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⑱ 판사를 감찰한 판사…‘비위’ 법관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9.12.16 (11:04) 수정 2019.12.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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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여덟 번째 순서로, 12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세윤 수원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 ·前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장을 맡은 경력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판사이기도 합니다.

김 부장판사는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을 지냈습니다. 윤리감사관실은 법원의 '감찰반'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법관에 대한 진정이나 비위 사항을 조사하면서 해당 법관을 불러 조사하고 진술조서를 작성하거나 경위서를 받기도 하고,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을 듣고, 때로는 검찰에 관련 수사기록을 달라고 요청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찰 업무를 수행합니다. 법관 징계나 소청 절차도 담당합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판사 집단은 규범이나 도덕률을 잘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죠.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윤리감사관으로 일하면서 상당히 많은 업무를 처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했던 그는, 1년 8개월 뒤 같은 법정의 증인석에 앉아 7시간 넘게 차분한 목소리로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1. 대법원장의 생각

증인은 윤리감사관으로 일하는 2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 이틀꼴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을 독대해 윤감실 업무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결재를 받았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대법원장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이하 '양 변'): 혹시 증인께서 기억에 남아있는 한도 내에서, 물의야기 법관 현황에 올라 있던 여러 가지 법관에 대해 증인이 보고를 드렸던 경우에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피고인 양승태가 증인에게 보인 반응을 기억하시는 게 있나요?
- 증인: 반응... 대법원장님은 법관 비위로 인해서 사법부의 신뢰가 훼손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시고, 법관 비위가 발생하면 거기에 대해 엄중히 처분을 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을 하셨습니다.
- 양 변: 일관된 방침이셨습니까?
- 증인: 네. 일관되셨습니다.

- 양 변: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까지 거치면서 취합된 어느 정도 정리된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대법원장이 증인에게 말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 증인: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통상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엄중히 처리를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에는 굵직한 '법관 비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원지법에 근무하던 최민호 판사가 한 사채업자에게 사건 무마 청탁을 받고 2억 6천여만 원의 뇌물을 받아 2015년 1월 검찰에 구속된 것입니다. 이듬해 6월 법원은 최 판사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최 판사가 구속된 지 20일도 지나지 않아, 법관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인 정직 1년 처분을 내렸습니다.


최민호 판사 사태 이후, 대법원은 2015년 4월 30일 법관 비위 등에 대한 감사의 투명성,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며 판사 1명과 외부위원 6명으로 구성된 법원 감사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에 또 다른 판사가 대학 후배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증인은 이 사건을 보고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들은 말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2015년 9월 증인이 작성한 ‘유○○ 판사 기소 보고’ 문건 중 일부.2015년 9월 증인이 작성한 ‘유○○ 판사 기소 보고’ 문건 중 일부.

유 모 판사는 곧 사직서를 냈고, 대법원은 유 판사가 기소된 지 일주일 만에 사직서를 수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지만, 재판의 신뢰 보호라는 측면에서 사직서 수리가 부득이하다'는 법원 감사위원회의 권고를 고려했다고 당시 대법원은 설명했습니다.

#2. 정책적 판단

그런데 법관 비위사항에 대한 이처럼 엄중하고 단호한 분위기 속에서, 증인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추행 판사 사건으로 법원 안팎이 시끄럽던 2015년 9월 7일. 증인은 자신의 직속상관이던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한 판사의 비위 의혹을 접했습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경찰 간부 승진을 청탁하면서 뒷돈을 준 혐의를 받는 지역 건설업자 A 씨로부터, 부산고등법원의 문 모 부장판사가 골프라운딩 16차례와 식사, 술 등의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 씨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날, 문 모 부장판사가 A 씨와 A 씨의 변호인을 해운대의 한 유흥주점에서 만났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임 전 차장은 증인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검찰 고위 간부로부터 받았다"면서 문 부장판사의 비위 내용이 적힌 A4용지 두 쪽 분량의 검찰 조사 결과 문건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차장이 처장에게 드려야 한다며 문건을 증인에게 주지 않아, 증인은 기억을 바탕으로 '문○○ 부장 향응 수수 의혹 첩보'라는 기록용 문건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 검사: 당시 증인은 문○○ 부장판사 첩보를 읽어보고, 검찰에서 임종헌 차장에게 전달한 문건에 증거관계까지 기재된 이상 비위 사실이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닐 거라 생각했죠?
- 증인: 네. 특히 차장님이 보여주신 거라 전 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차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셨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 검사: 사안이 가볍다 보진 않았고, 신빙성 있다고 본 것이죠?
- 증인: 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 검사: 문○○ 사건은 첩보 내용 등에 비춰볼 때 정식 조사에 착수하는 게 원칙적 모습이라 생각했던 건 맞죠?
- 증인: 네. 내용에 비춰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윤리감사관실은 문 부장판사를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인이 증언한 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차장 이상의 지시가 있어야만 윤리감사관이 조사에 착수할 수 있고, 자체 판단으로 조사를 개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상급자인 임종헌 차장이 대응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지시 없이, 경과를 지켜보자고만 했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또 윗선의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고도 말했습니다.

