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㊱ 동료 판사에 ‘정신질환’ 낙인?…“걱정돼 할 일 한 것” 반박

입력 2021.07.26 (13:22) 수정 2021.07.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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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진 겁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따라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합니다.

서른 여섯 번째 순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에 2019년 12월 13일과 2020년 4월 29일, 6월 3일까지 모두 3번에 걸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연학 전 판사(사법연수원 27기·現 변호사)의 증언을 지난 기사에 이어 계속 살펴봅니다.

(▶지난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㉟ ‘물의야기 법관’ 의혹에…“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평가” 반박)


#1. 트라우마가 불러온 걱정

사법농단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11월, 양승태 사법부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를 정신질환자로 몰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 피해자는 김동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로 특정됐습니다. 보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인 '김동진 부장 관련 특이사항 보고' 등에 따르면,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인사실)은 2015년 4월 김동진 부장판사의 정신건강 상태에 관해 유명 국립대 정신건강 전문의에게 자문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인사실은 김 부장판사가 과거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조울증 치료에 쓰이는 리튬을 복용한다고 전문의에게 알렸다. 이에 전문의는 김 부장판사에 대해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진단했고, 법원행정처는 이를 김 부장판사의 평정권자인 소속 법원 법원장에게도 알렸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김 부장판사는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거나 리튬을 복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행정처가 의사에게 허위 사실을 제시하고 진단을 받아낸 것으로,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김 부장판사를 법원에서 내보내기 위해 정신질환을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 법원조직법상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법관 연임을 제한하고 있음.)

2018년 11월 24일 한국일보 1면 보도2018년 11월 24일 한국일보 1면 보도

이후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공소장에는 위 보도와 거의 유사한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동진 부장판사 특이사항 관련 문건을 작성하고, 정신과 전문의에게 김 부장판사에 대한 정신감정을 요청한 사람, 당시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이던 김연학 부장판사(이하 '증인')로 확인됐습니다.

증인은 이같은 업무를 하게 된 이유로 2015년 4월 김동진 부장판사가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이메일을 200명이 넘는 소속 법원 법관 전체에게 보낸 점, 얼마 뒤 재판이 있는 날엔 무단결근하고 연락을 받지 않은 점을 들었습니다.

이에 상급자인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김 부장판사 관련 특이사항을 보고하고, 자신의 학교 선배인 서울대 의대 정신과 전문의에게 "정신질환 가능성에 관해 확인"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또 김 부장판사가 너무 걱정돼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고자 전문의 자문을 구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증인과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던 한 부장판사가 김동진 부장판사처럼 동료들에게 집단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증인이 인사심의관으로 근무할 때 그 판사가 유명을 달리했다면서 "그 일을 겪은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트라우마였다"고 개인적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전문의와의 통화 내용에 대해선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 증인: […] 최근 동료 판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로 징계를 받은 사실, 메일의 후반부 내용의 일부를 알려준 다음에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물어보니 (전문의가) "혹시 그 정도면 전에 치료를 받거나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거 혹시 없느냐"라고 해서. 제가 "그러면 그 부분에 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얘기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 근무평정에 "불안장애"라는 기재가 돼 있어서 "종전에 불안장애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김동진 부장판사의 근무평정에 불안장애라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전문의에게 참고차 전달한 것이지, 검찰 주장처럼 허위 사실을 조작해낸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증인은 또 전문의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김 부장판사가 조울증 약인 리튬을 복용한다"고 언급한 적은 결코 없다고 적극 반박했습니다.

