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㊳ ‘판사회의 문건’ 행정처에 직보한 판사…“이례적인 일 맞다”

입력 2021.11.24 (17:00) 수정 2021.11.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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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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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번째 순서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박노수(10월 12일 공판 출석·사법연수원 31기)·김예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10월 18일·30기), 그리고 김봉선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11월 2일·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31기)의 증언을 추가로 살펴봅니다.


■ "행정처 심의관들이 인사모 모임때문에 퇴근도 안 하고 있다"

2015년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사건 적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별도로 3심 사건만을 심리하는 '상고법원'을 신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대법원을 '중요 사건'만 심리하는 이른바 '정책 법원'으로 만들고, 나머지 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사법부 내부에서 상고법원 추진에 대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대단히 경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대법원 내부 문건에는 △법관의 업무부담 개선 △이를 논거로 한 상고법원 설치 반대 등 대법원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온 대법원 내 전문분야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경계심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대법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주도 세력의 편향성 및 영향력 증대로 인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습니다.

특히 2015년 8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 설립을 앞두고 '상고법원 끝장 토론회' 등을 열자, 행정처는 인사모가 연구회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 상고법원 도입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대응 문건, [2]_(150823)인사모대응방안(기조심의관) 중 일부이다.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대응 문건, [2]_(150823)인사모대응방안(기조심의관) 중 일부이다.

대법원은 당시 작성한 문건에서 △'구성원의 성향 등에 비춰 대법원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법원 내·외부에 표출할 가능성'이 높고 △국제인권법 커뮤니티 게시판의 게시만으로도 '법원 공식 커뮤니티에서 논의됐다'는 관점에서 언론에 보도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나아가 △'소장 판사들에게 대법원 정책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대법원은 '인사모' 출범 전부터 모임 설립을 주도한 법관들의 동향과 예비 모임 내용 등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사: 인사모의 두 번째 예비 모임에 상고법원 관련해 논의를 했고, 증인이 사회를 본 적 있나요.

증인 박노수(이하 증인): 네, 제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검사: 어떻게 내용을 확보해서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아는가요.

증인: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제안이 들어와서 모임을 할 때부터 대법원 연구관 이수진 판사가 참석을 했는데 당시 이규진 부장이 국제인권법 회장이었고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습니다. 첫 모임 때부터 우리가 모인 것을 다 알고 있고 행정처에서 궁금해 한다, 누구누구 만나는지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검사: 증인은 인사모 모임에서 '행정처 심의관들이 인사모 모임때문에 퇴근도 안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증인: 네, 알고 있습니다.

이후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2017년 2월 코트넷 게시판에 "2개 이상의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 가입한 판사들은 1곳만 남기고 다른 연구회에선 일주일 안에 모두 탈퇴하라"는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공지를 올립니다.

일정 시점까지 판사들이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 가입되어 있을 경우, 예규의 취지에 따라 '가장 먼저 가입한 연구회의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그 뒤에 가입한 연구회에서는 탈퇴되는 것'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공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㉞ 순화·‘톤 다운’·탈퇴 요구는 판사들 오해?…11일 결론)

이런 전격적인 조치의 근거는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예규'였습니다. 이 예규엔 2개 이상 전문분야연구회의 중복가입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2000년 8월 제정된 이후 한 번도 이처럼 일괄적, 공개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을 검토한 내용이다. [5]_(160407)인권법연구회대응방안(인사모관련추가)[박OO] 문건 중 일부.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을 검토한 내용이다. [5]_(160407)인권법연구회대응방안(인사모관련추가)[박OO] 문건 중 일부.

검찰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인권법연구회를 축소시키기 위해, 대법원 예규를 근거로 '중복가입 해소조치'을 공지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당시 대법원 내부 문건에는 '연구회 중복 가입자를 정리하는 방안'을 두고 △법관들 상대 중복가입자 정리 명분이 있고 △전산정보국장 선에서 실행 가능하며 △인사모 해소를 위한 유효한 우회적 압박 카드이며 △사전 준비의 부담이 없다는 등 여러 장점이 있고, 시행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431명에서 204명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일주일 만에 철회됐지만, 인사모 판사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사모에 가입돼 있던 판사들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 재판에 출석해 "행정처의 조치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가입자 수에 타격이 예상됐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사: 중복 가입한 연구회를 정리하고, 만약 기한 후에도 중복 가입이 돼 있으면 뒤에 가입한 연구회를 탈퇴 처리할 것이라고 코트넷에 뜬 것 기억하나요?

증인 김예영(이하 증인): 네, 기억납니다.

검사: 당시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이유에 대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증인: 아주 처음에는 그런가 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이상했어요. 연구회에 대한 탄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사: 중복가입 금지 조항(예규)은 원래 실효성이 없는 규정이었죠.

증인: 네. 한번도 시행되지 않아서요.


■ "다른 연구회 탈퇴하고 인권법 가면 되지 않느냐"

그러나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해당 조치는 예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인권법연구회 세력 축소를 위한 것이 아니며, 해당 예규가 그대로 시행됐다 하더라도 다른 연구회에서 탈퇴해 인권법연구회에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판사들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변호인(변호인): (중복가입 해소조치의) 기준 일자가 지나면 하나만 가입된 상태가 되지 않습니까. 거기를 탈퇴하고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것이니 못 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증인 박노수: 포인트는 그게 아니고요. 공지를 보고 중복 가입된 여러 연구회 중에 하나를 남겨놓고 나머지 연구회 탈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판사는 소수일 것입니다. 나머지 판사님들은 공지를 읽지도 않고 그냥 있는 게 다수일 겁니다. 결국 그분들은 최초 가입한 연구회만 남고 나머지는 (자신도) 모르게 정리된다는 게 포인트죠. 그러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후발로 들어온분들, 결과적으로 (인권법연구회의 가입자) 감소 폭이 가장 크게 된다는게 포인트입니다. 판사님들 대다수는 재판 바빠서 공지 자세히 읽고, 그런 (탈퇴) 조치까지 하지 못하세요. 그래서 (법원행정처가) 그걸 노리고 한 거죠, 대다수 판사님들이 그래요.

