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㉘ 통진당TF 꾸린 판사…‘재판 개입’ 의심에 “답답해” 도리질

입력 2020.07.07 (09:09) 수정 2020.07.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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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여덟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30일 증인으로 나온 이진만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現 변호사)의 증언을 두 번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올해 2월 퇴임한 이 전 판사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있을 때 겪은 일 때문에 법정에 불려 나왔습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통진당 소속 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의원들이 법원에 "의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내면서, 헌재 결정의 여파는 법원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에서는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대응 TF'(이하 '통진당 TF')―명칭에 대해 약간의 논쟁이 있는데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가 꾸려졌는데, 이 TF의 팀장을 대법원에 있었던 이 전 판사가 맡게 됐습니다. 행정처 소속도 아니었지만, 헌법 분야를 잘 안다는 이유로 행정처에 있던 선배 법관들이 헌법 관련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2018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TF 활동과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는데, 아직까지 검찰에서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를 통지받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1. TF의 탄생

통진당 TF는 사법농단 사건의 줄기 중 하나인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의혹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에 가장 유리한" 통진당 행정소송의 결론 등을 TF가 검토하도록 하고, 그 검토 결과를 통진당 사건을 맡은 일선 재판부에 전달해 재판에 개입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증인은 이 TF의 탄생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증인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의원직 상실 결정이 있었던 2014년 12월 19일 오후, 헌재 결정문을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했는데, 이 자리에서 TF를 꾸리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 증인: 그 헌재 결정을 보고 제가 (처장님께) 가서 "법원에도 영향이 있을 거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그럼 연구해야지" 이런 (처장님의) 이야기가 있었던 거 같고. "이게 좀 어려워서 (헌법재판소 업무 관련 주무 심의관인) 김종복 판사 혼자로는 안됩니다" 제가 그런 얘기했던 거 같고요. "그럼 뭐 몇 명 같이 해보든지"라고 (처장님이) 해서, 제가 내려와서 김종복 판사한테 "이거 김 판사 혼자 못하니까 여러 사람 같이 연구해야겠다. 나도 좀 어렵다". 그리고 "행정법 박사학위 가지고 있던 이은상 판사는 포함시키는 게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머지 부분은 아마 김종복 판사가 누구로 할지 정해서 했던 거 같습니다.

증인은 김종복 판사(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공법 담당 심의관)에게 TF 구성을 이야기하며 "이거 큰 거 터진 거 아니냐,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라고도 말했다고 했는데요. 전 통진당 의원들이 헌재 결정에 반발하며 법원에 소송을 내는 "초유의 일"이 예상됐고, 행정처에서 미리 관련 법률적 쟁점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전 통진당 국회의원 5명은 2015년 1월 6일 서울행정법원에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12월 13일 첫 회의를 연 통진당 TF에는 증인과 김종복 판사(現 법무법인 엘케이비엔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이국현 판사(당시 사법지원실 심의관·現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부장판사), 정재헌 판사(당시 사법연수원 교수·現 SK그룹 법무2그룹장), 이은상 판사(당시 전산정보관리국 심의관·現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두 5명이 참여했습니다. 모두 법원 안에서 헌법·행정법 전문가로 꼽히는 판사들이었습니다. TF 회의는 2월 초 활동을 마칠 때까지 두세 차례 열렸는데, 이마저도 각자 일이 바빠 참석률이 저조했다고 증인은 말했습니다.

2014년 12월 26일 김종복 판사가 TF 팀원들에게 메일로 보낸 박병대 처장 작성 문건의 일부 내용(기자가 재구성). “헌재의 재판에 대한 사법심사”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이진만 전 판사는 TF 구성원 다수가 당시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한 법원의 사법심사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자신은 법원 위상 강화라는 정무적 목적보다는 “각하는 이론적으로 안맞으니 사법심사를 ‘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2014년 12월 26일 김종복 판사가 TF 팀원들에게 메일로 보낸 박병대 처장 작성 문건의 일부 내용(기자가 재구성). “헌재의 재판에 대한 사법심사”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이진만 전 판사는 TF 구성원 다수가 당시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한 법원의 사법심사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자신은 법원 위상 강화라는 정무적 목적보다는 “각하는 이론적으로 안맞으니 사법심사를 ‘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

#2. 조직적 재판 개입? 개인의 '오버'?