- 증인: 공소사실에 제가 '리튬'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당시(언론 보도 당시)에도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오늘 증인신문을 앞두고도 한 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과연 일반인이 '리튬'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 만약 평정이든 어딘가에 기재돼 있다면 (리튬이 아니라) "조울증 약을 먹고 있다, 그 제품명인 어떤 약을 먹고 있다"라고 기재돼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가 배가 아파서 소화제를 먹었다"라고 이야기하지, 제품명을 말씀드려서 그렇습니다만 "훼스탈을 먹었다고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지... 엊그제 네이버에 찾아보니 '훼스탈'의 성분명은 '시메티콘'이라는 약입니다. "시메티콘이라는 약을 먹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상정 가능하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처가 법관 연임심사에 김 부장판사의 정신질환 정보를 활용해 그를 퇴출하려 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도, 증인은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증인: […] 법원행정처의 법관인사위원회는 물론이고,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법관의 정신적인 문제에 관한 상담 내지는 평가와 관련해서 그해 매년 관여하시는 정신과 교수 분들이 계십니다. 만약에 연임에 소위 '활용'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그런 권한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이와 같은 사정을 알리고 과장해서 얘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 이날을 위한 준비

동료를 정신질환자로 몬 적이 결코 없다는 증인. 증언을 계기로 한 '해명'은 내내 길어졌습니다. 증인신문 후반부에는 별도의 발언 기회를 청하기도 했습니다.

- 증인: 김 모 부장판사에 관해서 한 가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장은 영문을 궁금해했습니다.

- 재판장: 김 모 부장판사에 관해서 증인이 진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 증인: 그런 검토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업무의 근거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런 것을 작성을 했느냐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한 것이 적법한 업무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재판장은 저지하지 않았고, 증인신문 중이던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이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측 변호인: 제가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증인이 법관의 행동과 관련해서 외부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 것에 대해서 어떤 근거나 해외자료가 있는가요?

그러자 증인은 자신이 갖고 나온 서류 중 일부를 변호인 측 실물화상기에 띄워달라고 하더니, 준비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 증인: 간단하게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지방법원장 업무편람입니다. 여기에 보면 "mental infirmity(정신적인 허약함)", 여기에 무슨 질병이나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판사의 경우 그런 정신적인 허약함이 있는 것으로 발견이 되었을 때 사법행정권자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the chief circuit judge", 우리로 말하자면 그 자체는 항소법원장, 여기로 말하자면 대법원장에 해당합니다. 대법원장에게 얘기를 하고, 마지막 줄에 보면 "Seeking the advice of a doctor or other professional may also be useful". 의사의 조언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이런 것들을 쭉 검토를 해 온 결과에 따라서 (김 부장판사 관련 일을) 업무의 일환으로 당연스레 하게 된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연학 부장판사가 증언 중 변호인 측 실물화상기를 통해 띄워달라고 요청한 Deskbook for Chief Judges of U.S. District Courts의 일부분. 책은 구글 북스(Google Books)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김연학 부장판사가 증언 중 변호인 측 실물화상기를 통해 띄워달라고 요청한 Deskbook for Chief Judges of U.S. District Courts의 일부분. 책은 구글 북스(Google Books)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증인은 이밖에도 미국의 연방법관행위규범(모범법관행위규범), 미국 메인주의 성문법령을 출력해 와 실물화상기에 띄워달라고 하며 증언을 이어나갔고, 영국의 법관 관련 제도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원 판사의 최근 징계회부 사례 등을 들어 본인의 증언을 뒷받침했습니다.

해외 사례까지 조목조목 제시하며 검찰이 문제 삼는 법원행정처나 본인의 행동은 적법했다고 반박하는 모습, 보통의 증인에게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증인의 이색적인 면모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증언 과정에서 본인의 신념, 일종의 '법관론'도 언급했습니다.

- 증인: […] 법관으로 임명되는 순간 표현의 자유는 제한을 받는 것이고, 법관으로서의 공적인 말이나 행동은 법관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고, 그 범위 내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증인: […] 법관은 공적으로 의견을, 대중에게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단순히 법관 개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사법부를 대표하는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언제든지 염두에 두어야 된다. […]

- 증인: […] 법관이 조심해야 할 것이 법관 스스로 다수결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관이 행하는 재판직무라는 것은 다수결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다수의 생각과는 달리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밝히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증인은 또 검사가 사용한 '법관 예속화'라는 단어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 "도대체 어디에 예속되며 무엇에 관해서 예속된다는 것인지 도저히 질문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법원장이 소속 법관 근무평정을 함에 있어 공정함을 담보하는 장치가 있냐"는 검사의 질문에 "법원장이 본인의 전인격적인 판단으로 법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판사로서 증인이 가진 자존심과 조직에 대한 믿음이 잘 드러났던 대목입니다.