동일한 물음에 증인으로 나온 김예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왜 그런 불필요한 행위를 판사들에 강요하나요. 의료법이나 환경법 모두 관심 있을 수 있는데. 왜 탈퇴했다가 하나만 가입하라고 하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변호인은 이어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해소 방안' 외에 뾰족한 수가 있는지, 증인으로 나선 판사들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인: 증인의 생각은 그렇다고 하고요. 그러면 예규를 준수하는 상태로 하기 위해서 중복 가입을 정리한다 할 때, 그럼 증인은 어느 걸 남겨두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까? (법원행정처 안처럼) 최초 가입한 연구회를 남겨두는 게 옳지 않다면, 다른 연구회를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보나요?

증인 박노수: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예규가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와 다르게 모든 판사님들이 자유롭게 중복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고, 문제 제기된 적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탈퇴하라고 하니까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연구회를 (가입 상태로) 남겨두는 게 옳겠냐는 것까지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변호인의 동일한 물음에)

증인 김예영(이하 증인): 목적이 부당하기 때문에 다음 요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고요. 부당한 목적으로 사문화된 조항을 시행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제일 나은 방안이 아니고요, 여러가지 방안이 가능한데 의도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이죠. 무조건 나중에 가입한 걸 탈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변호인: 대법원 예규의 취지는 어느 하나에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어서 여러 가지 전문성을 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또 어느 정도는 판사들이 적절히 분산되어 최소 인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골고루 전문 판사들이 분포하게 된다는 취지입니다. 자기가 원하면 10개라도 가입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건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인데요.

증인: 가입하는 것과 활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굳이 한 군데만 활동하게 해서 최소한의 인원을 확보한다는 생각은 납득이 되지 않고요, 민사합의부도 의료와 환경을 같이 한다든가 그런 경우가 많은데 어느 하나에만 가입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피고인인 임 전 차장도 연구회의 본래 취지는 재판 업무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쌓는 것 아니냐며 직접 증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전문분야 연구회 예규를 보면, 전문분야 연구회는 2000년대 초반 김황식 기조실장 당시 도입됐습니다. 그 취지는 법관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자유롭게 가입하게 하는 것보다, 법관의 재판 업무에 도움되는 연구를 장려하는 것, 재판을 위한 것이지 개인적 관심은 2차적 문제였습니다. 재판과 병행해 여러가지를 동시에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판 관련해 연구하고 공유하는 게 그 취지였는데요. 따라서 본인의 희망과 관계 없이 본인 담당했던 재판부의 사무가 변경되면 탈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데 증인의 생각은 다른가요.

증인 김예영: 관심이 생기고 또 다음에 다시 (전담재판부를) 맡을 수도 있는데 탈퇴를 하는 것이 재판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단독판사회의 의장,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느낌 받았다"

법원행정처가 인사모 외에도 달리 신경을 쓴 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소속 단독판사회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의 내규는 직급별 판사회의 의장을 의결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동안 관례적으로 최선임자가 의장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2014년 서울지방법원에서는 단독판사회의 의장을 놓고 최초로 경선이 열렸고, 투표에 의해 김예영 부장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의장이 된 김 판사는 당시 법원장 주도로 이뤄지던 사무분담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사무분담이란 판사들을 영장전담·형사부·민사부 등 각 분야 재판에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동안 영장전담판사 등 이른바 중요 보직을 채우는 과정에서 법원장이 선호하는 판사를 보임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습니다.

김 판사가 이에 반기를 들면서,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단독판사회의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도 경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었으나, 예전 관행대로 가장 선임인 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6년,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박노수 부장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 후보에 출마하려 하자 법원행정처는 이를 저지하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작성합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을 앞두고 작성한 문건. [322]_001111_(160307)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의 일부.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을 앞두고 작성한 문건. [322]_001111_(160307)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의 일부.

행정처는 박 부장판사의 대항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적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을 앞두고 작성한 문건으로, [322]_001111_(160307)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의 일부이다.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을 앞두고 작성한 문건으로, [322]_001111_(160307)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의 일부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건 내용이 실행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2016년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당선됐던 박노수 부장판사는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사: 당시 사법행정 라인의 대응이 있었던 것에 대해 증인이 아는 바가 있나요. 증인에 대해 존재감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발언권을 최대한 안 주려고 한다거나…의장으로 있는데도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거나, 지원을 주지 않으려는 경험을 느낀 적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증인 박노수(이하 증인): 행정처나 사법행정 라인에서 대응하려 했다는 것은 당연히 몰랐고요. 다만 당시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중략)…다음 해에 운영위원회가 열린다던지 판사들 오찬 자리에서 한번도 저한테 축하한다고 한 적도 없고. 그런 관련 얘기를 꺼낸 적 없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검사: 추가로 질문하겠습니다. 그 이전에는 단독판사 의장에게 행사에서 발언을 하게 했다거나 아는 것이 있나요?

증인: 이전 의장일 때는 운동회 때 인사도 하고 소개도 했다는 것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 걸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단독판사회의 견제를 위해 행정처 출신 법관들을 각급 법원의 기획법관으로 보임하고,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들에게 지시해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 대응하는 등의 행위를 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으로 근무하다, 2015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기획법관을 맡았던 김봉선 전 판사도 단독판사회의 관련 문건을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낸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올해 변호사로 개업한 김 전 판사는 이달 2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출석해 증언대에 섰습니다.


김 전 판사는 2015년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를 앞두고, 임 전 차장에게 '직접' 문건을 송부했습니다.

검사는 김 전 판사가 관련 문건을 임 전 차장에게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문건 중 일부. [50]_(150312)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보고(김OO) 문건의 서두이다.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문건 중 일부. [50]_(150312)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보고(김OO) 문건의 서두이다.

검사: 2015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회의 관련 보고 문건을 제시합니다. 증인은 이 문건 작성해서 피고인에게 이메일로 보낸 사실이 있나요.

김봉선 변호사(증인): 네 있습니다.