통진당 전 의원들의 소송 제기 다음날인 2015년 1월 7일 김종복 판사가 작성한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보고(대외비)" 문건은 통진당TF의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증인은 이 문건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했고, 대법원장이 "짧은 시간에 애썼네. 수고했네"라고 말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22쪽 분량의 이 문건에는 통진당 전 의원들의 행정소송 제기가 법원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으로 "재판취소 방지를 위한 압박카드 활용 가능" "민변 등 헌재 결정에 비판적인 세력 우군화 모색 기회" 등의 자극적인 문구들이 열거돼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각하, 기각, 인용, 일부 인용 및 일부 기각 등 행정소송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들을 모두 검토했는데, 특히 "각하→부적절" "각하의 결론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임"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김종복 판사의 후임으로 사법정책실에 근무했던 문성호 판사는 통진당 관련 업무가 부과될 때마다 이 문건과 같은 TF 자료를 꺼내 읽어봤다며, "내용이 지나친 것들이 있어서 간담이 서늘한 느낌을 받긴 했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행정처 내부자가 보기에도 일부 내용이 좀 충격적이었다는 건데요.

검찰은 이같은 보고서의 내용을 문제삼아 TF 활동이 '재판 개입'을 전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지만, 증인은 억울함을 표출했습니다.

- 임종헌 측 변호인: 통진당 TF가 재판 개입 목적의 TF는 아니었죠?
- 증인: 절대 아닙니다. (검찰 조사에서) 계속 그 질문 받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변호인: 내부 논의 과정에서 그 연구결과물이 일선 재판부에 전달될 용도임을 전제로 한 논의를 하거나 그런 인식 공유한 적도 없죠?
- 증인: 그런 적 없습니다. 그리고 모임 자체를 아주 짧게 하거나,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일을 해서 파일을 김종복 판사한테 보내면 김종복 판사가 편집했죠. 얘기를 많이 할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기도 어려웠습니다.
[…]
- 변호인: 깊은 토의나 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통진당 소송에서) 어떠한 결론이 향후 법원의 위상이나 헌재와의 관계에서 법원에 유리할 것이냐 이런 논의를 했던 건 아니죠?
- 증인: 그런 적 없고요. 정말 그런 목적이라면 어느 게 (법원에) 제일 좋은지 저기 썼을 거 아닙니까? 근데 일절 없습니다. 재판이 인용, 기각, 각하, 일부 인용, 일부 기각 다 될 수 있는데 그 이해관계가 각각 다릅니다. 그걸 어떻게 제가 다 알 수 있습니까?

증인은 또 "압박카드 활용" "비판세력 우군화 모색 기회" 등의 표현은 김종복 판사 개인의 아이디어였다며, TF 차원에서 논의한 내용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도 표현이 과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법정책실에서는 특히 일부러 사고를 자유롭게 하고,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라며 "(거기에) 지청구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후배 판사 이야기를 들여주려 했고, 심해도 '오바했네?' 이러고 웃고 그런 식으로 일을 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김종복 전 판사도 지난해 10월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낸 아이디어 중엔 조금 지나친 것들도 있었다며, "정보를 드린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증인은 검찰이 "각하→부적절"이라는 문구를 문제 삼는 것도 "굉장히 답답하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하 판결은 법리적으로 틀렸고 이론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부적절하다고 기재한 것뿐이라는 겁니다. "행정법을 알고 행정재판을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는 얘기"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소각하 판결을 내리자 증인은 "'각하는 도저히 안되는 거였는데 왜 각하가 됐지?'하고 판결이 났을 때 판결문을 열어봤다"라며 "논리는 잘 썼는데, 저는 그 논리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각하는 이론적으로 틀렸다고 확신한다"라고도 했습니다. 나중엔 더 구체적인 설명도 제시했습니다.

