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⑮ 헌법재판관이 ‘스파이’라 놀린 판사…“난 부조리극 주인공?”

입력 2019.10.22 (14:00) 수정 2019.10.2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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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다섯 번째 순서로, 10월 18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최희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8기·前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최 부장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년 동안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으로 파견돼 일했습니다. 같은 기간 헌재에 파견된 판사 중 가장 선임이었습니다. 그는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 당시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돼 7차례 검찰청에 나가 조사를 받았고, 올해 5월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추가로 징계를 청구한 판사 10명에도 포함됐습니다. 파견 판사로 근무하면서 헌재에서 심리 중인 사건과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내용, 동향 등을 대거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행위가 문제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 재판에서도 헌재 파견 판사 시절 그의 행위를 두고 10시간 가까이 증인신문이 이어졌습니다.


#1. 당부

증인은 헌재 발령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헌재 파견 판사 6명과 함께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인사를 갔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박병대 처장은 "파견 나온 검사들은 친정인 법무부나 대검찰청을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는데, 일부 파견 판사들은 (사법권 침해 논란이 있는) '한정위헌' 보고도 하고 그런다더라. 그런 모습이 헌재에서 보기에도 꼭 좋아 보이진 않는다더라"라고 말했다고 증인은 증언했습니다. 양 대법원장에게는 "집 떠나면 고생이다. 가서 잘해라" "가서 헌재 논리에 경도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헌재 파견 판사들이 최근 열심히 안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법관의 우수성을 보여라" "대법원 입장을 헌재에 잘 전달해 달라"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달라"는 취지의 말도 당시 대법원장 또는 처장, 차장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런 이야기들을 증인은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 박병대 변호인: 헌재와 대법원 사이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덕담 수준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까?
- 증인: 대법관님들께서 말씀하실 땐 그냥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덕담 내지는 주의사항. 다들 기분이 좋아가지고요. (…)

대법원장 등의 당부를 일종의 구체적 지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얼마 뒤인 또 다른 법원행정처 간부와의 면담 자리에서 상황은 바뀝니다. 행정처에서 헌재·헌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직권남용 등으로 올해 3월 불구속 기소)이 헌재 파견 판사들에게 점심을 사주겠다며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 검사: 당시 이규진 양형실장이 (다른) 파견 판사들에게 "법원과 관련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 있으면 최희준 부장에게 바로 전달하라"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대해서 "파견 판사들에 대한 인사평정권자가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그 점 잊지말라"라는 말도 했었나요?
- 증인: 네.
- 검사: 다소 공격적으로 강하게 말해서 당시 파견 판사들이 불편한 감을 느끼기도 했습니까?
- 증인: 네. 당황할 정도로 혼이 났어요.


평정권까지 언급하면서 '보고'의 필요성을 강조한 법원행정처 간부. 이 실장은 이후에도 증인의 헌재 사무실에 따로 찾아와, "법원과 관련돼 중요한 일이 있다든지 하면 알려달라"고 재차 당부했다고 합니다. 증인은 "사실상 차장님이 (인사 평정을) 하신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이규진 실장님이 (인사 평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라며 그를 어려워했다고도 말했습니다.

#2. 소통 창구

"평의가 어떻게 되어 가나요." "보고서 좀 볼 수 있을까요."

증인에게 평정권자이자 '어려운' 사람이었던 이규진 실장은, 법원과 관련된 헌재 내부의 자료나 정보를 전달해달라고 수시로 요구했다고 합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특정 자료를 달라며 직접 연락한 적도 두 차례 있었다고 증인은 말했습니다.

- 검사: 증인, (헌재 파견) 최선임 부장연구관으로서, 법원행정처로부터 대법과 헌재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도 해줄 것도 요구받았던 적 있습니까?
- 증인: [7초 정도 침묵하더니] 그런 셈이죠.[끄덕 끄덕]

이에 증인은 2015년 7월부터 이규진 실장이 물러나기 한 달 전인 2017년 3월까지, 이메일 등으로 헌재 내부 자료를 보내줬습니다.

내용을 보면 ▲헌재에서 심리 중인 주요 사건의 현황·진행 경과(주로 법원과 헌재에서 동시에 심리 중인 사건, 한정위헌 청구·재판소원 사건) ▲헌법연구관들이 헌법재판관 지시를 받고 작성한 보고서 ▲헌법재판관들의 비공개 평의에서 나온 논의들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의 발언·동향 등 광범위했습니다. 헌재 외부에선 물론 일반 헌법연구관들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자료들도 있었습니다.