(중략)

검사: 검찰에서 '김예영 판사가 2014년 사무분담규정 개정하려고 시도했던 건 행정처도 관심사안이었고 또 김예영 측에서 의장이 된다면 2015년에도 개정 시도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보고서에 이런 상황을 썼다면 행정처의 그런 관심을 고려한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사실대로 진술하신 것이죠.

증인: 맞을 겁니다.

검사: 그런데 증인은 이 문건을 어떤 이유로 행정처 심의관이 아닌 기조실장인 피고인에게 바로 보냈던 것인가요?

증인: .......조금 약간 좀.... 내밀하고 그런 내용이 있어서 바로 보고를 드렸던 거 같은데요.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을 겁니다.

검사: 네, 검찰에서 진술하신 게 있어서 그거 그대로 질문드리는데. 일반적으로 일선법원의 기획법관이 행정처 기조실장에게 지시가 없었는데 현재 법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문건을 써서 보고하는 게 이례적인 건 아닌가요. 증인 경험상으론 어떻습니까?

증인: 네 뭐 이례적인 거 같고요. 보통은 기조실 심의관을 경유해서 하죠. 네 뭐 조금... 제가 이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사실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걸 뭐 여러 사람 달리는 것보다는 바로 실장님한테 가는 게 괜찮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때 왜 제가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검찰은 나아가 김 전 판사가 당시 문건에 기재했던 ' 인권법 회원을 물색해 입후보를 독려할 가능성'이란 문구에 주목했습니다. 검사는 이를 왜 임 전 차장에게 가는 문건에 포함시켰는지, 임 전 차장의 관심사안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캐물었습니다.

그러나 김 전 판사는 "보고 사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위  [50]_(150312)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보고(김OO) 중 일부.위 [50]_(150312)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보고(김OO) 중 일부.
검사: 그리고 위 문건에는 이제 두 번째 동그라미에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학회 회원을 물색해서 입후보를 독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인이 이와 같은 판단한 이유는 뭡니까?

증인: .....(긴 침묵) 이제.. 어.. 인권법학회를 중심으로 이 판사회의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는 걸 그때 인지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썼던 거 같은데요. 정확히 왜 제가 이걸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해서 썼을 거 같습니다.

(중략)

검사: 그렇게 판단하신 것과 별개로, 증인이 그 부분을 이 문건에 넣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 회원을 물색해 입후보를 독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증인이 근거 가진 판단일 수 있습니다. 종국적으로 증인이 피고인에게 보고하려고 작성하신 건데 이 문건에 넣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증인: .... 이게 아무도 안 나오려는 상황이니까 이렇게 추천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검사: 김예영 판사가 국제인권법회의 소속 판사를 의장후보로 추천 내지 독려하는 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습니까. 증인이 생각하기에?

증인: 저는 기본적으로 억지로 경선으로 끌고가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검사: 증인은 2015년 당시,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이 이뤄지는 경우에 증인이 알기로는 최선임 판사님들이 후보로 나오시려고 하지 않는 상황을 인식하고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회원을 물색해 후보로 추천하게 되면 그 후보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이 될 거 같다는 우려를 하신 것은 아닙니까?

증인: 우려라기보다는 아마 그런 생각을 하기... 경선 룰을 갑자기 공지하고 이런 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갑자기 이제 여기 보시면 복수추천을 하도록 돼 있는데 그때 아무도 안나오려 하는 상황에서 복수 추천한다고 하면 과연 누가 나올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가지고.

검사: 증인은 그래서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연구회 회원 물색해서 추천하게 되는 상황,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경선 룰을 공지한 것이 김예영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을 차기 의장으로 만드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까.

증인: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김봉선 전 판사 "단독판사회의 대응하려 문건 만든 건 아냐"

검찰은 이어서 법원행정처가 단독판사회의를 주목한 이후, 당시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를 이용해 단독판사회의의 존재감을 낮추려 한 것은 아닌지 김 전 판사에게 물었습니다.

사법행정위원회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 과정에 일선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전국 각급 법원 소속 법관들로 구성해 2016년 출범시킨 조직이었습니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의 일입니다. 위원회 위원은 각 고등권역별로 법원장 등에게 추천을 받아 행정처장이 위촉했습니다.

그러나 김 전 판사는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문건을 어떤 '대응책' 차원에서 작성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자신으로선 보고할 만한 사항을 보고했던 것 뿐이라는 겁니다. 김 전 판사는 이 대목에서 유달리 길게 진술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와 당시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와의 관계를 분석한 문건 내용. [47]_(160418)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현황및전망[김OO] 문건 중 일부.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와 당시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와의 관계를 분석한 문건 내용. [47]_(160418)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현황및전망[김OO] 문건 중 일부.
(2016년 4월 김 전 판사가 작성한 문건을 제시하며)

검사: 위 문건의 사법행정위원회와의 관계 부분 기재를 보면요, 전체적 내용이. 단독판사회의는 중요 안건을 논의하여 사법행정위원회에서 논의할 안건을 발굴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다만 사행위와의 차별성을 표방하기 위해 보다 급진적 입장을 취하거나 사행위 안건으로 채택 안된 민감한 안건을 다루려 할 가능성이 있고, 만약 사행위가 단독판사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에 대해 선제적으로 논의하고 결론낸다면 단독판사회의가 독자적 존재감을 갖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취지로 저한텐 읽힙니다. 증인은 피고인으로부터 법관들 의견수렴기구인 사행위와의 관계에서 단독판사회의의 존재감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 볼 것을 지시받았던 건 아닙니까?