- 증인: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현재의 법 상태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 그건 본안에 들어가서 기각하든 인용하든 합니다. 일반적으로. 근데 행정소송의 특수성이 있으니까 당사자 적격이 잘못되었다라든지, 공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것인데 반드시 처분을 전제로 하는 거라든지 그런 특별한 요건이 있을 때 각하하게 될 텐데, 이 경우엔 특별한 요건이 없었던 말이에요. 그리고 행정소송의 당사자 소송이라는 거는 행정처분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현재의 법 상태를 질문하면 법원은 답을 하는 거예요, 인용이든 기각이든. 그런 의미에서 각하는 이론적으로 틀렸단 거예요.

반면 TF 간사였던 김종복 전 판사는 지난해 10월 법정에서 "각하→부적절"이라는 문구에 대해, "법원 입장에서는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것" "각하는 법원이 수세에 놓일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고 증인과는 조금 다른 설명을 했습니다.

#3. 증인의 도리질

그 의도가 무엇이었건 통진당 TF 보고서들은 약 1cm 두께의 두툼한 스프링 책으로 엮여 2015년 2월 양승태 대법원장에게까지 전달·보고됐습니다. 나중에는 통진당 사건을 심리하는 일선 법원이나 재판부에 일부 내용이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아직도 좀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 검사: 검찰 조사에서 증인은 "일선 법원에는 절대 전달 되어서는 안되는 문건이다. 각하는 부적절하다는 등 재판에 영향 미칠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는데. 증인은 이와 같은 문건들이 일선 재판부에 전달되면 재판의 독립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했던 겁니까?
- 증인: 아니, 저 문건 자체는 누가 봐도 김종복 판사의 좀 과한.. 좀 지나친 것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달될 수 없는 문건이고요. 그래서 저 얘기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문건이 어떻게 재판부에 전달되었는지 저는 지금도 모르고 검찰에서는 저게 전달됐다고 했는데 저 문건들이 전달됐는지도 지금 솔직히,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증인의 열변에도 검사는 별 동요없이 신문을 이어갔습니다.

- 검사: 전달은 됐습니다.
- 증인: 저 문건이 그대로 전달되었습니까?
- 검사: 변형해서.
- 증인: 저는 저 문건을 그대로 전달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문건 전달됐는지 이거 자체를 수사 과정에서 들었거든요.

그러자 검사는 '문건 전달'과 관련된 증인의 더 직접적인 기억에 대해 물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이규진 양형실장이 저한테 전화 와서 조심스럽게, 통진당 TF를 했던데 그 문건을 조한창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줘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든 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도 반대 의견을 분명히 말했고 그래서 전달하지 않은 줄 알았고, 그 후로도 문건 관련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 나눈 적 없었습니다"라고 진술했는데. 기억대로 진술하셨습니까?
- 증인: 기억대로 진술했습니다.
- 검사: 그런데 이규진은 통진당 TF 문건을 조한창에게 전달해도 되느냐고 증인에게 물었고 증인이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어떻습니까?
- 증인: 저는, 아우. [고개 절레절레 흔들며] 그거는 행정처 내부 문건이라고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내부 문건이라고. 문구를 봐도 그렇습니다. 저거를 그대로 나간다는 게... 아우..

답답함이 담긴 증인의 도리질은 계속됐습니다. 'TF'라는 명칭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괜한 오해를 샀다는 것이었습니다.

- 변호인: 행정처에서는 과거에도 다양한 TF가 구성돼 왔죠?
- 증인: 그러니까[웃음]. 그 TF라는 거 때문에... "TF를 정의·정리하기 위한 TF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우스갯소리 있을 정도로, 두 명 이상이 협업하면 TF였습니다. 정식 명칭이 없었고 수사 과정에서 뭔가 이름을 불러야하니 통진당 TF라고 부른 거지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니고. 혼자하기 힘들면 거들어주는 게 있습니다. 심의관들 사이에. 여러 명이 하잖아요. 그럼 그걸 다 TF라고 한 거였습니다.