헌재가 도청 방지 장치를 설치할 정도로 보안에 부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재판 자료,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한 동향 보고들도 행정처로 넘어갔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은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의 요청을 받고, 증인에게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위헌소원 사건에 대한 헌재 내부 검토보고서 등을 받은 뒤 헌재의 심리 상황을 한 변호사에게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변호인들은 이에 대해 증인이 보낸 자료 중엔 언론 보도로 이미 잘 알려져 있었거나 곧 일반에 공개될 내용도 적지 않았고, 뜬 소문이나 증인의 추측, 연구관들의 토론에 불과해 큰 가치가 없는 동향 보고도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결론이 모순되지 않도록 헌재와 대법이 미리 협조할 필요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상대 기관의 연구관 보고서를 구해 일선에서 검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인이 행정처에 전달한 헌재 내부 자료가 모두 검찰 주장처럼 엄중한 "공무상 비밀"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판사 시절 증인처럼 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고일광 변호사(고영한 변호인)가 특히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습니다.

- 고영한 변호인: (…) 재판관 평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연구관들에게 유출되는 여러 경우의 수들이 있습니다. (…) 자기가 올린 의견을 재판관이 채택해준 데 대한 뿌듯한 마음도 있고 그래서 자랑삼아서 (외부에)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하지만 재판관 평의 내용을 알린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은 서면심리와 평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변호인들은 재판관들이 증인을 "법원 스파이"라고 놀리면서도 식사 자리 등에서 평의에서 나온 얘기를 먼저 "흘려주기도" 했다면서, 재판관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양승태 변호인: 그 의무(평의 비밀유지 의무)가 헌법재판관에게만 있나요, 아니면 증인까지 포함인가요?
- 증인: 어...
(…)
- 양승태 변호인: 증인이 우연히 그 (평의) 결과를 사전에 알게 돼서 제3자에게 말했다 하더라도,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증인: 뭐, 그렇게 볼 여지도 있겠습니다.


증인은 자신이 참 "애매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이라며,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자료들이 "외부로 나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라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법원도 헌재 입장에서는 외부 기관 아니냐"라는 검사의 추궁에는 "그렇긴 하다"라며 제대로 답을 못했습니다. 증인은 이규진 실장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매우 민감한 자료인 만큼 보안 유지를 부탁드립니다(부장님께만 보냅니다)"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 검사: 증인이 탄핵 사건 관련 자료와 헌법연구관들이 작성한 보고서들을 법원행정처로 유출하면서 (…) 이규진, 문성호에게 보안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증인: 아무래도 알려지는 게 좋진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검사: 그런데도 증인은 지속적으로 법원행정처에 헌법연구관들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나 사전심사보고서나, 평의 내용, 헌재 내부 동향, 헌재 보안 자료 이런 걸 계속 보내준 이유가 뭡니까?
- 증인: 필요한 요구를 계속 또 하시고, 계속 요구를 하시니까 또 하다보면... 되게 참... [말을 잇지 못함]

증인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형법상 업무방해죄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사건에 대해서는 "(이규진 실장이) 계속 평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속 물어보셔서 제가 좀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라고도 증언했습니다.

#3. 꺼림칙한, 나쁜 습관

시간이 갈수록 증인은 마치 늪에 빠지듯, '첩보 활동' 같은 업무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 양승태 변호인: 다른 판사가 증인에게 재판과 관련된 헌재 자료를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경우에, 증인이 '이건 헌재의 기밀사안이다' '보안 때문에 이건 줄 수 없다'라며 거부한 적이 있으신가요?
- 증인: 그런 적도 있습니다. 초기에.
- 양승태 변호인: 기억 나는 게 있으십니까?
- 증인: 네. 처음에 부탁했는데 못준다고 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 뒤로 가면서는 좀 더... 좀... 잘 주게 된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딱 알려달라고 한 만큼만 조심스럽게 메일 본문으로 답했지만, 곧 관련된 문건 자체를 첨부해 보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규진 실장의 추가 요구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는 하지만, 후반에는 별도의 요구가 없었는데도 '알아서' 헌재 내부 자료를 보내는 데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증인은 "나쁜 습관"이 든 거라고 표현했습니다.