증인: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제가 이 부분 문건 관련해 징계청구가 되었고요 결국엔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왜 이게 이렇게 문제가 되는지 처음 조사받을 때에도 의아했고요. 그래서 특별조사단 조사가 나왔을 때에도 이 문건은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부적절 문건...에도 해당하지 않았던 문건인데, 나중에 징계청구서 받고 보니 그 문건이 포함돼 있는 겁니다. 왜 문제 삼는가 보니 이 문구 가지고… 문구를 가지고 문제를 삼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 문건 작성할 땐, 이 제목이 '단독판사회의 전망'이잖아요. 앞으로 단독판사회의가 어떻게 논의가 진행될 것이냐 관련해서 당시 마침 사법행정위원회가 출범했기 때문에 사법행정위가 전국 법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단독판사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들이 서울중앙지법 내에서 논의해봤자 별다른 실효성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것들을 자체적으로 논의할지 아니면 이 안건을 사행위 가져가서 논의할지. 왜냐면 판사도 안건 제출 권한이 있으니까 그런 차원의 전망을 기재한 것이지 제가 이거에 대해 어떤 대응책? 대응 이런 취지로 한 건 아닙니다.

검사: 네 알겠습니다. 증인에게 이메일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이메일 보면 2015년 12월경 법원행정처 박상언 심의관은 전국 법원기획법관들에게 월간 주요 상황을 보고하는 거 관련해서, 직급별 판사회의 등에서의 논의사항 및 의결을 보고해달라는 취지로 요구했고, 이에 증인은 2015년 12월 14일과, 21일에 있었던 판사회의 관련하여 보고를 했습니다. 증인이 2016년 4월 18일, 금방 저희가 보내드렸던 피고인 지시에 따라 만든 거...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현황 및 전망 문건... 금방 사행위 그 내용 있었던. 그 문건은 박상언 심의관이 전국법원기획법관에 대한 일반적인 보고 요구와 별도로 피고인의 별도의 연락을 받고 작성했던 것은 맞습니까.

증인: 그런 것 같습니다.


■ "지시하는 분에게 '이거 왜 보고하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결례죠"

반대신문에 나선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김 전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문건을 보고한 것에 대해 김 전 판사 스스로 보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검찰에서 한 진술의 설득력을 탄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김 전 판사도 앞서 주신문에서 진술한 것처럼, 기획법관으로서 해야 하는 업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임 전 차장이 문건 보고를 지시한 이유도 '결례'라고 생각해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임 전 차장 변호인(변호인): 특조단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대규모의 법조출입기자가 출입하고 항상 주시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언론보도의 파장은 만만치 않을 상황이었다. 행정처에선 언론에 의한 악의적 보도 나오기 전 사전 보고와 대응을 기획법관, 공보관에게 특히 강조한다'라고 진술했는데요. 실제 이런 우려를 해서 증인이 알고 있는 보고방식에 따라 행정처에 보고해야겠다 생각하고 보고하신 거 맞죠.

증인: 그런 우려가 있었던 건 사실인 거 같습니다.

(중략)

변호인: 증인, 검찰에서 증인 작성한 2016년 4월18일자 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 현황 및 전망 문건을 제시받으면서, 위 문건을 임 차장에게 보고하게 된 경위를 질문받고, '2016.4.18 문건으로 돼 있는 걸로 봐선 하루나 이틀 전 차장 지시받은 거 같은데 전화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임종헌 전 차장이 요즘 단독판사회의에서 어떤 것이 논의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논의가 될 것인지 저한테 물으셨고. 당시 박노수 판사님이 코트넷 이메일로 단독판사회의 향후 계획 공개하신 것도 있고 해서 이런 자료들 보고 만들어 드렸다. 또 당시 임종헌 차장님이 단독판사 회의에서 사무분담 내규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지, 향후 논의될 걸로 보이는지에 대해 물으셔서 제가 아직 그런 논의는 없는 거 같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차장님께서 단독판사회의의 현황 및 향후 전망에 대해 정리해달라고 지시하셨습니다'라고 했는데. 기억대로 진술한 것이 맞나요.

증인: 그때 진술했던 게 맞을 겁니다.

변호인: 증인은 당시…하여튼 피고인이 전화해서 질문한 이유를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피고인 평소 스타일도 그렇죠? 뭘 물어보면 왜 물어보는지 이야기 안하잖아요. 그렇죠?

증인: 그러니까. 그런 거죠. 보고를 하는 입장에서 무슨무슨 보고를 해라, 지시하는 분에게 이거 왜 보고하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결례죠. 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그러니까 사법행정자문기구 그 내용 보고하는 것은 기획법관으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업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반문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 상황을 제가 지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을 겁니다.

김 전 판사는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위원회와 단독판사회의의 관계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또한, 법원행정처에서 박노수 부장판사의 '대항마 판사'를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행정처 문건과 같은 지원단을 만들라는 등의 지시 역시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변호인: 증인은 검찰에서, 사법행정위원회 부분인데. 이 문건이 단독판사회의와 사법행정위원회 간 다루게 될 논의사항에 대한 전망을 임종헌 차장이 증인에게 검토하라고 지시한 결과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임종헌 차장님은 사법행정위원회와 단독판사회의의 관계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진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사무분담 내규 개정 관련해서는 임종헌 차장이 관심 갖고 있는 거 같아서 그 부분에 대해선 상당히 보시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증인이 생각한 것이라고 했는데 마찬가지로...지시받은 적은 없다는 거죠? 사법행정위원회의 관계라든가.

증인: 그때 진술이 맞을 겁니다.

(중략)

변호인: (…)증인이 경험하기에도 법원행정처는 물론이고 서울중앙지법 사법행정라인이 박노수 판사의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을 저지하려고 무슨 활동을 벌인 건 없는 거죠?

증인: 저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정 모 판사를 지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게 누구의 지시, 행정처에서 뭐 지원단을 만든다느니 그런 지시를 받은 적 없습니다.

아울러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심의관들이 작성한 문건과 관련해, "이는 대체로 관련자료와 정보를 정리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가능한 최적의 방법 뿐 아니라 다른 시각을 가진 시각이나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 등을 불문하고 예상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나열함으로써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작성한 것에 불과"하다며, 소위 '브레인스토밍'에 해당하는 문건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했습니다.