이에 대해 검사는 "행정처 내부에서 오간 이메일이나 관련 문건에 보면 다 통진당 행정소송 TF라고 기재돼 있지 않느냐"라며 검찰이 따로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2014년 12월 22일 작성된 TF의 첫 보고서의 제목은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 TFT 구성"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소개한 내용은 주로 증인과 검사의 논박이었지만, 사실 증인과 임종헌 전 차장 사이에도 매우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 대목이 있었는데요. 이어지는 기사에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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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㉘ 통진당TF 꾸린 판사…‘재판 개입’ 의심에 “답답해” 도리질
    • 입력 2020-07-07 09:09:54
    • 수정2020-07-08 16:52:45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여덟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30일 증인으로 나온 이진만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現 변호사)의 증언을 두 번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올해 2월 퇴임한 이 전 판사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있을 때 겪은 일 때문에 법정에 불려 나왔습니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통진당 소속 의원들도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의원들이 법원에 "의원 지위를 확인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내면서, 헌재 결정의 여파는 법원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에서는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대응 TF'(이하 '통진당 TF')―명칭에 대해 약간의 논쟁이 있는데 뒤에서 살펴보겠습니다―가 꾸려졌는데, 이 TF의 팀장을 대법원에 있었던 이 전 판사가 맡게 됐습니다. 행정처 소속도 아니었지만, 헌법 분야를 잘 안다는 이유로 행정처에 있던 선배 법관들이 헌법 관련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2018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TF 활동과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로 입건됐는데, 아직까지 검찰에서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를 통지받지는 못했다고 했습니다.

#1. TF의 탄생

통진당 TF는 사법농단 사건의 줄기 중 하나인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의혹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에 가장 유리한" 통진당 행정소송의 결론 등을 TF가 검토하도록 하고, 그 검토 결과를 통진당 사건을 맡은 일선 재판부에 전달해 재판에 개입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증인은 이 TF의 탄생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증인은 헌재의 통진당 해산·의원직 상실 결정이 있었던 2014년 12월 19일 오후, 헌재 결정문을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했는데, 이 자리에서 TF를 꾸리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 증인: 그 헌재 결정을 보고 제가 (처장님께) 가서 "법원에도 영향이 있을 거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그럼 연구해야지" 이런 (처장님의) 이야기가 있었던 거 같고. "이게 좀 어려워서 (헌법재판소 업무 관련 주무 심의관인) 김종복 판사 혼자로는 안됩니다" 제가 그런 얘기했던 거 같고요. "그럼 뭐 몇 명 같이 해보든지"라고 (처장님이) 해서, 제가 내려와서 김종복 판사한테 "이거 김 판사 혼자 못하니까 여러 사람 같이 연구해야겠다. 나도 좀 어렵다". 그리고 "행정법 박사학위 가지고 있던 이은상 판사는 포함시키는 게 좋겠다"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머지 부분은 아마 김종복 판사가 누구로 할지 정해서 했던 거 같습니다.

증인은 김종복 판사(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공법 담당 심의관)에게 TF 구성을 이야기하며 "이거 큰 거 터진 거 아니냐, 대비해야 하지 않느냐"라고도 말했다고 했는데요. 전 통진당 의원들이 헌재 결정에 반발하며 법원에 소송을 내는 "초유의 일"이 예상됐고, 행정처에서 미리 관련 법률적 쟁점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전 통진당 국회의원 5명은 2015년 1월 6일 서울행정법원에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12월 13일 첫 회의를 연 통진당 TF에는 증인과 김종복 판사(現 법무법인 엘케이비엔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이국현 판사(당시 사법지원실 심의관·現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부장판사), 정재헌 판사(당시 사법연수원 교수·現 SK그룹 법무2그룹장), 이은상 판사(당시 전산정보관리국 심의관·現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두 5명이 참여했습니다. 모두 법원 안에서 헌법·행정법 전문가로 꼽히는 판사들이었습니다. TF 회의는 2월 초 활동을 마칠 때까지 두세 차례 열렸는데, 이마저도 각자 일이 바빠 참석률이 저조했다고 증인은 말했습니다.

2014년 12월 26일 김종복 판사가 TF 팀원들에게 메일로 보낸 박병대 처장 작성 문건의 일부 내용(기자가 재구성). “헌재의 재판에 대한 사법심사”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이진만 전 판사는 TF 구성원 다수가 당시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에 대한 법원의 사법심사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면서도, 자신은 법원 위상 강화라는 정무적 목적보다는 “각하는 이론적으로 안맞으니 사법심사를 ‘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
#2. 조직적 재판 개입? 개인의 '오버'?

