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리포트] ⑲ ‘이불 밖’으로 나온 청년들

입력 2016.04.08 (07:03) 수정 2018.07.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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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은 위험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웃자고 시작된 말이 유행어가 돼 버렸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자는 건데, 한편으론 무기력해진 청년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무기력,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시대의 청년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뭘까요? 취업에 매몰된 사회가 청년에게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조차 주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취업에 실패해서, 또 취업은 했지만 또 다른 벽에 막혀서 버틸 힘을 잃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열정과 도전 대신 상처 없는 안정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불안과 상처를 안기죠.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청년리포트 '완생' 시리즈, 그 마지막은 이불 밖을 나온 청년들입니다.

◆ 취준생활 3년, 무기력만 남았다.
"뭐든지 귀찮고,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이동훈(가명·29) 씨는 4년 차 취준생이다. 2013년 2월 대학을 졸업 후 3년을 가득 채우고 새해를 맞았지만, 여전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못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 씨는 요즘 청년취업 실태를 말해준다는 '인구론(인문계 구십 퍼센트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의 주인공이다. 그간 지원했던 회사만 80여 곳. 그 이상은 세어보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가족도 귀찮고, 친구도 불편한 존재다. 지난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두 살 터울의 동생은 이 씨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 뿐이다.

한때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던 이 씨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기를 몇 번, 가까스로 마음은 추슬렀지만 이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이 씨는 더 움츠러들었다.

반복된 실패는 도전에 대한 회의만 남겼다. 이 씨는 더 이상의 좌절이 두려웠고,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구직이라는 도전 대신 선택한 것은 단순한 일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고, TV를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틈틈이 구직사이트를 보긴 했지만, 기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해지고, 대인관계에 문제도 생겼어요."

시간이 갈수록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는 균열이 생겼고, 그럴수록 이 씨가 세상과 쌓아 올린 벽은 높아졌다.

◆ 취업 성공, 두려움을 얻었다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청년의 고민은 취업 후에도 이어진다.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신희라 씨는 공연기획이 좋아서 대학에서도 '문화기획'을 전공했다. 다행히 취업난 속에서도 졸업 전 원하던 일자리를 구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믿음이 갔다.

하지만 이 믿음이 깨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상사의 기준은 높았고, 평가는 잔인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조직의 요구를 따라오지 못하는 자에게는 대가가 따랐다.

함께 일하던 동료는 폭언과 비하 속에서도 묵묵히 견뎠지만, 끝내 회사에서 밀려났다. 신 씨의 상사는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알아서 나가야 한다"는 말로 이 상황을 설명했다.

신 씨가 기대했던 일터에서 얻은 것은 성취감이나 희망이 아니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청년은 난폭한 조직문화 속에서 두려웠고 그렇게 열정을 잃었다.

"상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어요. 부정적인 평가를 받다 보니 두려움이 생겼어요."

결국, 신 씨는 걸음을 멈췄다. 다시 취준생이 된 신 씨는 더는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추천해주겠다는 제안도 마다했다. 신 씨가 취업에 무기력해진 이유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때문이다.

◆ 무기력에 빠진 청년, 이불 밖을 나오다.



이들은 취직을 못 해서, 또는 취업엔 성공했지만 그다음 스텝에 넘어져서 사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었다.

이동훈 씨는 우연한 기회에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취준생을 위한 집단상담이었다. 낯선 이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은 노력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한자리에 모인 청년들은 각자의 경험을 나눴다.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이 많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기에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 씨는 청년들과의 나눔을 통해 취업 실패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 정체성의 혼란 등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감이 부족했던 이 씨지만 상담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알게 되자, 작은 용기도 생겼다.

"비슷한 처지에서 각자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얘기 나누면서, 뭐라도 시도해보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어요."

평범한 깨달음이지만 이 씨의 일상은 달라졌다. 이 씨는 지난 1월부터 고용노동부 취업 성공패키지 과정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는 취업교육은 자연스레 이 씨를 집 밖으로 이끌었다.