검찰의 질문은 주로 임 전 차장이 대법원에 대한 이른바 '대내외 비판 세력들'에 대한 대응을 지휘한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번 증언으로 재판부가 이를 인정할지는 두고 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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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㊳ ‘판사회의 문건’ 행정처에 직보한 판사…“이례적인 일 맞다”
    • 입력 2021-11-24 17:00:11
    • 수정2021-11-24 17:00:59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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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 번째 순서로,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박노수(10월 12일 공판 출석·사법연수원 31기)·김예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10월 18일·30기), 그리고 김봉선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11월 2일·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31기)의 증언을 추가로 살펴봅니다.


■ "행정처 심의관들이 인사모 모임때문에 퇴근도 안 하고 있다"

2015년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사건 적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별도로 3심 사건만을 심리하는 '상고법원'을 신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대법원을 '중요 사건'만 심리하는 이른바 '정책 법원'으로 만들고, 나머지 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은 사법부 내부에서 상고법원 추진에 대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대단히 경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대법원 내부 문건에는 △법관의 업무부담 개선 △이를 논거로 한 상고법원 설치 반대 등 대법원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온 대법원 내 전문분야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경계심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대법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주도 세력의 편향성 및 영향력 증대로 인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습니다.

특히 2015년 8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 설립을 앞두고 '상고법원 끝장 토론회' 등을 열자, 행정처는 인사모가 연구회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 상고법원 도입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대응 문건, [2]_(150823)인사모대응방안(기조심의관) 중 일부이다.
대법원은 당시 작성한 문건에서 △'구성원의 성향 등에 비춰 대법원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법원 내·외부에 표출할 가능성'이 높고 △국제인권법 커뮤니티 게시판의 게시만으로도 '법원 공식 커뮤니티에서 논의됐다'는 관점에서 언론에 보도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나아가 △'소장 판사들에게 대법원 정책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대법원은 '인사모' 출범 전부터 모임 설립을 주도한 법관들의 동향과 예비 모임 내용 등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검사: 인사모의 두 번째 예비 모임에 상고법원 관련해 논의를 했고, 증인이 사회를 본 적 있나요.

증인 박노수(이하 증인): 네, 제가 사회를 보았습니다.

검사: 어떻게 내용을 확보해서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했는지 아는가요.

증인: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제안이 들어와서 모임을 할 때부터 대법원 연구관 이수진 판사가 참석을 했는데 당시 이규진 부장이 국제인권법 회장이었고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습니다. 첫 모임 때부터 우리가 모인 것을 다 알고 있고 행정처에서 궁금해 한다, 누구누구 만나는지 다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검사: 증인은 인사모 모임에서 '행정처 심의관들이 인사모 모임때문에 퇴근도 안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증인: 네, 알고 있습니다.

이후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2017년 2월 코트넷 게시판에 "2개 이상의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 가입한 판사들은 1곳만 남기고 다른 연구회에선 일주일 안에 모두 탈퇴하라"는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공지를 올립니다.

일정 시점까지 판사들이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 가입되어 있을 경우, 예규의 취지에 따라 '가장 먼저 가입한 연구회의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그 뒤에 가입한 연구회에서는 탈퇴되는 것'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공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㉞ 순화·‘톤 다운’·탈퇴 요구는 판사들 오해?…11일 결론)

이런 전격적인 조치의 근거는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예규'였습니다. 이 예규엔 2개 이상 전문분야연구회의 중복가입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2000년 8월 제정된 이후 한 번도 이처럼 일괄적, 공개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을 검토한 내용이다. [5]_(160407)인권법연구회대응방안(인사모관련추가)[박OO] 문건 중 일부.
검찰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인권법연구회를 축소시키기 위해, 대법원 예규를 근거로 '중복가입 해소조치'을 공지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당시 대법원 내부 문건에는 '연구회 중복 가입자를 정리하는 방안'을 두고 △법관들 상대 중복가입자 정리 명분이 있고 △전산정보국장 선에서 실행 가능하며 △인사모 해소를 위한 유효한 우회적 압박 카드이며 △사전 준비의 부담이 없다는 등 여러 장점이 있고, 시행시 국제인권법연구회는 431명에서 204명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일주일 만에 철회됐지만, 인사모 판사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인사모에 가입돼 있던 판사들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 재판에 출석해 "행정처의 조치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가입자 수에 타격이 예상됐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사: 중복 가입한 연구회를 정리하고, 만약 기한 후에도 중복 가입이 돼 있으면 뒤에 가입한 연구회를 탈퇴 처리할 것이라고 코트넷에 뜬 것 기억하나요?

증인 김예영(이하 증인): 네, 기억납니다.

검사: 당시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이유에 대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증인: 아주 처음에는 그런가 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이상했어요. 연구회에 대한 탄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사: 중복가입 금지 조항(예규)은 원래 실효성이 없는 규정이었죠.

증인: 네. 한번도 시행되지 않아서요.


■ "다른 연구회 탈퇴하고 인권법 가면 되지 않느냐"

그러나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해당 조치는 예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인권법연구회 세력 축소를 위한 것이 아니며, 해당 예규가 그대로 시행됐다 하더라도 다른 연구회에서 탈퇴해 인권법연구회에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판사들은 왜 그래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변호인(변호인): (중복가입 해소조치의) 기준 일자가 지나면 하나만 가입된 상태가 되지 않습니까. 거기를 탈퇴하고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것이니 못 가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증인 박노수: 포인트는 그게 아니고요. 공지를 보고 중복 가입된 여러 연구회 중에 하나를 남겨놓고 나머지 연구회 탈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판사는 소수일 것입니다. 나머지 판사님들은 공지를 읽지도 않고 그냥 있는 게 다수일 겁니다. 결국 그분들은 최초 가입한 연구회만 남고 나머지는 (자신도) 모르게 정리된다는 게 포인트죠. 그러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후발로 들어온분들, 결과적으로 (인권법연구회의 가입자) 감소 폭이 가장 크게 된다는게 포인트입니다. 판사님들 대다수는 재판 바빠서 공지 자세히 읽고, 그런 (탈퇴) 조치까지 하지 못하세요. 그래서 (법원행정처가) 그걸 노리고 한 거죠, 대다수 판사님들이 그래요.