통진당 전 의원들의 소송 제기 다음날인 2015년 1월 7일 김종복 판사가 작성한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보고(대외비)" 문건은 통진당TF의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증인은 이 문건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했고, 대법원장이 "짧은 시간에 애썼네. 수고했네"라고 말한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22쪽 분량의 이 문건에는 통진당 전 의원들의 행정소송 제기가 법원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으로 "재판취소 방지를 위한 압박카드 활용 가능" "민변 등 헌재 결정에 비판적인 세력 우군화 모색 기회" 등의 자극적인 문구들이 열거돼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각하, 기각, 인용, 일부 인용 및 일부 기각 등 행정소송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들을 모두 검토했는데, 특히 "각하→부적절" "각하의 결론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임"이라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김종복 판사의 후임으로 사법정책실에 근무했던 문성호 판사는 통진당 관련 업무가 부과될 때마다 이 문건과 같은 TF 자료를 꺼내 읽어봤다며, "내용이 지나친 것들이 있어서 간담이 서늘한 느낌을 받긴 했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행정처 내부자가 보기에도 일부 내용이 좀 충격적이었다는 건데요.

검찰은 이같은 보고서의 내용을 문제삼아 TF 활동이 '재판 개입'을 전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지만, 증인은 억울함을 표출했습니다.

- 임종헌 측 변호인: 통진당 TF가 재판 개입 목적의 TF는 아니었죠?
- 증인: 절대 아닙니다. (검찰 조사에서) 계속 그 질문 받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변호인: 내부 논의 과정에서 그 연구결과물이 일선 재판부에 전달될 용도임을 전제로 한 논의를 하거나 그런 인식 공유한 적도 없죠?
- 증인: 그런 적 없습니다. 그리고 모임 자체를 아주 짧게 하거나,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일을 해서 파일을 김종복 판사한테 보내면 김종복 판사가 편집했죠. 얘기를 많이 할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기도 어려웠습니다.
[…]
- 변호인: 깊은 토의나 논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통진당 소송에서) 어떠한 결론이 향후 법원의 위상이나 헌재와의 관계에서 법원에 유리할 것이냐 이런 논의를 했던 건 아니죠?
- 증인: 그런 적 없고요. 정말 그런 목적이라면 어느 게 (법원에) 제일 좋은지 저기 썼을 거 아닙니까? 근데 일절 없습니다. 재판이 인용, 기각, 각하, 일부 인용, 일부 기각 다 될 수 있는데 그 이해관계가 각각 다릅니다. 그걸 어떻게 제가 다 알 수 있습니까?

증인은 또 "압박카드 활용" "비판세력 우군화 모색 기회" 등의 표현은 김종복 판사 개인의 아이디어였다며, TF 차원에서 논의한 내용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도 표현이 과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법정책실에서는 특히 일부러 사고를 자유롭게 하고, 황당한 생각을 해본다"라며 "(거기에) 지청구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 후배 판사 이야기를 들여주려 했고, 심해도 '오바했네?' 이러고 웃고 그런 식으로 일을 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김종복 전 판사도 지난해 10월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낸 아이디어 중엔 조금 지나친 것들도 있었다며, "정보를 드린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증인은 검찰이 "각하→부적절"이라는 문구를 문제 삼는 것도 "굉장히 답답하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하 판결은 법리적으로 틀렸고 이론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부적절하다고 기재한 것뿐이라는 겁니다. "행정법을 알고 행정재판을 해 본 사람은 알 수 있는 얘기"라고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소각하 판결을 내리자 증인은 "'각하는 도저히 안되는 거였는데 왜 각하가 됐지?'하고 판결이 났을 때 판결문을 열어봤다"라며 "논리는 잘 썼는데, 저는 그 논리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각하는 이론적으로 틀렸다고 확신한다"라고도 했습니다. 나중엔 더 구체적인 설명도 제시했습니다.

- 증인: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현재의 법 상태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 그건 본안에 들어가서 기각하든 인용하든 합니다. 일반적으로. 근데 행정소송의 특수성이 있으니까 당사자 적격이 잘못되었다라든지, 공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것인데 반드시 처분을 전제로 하는 거라든지 그런 특별한 요건이 있을 때 각하하게 될 텐데, 이 경우엔 특별한 요건이 없었던 말이에요. 그리고 행정소송의 당사자 소송이라는 거는 행정처분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현재의 법 상태를 질문하면 법원은 답을 하는 거예요, 인용이든 기각이든. 그런 의미에서 각하는 이론적으로 틀렸단 거예요.