- 고영한 변호인: 매립지 사건 관련해서 2015헌라3 변론요지서도 먼저 이규진, 문성호에 보냈죠? 변론요지서를 달라고 이규진, 문성호가 요청했나요?
- 증인: 구체적 언급은 없으셨습니다. "뭐를 달라"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중요 사건이라 보고 드렸기 때문에... 관련된 자료를 드린다 생각하고 드렸습니다. 연구관하면 자료를 좀 더 많이... 그것도 나쁜 습관인데...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 고영한 변호인: 관련 자료까지도 보내는 게 습관된 거 같다 그런 뜻인가요?
- 증인: 당시에는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증인은 "보고 드리지 않으면, 나중에 (이규진 실장이) 그걸 알게 되면 '왜 보고 안했냐' 이렇게 될 거 같아" 선제적으로 보고를 드리게 됐다고도 말했습니다. 평정권자에게 질책을 당할까 두려웠다는 겁니다. 증인은 자료를 보내라는 실장의 요구를 지시나 명령으로 받아들였느냐는 질문에 상당히 주저하면서도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 박병대 변호인: 이규진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증인이 의무없는 일을 강요당하여 억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 증인: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다 보면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 드린 것도 있긴 있습니다. 근데 되게 꺼림칙했습니다.

- 증인: (…) 어쨌든 지시같이 생각하고 하긴 했는데요... 물론 좀 그때 좀 거절했음 어땠을까 후회가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한순간 한순간 관성이 생겨서 보고를 많이 드리게 된. 많이 요구도 하시고. 처음 느낌과 뒤로 느낌이 다르긴 한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걸 안 한다는 게 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 하면 또 다른 분이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보고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딱 잘라 말씀드리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이런 헌재 자료 유출과 얼마나 깊이 얽혀있었던 걸까요? 곧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이규진 전 실장의 증언을 들어봐야 할 겁니다. 다만 증인은 어느 사건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자신이 전달한 헌재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가 '윗선에 보고됐다'는 말을 실장에게 한 번 정도 들은 기억이 난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보고받았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애매하다고 했습니다. 증인은 단순히 실장이 개인적으로 쓰려고 헌재 내부 자료를 보내달라고 하진 않았을 거라며, 일부는 법원행정처장 등 윗선까지 보고됐으리라 추측한다고 밝혔습니다.

#4. 자기연민인가 자기외면인가

증인은 헌재 내부 자료를 법원에 넘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했지만, 결코 검찰의 주장처럼 대법원의 위상 강화를 위해 헌재를 압박·견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헌법 질서 수호" "법적 안정성" "국민의 권리 구제"와 같은 공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일했지, 법원 조직의 이익만을 위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강한 어조로 국민의 권리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 증인: 헌재에서 1건이라도 재판소원이 허용된다면 (…) 대법원에서 진 모든 양반, 국민분들께서 "내 사건도 취소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런데 법원 입장은 (…) 헌재의 재판소원 효력을 인정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헌재에 가서 이겨도 집행기관이라든지 사법기관이라든지 이런 데서 받아주지 않으니까, 국민만 왔다 갔다 희망고문 속에, 핑퐁게임 속에 있게 되는 겁니다. (…) 권리 구제도 안되는, 그냥 기분만 한번 좋았던 데 불과한 거죠. 그런 상황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명은 계속됐습니다. 증인은 헌재 파견을 다녀온 선배 판사에게 "나도 너 같은 일을 했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첩보 활동'이 하루 이틀 있어온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헌법재판관들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일러주며 법원에 전달하고 협의해보라는 취지로 말한 적도 적지 않았다며, 결국 헌재에서도 자신의 활동을 양해했을 뿐 아니라 역으로 이용한 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법원과 헌재의 수석부장 사이에 소통창구를 만들든지 해서, 양 기관의 소통을 "양성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대안까지 제시했습니다.


많은 말을 쏟아낸 증인은 재판 말미에 영화 속 대사 같은 말을 했습니다.

