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서 ‘대권’까지…흑인 정치 도전사

입력 2008.11.05 (22:10)

<앵커 멘트>

첫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미국 흑인의 정치 도전사는 피와 눈물로 점철돼 있습니다.

노예에서 대권을 차지하기까지 굴곡의 도전사를 박찬형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865년 노예해방과 함께 흑인의 정치 참여 역사는 시작됐습니다.

1870년 미시시피주에서 최초의 흑인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이 탄생한 이후 1901년까지 8개 주에서 1명 이상의 흑인 의원이 나옵니다.

하지만, 흑인 차별은 공공연히 자행됐습니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의 상징 'KKK단'은 흑인 탄압과 폭력으로 흑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1877년 남부 주정부는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정치 참여를 막습니다.

이 때문에 1902년부터 28년까지 흑인들은 단 한자리의 의원석도 차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1930년 이후 흑인들이 지지기반을 민주당으로 바꾸면서 북부와 서부지역에서도 흑인 의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흑백차별은 여전했습니다.

흑인이 백인과 같은 학교,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게 강제한 '짐크로우법'은 1960년대 민권운동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흑인들을 괴롭혔습니다.

이런 차별 철폐를 가장 앞장서 부르짖은 인물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란 명 연설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

<녹취> 마틴 루터 킹 목사(1963년) :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이 피부색으로 평가받지 않고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오리라는 꿈 말입니다."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되면서 흑인인권운동은 7~80년대 흑인 정치 참여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녹취> 제시 잭슨 목사(1987년) : "하나님의 도움과 미국민의 지지를 토대로 저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할 것을 선언합니다."

1980년대 두차례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던 제시 잭슨 목사를 비롯해 흑인 6명이 대권에 도전했지만 모두 예선전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맙니다.

그리고,오늘 건국 232년, 노예해방 143년 만에 탄생한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 오바마는 그동안 선배 흑인들의 고통과 한계를 딛고 마침내 미국의 새 역사를 쓰게 됐습니다.

KBS 뉴스 박찬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뉴스 이미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