#3. 실물화상기의 수난

증인이 과거 법관 인사를 총괄하던 실무자였기 때문에,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포함한 법관 인사자료가 자주 증거로 제시됐습니다. 이때 증거들은 재판부는 물론 방청객까지 모두 볼 수 있게 실물화상기를 통해 법정 스크린에 띄워지는 게 보통인데요.

법관 인사자료는 대외비 문건인 데다 일부 민감한 정보도 들어있다보니, 증거 제시 방식을 두고 재판 과정에서 꽤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측 변호인: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아까 재판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사에 관한 내용은 증인만 보고 신문을 해도 무방하면 굳이 화상기에 안 띄워도 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검사: 이의가 있어서 내리기는 하는데요. […] 재판 공개의 차원에서도 이것이 인사상 기밀, 즉 평정순위라든지 개인정보라든지 이런 개인의 어떤 명예나 그런 것 관련 문제가 아닌 이상 재판의 공개원칙상 공개되지 않으면 이것이 어떻게 보면 깜깜이 재판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

그러자 다른 변호인이 가세했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측 변호인: […] 물론 (검찰이) 개인정보 등을 가리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신문사항 내용에 따라서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경력도 내용에 들어가 있고 본인의 특징, 성향도 들어가 있습니다. 혹시나 이런 부분들이 나중에 제3자가 자기가 재판받고 있는 사람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이런 내용들이 사법신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관계자들이 다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렇게까지 실물화상기에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송 관계인이 아닌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까지 문건 내용을 봐야하냐는 반문. 재판장도 변호인 손을 들어줬습니다.

- 재판장: […] 검찰 측에서는 예로 든 것이 해당 법관의 평정순위나 프라이버시에 관련되는 개인정보가 아니라면 다 드러내서 질문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법관의 사생활 비밀이나 명예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는 물론 필요하고, 지금 검사가 말씀하셨던 그러한 사유가 아니더라도 그밖의 다른 것 때문에 그것이 공개됨으로 인해서 불필요한 논란이나 오해의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굳이 그것을 드러내서 신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고등법원 중법정 내부 모습. 사진 가운데 흰색 기계가 증거 제시 때 사용되는 실물화상기이다.서울고등법원 중법정 내부 모습. 사진 가운데 흰색 기계가 증거 제시 때 사용되는 실물화상기이다.

그러자 검사는 일단 지휘에 따르겠다면서도 증거 제시 때마다 건건이 재판장이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 공개라는 것은 재판절차의 투명성과 심리 과정의 공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변호인이 또 반박에 나섰습니다.

- 양승태 측 변호인: 실물화상기 이용해서 재판한 것이 몇 년 됐다고. 그러면 그 전에는 다 비공개로 재판한 건가요? […] 무슨 예규가 있나요? 실물화상기를 꼭 이용해야 될 재판부의 의무가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검사도 못참겠다는 듯 다시 나섰습니다.

- 검사: 변호인 말씀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는데, 변호인은 지난 번 김세윤 증인신문시에도 김동진 판사에 대한 문건을 실물화상기를 통해 제시하며 신문하였습니다. 일관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고, 그러면 왜 실물화상기를 예산을 들여서 도입을 합니까? 재판공개원칙이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소송행위에 대한 공개 문제가 변호인 말씀대로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검사의 문제제기에 재판장은 "공개재판을 안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 "이런 것(문건 내용)이 어떤 경위로든 예측할 수 없다. 누구에게라도 혹시 알려진다거나 누출이라고 표현을 해야 될까.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논란이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예상되지 않겠나"라면서 다시금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세부 절차에 대한 치열한 공방은 사법농단 사건 재판이 길어지고 있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인데요.