- 좌배석(주심) 판사: 증인께서 오늘 증언하시면서 헌재에 파견된 부장연구관이 "애매한" 처지라는 직접적 표현, 그런 취지의 증언을 하셨는데 풀어서 다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증인: 참 이게 뭐랄까 이게 좀...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안할 수는 없는데 양쪽 기관에서도 사실은 저를 다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 서로 또 통하는 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중간에 끼어있던 셈입니다. (…) 여러 관련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내 자신의 신세만 한탄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고. 참. 제도가 좀 약간 좀 애매한 . 제도가 설계가 명확하지 않은 설계가 되어 있었고. 이것이 결국 30년 동안 곪아오던 것이 이때 결국, 전혀 저와 관련해서 터진 건 아닌데 전혀. 법원 내부에서 이렇게 불거져서 저까지. 법원도 그렇고 헌재도 그렇고, 밝혀져서는 안 될 내용 같은데 이런 게 밝혀지고 이러면서 되게 부끄럽고. 여러 모든 헌법.. 제가 총애를 많이 받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에게도 죄송하고.. 참 여러 가지로 슬프고 그렇습니다.

자신은 애매하게 양 기관 사이에 끼어 있었다던 증인이 과거 법원행정처 측에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2015후573 사건이 중복제소가 아니고 헌재와 충돌 가능성도 없다면, 헌재 압박용으로 먼저 선고하는 것에 찬성입니다. 충돌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법원이 먼저 선고할 경우 자칫 헌재를 자극할 염려가 있습니다. 헌재는 깡패처럼 하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나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26일, 이규진에게 보낸 이메일 '답장: 매립지' 중)

"존경하는 이규진 부장님. 오늘 김○○ 헌재 선임부장과 점심을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법원 측에 말씀을 전해달라는 취지로 보입니다. 다만, 역정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메일은 부장님께만 보냅니다(보안 부탁드립니다.)" (2016년 10월 10일, 이규진에게 보낸 이메일 '보고' 중)

자신이 과연 공익을 추구한 성실한 '판사'이기만 했는지, 어느 순간 법원의 충실한 '조직원' 정도로 주저앉아 버린 건 아닌지. 증인이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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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⑮ 헌법재판관이 ‘스파이’라 놀린 판사…“난 부조리극 주인공?”
    • 입력 2019-10-22 14:00:47
    • 수정2019-10-23 11:55:41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다섯 번째 순서로, 10월 18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최희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8기·前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최 부장판사는 2015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년 동안 헌법재판소 부장연구관으로 파견돼 일했습니다. 같은 기간 헌재에 파견된 판사 중 가장 선임이었습니다. 그는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 당시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입건돼 7차례 검찰청에 나가 조사를 받았고, 올해 5월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추가로 징계를 청구한 판사 10명에도 포함됐습니다. 파견 판사로 근무하면서 헌재에서 심리 중인 사건과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내용, 동향 등을 대거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행위가 문제가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 재판에서도 헌재 파견 판사 시절 그의 행위를 두고 10시간 가까이 증인신문이 이어졌습니다.


#1. 당부

증인은 헌재 발령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헌재 파견 판사 6명과 함께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 강형주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인사를 갔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박병대 처장은 "파견 나온 검사들은 친정인 법무부나 대검찰청을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하는데, 일부 파견 판사들은 (사법권 침해 논란이 있는) '한정위헌' 보고도 하고 그런다더라. 그런 모습이 헌재에서 보기에도 꼭 좋아 보이진 않는다더라"라고 말했다고 증인은 증언했습니다. 양 대법원장에게는 "집 떠나면 고생이다. 가서 잘해라" "가서 헌재 논리에 경도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헌재 파견 판사들이 최근 열심히 안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법관의 우수성을 보여라" "대법원 입장을 헌재에 잘 전달해 달라"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알려달라"는 취지의 말도 당시 대법원장 또는 처장, 차장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런 이야기들을 증인은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 박병대 변호인: 헌재와 대법원 사이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덕담 수준의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까?
- 증인: 대법관님들께서 말씀하실 땐 그냥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덕담 내지는 주의사항. 다들 기분이 좋아가지고요. (…)

대법원장 등의 당부를 일종의 구체적 지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얼마 뒤인 또 다른 법원행정처 간부와의 면담 자리에서 상황은 바뀝니다. 행정처에서 헌재·헌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직권남용 등으로 올해 3월 불구속 기소)이 헌재 파견 판사들에게 점심을 사주겠다며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 검사: 당시 이규진 양형실장이 (다른) 파견 판사들에게 "법원과 관련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 있으면 최희준 부장에게 바로 전달하라"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대해서 "파견 판사들에 대한 인사평정권자가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그 점 잊지말라"라는 말도 했었나요?
- 증인: 네.
- 검사: 다소 공격적으로 강하게 말해서 당시 파견 판사들이 불편한 감을 느끼기도 했습니까?
- 증인: 네. 당황할 정도로 혼이 났어요.