실패를 반복했던 전공을 고집하지 말고 분야를 바꿔보자는 생각에 밀링과 캐드 등 전문기술을 배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이 씨가 기술교육을 받는 것이 사회적인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꿈을 잃어버린 채 홀로 지냈던 그는 이런 도전이 즐겁다고 한다. 이 씨는 "얼마 전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면서도 "이런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끼고 조금씩 자신감도 생긴다"고 말한다. 여전히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 씨의 태도에서 변화가 보인다.

"집에서 하릴없이 뒹굴뒹굴했던 것보다는 나은 거 같아요. 사람도 만나고…."
포기가 편했던 청년은 우연히 만난 작은 위로와 격려를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신희라 씨가 선택한 것은 대안교육공간 '공간민들레'의 청년 커뮤니티 '사이 Lab'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간 집에만 있던 신 씨를 모임으로 이끈 건 무엇일까? 우선 가장 가까운 친구의 제안도 있었지만, 취업에 집중하지 않는 모임의 성격이 좋았다.

대다수의 청년 모임이 취업이나 자격증 준비에 집중할 때, 이 모임은 '왜?'라는 것에 집중한다. 기출 문제나 모범답안 같은 자료는 없다. 오직 함께 모인 청년들이 토론을 통해 각자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자는 것이다.

치솟는 청년실업률을 생각하면 한가한 모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속도가 아닌 방향에 집중한다. 청년에게는 당장의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중요시하는 가치를 아는 것이 사회에서 버틸 힘이 된다는 뜻에서다.

하고 싶은 일에서 한 차례 실망을 경험한 신 씨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틸 힘을 위해 노력한 1년여의 시간은 신 씨를 변화시켰다. 비난과 폭언으로 낮아진 자존감은 회복할 수 있었고,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신 씨는 1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취업을 못 한 청년이고,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일 뿐이다. 하지만 신 씨는 그 기준에 눌려 무기력했던 과거에서 벗어났다. 한때 위축됐던 20대 청년은 이제 배운 것을 실천하겠다는 꿈을 갖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 사회 밖으로 밀려난 청년 168만 명
우리 사회는 지난해 청년 실업률(15~29세) 9.2%라는 수치에 한 차례 놀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9년 이래 최고치였다. 올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9.5%, 2월에는 전월보다 3%P 증가한 12.5%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인구는 56만 명, 1년 전보다 7만 6,000명 늘어난 숫자다.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는 청년 실업률에 놀라긴 이르다. 실업통계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집단이 있다. 학교 졸업 후, 취업도 못 하고 직업 훈련조차 받지 않는 청년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교육, 직업, 훈련 등에서 제외된 집단)족은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집단이다.


이렇게 통계에서 제외된 청년은 얼마나 될까? KBS가 전문가와 함께 추산한 결과 168만 9,000여 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의 17.8%에 달한다. 이들의 문제는 반복된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며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는 것이다. 취업에 대한 의지가 꺾인 이들은 구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사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앞서 소개한 이 씨와 신 씨처럼 우연한 기회라도 접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청년들을 위한 제도나 기회는 부족하다.

정부는 최고치를 경신하는 청년 실업률에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대부분 고용대책이나 직업교육 등 '취업'에 집중돼 있다.

현재 서울시 청년 공간 '무중력 지대'에서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정의석 씨는 청년을 위한 정서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힘든 상황을 버틸 힘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씨는 "청년 니트족처럼 사회 진출 시기를 놓친 집단은 취업을 겨냥한 각종 대책이나 지원에서 방치된다"며 "자신감이 부족하고 불안감이 많은 만큼 이들에게는 취업 지원보다는 정서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했다.

◆ "성공체험이 중요…사회적 관심 필요"



우리보다 앞서 청년 니트·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1989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설립된 K2인터내셔널 그룹(이하 'K2')은 27년째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청년들을 지원해 오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청년의 자립'이다. 고립된 청년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 사회에 적응시켜 자립을 돕겠다는 것이다.