- 검사: 임종헌 차장이 증인에게 최민호 판사 뇌물 사건으로 법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문○○ 사건도 언론에 보도되면 더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니, 추가 조사 없이 엄중하게 경고하는 쪽으로 종결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죠?
- 증인: 워딩이 정확히 똑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 그런 취지로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증인은 문 부장을 정식 조사하게 되면 법원 감사위원회의 "필요적 심의대상"이 되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임종헌 차장과 논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차장이 "현재 법원과 검찰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며, 검찰이 문 부장 사건을 언론에 "흘릴 위험"은 없어 보인다는 취지로 말했다고도 했습니다.

박병대 당시 처장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 전 차장이 입수한 검찰 첩보 문건의 맨 아래에는 "to 부산고법원장 고지 and 재판 과정에 추가상담 등 없도록 warning 요구 2015.9.9"라는 처장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결국 감사위원회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감사를 통해 '사법 신뢰를 높이겠다'고 보도자료까지 냈던 대법원이, 넉 달 뒤에는 투명하고 공정한 감사로 오히려 '사법 신뢰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말을 뒤집은 셈이 됐습니다. 증인도 당시 "(이런 결정이) 외부에 알려지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검찰에서 진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처장, 차장이 문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 감사 조사와 감사위원회 회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고 진상을 은폐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증인의 생각은 다소 달라 보였습니다.

- 검사: 법관 비위 행위에 대한 감사 사건의 처리, 감사 조사의 착수에 있어서, 사건 외적인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 허용된다는 근거 규정이 있습니까?
- 증인: 근거 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법행정 자체의 성질에 비추어서, 그런 여러 가지 사정이나 요인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에서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의문은 남습니다. 윗선의 승인·지시 없이는 윤리감사실이 판사의 비위 의혹을 전혀 조사할 수 없을 만큼 사법행정권이 비대하다면, 법원의 감찰 기능과 자정 능력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왜소해지는 것이 아닐지 말입니다.

#3. 의뢰인

증인은 윤리감사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비밀스러운 걱정이 담긴 지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먼저 2015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실장은 증인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소모임인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에 대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인사모의 개설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사항이 있는지 검토해 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상고법원 추진 등 당시 대법원의 사법제도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던 인사모를 향한 껄끄러운 시선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증인의 회신은 이규진 실장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증인은 이 실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말씀해 주셔서 여러 각도에서 법관윤리 위반사항 유무를 검토하였습니다만, 애당초 '사법제도 개선'을 연구한다는 소모임을, 아직 활동을 개시하기도 전 단계에서 법관윤리 위반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무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별 내용이 없는 보고서가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2015년 7월 증인이 작성한 ‘커뮤니티 소모임 개설에 관한 검토’ 문건의 일부.2015년 7월 증인이 작성한 ‘커뮤니티 소모임 개설에 관한 검토’ 문건의 일부.