평정권까지 언급하면서 '보고'의 필요성을 강조한 법원행정처 간부. 이 실장은 이후에도 증인의 헌재 사무실에 따로 찾아와, "법원과 관련돼 중요한 일이 있다든지 하면 알려달라"고 재차 당부했다고 합니다. 증인은 "사실상 차장님이 (인사 평정을) 하신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이규진 실장님이 (인사 평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라며 그를 어려워했다고도 말했습니다.

#2. 소통 창구

"평의가 어떻게 되어 가나요." "보고서 좀 볼 수 있을까요."

증인에게 평정권자이자 '어려운' 사람이었던 이규진 실장은, 법원과 관련된 헌재 내부의 자료나 정보를 전달해달라고 수시로 요구했다고 합니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특정 자료를 달라며 직접 연락한 적도 두 차례 있었다고 증인은 말했습니다.

- 검사: 증인, (헌재 파견) 최선임 부장연구관으로서, 법원행정처로부터 대법과 헌재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도 해줄 것도 요구받았던 적 있습니까?
- 증인: [7초 정도 침묵하더니] 그런 셈이죠.[끄덕 끄덕]

이에 증인은 2015년 7월부터 이규진 실장이 물러나기 한 달 전인 2017년 3월까지, 이메일 등으로 헌재 내부 자료를 보내줬습니다.

내용을 보면 ▲헌재에서 심리 중인 주요 사건의 현황·진행 경과(주로 법원과 헌재에서 동시에 심리 중인 사건, 한정위헌 청구·재판소원 사건) ▲헌법연구관들이 헌법재판관 지시를 받고 작성한 보고서 ▲헌법재판관들의 비공개 평의에서 나온 논의들 ▲헌재소장과 재판관들의 발언·동향 등 광범위했습니다. 헌재 외부에선 물론 일반 헌법연구관들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자료들도 있었습니다.

헌재가 도청 방지 장치를 설치할 정도로 보안에 부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재판 자료,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한 동향 보고들도 행정처로 넘어갔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은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의 요청을 받고, 증인에게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위헌소원 사건에 대한 헌재 내부 검토보고서 등을 받은 뒤 헌재의 심리 상황을 한 변호사에게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변호인들은 이에 대해 증인이 보낸 자료 중엔 언론 보도로 이미 잘 알려져 있었거나 곧 일반에 공개될 내용도 적지 않았고, 뜬 소문이나 증인의 추측, 연구관들의 토론에 불과해 큰 가치가 없는 동향 보고도 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결론이 모순되지 않도록 헌재와 대법이 미리 협조할 필요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상대 기관의 연구관 보고서를 구해 일선에서 검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인이 행정처에 전달한 헌재 내부 자료가 모두 검찰 주장처럼 엄중한 "공무상 비밀"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판사 시절 증인처럼 헌재 파견 경험이 있는 고일광 변호사(고영한 변호인)가 특히 적극적인 반박에 나섰습니다.

- 고영한 변호인: (…) 재판관 평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연구관들에게 유출되는 여러 경우의 수들이 있습니다. (…) 자기가 올린 의견을 재판관이 채택해준 데 대한 뿌듯한 마음도 있고 그래서 자랑삼아서 (외부에)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하지만 재판관 평의 내용을 알린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은 서면심리와 평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변호인들은 재판관들이 증인을 "법원 스파이"라고 놀리면서도 식사 자리 등에서 평의에서 나온 얘기를 먼저 "흘려주기도" 했다면서, 재판관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양승태 변호인: 그 의무(평의 비밀유지 의무)가 헌법재판관에게만 있나요, 아니면 증인까지 포함인가요?
- 증인: 어...
(…)
- 양승태 변호인: 증인이 우연히 그 (평의) 결과를 사전에 알게 돼서 제3자에게 말했다 하더라도,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 증인: 뭐, 그렇게 볼 여지도 있겠습니다.