K2인터네셔널은 청년 자립을 위한 방법으로 우선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공동생활을 할 것을 권한다. 니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 청년은 가정과의 불화가 생기거나, 밤과 낮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청년들이 다른 청년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식생활과 생활리듬을 바로 잡게 하자는 취지다. 일상성 회복이 사회 복귀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과 어울리며 가족의 시선에서 벗어나 대인관계를 배우는 의미도 있다.

K2 인터내셔널은 공동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과 함께 음식점 운영을 통한 일자리도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보다는 '체험'의 의미다.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을 통해 청년들은 '작은 성공'을 경험게 된다.

공동생활을 통한 '일상의 회복', 음식점 운영을 통한 '성공의 경험'을 통해 청년들은 자아를 회복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차근차근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 지사를 차린 K2 그룹은 3년 전 한국에도 지사를 냈다. 한국 역시 사회 밖으로 밀려난 청년들이 많았고, 한국보다 앞서 같은 문제를 경험한 자신들의 노하우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한국 청년들은 7명. 현재는 3명의 청년이 있다. 일본이나 호주, 뉴질랜드보다는 영향력이 크지 못한 것이 사실인데 이는 청년 니트족과 소외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일본은 니트·히키코모리 청년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고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니트 청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지원이 있었고, K2 역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있었기에 더 많은 니트 청년을 사회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K2 코리아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K2 코리아의 공동 주거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청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이런 영역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지원한다면 더 많은 청년이 혜택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보리 모토무 K2인터내셔널 코리아 대표는 "한국은 고용에 대한 지원은 많이 있지만, 고용시장에서 소외된 청년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코보리 대표는 "청년 니트 문제는 본인의 게으름이나 가정교육 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혼자서는 어찌할 줄 모르는 청년을 위해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런 활동과 관련해, '요즘 청년들이 나약하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대학 졸업장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던 시절과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경쟁은 치열하고, 패자부활전이 쉬운 세상도 아니다. 사회와 학교가 해결하지 못 한 문제는 고스란히 '청년들이 감당할 무게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생존에 매몰된 사회는 취업을 권한다. 그러나 청년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만이 아니다. 그들의 고민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로와 격려, 청년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분위기, 소외된 청년을 방치하지 않는 제도적 지원이 청년 대책의 시작이라는 게 청년을 '이불 밖으로' 이끌어 낸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관련 단체 소개]
▶ 청년 길찾기 모임 '사이랩' : https://goo.gl/id5xdH
▶ 청년 집단상담프로그램 YEP! : http://goo.gl/kVzyLq
▶ K2 인터내셔널 코리아 : https://goo.gl/1U4uyP
http://k2-inter.com/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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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 리포트] ⑲ ‘이불 밖’으로 나온 청년들
    • 입력 2016-04-08 07:03:05