반면 TF 간사였던 김종복 전 판사는 지난해 10월 법정에서 "각하→부적절"이라는 문구에 대해, "법원 입장에서는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것" "각하는 법원이 수세에 놓일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고 증인과는 조금 다른 설명을 했습니다.

#3. 증인의 도리질

그 의도가 무엇이었건 통진당 TF 보고서들은 약 1cm 두께의 두툼한 스프링 책으로 엮여 2015년 2월 양승태 대법원장에게까지 전달·보고됐습니다. 나중에는 통진당 사건을 심리하는 일선 법원이나 재판부에 일부 내용이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아직도 좀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 검사: 검찰 조사에서 증인은 "일선 법원에는 절대 전달 되어서는 안되는 문건이다. 각하는 부적절하다는 등 재판에 영향 미칠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했는데. 증인은 이와 같은 문건들이 일선 재판부에 전달되면 재판의 독립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했던 겁니까?
- 증인: 아니, 저 문건 자체는 누가 봐도 김종복 판사의 좀 과한.. 좀 지나친 것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전달될 수 없는 문건이고요. 그래서 저 얘기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문건이 어떻게 재판부에 전달되었는지 저는 지금도 모르고 검찰에서는 저게 전달됐다고 했는데 저 문건들이 전달됐는지도 지금 솔직히,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증인의 열변에도 검사는 별 동요없이 신문을 이어갔습니다.

- 검사: 전달은 됐습니다.
- 증인: 저 문건이 그대로 전달되었습니까?
- 검사: 변형해서.
- 증인: 저는 저 문건을 그대로 전달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문건 전달됐는지 이거 자체를 수사 과정에서 들었거든요.

그러자 검사는 '문건 전달'과 관련된 증인의 더 직접적인 기억에 대해 물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이규진 양형실장이 저한테 전화 와서 조심스럽게, 통진당 TF를 했던데 그 문건을 조한창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에게 줘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절대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든 문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도 반대 의견을 분명히 말했고 그래서 전달하지 않은 줄 알았고, 그 후로도 문건 관련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 나눈 적 없었습니다"라고 진술했는데. 기억대로 진술하셨습니까?
- 증인: 기억대로 진술했습니다.
- 검사: 그런데 이규진은 통진당 TF 문건을 조한창에게 전달해도 되느냐고 증인에게 물었고 증인이 특별히 반대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어떻습니까?
- 증인: 저는, 아우. [고개 절레절레 흔들며] 그거는 행정처 내부 문건이라고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내부 문건이라고. 문구를 봐도 그렇습니다. 저거를 그대로 나간다는 게... 아우..

답답함이 담긴 증인의 도리질은 계속됐습니다. 'TF'라는 명칭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괜한 오해를 샀다는 것이었습니다.

- 변호인: 행정처에서는 과거에도 다양한 TF가 구성돼 왔죠?
- 증인: 그러니까[웃음]. 그 TF라는 거 때문에... "TF를 정의·정리하기 위한 TF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우스갯소리 있을 정도로, 두 명 이상이 협업하면 TF였습니다. 정식 명칭이 없었고 수사 과정에서 뭔가 이름을 불러야하니 통진당 TF라고 부른 거지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니고. 혼자하기 힘들면 거들어주는 게 있습니다. 심의관들 사이에. 여러 명이 하잖아요. 그럼 그걸 다 TF라고 한 거였습니다.

이에 대해 검사는 "행정처 내부에서 오간 이메일이나 관련 문건에 보면 다 통진당 행정소송 TF라고 기재돼 있지 않느냐"라며 검찰이 따로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2014년 12월 22일 작성된 TF의 첫 보고서의 제목은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 TFT 구성"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소개한 내용은 주로 증인과 검사의 논박이었지만, 사실 증인과 임종헌 전 차장 사이에도 매우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 대목이 있었는데요. 이어지는 기사에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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