같은 해 9월에는 상고법원안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포함된 차성안 판사의 언론 기고글(▶ [시사인] 현직 판사의 일주일을 공개합니다)에 대해,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이 아닌지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임종헌 차장이나 박병대 처장 중 한 사람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언론사 기고와 관련해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검토하는 것은 윤리감사관실 업무 중 하나였고, 다른 판사들의 글에 대한 지시도 많이 있었다고 증인은 증언했습니다. 다만 증인은 차 판사를 향한 지시에 통상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 당시 "이 보고서를 통해 글을 기고한 것이 겸직 허가의 대상이 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차성안 판사의 기고 행위가 위축되거나 자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증인: 글쎄, 그건 제 짐작을 얘기한 거고 (지시한 사람이) 실제 그런 의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검사: 또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행정처 내부의 분위기상 대법원에서 전력을 다해 추진하던 상고법원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법원 내부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 우려의 대상 중 한 명이 차성안 판사였다"고 진술한 바 있는데 맞습니까?
- 증인: 네. 그렇게 진술한 거 맞는 거 같습니다.

2018년 5월 28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차성안 판사2018년 5월 28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차성안 판사

윤리감사관실에서는 한 해 동안 징계가 청구된 판사나 서면·구두 경고를 받은 판사, 언론에 보도돼 사법 신뢰에 "해를 끼친" 판사 등을 망라해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별하고 윗선에 보고하는 일도 담당해 왔는데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한 판사, 한미FTA 통과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판사, 기자들에게 부적절한 문자를 발송한 판사, 법원 내부 게시판에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에 대한 심증 형성 과정을 자세히 표현한 글을 올린 판사 등 물의야기 사유는 다양했습니다.

증인은 윤리감사관실에서 자체적으로 물의야기 법관을 선정했고, 상급자의 의뢰를 받은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 그 명단(물의야기 법관)의 선정에, 차장이나 처장이 특정인을 포함시키라거나, 개별 사안에 대해 관여하거나, 선별 기준을 제시한 적은 없습니까?
- 증인: 제가 재직하는 동안에는 없었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사법행정에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국제인권법, 또는 인사모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별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 증인: 제가 윤리감사관실에 있을 때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증인은 또 관례에 따라 '물의야기 법관 현황' 문건을 정리해 (법관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인사총괄심의관실에 보냈고, 이 자료가 법관 인사에 활용되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며 그 명단은 "거의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내줬다"고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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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⑱ 판사를 감찰한 판사…‘비위’ 법관이란 무엇인가
    • 입력 2019-12-16 11:04:29
    • 수정2019-12-16 11:04:57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여덟 번째 순서로, 12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세윤 수원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5기 ·前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장을 맡은 경력 때문에, 시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판사이기도 합니다.

김 부장판사는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을 지냈습니다. 윤리감사관실은 법원의 '감찰반'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법관에 대한 진정이나 비위 사항을 조사하면서 해당 법관을 불러 조사하고 진술조서를 작성하거나 경위서를 받기도 하고,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을 듣고, 때로는 검찰에 관련 수사기록을 달라고 요청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찰 업무를 수행합니다. 법관 징계나 소청 절차도 담당합니다.

다른 직업군에 비해 판사 집단은 규범이나 도덕률을 잘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죠.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윤리감사관으로 일하면서 상당히 많은 업무를 처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판결을 선고했던 그는, 1년 8개월 뒤 같은 법정의 증인석에 앉아 7시간 넘게 차분한 목소리로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1. 대법원장의 생각

증인은 윤리감사관으로 일하는 2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 이틀꼴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을 독대해 윤감실 업무에 대한 보고를 올리고 결재를 받았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대법원장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이하 '양 변'): 혹시 증인께서 기억에 남아있는 한도 내에서, 물의야기 법관 현황에 올라 있던 여러 가지 법관에 대해 증인이 보고를 드렸던 경우에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피고인 양승태가 증인에게 보인 반응을 기억하시는 게 있나요?
- 증인: 반응... 대법원장님은 법관 비위로 인해서 사법부의 신뢰가 훼손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시고, 법관 비위가 발생하면 거기에 대해 엄중히 처분을 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을 하셨습니다.
- 양 변: 일관된 방침이셨습니까?
- 증인: 네. 일관되셨습니다.

- 양 변: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까지 거치면서 취합된 어느 정도 정리된 의견과는 다른 의견을 대법원장이 증인에게 말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 증인: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통상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엄중히 처리를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에는 굵직한 '법관 비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수원지법에 근무하던 최민호 판사가 한 사채업자에게 사건 무마 청탁을 받고 2억 6천여만 원의 뇌물을 받아 2015년 1월 검찰에 구속된 것입니다. 이듬해 6월 법원은 최 판사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최 판사가 구속된 지 20일도 지나지 않아, 법관에게 내려질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인 정직 1년 처분을 내렸습니다.