    • 수정2018-07-20 1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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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은 위험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웃자고 시작된 말이 유행어가 돼 버렸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 안에서 안정을 추구하자는 건데, 한편으론 무기력해진 청년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무기력,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시대의 청년이 무기력해진 이유는 뭘까요? 취업에 매몰된 사회가 청년에게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조차 주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취업에 실패해서, 또 취업은 했지만 또 다른 벽에 막혀서 버틸 힘을 잃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열정과 도전 대신 상처 없는 안정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또 다른 불안과 상처를 안기죠. 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청년리포트 '완생' 시리즈, 그 마지막은 이불 밖을 나온 청년들입니다. ◆ 취준생활 3년, 무기력만 남았다. "뭐든지 귀찮고,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이동훈(가명·29) 씨는 4년 차 취준생이다. 2013년 2월 대학을 졸업 후 3년을 가득 채우고 새해를 맞았지만, 여전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못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이 씨는 요즘 청년취업 실태를 말해준다는 '인구론(인문계 구십 퍼센트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의 주인공이다. 그간 지원했던 회사만 80여 곳. 그 이상은 세어보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가족도 귀찮고, 친구도 불편한 존재다. 지난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두 살 터울의 동생은 이 씨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 뿐이다. 한때 극단적인 생각마저 했던 이 씨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기를 몇 번, 가까스로 마음은 추슬렀지만 이런 시간이 반복될수록 이 씨는 더 움츠러들었다. 반복된 실패는 도전에 대한 회의만 남겼다. 이 씨는 더 이상의 좌절이 두려웠고, 점점 더 무기력해졌다. 구직이라는 도전 대신 선택한 것은 단순한 일상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고, TV를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였다. 틈틈이 구직사이트를 보긴 했지만, 기대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해지고, 대인관계에 문제도 생겼어요." 시간이 갈수록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는 균열이 생겼고, 그럴수록 이 씨가 세상과 쌓아 올린 벽은 높아졌다. ◆ 취업 성공, 두려움을 얻었다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청년의 고민은 취업 후에도 이어진다.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신희라 씨는 공연기획이 좋아서 대학에서도 '문화기획'을 전공했다. 다행히 취업난 속에서도 졸업 전 원하던 일자리를 구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믿음이 갔다. 하지만 이 믿음이 깨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상사의 기준은 높았고, 평가는 잔인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조직의 요구를 따라오지 못하는 자에게는 대가가 따랐다. 함께 일하던 동료는 폭언과 비하 속에서도 묵묵히 견뎠지만, 끝내 회사에서 밀려났다. 신 씨의 상사는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알아서 나가야 한다"는 말로 이 상황을 설명했다. 신 씨가 기대했던 일터에서 얻은 것은 성취감이나 희망이 아니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딘 청년은 난폭한 조직문화 속에서 두려웠고 그렇게 열정을 잃었다. "상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어요. 부정적인 평가를 받다 보니 두려움이 생겼어요." 결국, 신 씨는 걸음을 멈췄다. 다시 취준생이 된 신 씨는 더는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추천해주겠다는 제안도 마다했다. 신 씨가 취업에 무기력해진 이유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때문이다. ◆ 무기력에 빠진 청년, 이불 밖을 나오다.
이들은 취직을 못 해서, 또는 취업엔 성공했지만 그다음 스텝에 넘어져서 사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대로 끝은 아니었다. 이동훈 씨는 우연한 기회에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취준생을 위한 집단상담이었다. 낯선 이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은 노력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한자리에 모인 청년들은 각자의 경험을 나눴다.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이 많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기에 금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 씨는 청년들과의 나눔을 통해 취업 실패로 인한 가족과의 갈등, 정체성의 혼란 등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감이 부족했던 이 씨지만 상담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알게 되자, 작은 용기도 생겼다. "비슷한 처지에서 각자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얘기 나누면서, 뭐라도 시도해보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어요." 평범한 깨달음이지만 이 씨의 일상은 달라졌다. 이 씨는 지난 1월부터 고용노동부 취업 성공패키지 과정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는 취업교육은 자연스레 이 씨를 집 밖으로 이끌었다. 실패를 반복했던 전공을 고집하지 말고 분야를 바꿔보자는 생각에 밀링과 캐드 등 전문기술을 배우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이 씨가 기술교육을 받는 것이 사회적인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꿈을 잃어버린 채 홀로 지냈던 그는 이런 도전이 즐겁다고 한다. 