이 수고로운 과정이 다른 일반 형사재판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으면 하는 게 이 기나긴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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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㊱ 동료 판사에 ‘정신질환’ 낙인?…“걱정돼 할 일 한 것” 반박
    • 입력 2021-07-26 13:22:01
    • 수정2021-07-26 13:37:15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진 겁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따라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합니다.

서른 여섯 번째 순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에 2019년 12월 13일과 2020년 4월 29일, 6월 3일까지 모두 3번에 걸쳐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연학 전 판사(사법연수원 27기·現 변호사)의 증언을 지난 기사에 이어 계속 살펴봅니다.

(▶지난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㉟ ‘물의야기 법관’ 의혹에…“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평가” 반박)


#1. 트라우마가 불러온 걱정

사법농단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11월, 양승태 사법부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를 정신질환자로 몰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 피해자는 김동진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로 특정됐습니다. 보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인 '김동진 부장 관련 특이사항 보고' 등에 따르면,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인사실)은 2015년 4월 김동진 부장판사의 정신건강 상태에 관해 유명 국립대 정신건강 전문의에게 자문을 의뢰했다.

이 과정에서 인사실은 김 부장판사가 과거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조울증 치료에 쓰이는 리튬을 복용한다고 전문의에게 알렸다. 이에 전문의는 김 부장판사에 대해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진단했고, 법원행정처는 이를 김 부장판사의 평정권자인 소속 법원 법원장에게도 알렸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김 부장판사는 불안장애로 치료를 받거나 리튬을 복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행정처가 의사에게 허위 사실을 제시하고 진단을 받아낸 것으로,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김 부장판사를 법원에서 내보내기 위해 정신질환을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 법원조직법상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법관 연임을 제한하고 있음.)

2018년 11월 24일 한국일보 1면 보도
이후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공소장에는 위 보도와 거의 유사한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동진 부장판사 특이사항 관련 문건을 작성하고, 정신과 전문의에게 김 부장판사에 대한 정신감정을 요청한 사람, 당시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이던 김연학 부장판사(이하 '증인')로 확인됐습니다.

증인은 이같은 업무를 하게 된 이유로 2015년 4월 김동진 부장판사가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이메일을 200명이 넘는 소속 법원 법관 전체에게 보낸 점, 얼마 뒤 재판이 있는 날엔 무단결근하고 연락을 받지 않은 점을 들었습니다.

이에 상급자인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김 부장판사 관련 특이사항을 보고하고, 자신의 학교 선배인 서울대 의대 정신과 전문의에게 "정신질환 가능성에 관해 확인"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또 김 부장판사가 너무 걱정돼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고자 전문의 자문을 구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증인과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던 한 부장판사가 김동진 부장판사처럼 동료들에게 집단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증인이 인사심의관으로 근무할 때 그 판사가 유명을 달리했다면서 "그 일을 겪은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트라우마였다"고 개인적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전문의와의 통화 내용에 대해선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 증인: […] 최근 동료 판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로 징계를 받은 사실, 메일의 후반부 내용의 일부를 알려준 다음에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물어보니 (전문의가) "혹시 그 정도면 전에 치료를 받거나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런 거 혹시 없느냐"라고 해서. 제가 "그러면 그 부분에 관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얘기하겠다"고 전화를 끊고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 근무평정에 "불안장애"라는 기재가 돼 있어서 "종전에 불안장애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김동진 부장판사의 근무평정에 불안장애라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전문의에게 참고차 전달한 것이지, 검찰 주장처럼 허위 사실을 조작해낸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증인은 또 전문의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김 부장판사가 조울증 약인 리튬을 복용한다"고 언급한 적은 결코 없다고 적극 반박했습니다.