최민호 판사 사태 이후, 대법원은 2015년 4월 30일 법관 비위 등에 대한 감사의 투명성,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며 판사 1명과 외부위원 6명으로 구성된 법원 감사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에 또 다른 판사가 대학 후배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증인은 이 사건을 보고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들은 말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2015년 9월 증인이 작성한 ‘유○○ 판사 기소 보고’ 문건 중 일부.
유 모 판사는 곧 사직서를 냈고, 대법원은 유 판사가 기소된 지 일주일 만에 사직서를 수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칙적으로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지만, 재판의 신뢰 보호라는 측면에서 사직서 수리가 부득이하다'는 법원 감사위원회의 권고를 고려했다고 당시 대법원은 설명했습니다.

#2. 정책적 판단

그런데 법관 비위사항에 대한 이처럼 엄중하고 단호한 분위기 속에서, 증인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추행 판사 사건으로 법원 안팎이 시끄럽던 2015년 9월 7일. 증인은 자신의 직속상관이던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해 한 판사의 비위 의혹을 접했습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경찰 간부 승진을 청탁하면서 뒷돈을 준 혐의를 받는 지역 건설업자 A 씨로부터, 부산고등법원의 문 모 부장판사가 골프라운딩 16차례와 식사, 술 등의 접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 씨에 대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날, 문 모 부장판사가 A 씨와 A 씨의 변호인을 해운대의 한 유흥주점에서 만났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임 전 차장은 증인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검찰 고위 간부로부터 받았다"면서 문 부장판사의 비위 내용이 적힌 A4용지 두 쪽 분량의 검찰 조사 결과 문건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차장이 처장에게 드려야 한다며 문건을 증인에게 주지 않아, 증인은 기억을 바탕으로 '문○○ 부장 향응 수수 의혹 첩보'라는 기록용 문건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 검사: 당시 증인은 문○○ 부장판사 첩보를 읽어보고, 검찰에서 임종헌 차장에게 전달한 문건에 증거관계까지 기재된 이상 비위 사실이 근거가 없는 내용은 아닐 거라 생각했죠?
- 증인: 네. 특히 차장님이 보여주신 거라 전 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차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셨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 검사: 사안이 가볍다 보진 않았고, 신빙성 있다고 본 것이죠?
- 증인: 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 검사: 문○○ 사건은 첩보 내용 등에 비춰볼 때 정식 조사에 착수하는 게 원칙적 모습이라 생각했던 건 맞죠?
- 증인: 네. 내용에 비춰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윤리감사관실은 문 부장판사를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인이 증언한 만큼, 이례적인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차장 이상의 지시가 있어야만 윤리감사관이 조사에 착수할 수 있고, 자체 판단으로 조사를 개시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상급자인 임종헌 차장이 대응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지시 없이, 경과를 지켜보자고만 했다는 것입니다. 증인은 또 윗선의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고도 말했습니다.

- 검사: 임종헌 차장이 증인에게 최민호 판사 뇌물 사건으로 법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문○○ 사건도 언론에 보도되면 더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니, 추가 조사 없이 엄중하게 경고하는 쪽으로 종결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죠?
- 증인: 워딩이 정확히 똑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 그런 취지로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증인은 문 부장을 정식 조사하게 되면 법원 감사위원회의 "필요적 심의대상"이 되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임종헌 차장과 논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차장이 "현재 법원과 검찰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며, 검찰이 문 부장 사건을 언론에 "흘릴 위험"은 없어 보인다는 취지로 말했다고도 했습니다.

박병대 당시 처장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 전 차장이 입수한 검찰 첩보 문건의 맨 아래에는 "to 부산고법원장 고지 and 재판 과정에 추가상담 등 없도록 warning 요구 2015.9.9"라는 처장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결국 감사위원회를 통한 투명하고 공정한 감사를 통해 '사법 신뢰를 높이겠다'고 보도자료까지 냈던 대법원이, 넉 달 뒤에는 투명하고 공정한 감사로 오히려 '사법 신뢰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며 말을 뒤집은 셈이 됐습니다. 증인도 당시 "(이런 결정이) 외부에 알려지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검찰에서 진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처장, 차장이 문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 감사 조사와 감사위원회 회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할 직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고 진상을 은폐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증인의 생각은 다소 달라 보였습니다.