이 씨는 "얼마 전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다"면서도 "이런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끼고 조금씩 자신감도 생긴다"고 말한다. 여전히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지만, 이 씨의 태도에서 변화가 보인다. "집에서 하릴없이 뒹굴뒹굴했던 것보다는 나은 거 같아요. 사람도 만나고…." 포기가 편했던 청년은 우연히 만난 작은 위로와 격려를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신희라 씨가 선택한 것은 대안교육공간 '공간민들레'의 청년 커뮤니티 '사이 Lab'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간 집에만 있던 신 씨를 모임으로 이끈 건 무엇일까? 우선 가장 가까운 친구의 제안도 있었지만, 취업에 집중하지 않는 모임의 성격이 좋았다. 대다수의 청년 모임이 취업이나 자격증 준비에 집중할 때, 이 모임은 '왜?'라는 것에 집중한다. 기출 문제나 모범답안 같은 자료는 없다. 오직 함께 모인 청년들이 토론을 통해 각자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자는 것이다. 치솟는 청년실업률을 생각하면 한가한 모임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속도가 아닌 방향에 집중한다. 청년에게는 당장의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중요시하는 가치를 아는 것이 사회에서 버틸 힘이 된다는 뜻에서다. 하고 싶은 일에서 한 차례 실망을 경험한 신 씨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틸 힘을 위해 노력한 1년여의 시간은 신 씨를 변화시켰다. 비난과 폭언으로 낮아진 자존감은 회복할 수 있었고,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신 씨는 1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취업을 못 한 청년이고, 일자리가 필요한 청년일 뿐이다. 하지만 신 씨는 그 기준에 눌려 무기력했던 과거에서 벗어났다. 한때 위축됐던 20대 청년은 이제 배운 것을 실천하겠다는 꿈을 갖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 사회 밖으로 밀려난 청년 168만 명 우리 사회는 지난해 청년 실업률(15~29세) 9.2%라는 수치에 한 차례 놀랐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9년 이래 최고치였다. 올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9.5%, 2월에는 전월보다 3%P 증가한 12.5%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인구는 56만 명, 1년 전보다 7만 6,000명 늘어난 숫자다. 매달 최고치를 경신하는 청년 실업률에 놀라긴 이르다. 실업통계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집단이 있다. 학교 졸업 후, 취업도 못 하고 직업 훈련조차 받지 않는 청년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교육, 직업, 훈련 등에서 제외된 집단)족은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집단이다. 이렇게 통계에서 제외된 청년은 얼마나 될까? KBS가 전문가와 함께 추산한 결과 168만 9,000여 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의 17.8%에 달한다. 이들의 문제는 반복된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며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는 것이다. 취업에 대한 의지가 꺾인 이들은 구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점점 더 사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앞서 소개한 이 씨와 신 씨처럼 우연한 기회라도 접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청년들을 위한 제도나 기회는 부족하다. 정부는 최고치를 경신하는 청년 실업률에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대부분 고용대책이나 직업교육 등 '취업'에 집중돼 있다. 현재 서울시 청년 공간 '무중력 지대'에서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정의석 씨는 청년을 위한 정서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힘든 상황을 버틸 힘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좌절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씨는 "청년 니트족처럼 사회 진출 시기를 놓친 집단은 취업을 겨냥한 각종 대책이나 지원에서 방치된다"며 "자신감이 부족하고 불안감이 많은 만큼 이들에게는 취업 지원보다는 정서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했다. ◆ "성공체험이 중요…사회적 관심 필요"