- 증인: 공소사실에 제가 '리튬'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당시(언론 보도 당시)에도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오늘 증인신문을 앞두고도 한 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과연 일반인이 '리튬'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 만약 평정이든 어딘가에 기재돼 있다면 (리튬이 아니라) "조울증 약을 먹고 있다, 그 제품명인 어떤 약을 먹고 있다"라고 기재돼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누가 배가 아파서 소화제를 먹었다"라고 이야기하지, 제품명을 말씀드려서 그렇습니다만 "훼스탈을 먹었다고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지... 엊그제 네이버에 찾아보니 '훼스탈'의 성분명은 '시메티콘'이라는 약입니다. "시메티콘이라는 약을 먹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상정 가능하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처가 법관 연임심사에 김 부장판사의 정신질환 정보를 활용해 그를 퇴출하려 했다는 검찰 측 주장에 대해서도, 증인은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증인: […] 법원행정처의 법관인사위원회는 물론이고,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법관의 정신적인 문제에 관한 상담 내지는 평가와 관련해서 그해 매년 관여하시는 정신과 교수 분들이 계십니다. 만약에 연임에 소위 '활용'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그런 권한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이와 같은 사정을 알리고 과장해서 얘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 이날을 위한 준비

동료를 정신질환자로 몬 적이 결코 없다는 증인. 증언을 계기로 한 '해명'은 내내 길어졌습니다. 증인신문 후반부에는 별도의 발언 기회를 청하기도 했습니다.

- 증인: 김 모 부장판사에 관해서 한 가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장은 영문을 궁금해했습니다.

- 재판장: 김 모 부장판사에 관해서 증인이 진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 증인: 그런 검토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업무의 근거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런 것을 작성을 했느냐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한 것이 적법한 업무의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재판장은 저지하지 않았고, 증인신문 중이던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이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측 변호인: 제가 이렇게 물어보겠습니다. 증인이 법관의 행동과 관련해서 외부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 것에 대해서 어떤 근거나 해외자료가 있는가요?

그러자 증인은 자신이 갖고 나온 서류 중 일부를 변호인 측 실물화상기에 띄워달라고 하더니, 준비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 증인: 간단하게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지방법원장 업무편람입니다. 여기에 보면 "mental infirmity(정신적인 허약함)", 여기에 무슨 질병이나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판사의 경우 그런 정신적인 허약함이 있는 것으로 발견이 되었을 때 사법행정권자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the chief circuit judge", 우리로 말하자면 그 자체는 항소법원장, 여기로 말하자면 대법원장에 해당합니다. 대법원장에게 얘기를 하고, 마지막 줄에 보면 "Seeking the advice of a doctor or other professional may also be useful". 의사의 조언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이런 것들을 쭉 검토를 해 온 결과에 따라서 (김 부장판사 관련 일을) 업무의 일환으로 당연스레 하게 된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연학 부장판사가 증언 중 변호인 측 실물화상기를 통해 띄워달라고 요청한 Deskbook for Chief Judges of U.S. District Courts의 일부분. 책은 구글 북스(Google Books)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증인은 이밖에도 미국의 연방법관행위규범(모범법관행위규범), 미국 메인주의 성문법령을 출력해 와 실물화상기에 띄워달라고 하며 증언을 이어나갔고, 영국의 법관 관련 제도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법원 판사의 최근 징계회부 사례 등을 들어 본인의 증언을 뒷받침했습니다.

해외 사례까지 조목조목 제시하며 검찰이 문제 삼는 법원행정처나 본인의 행동은 적법했다고 반박하는 모습, 보통의 증인에게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증인의 이색적인 면모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증언 과정에서 본인의 신념, 일종의 '법관론'도 언급했습니다.

- 증인: […] 법관으로 임명되는 순간 표현의 자유는 제한을 받는 것이고, 법관으로서의 공적인 말이나 행동은 법관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고, 그 범위 내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증인: […] 법관은 공적으로 의견을, 대중에게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 단순히 법관 개인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고 사법부를 대표하는 의견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언제든지 염두에 두어야 된다. […]

- 증인: […] 법관이 조심해야 할 것이 법관 스스로 다수결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법관이 행하는 재판직무라는 것은 다수결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다수의 생각과는 달리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밝히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증인은 또 검사가 사용한 '법관 예속화'라는 단어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 "도대체 어디에 예속되며 무엇에 관해서 예속된다는 것인지 도저히 질문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가 하면, "법원장이 소속 법관 근무평정을 함에 있어 공정함을 담보하는 장치가 있냐"는 검사의 질문에 "법원장이 본인의 전인격적인 판단으로 법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판사로서 증인이 가진 자존심과 조직에 대한 믿음이 잘 드러났던 대목입니다.