- 검사: 법관 비위 행위에 대한 감사 사건의 처리, 감사 조사의 착수에 있어서, 사건 외적인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적 고려, 정무적 판단이 허용된다는 근거 규정이 있습니까?
- 증인: 근거 규정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법행정 자체의 성질에 비추어서, 그런 여러 가지 사정이나 요인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에서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의문은 남습니다. 윗선의 승인·지시 없이는 윤리감사실이 판사의 비위 의혹을 전혀 조사할 수 없을 만큼 사법행정권이 비대하다면, 법원의 감찰 기능과 자정 능력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왜소해지는 것이 아닐지 말입니다.

#3. 의뢰인

증인은 윤리감사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비밀스러운 걱정이 담긴 지시를 받기도 했습니다.

먼저 2015년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실장은 증인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소모임인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에 대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인사모의 개설이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사항이 있는지 검토해 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상고법원 추진 등 당시 대법원의 사법제도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던 인사모를 향한 껄끄러운 시선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증인의 회신은 이규진 실장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증인은 이 실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말씀해 주셔서 여러 각도에서 법관윤리 위반사항 유무를 검토하였습니다만, 애당초 '사법제도 개선'을 연구한다는 소모임을, 아직 활동을 개시하기도 전 단계에서 법관윤리 위반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무리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별 내용이 없는 보고서가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2015년 7월 증인이 작성한 ‘커뮤니티 소모임 개설에 관한 검토’ 문건의 일부.
같은 해 9월에는 상고법원안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포함된 차성안 판사의 언론 기고글(▶ [시사인] 현직 판사의 일주일을 공개합니다)에 대해,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이 아닌지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임종헌 차장이나 박병대 처장 중 한 사람의 지시였다고 합니다.

언론사 기고와 관련해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검토하는 것은 윤리감사관실 업무 중 하나였고, 다른 판사들의 글에 대한 지시도 많이 있었다고 증인은 증언했습니다. 다만 증인은 차 판사를 향한 지시에 통상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 당시 "이 보고서를 통해 글을 기고한 것이 겸직 허가의 대상이 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차성안 판사의 기고 행위가 위축되거나 자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증인: 글쎄, 그건 제 짐작을 얘기한 거고 (지시한 사람이) 실제 그런 의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검사: 또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당시 행정처 내부의 분위기상 대법원에서 전력을 다해 추진하던 상고법원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법원 내부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그 우려의 대상 중 한 명이 차성안 판사였다"고 진술한 바 있는데 맞습니까?
- 증인: 네. 그렇게 진술한 거 맞는 거 같습니다.

2018년 5월 28일 KBS 뉴스9에 출연한 차성안 판사
윤리감사관실에서는 한 해 동안 징계가 청구된 판사나 서면·구두 경고를 받은 판사, 언론에 보도돼 사법 신뢰에 "해를 끼친" 판사 등을 망라해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별하고 윗선에 보고하는 일도 담당해 왔는데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칼럼을 신문에 기고한 판사, 한미FTA 통과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판사, 기자들에게 부적절한 문자를 발송한 판사, 법원 내부 게시판에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에 대한 심증 형성 과정을 자세히 표현한 글을 올린 판사 등 물의야기 사유는 다양했습니다.

증인은 윤리감사관실에서 자체적으로 물의야기 법관을 선정했고, 상급자의 의뢰를 받은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 그 명단(물의야기 법관)의 선정에, 차장이나 처장이 특정인을 포함시키라거나, 개별 사안에 대해 관여하거나, 선별 기준을 제시한 적은 없습니까?
- 증인: 제가 재직하는 동안에는 없었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사법행정에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국제인권법, 또는 인사모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물의야기 법관으로 선별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가요?
- 증인: 제가 윤리감사관실에 있을 때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증인은 또 관례에 따라 '물의야기 법관 현황' 문건을 정리해 (법관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인사총괄심의관실에 보냈고, 이 자료가 법관 인사에 활용되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며 그 명단은 "거의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굉장히 보수적으로 보내줬다"고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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