우리보다 앞서 청년 니트·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겪은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1989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설립된 K2인터내셔널 그룹(이하 'K2')은 27년째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청년들을 지원해 오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청년의 자립'이다. 고립된 청년들을 집 밖으로 끌어내 사회에 적응시켜 자립을 돕겠다는 것이다. K2인터네셔널은 청년 자립을 위한 방법으로 우선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공동생활을 할 것을 권한다. 니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된 청년은 가정과의 불화가 생기거나, 밤과 낮이 바뀐 불규칙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청년들이 다른 청년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식생활과 생활리듬을 바로 잡게 하자는 취지다. 일상성 회복이 사회 복귀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과 어울리며 가족의 시선에서 벗어나 대인관계를 배우는 의미도 있다. K2 인터내셔널은 공동생활을 위한 주거 공간과 함께 음식점 운영을 통한 일자리도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일자리'보다는 '체험'의 의미다.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을 통해 청년들은 '작은 성공'을 경험게 된다. 공동생활을 통한 '일상의 회복', 음식점 운영을 통한 '성공의 경험'을 통해 청년들은 자아를 회복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차근차근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 지사를 차린 K2 그룹은 3년 전 한국에도 지사를 냈다. 한국 역시 사회 밖으로 밀려난 청년들이 많았고, 한국보다 앞서 같은 문제를 경험한 자신들의 노하우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한국 청년들은 7명. 현재는 3명의 청년이 있다. 일본이나 호주, 뉴질랜드보다는 영향력이 크지 못한 것이 사실인데 이는 청년 니트족과 소외된 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일본은 니트·히키코모리 청년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고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니트 청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지원이 있었고, K2 역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있었기에 더 많은 니트 청년을 사회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K2 코리아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는 K2 코리아의 공동 주거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청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이런 영역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지원한다면 더 많은 청년이 혜택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보리 모토무 K2인터내셔널 코리아 대표는 "한국은 고용에 대한 지원은 많이 있지만, 고용시장에서 소외된 청년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코보리 대표는 "청년 니트 문제는 본인의 게으름이나 가정교육 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혼자서는 어찌할 줄 모르는 청년을 위해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런 활동과 관련해, '요즘 청년들이 나약하다'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대학 졸업장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해주던 시절과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경쟁은 치열하고, 패자부활전이 쉬운 세상도 아니다. 사회와 학교가 해결하지 못 한 문제는 고스란히 '청년들이 감당할 무게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생존에 매몰된 사회는 취업을 권한다. 그러나 청년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만이 아니다. 그들의 고민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로와 격려, 청년 스스로 자유롭게 길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분위기, 소외된 청년을 방치하지 않는 제도적 지원이 청년 대책의 시작이라는 게 청년을 '이불 밖으로' 이끌어 낸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관련 단체 소개] ▶ 청년 길찾기 모임 '사이랩' : https://goo.gl/id5xdH ▶ 청년 집단상담프로그램 YEP! : http://goo.gl/kVzyLq ▶ K2 인터내셔널 코리아 : https://goo.gl/1U4uyP http://k2-inter.com/korea/ ☞ [청년 리포트] ① “내 청춘은 아직도 일용직” ☞ [청년 리포트] ②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 [청년 리포트] ③ 비싼 등록금에 “3년에 빚이 3000만 원” ☞ [청년 리포트] ④ “33살, 대학 3학년생”…빚 때문에 졸업도 못해 ☞ [청년 리포트] ⑤ “청춘은 슬픔? 백지?”…혼돈의 청년들 ☞ [청년 리포트] ⑥ “왜 모두 대학 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 [청년 리포트] ⑦ 대학 대신 내 길 갔지만…“고졸로 살기 쉽지 않아요” ☞ [청년 리포트] ⑧ “취업 때까지는 연애하지 않을 겁니다” ☞ [청년 리포트] ⑨ “공감한다…청년 행복한 나라 만들어야” ☞ [청년 리포트] ⑩ ‘대딩이냐 공딩이냐’…당신의 선택은? ☞ [청년 리포트] ⑪ 은행 고졸 채용 5년, 능력은 대졸 못지 않다지만… ☞ [청년 리포트] ⑫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당신이라면? ☞ [청년 리포트] ⑬ 청년 창업 증가한다지만…생존율은? ☞ [청년 리포트] ⑭ “내 방식대로 산다!”…꿈을 좇는 청년들 ☞ [청년 리포트] ⑮ “아가씨가 농사짓는다고요? 거짓말 말아요” ☞ [청년 리포트] ⑯ “영어에 주눅들지말고 당당하게 부딪쳐라” ☞ [청년 리포트] ⑰ “한 번도 불을 끄고 지내본 적이 없어요” ☞ [청년 리포트] ⑱ “말만 청년, 청년 하지말고 기부터 살려주세요” ☞ 청년리포트 인터뷰 모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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