증인은 자신이 참 "애매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이라며,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자료들이 "외부로 나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라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법원도 헌재 입장에서는 외부 기관 아니냐"라는 검사의 추궁에는 "그렇긴 하다"라며 제대로 답을 못했습니다. 증인은 이규진 실장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매우 민감한 자료인 만큼 보안 유지를 부탁드립니다(부장님께만 보냅니다)"라고 여러 차례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 검사: 증인이 탄핵 사건 관련 자료와 헌법연구관들이 작성한 보고서들을 법원행정처로 유출하면서 (…) 이규진, 문성호에게 보안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 증인: 아무래도 알려지는 게 좋진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검사: 그런데도 증인은 지속적으로 법원행정처에 헌법연구관들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나 사전심사보고서나, 평의 내용, 헌재 내부 동향, 헌재 보안 자료 이런 걸 계속 보내준 이유가 뭡니까?
- 증인: 필요한 요구를 계속 또 하시고, 계속 요구를 하시니까 또 하다보면... 되게 참... [말을 잇지 못함]

증인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형법상 업무방해죄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사건에 대해서는 "(이규진 실장이) 계속 평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속 물어보셔서 제가 좀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라고도 증언했습니다.

#3. 꺼림칙한, 나쁜 습관

시간이 갈수록 증인은 마치 늪에 빠지듯, '첩보 활동' 같은 업무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익숙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 양승태 변호인: 다른 판사가 증인에게 재판과 관련된 헌재 자료를 직접적으로 요청하는 경우에, 증인이 '이건 헌재의 기밀사안이다' '보안 때문에 이건 줄 수 없다'라며 거부한 적이 있으신가요?
- 증인: 그런 적도 있습니다. 초기에.
- 양승태 변호인: 기억 나는 게 있으십니까?
- 증인: 네. 처음에 부탁했는데 못준다고 한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 뒤로 가면서는 좀 더... 좀... 잘 주게 된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딱 알려달라고 한 만큼만 조심스럽게 메일 본문으로 답했지만, 곧 관련된 문건 자체를 첨부해 보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규진 실장의 추가 요구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는 하지만, 후반에는 별도의 요구가 없었는데도 '알아서' 헌재 내부 자료를 보내는 데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증인은 "나쁜 습관"이 든 거라고 표현했습니다.

- 고영한 변호인: 매립지 사건 관련해서 2015헌라3 변론요지서도 먼저 이규진, 문성호에 보냈죠? 변론요지서를 달라고 이규진, 문성호가 요청했나요?
- 증인: 구체적 언급은 없으셨습니다. "뭐를 달라" 그런 말은 없었는데 그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중요 사건이라 보고 드렸기 때문에... 관련된 자료를 드린다 생각하고 드렸습니다. 연구관하면 자료를 좀 더 많이... 그것도 나쁜 습관인데...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 고영한 변호인: 관련 자료까지도 보내는 게 습관된 거 같다 그런 뜻인가요?
- 증인: 당시에는 그렇게 된 거 같습니다.


증인은 "보고 드리지 않으면, 나중에 (이규진 실장이) 그걸 알게 되면 '왜 보고 안했냐' 이렇게 될 거 같아" 선제적으로 보고를 드리게 됐다고도 말했습니다. 평정권자에게 질책을 당할까 두려웠다는 겁니다. 증인은 자료를 보내라는 실장의 요구를 지시나 명령으로 받아들였느냐는 질문에 상당히 주저하면서도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 박병대 변호인: 이규진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증인이 의무없는 일을 강요당하여 억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 증인: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다 보면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 드린 것도 있긴 있습니다. 근데 되게 꺼림칙했습니다.

- 증인: (…) 어쨌든 지시같이 생각하고 하긴 했는데요... 물론 좀 그때 좀 거절했음 어땠을까 후회가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한순간 한순간 관성이 생겨서 보고를 많이 드리게 된. 많이 요구도 하시고. 처음 느낌과 뒤로 느낌이 다르긴 한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그걸 안 한다는 게 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안 하면 또 다른 분이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보고를 드렸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딱 잘라 말씀드리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이런 헌재 자료 유출과 얼마나 깊이 얽혀있었던 걸까요? 곧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이규진 전 실장의 증언을 들어봐야 할 겁니다. 다만 증인은 어느 사건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자신이 전달한 헌재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가 '윗선에 보고됐다'는 말을 실장에게 한 번 정도 들은 기억이 난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보고받았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애매하다고 했습니다. 증인은 단순히 실장이 개인적으로 쓰려고 헌재 내부 자료를 보내달라고 하진 않았을 거라며, 일부는 법원행정처장 등 윗선까지 보고됐으리라 추측한다고 밝혔습니다.