동일한 물음에 증인으로 나온 김예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왜 그런 불필요한 행위를 판사들에 강요하나요. 의료법이나 환경법 모두 관심 있을 수 있는데. 왜 탈퇴했다가 하나만 가입하라고 하나요"라고 되물었습니다.

변호인은 이어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해소 방안' 외에 뾰족한 수가 있는지, 증인으로 나선 판사들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인: 증인의 생각은 그렇다고 하고요. 그러면 예규를 준수하는 상태로 하기 위해서 중복 가입을 정리한다 할 때, 그럼 증인은 어느 걸 남겨두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까? (법원행정처 안처럼) 최초 가입한 연구회를 남겨두는 게 옳지 않다면, 다른 연구회를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보나요?

증인 박노수: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예규가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와 다르게 모든 판사님들이 자유롭게 중복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고, 문제 제기된 적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탈퇴하라고 하니까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연구회를 (가입 상태로) 남겨두는 게 옳겠냐는 것까지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변호인의 동일한 물음에)

증인 김예영(이하 증인): 목적이 부당하기 때문에 다음 요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고요. 부당한 목적으로 사문화된 조항을 시행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제일 나은 방안이 아니고요, 여러가지 방안이 가능한데 의도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것이죠. 무조건 나중에 가입한 걸 탈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변호인: 대법원 예규의 취지는 어느 하나에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어서 여러 가지 전문성을 기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또 어느 정도는 판사들이 적절히 분산되어 최소 인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골고루 전문 판사들이 분포하게 된다는 취지입니다. 자기가 원하면 10개라도 가입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건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것인데요.

증인: 가입하는 것과 활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굳이 한 군데만 활동하게 해서 최소한의 인원을 확보한다는 생각은 납득이 되지 않고요, 민사합의부도 의료와 환경을 같이 한다든가 그런 경우가 많은데 어느 하나에만 가입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피고인인 임 전 차장도 연구회의 본래 취지는 재판 업무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쌓는 것 아니냐며 직접 증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전문분야 연구회 예규를 보면, 전문분야 연구회는 2000년대 초반 김황식 기조실장 당시 도입됐습니다. 그 취지는 법관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자유롭게 가입하게 하는 것보다, 법관의 재판 업무에 도움되는 연구를 장려하는 것, 재판을 위한 것이지 개인적 관심은 2차적 문제였습니다. 재판과 병행해 여러가지를 동시에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판 관련해 연구하고 공유하는 게 그 취지였는데요. 따라서 본인의 희망과 관계 없이 본인 담당했던 재판부의 사무가 변경되면 탈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데 증인의 생각은 다른가요.

증인 김예영: 관심이 생기고 또 다음에 다시 (전담재판부를) 맡을 수도 있는데 탈퇴를 하는 것이 재판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 "단독판사회의 의장,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느낌 받았다"

법원행정처가 인사모 외에도 달리 신경을 쓴 모임이 있습니다. 바로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소속 단독판사회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의 내규는 직급별 판사회의 의장을 의결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동안 관례적으로 최선임자가 의장이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2014년 서울지방법원에서는 단독판사회의 의장을 놓고 최초로 경선이 열렸고, 투표에 의해 김예영 부장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의장이 된 김 판사는 당시 법원장 주도로 이뤄지던 사무분담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사무분담이란 판사들을 영장전담·형사부·민사부 등 각 분야 재판에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동안 영장전담판사 등 이른바 중요 보직을 채우는 과정에서 법원장이 선호하는 판사를 보임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습니다.

김 판사가 이에 반기를 들면서,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단독판사회의를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도 경선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었으나, 예전 관행대로 가장 선임인 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6년, 양승태 사법부에 비판적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박노수 부장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 후보에 출마하려 하자 법원행정처는 이를 저지하려는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작성합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을 앞두고 작성한 문건. [322]_001111_(160307)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의 일부.
행정처는 박 부장판사의 대항 후보를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적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을 앞두고 작성한 문건으로, [322]_001111_(160307)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의 일부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건 내용이 실행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2016년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당선됐던 박노수 부장판사는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사: 당시 사법행정 라인의 대응이 있었던 것에 대해 증인이 아는 바가 있나요. 증인에 대해 존재감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발언권을 최대한 안 주려고 한다거나…의장으로 있는데도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거나, 지원을 주지 않으려는 경험을 느낀 적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증인 박노수(이하 증인): 행정처나 사법행정 라인에서 대응하려 했다는 것은 당연히 몰랐고요. 다만 당시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중략)…다음 해에 운영위원회가 열린다던지 판사들 오찬 자리에서 한번도 저한테 축하한다고 한 적도 없고. 그런 관련 얘기를 꺼낸 적 없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검사: 추가로 질문하겠습니다. 그 이전에는 단독판사 의장에게 행사에서 발언을 하게 했다거나 아는 것이 있나요?

증인: 이전 의장일 때는 운동회 때 인사도 하고 소개도 했다는 것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 걸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단독판사회의 견제를 위해 행정처 출신 법관들을 각급 법원의 기획법관으로 보임하고,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들에게 지시해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 대응하는 등의 행위를 한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2년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으로 근무하다, 2015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기획법관을 맡았던 김봉선 전 판사도 단독판사회의 관련 문건을 작성해 임 전 차장에게 보낸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올해 변호사로 개업한 김 전 판사는 이달 2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출석해 증언대에 섰습니다.


김 전 판사는 2015년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거를 앞두고, 임 전 차장에게 '직접' 문건을 송부했습니다.

검사는 김 전 판사가 관련 문건을 임 전 차장에게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에서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문건 중 일부. [50]_(150312)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보고(김OO) 문건의 서두이다.
검사: 2015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회의 관련 보고 문건을 제시합니다. 증인은 이 문건 작성해서 피고인에게 이메일로 보낸 사실이 있나요.

김봉선 변호사(증인): 네 있습니다.

(중략)

검사: 검찰에서 '김예영 판사가 2014년 사무분담규정 개정하려고 시도했던 건 행정처도 관심사안이었고 또 김예영 측에서 의장이 된다면 2015년에도 개정 시도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보고서에 이런 상황을 썼다면 행정처의 그런 관심을 고려한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사실대로 진술하신 것이죠.