#3. 실물화상기의 수난

증인이 과거 법관 인사를 총괄하던 실무자였기 때문에,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포함한 법관 인사자료가 자주 증거로 제시됐습니다. 이때 증거들은 재판부는 물론 방청객까지 모두 볼 수 있게 실물화상기를 통해 법정 스크린에 띄워지는 게 보통인데요.

법관 인사자료는 대외비 문건인 데다 일부 민감한 정보도 들어있다보니, 증거 제시 방식을 두고 재판 과정에서 꽤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측 변호인: 의견이 하나 있습니다. 아까 재판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인사에 관한 내용은 증인만 보고 신문을 해도 무방하면 굳이 화상기에 안 띄워도 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검사: 이의가 있어서 내리기는 하는데요. […] 재판 공개의 차원에서도 이것이 인사상 기밀, 즉 평정순위라든지 개인정보라든지 이런 개인의 어떤 명예나 그런 것 관련 문제가 아닌 이상 재판의 공개원칙상 공개되지 않으면 이것이 어떻게 보면 깜깜이 재판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

그러자 다른 변호인이 가세했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측 변호인: […] 물론 (검찰이) 개인정보 등을 가리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신문사항 내용에 따라서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경력도 내용에 들어가 있고 본인의 특징, 성향도 들어가 있습니다. 혹시나 이런 부분들이 나중에 제3자가 자기가 재판받고 있는 사람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이런 내용들이 사법신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재판관계자들이 다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제시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렇게까지 실물화상기에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송 관계인이 아닌 방청석에 있는 사람들까지 문건 내용을 봐야하냐는 반문. 재판장도 변호인 손을 들어줬습니다.

- 재판장: […] 검찰 측에서는 예로 든 것이 해당 법관의 평정순위나 프라이버시에 관련되는 개인정보가 아니라면 다 드러내서 질문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법관의 사생활 비밀이나 명예를 보호하는 차원에서는 물론 필요하고, 지금 검사가 말씀하셨던 그러한 사유가 아니더라도 그밖의 다른 것 때문에 그것이 공개됨으로 인해서 불필요한 논란이나 오해의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굳이 그것을 드러내서 신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울고등법원 중법정 내부 모습. 사진 가운데 흰색 기계가 증거 제시 때 사용되는 실물화상기이다.
그러자 검사는 일단 지휘에 따르겠다면서도 증거 제시 때마다 건건이 재판장이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 공개라는 것은 재판절차의 투명성과 심리 과정의 공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변호인이 또 반박에 나섰습니다.

- 양승태 측 변호인: 실물화상기 이용해서 재판한 것이 몇 년 됐다고. 그러면 그 전에는 다 비공개로 재판한 건가요? […] 무슨 예규가 있나요? 실물화상기를 꼭 이용해야 될 재판부의 의무가 있는지 저는 의문입니다.

검사도 못참겠다는 듯 다시 나섰습니다.

- 검사: 변호인 말씀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는데, 변호인은 지난 번 김세윤 증인신문시에도 김동진 판사에 대한 문건을 실물화상기를 통해 제시하며 신문하였습니다. 일관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고, 그러면 왜 실물화상기를 예산을 들여서 도입을 합니까? 재판공개원칙이나 이런 것들이 중요하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소송행위에 대한 공개 문제가 변호인 말씀대로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검사의 문제제기에 재판장은 "공개재판을 안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 "이런 것(문건 내용)이 어떤 경위로든 예측할 수 없다. 누구에게라도 혹시 알려진다거나 누출이라고 표현을 해야 될까.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논란이나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예상되지 않겠나"라면서 다시금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세부 절차에 대한 치열한 공방은 사법농단 사건 재판이 길어지고 있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인데요.

이 수고로운 과정이 다른 일반 형사재판의 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으면 하는 게 이 기나긴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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