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융감독 기능 일원화에 속앓이

입력 2008.01.17 (06:13)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재경정경제부의 금융정책 기능을 금융위원회에 이관, 금융감독 기능을 일원화하기로 하자 한국은행이 서운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이번 기회에 감독 기능 일부를 넘겨받아 감독 영역을 넓히기를 내심 바랐지만,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이기때문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1997년말 한은법 6차 개정 당시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한은 총재로 바꾸면서 금융감독의 핵심 기능을 금융감독위원에 대부분 넘겼다.
하지만 한은은 그동안 통화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금융제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감독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성태 한은 총재도 이달 10일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현행 감독체제를 10년 정도 운용한 만큼 금융환경이나 시장 등 새로운 방식에 맞게 감독체계를 보완하면 좋은 것이 아니냐"며 여지를 남겼었다.
이 총재의 평소 지론은 "금융기관의 위기가 발생하면 최종대부자로서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중앙은행은 평소 금융기관의 건전성 여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노던록 사태가 발생한 것도 중앙은행과 감독기구가 철저히 분리된 데 따른 맹점이 드러난 게 아니냐는 것이 이 총재의 시각이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의 부실이 발생하기 전까지 검사 정보를 한은에 충실히 제공하고 있고 공동검사권까지 한은이 갖고 있다며 한은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한은은 이에 대해 "감독당국이 관련 정보를 한은에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그 정보가 한은이 정교한 통화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미흡한 수준이며 두 기관 사이에 협조도 썩 원활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는 입장이다.
게다가 재경부의 금융정책 기능이 이관돼 금융위원회의 권한이 막강해지면 정보 협조는 예전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은은 기본적으로 인.허가, 규제, 검사, 제재 등 금융감독의 여러 기능 가운데 금융기관의 평소 건전성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검사 권한과 검사 대상 기관을 넓혀주길 희망하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융회사, 내셔널뱅크(州 단위가 아닌 전국 단위의 영업을 하는 은행), 외국금융사 등에 대해 감독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한은도 은행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을 평소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예컨대 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초래되기 전에 경고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데 부실의 과정은 전혀 모른 채 중앙은행이 뒷감당만 하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당국이 모니터링만 한 후 결과를 한은에 통보해주고 한은은 최종대부자 역할만 하라는 것은 마치 시중은행이 기업.가계에 대출해줄 때 해당 기업.가계의 건전성 여부는 전혀 모른 채 신용평가기관의 평가자료만 토대로 대출해주라는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논의의 흐름을 볼 때 이러한 주장은 먹혀들 틈이 없다는 게 한은의 고민이다.
새 정부가 감독기능 일원화를 추구하는 마당에 한은까지 끼워 넣어 감독기능을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기관"이라는 질타와 함께 금통위를 한은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잘못 높였다가는 새 정부로부터의 견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한은은 속앓이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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