증인: 맞을 겁니다.

검사: 그런데 증인은 이 문건을 어떤 이유로 행정처 심의관이 아닌 기조실장인 피고인에게 바로 보냈던 것인가요?

증인: .......조금 약간 좀.... 내밀하고 그런 내용이 있어서 바로 보고를 드렸던 거 같은데요.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을 겁니다.

검사: 네, 검찰에서 진술하신 게 있어서 그거 그대로 질문드리는데. 일반적으로 일선법원의 기획법관이 행정처 기조실장에게 지시가 없었는데 현재 법원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문건을 써서 보고하는 게 이례적인 건 아닌가요. 증인 경험상으론 어떻습니까?

증인: 네 뭐 이례적인 거 같고요. 보통은 기조실 심의관을 경유해서 하죠. 네 뭐 조금... 제가 이제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사실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걸 뭐 여러 사람 달리는 것보다는 바로 실장님한테 가는 게 괜찮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때 왜 제가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검찰은 나아가 김 전 판사가 당시 문건에 기재했던 ' 인권법 회원을 물색해 입후보를 독려할 가능성'이란 문구에 주목했습니다. 검사는 이를 왜 임 전 차장에게 가는 문건에 포함시켰는지, 임 전 차장의 관심사안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캐물었습니다.

그러나 김 전 판사는 "보고 사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위  [50]_(150312)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보고(김OO) 중 일부.
검사: 그리고 위 문건에는 이제 두 번째 동그라미에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학회 회원을 물색해서 입후보를 독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증인이 이와 같은 판단한 이유는 뭡니까?

증인: .....(긴 침묵) 이제.. 어.. 인권법학회를 중심으로 이 판사회의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는 걸 그때 인지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썼던 거 같은데요. 정확히 왜 제가 이걸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게 생각해서 썼을 거 같습니다.

(중략)

검사: 그렇게 판단하신 것과 별개로, 증인이 그 부분을 이 문건에 넣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 회원을 물색해 입후보를 독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증인이 근거 가진 판단일 수 있습니다. 종국적으로 증인이 피고인에게 보고하려고 작성하신 건데 이 문건에 넣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증인: .... 이게 아무도 안 나오려는 상황이니까 이렇게 추천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검사: 김예영 판사가 국제인권법회의 소속 판사를 의장후보로 추천 내지 독려하는 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습니까. 증인이 생각하기에?

증인: 저는 기본적으로 억지로 경선으로 끌고가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검사: 증인은 2015년 당시,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이 이뤄지는 경우에 증인이 알기로는 최선임 판사님들이 후보로 나오시려고 하지 않는 상황을 인식하고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회원을 물색해 후보로 추천하게 되면 그 후보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이 될 거 같다는 우려를 하신 것은 아닙니까?

증인: 우려라기보다는 아마 그런 생각을 하기... 경선 룰을 갑자기 공지하고 이런 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갑자기 이제 여기 보시면 복수추천을 하도록 돼 있는데 그때 아무도 안나오려 하는 상황에서 복수 추천한다고 하면 과연 누가 나올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가지고.

검사: 증인은 그래서 김예영 판사가 인권법연구회 회원 물색해서 추천하게 되는 상황,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경선 룰을 공지한 것이 김예영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을 차기 의장으로 만드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입니까.

증인: 그때 어떤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김봉선 전 판사 "단독판사회의 대응하려 문건 만든 건 아냐"

검찰은 이어서 법원행정처가 단독판사회의를 주목한 이후, 당시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를 이용해 단독판사회의의 존재감을 낮추려 한 것은 아닌지 김 전 판사에게 물었습니다.

사법행정위원회는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 과정에 일선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전국 각급 법원 소속 법관들로 구성해 2016년 출범시킨 조직이었습니다.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의 일입니다. 위원회 위원은 각 고등권역별로 법원장 등에게 추천을 받아 행정처장이 위촉했습니다.

그러나 김 전 판사는 "해당 문건을 작성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문건을 어떤 '대응책' 차원에서 작성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자신으로선 보고할 만한 사항을 보고했던 것 뿐이라는 겁니다. 김 전 판사는 이 대목에서 유달리 길게 진술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와 당시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와의 관계를 분석한 문건 내용. [47]_(160418)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현황및전망[김OO] 문건 중 일부.
(2016년 4월 김 전 판사가 작성한 문건을 제시하며)

검사: 위 문건의 사법행정위원회와의 관계 부분 기재를 보면요, 전체적 내용이. 단독판사회의는 중요 안건을 논의하여 사법행정위원회에서 논의할 안건을 발굴하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다만 사행위와의 차별성을 표방하기 위해 보다 급진적 입장을 취하거나 사행위 안건으로 채택 안된 민감한 안건을 다루려 할 가능성이 있고, 만약 사행위가 단독판사회의에서 논의될 안건에 대해 선제적으로 논의하고 결론낸다면 단독판사회의가 독자적 존재감을 갖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취지로 저한텐 읽힙니다. 증인은 피고인으로부터 법관들 의견수렴기구인 사행위와의 관계에서 단독판사회의의 존재감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해 볼 것을 지시받았던 건 아닙니까?

증인: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제가 이 부분 문건 관련해 징계청구가 되었고요 결국엔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이 부분과 관련해서 왜 이게 이렇게 문제가 되는지 처음 조사받을 때에도 의아했고요. 그래서 특별조사단 조사가 나왔을 때에도 이 문건은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 부적절 문건...에도 해당하지 않았던 문건인데, 나중에 징계청구서 받고 보니 그 문건이 포함돼 있는 겁니다. 왜 문제 삼는가 보니 이 문구 가지고… 문구를 가지고 문제를 삼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 문건 작성할 땐, 이 제목이 '단독판사회의 전망'이잖아요. 앞으로 단독판사회의가 어떻게 논의가 진행될 것이냐 관련해서 당시 마침 사법행정위원회가 출범했기 때문에 사법행정위가 전국 법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단독판사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들이 서울중앙지법 내에서 논의해봤자 별다른 실효성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것들을 자체적으로 논의할지 아니면 이 안건을 사행위 가져가서 논의할지. 왜냐면 판사도 안건 제출 권한이 있으니까 그런 차원의 전망을 기재한 것이지 제가 이거에 대해 어떤 대응책? 대응 이런 취지로 한 건 아닙니다.

