뉴판을 메뉴가 아니라 원산지 표시로 도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산지 표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당장은 자율규제로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들어오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율규제에서 이탈하는 업체가 발생하는 등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원산지 표시 만으로는 부족하고 월령까지 표시하도록 지금 입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내장 검역 강화..분쟁 우려
정부는 미국산 소의 SRM 판정 세부 기준을 마련, SRM과 인접한 혀.내장이 들어오면 수입건별 등으로 각 3개 상자의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모두 녹인 뒤 육안을 통한 관능검사와 함께 현미경을 통한 조직검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내장의 경우 30㎝ 간격으로 5개의 샘플 조직을 채취, 이 가운데 4개 이상에서 '파이어스패치'라는 림프소절이 확인되면 미국 가공 과정에서 SRM인 회장원위부가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해당 물량을 반송키로 했다. 미국 작업장들은 도축.가공 과정에서 약 50㎝인 회장원위부가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토록 약 2m의 소장을 잘라 버리고 있다.
정부는 이 검사 방식을 시범 운영한 결과 신뢰성이 95%이상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내장에 대한 조직 검사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실제 적용 과정에서 검역 마찰이 빚어질 수 있고 일부 전문가들은 파이어스패치가 농도 차이만 있을 뿐 소장 전체에 분포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박상표 국민건강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파이어스 패치는 소장 전체에 분포하고 있는 만큼 조직 검사를 해도 이것의 밀도로 SRM을 정확하게 가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광우병 감염 경로를 보면 SRM이 파이어스 패치나 편도로 흡수된 뒤 뇌, 척수로 가서 말초신경으로 뻗어나간다"며 "결국 파이어스 패치가 문제인데 1개 이상에서 발견되면 무조건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또 혀와 내장의 조직검사방법에 대한 한.미의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분쟁의 소지가 남아있다.
정부는 혀와 내장에 대한 조직검사방법에 대해 한.미 양국이 기술협의를 열어 실효성 있는 검사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간 검사방법에 대해 의견 일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능검사 과정에서 포장 수량의 3%를 개봉검사하는 대책은 한시적인 조치이기는 하지만 호주 및 뉴질랜드산 쇠고기에 대한 개봉검사 비율이 포장 수량의 1%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 업자들의 반발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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