#4. 자기연민인가 자기외면인가

증인은 헌재 내부 자료를 법원에 넘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했지만, 결코 검찰의 주장처럼 대법원의 위상 강화를 위해 헌재를 압박·견제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헌법 질서 수호" "법적 안정성" "국민의 권리 구제"와 같은 공익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일했지, 법원 조직의 이익만을 위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강한 어조로 국민의 권리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 증인: 헌재에서 1건이라도 재판소원이 허용된다면 (…) 대법원에서 진 모든 양반, 국민분들께서 "내 사건도 취소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런데 법원 입장은 (…) 헌재의 재판소원 효력을 인정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헌재에 가서 이겨도 집행기관이라든지 사법기관이라든지 이런 데서 받아주지 않으니까, 국민만 왔다 갔다 희망고문 속에, 핑퐁게임 속에 있게 되는 겁니다. (…) 권리 구제도 안되는, 그냥 기분만 한번 좋았던 데 불과한 거죠. 그런 상황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해명은 계속됐습니다. 증인은 헌재 파견을 다녀온 선배 판사에게 "나도 너 같은 일을 했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첩보 활동'이 하루 이틀 있어온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헌법재판관들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일러주며 법원에 전달하고 협의해보라는 취지로 말한 적도 적지 않았다며, 결국 헌재에서도 자신의 활동을 양해했을 뿐 아니라 역으로 이용한 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아가 법원과 헌재의 수석부장 사이에 소통창구를 만들든지 해서, 양 기관의 소통을 "양성화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대안까지 제시했습니다.


많은 말을 쏟아낸 증인은 재판 말미에 영화 속 대사 같은 말을 했습니다.

- 좌배석(주심) 판사: 증인께서 오늘 증언하시면서 헌재에 파견된 부장연구관이 "애매한" 처지라는 직접적 표현, 그런 취지의 증언을 하셨는데 풀어서 다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증인: 참 이게 뭐랄까 이게 좀... 부조리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불행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안할 수는 없는데 양쪽 기관에서도 사실은 저를 다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 서로 또 통하는 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중간에 끼어있던 셈입니다. (…) 여러 관련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내 자신의 신세만 한탄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고. 참. 제도가 좀 약간 좀 애매한 . 제도가 설계가 명확하지 않은 설계가 되어 있었고. 이것이 결국 30년 동안 곪아오던 것이 이때 결국, 전혀 저와 관련해서 터진 건 아닌데 전혀. 법원 내부에서 이렇게 불거져서 저까지. 법원도 그렇고 헌재도 그렇고, 밝혀져서는 안 될 내용 같은데 이런 게 밝혀지고 이러면서 되게 부끄럽고. 여러 모든 헌법.. 제가 총애를 많이 받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에게도 죄송하고.. 참 여러 가지로 슬프고 그렇습니다.

자신은 애매하게 양 기관 사이에 끼어 있었다던 증인이 과거 법원행정처 측에 보낸 이메일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2015후573 사건이 중복제소가 아니고 헌재와 충돌 가능성도 없다면, 헌재 압박용으로 먼저 선고하는 것에 찬성입니다. 충돌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법원이 먼저 선고할 경우 자칫 헌재를 자극할 염려가 있습니다. 헌재는 깡패처럼 하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나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26일, 이규진에게 보낸 이메일 '답장: 매립지' 중)

"존경하는 이규진 부장님. 오늘 김○○ 헌재 선임부장과 점심을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법원 측에 말씀을 전해달라는 취지로 보입니다. 다만, 역정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메일은 부장님께만 보냅니다(보안 부탁드립니다.)" (2016년 10월 10일, 이규진에게 보낸 이메일 '보고' 중)

자신이 과연 공익을 추구한 성실한 '판사'이기만 했는지, 어느 순간 법원의 충실한 '조직원' 정도로 주저앉아 버린 건 아닌지. 증인이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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