검사: 네 알겠습니다. 증인에게 이메일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이메일 보면 2015년 12월경 법원행정처 박상언 심의관은 전국 법원기획법관들에게 월간 주요 상황을 보고하는 거 관련해서, 직급별 판사회의 등에서의 논의사항 및 의결을 보고해달라는 취지로 요구했고, 이에 증인은 2015년 12월 14일과, 21일에 있었던 판사회의 관련하여 보고를 했습니다. 증인이 2016년 4월 18일, 금방 저희가 보내드렸던 피고인 지시에 따라 만든 거...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현황 및 전망 문건... 금방 사행위 그 내용 있었던. 그 문건은 박상언 심의관이 전국법원기획법관에 대한 일반적인 보고 요구와 별도로 피고인의 별도의 연락을 받고 작성했던 것은 맞습니까.

증인: 그런 것 같습니다.


■ "지시하는 분에게 '이거 왜 보고하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결례죠"

반대신문에 나선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김 전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문건을 보고한 것에 대해 김 전 판사 스스로 보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겠냐며, 검찰에서 한 진술의 설득력을 탄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김 전 판사도 앞서 주신문에서 진술한 것처럼, 기획법관으로서 해야 하는 업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임 전 차장이 문건 보고를 지시한 이유도 '결례'라고 생각해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임 전 차장 변호인(변호인): 특조단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대규모의 법조출입기자가 출입하고 항상 주시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언론보도의 파장은 만만치 않을 상황이었다. 행정처에선 언론에 의한 악의적 보도 나오기 전 사전 보고와 대응을 기획법관, 공보관에게 특히 강조한다'라고 진술했는데요. 실제 이런 우려를 해서 증인이 알고 있는 보고방식에 따라 행정처에 보고해야겠다 생각하고 보고하신 거 맞죠.

증인: 그런 우려가 있었던 건 사실인 거 같습니다.

(중략)

변호인: 증인, 검찰에서 증인 작성한 2016년 4월18일자 서울중앙단독판사회의 현황 및 전망 문건을 제시받으면서, 위 문건을 임 차장에게 보고하게 된 경위를 질문받고, '2016.4.18 문건으로 돼 있는 걸로 봐선 하루나 이틀 전 차장 지시받은 거 같은데 전화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임종헌 전 차장이 요즘 단독판사회의에서 어떤 것이 논의되고 있고, 앞으로 어떤 논의가 될 것인지 저한테 물으셨고. 당시 박노수 판사님이 코트넷 이메일로 단독판사회의 향후 계획 공개하신 것도 있고 해서 이런 자료들 보고 만들어 드렸다. 또 당시 임종헌 차장님이 단독판사 회의에서 사무분담 내규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지, 향후 논의될 걸로 보이는지에 대해 물으셔서 제가 아직 그런 논의는 없는 거 같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차장님께서 단독판사회의의 현황 및 향후 전망에 대해 정리해달라고 지시하셨습니다'라고 했는데. 기억대로 진술한 것이 맞나요.

증인: 그때 진술했던 게 맞을 겁니다.

변호인: 증인은 당시…하여튼 피고인이 전화해서 질문한 이유를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는데 피고인 평소 스타일도 그렇죠? 뭘 물어보면 왜 물어보는지 이야기 안하잖아요. 그렇죠?

증인: 그러니까. 그런 거죠. 보고를 하는 입장에서 무슨무슨 보고를 해라, 지시하는 분에게 이거 왜 보고하라고 하십니까? 그러면 결례죠. 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그러니까 사법행정자문기구 그 내용 보고하는 것은 기획법관으로서 당연히 해야하는 업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반문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 상황을 제가 지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검찰에서 진술한 게 맞을 겁니다.

김 전 판사는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위원회와 단독판사회의의 관계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또한, 법원행정처에서 박노수 부장판사의 '대항마 판사'를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행정처 문건과 같은 지원단을 만들라는 등의 지시 역시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변호인: 증인은 검찰에서, 사법행정위원회 부분인데. 이 문건이 단독판사회의와 사법행정위원회 간 다루게 될 논의사항에 대한 전망을 임종헌 차장이 증인에게 검토하라고 지시한 결과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임종헌 차장님은 사법행정위원회와 단독판사회의의 관계를 검토하라고 지시하진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사무분담 내규 개정 관련해서는 임종헌 차장이 관심 갖고 있는 거 같아서 그 부분에 대해선 상당히 보시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증인이 생각한 것이라고 했는데 마찬가지로...지시받은 적은 없다는 거죠? 사법행정위원회의 관계라든가.

증인: 그때 진술이 맞을 겁니다.

(중략)

변호인: (…)증인이 경험하기에도 법원행정처는 물론이고 서울중앙지법 사법행정라인이 박노수 판사의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을 저지하려고 무슨 활동을 벌인 건 없는 거죠?

증인: 저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정 모 판사를 지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게 누구의 지시, 행정처에서 뭐 지원단을 만든다느니 그런 지시를 받은 적 없습니다.

아울러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은 심의관들이 작성한 문건과 관련해, "이는 대체로 관련자료와 정보를 정리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가능한 최적의 방법 뿐 아니라 다른 시각을 가진 시각이나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 등을 불문하고 예상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나열함으로써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작성한 것에 불과"하다며, 소위 '브레인스토밍'에 해당하는 문건이라고 계속해서 주장했습니다.

검찰의 질문은 주로 임 전 차장이 대법원에 대한 이른바 '대내외 비판 세력들'에 대한 대응을 지휘한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번 증언으로 재판부가 이를 인정할지는 두고 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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