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㊲ 증언대 선 ‘물의 야기’ 판사들…“반헌법적”

입력 2021.10.29 (11:31) 수정 2021.10.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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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서른일곱 번째 순서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판사 세 명,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9기), 박노수(31기)·김예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30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이른바 ‘물의(物議) 야기 법관 인사조치’ 리스트에 올랐던 판사들입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들을 대상으로 ‘물의 야기 법관’ 수십여 명을 선별, 별도의 파일로 관리했습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의 대내외적 비판 세력을 제압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해당 문건을 작성하고, 여기 포함된 대상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가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해당 문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이전부터 꾸준히 작성됐던 것이라며, 불순한 동기가 있었다는 검찰 주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물의’란 무엇일까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일 처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하여 비판하는 상태(국립국어원)’를 말합니다.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럼 세 명의 판사는 도대체 어떤 ‘물의’를 일으켰기에 명단에 올랐을까요.


■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공판에서, 검찰은 10월 5일부터 18일까지 세 명의 판사를 잇따라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습니다.

세 판사 중 가장 먼저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10월 5일 열린 재판에 출석한 송승용 부장판사입니다.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던 판사가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지난해 퇴임한 권순일 전 대법관.지난해 퇴임한 권순일 전 대법관.

그는 2012년 7월 김병화 대법관 후보의 임명제청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린 데 이어, 2014년 권순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대법관 후보자로 직행하자 2003년 사법 파동을 언급하며 ‘인권, 노동, 환경에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이 외에도 2015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주임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됐을 당시에도 ‘대법관 임명 제청에 관한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번 추천 결과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부합하는 것인지 냉철한 자성과 반추가 필요하다”라며 대법관 후보 제청을 위해 법원 안팎의 여론을 다시 수렴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코트넷에 부적절한 게시글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에 송 부장판사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금품 수수나 성추행, 음주운전 등 이론의 여지가 없는 비위 행위자가 아니라, 법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당 리스트에 오른 겁니다.

2019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출석했던 노재호 전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은 이에 대해 “(송 부장판사의) 2015년 보고서의 근무평정란에 보시면 중간에 ‘사회적 민감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 없이 표현함으로써 판사로서의 균형감, 정치적 중립성 등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좀 더 신중한 언행이 요구됨’이라고 돼 있는데, 그걸 기초로 물의 야기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관련기사: ‘법관 인사불이익’ 작업한 판사…모든 판사는 동등하다?)

송 부장판사는 자신이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포함된 데 대해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고 검찰 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 변호인(변호인):
“김연학 전 인사총괄심의관은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와 관련, 정기인사에 앞서 정례적으로 작성하는 것으로 법원행정처에서 이걸 따로 리스트로 만드는 것은 아니고, 매년 정기인사 시마다 새롭게 작성되는 것으로, ‘블랙리스트는 아니다’라고 증언했는데 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송승용 부장판사(증인):
“블랙리스트라는 단어의 의미 규정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리스트에 자신이 포함된 이유 역시 납득하지 못하겠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변호인: “증인은 2011년도에 법원조직법이 개정돼서 성적 외에 자질도 기준이 됐고, 판사에 대한 평정 결과를 보직 및 전보에 반영한다는 명문 규정이 신설된 것을 아시나요.”

증인: “네.”

변호인: “개정 이후에는 평정 결과의 인사반영이 법적 의무사항이 되었기 때문에 형평인사의 원칙이 유일원칙이자 기준이 아니고, 법원조직법에 따라서 부정적 평정이나 물의 야기 사유 등 소극적 연유를 반영하는 것도 형평인사 원칙과 더불어서 인사원칙이 된 것을 아시나요?”

증인: “알지 못하고요. 전제가 되는 사례로 코트넷 글 쓴 것이 물의야기 사유라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못해서. 근무평정에 반영하고 전보인사 반영하는거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변호인: “전제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빼면요?”

증인: “물의야기라는 표현을 그 당시로는 굉장히 생소한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법관 중에서도 음주운전이나 성비위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건 자질 등으로 포함될 수 있고 일정 부분 인사에 영향 미칠 수 있는데, 저에 대해서 적용했다고 하는 물의야기 사유는 코트넷에 글을 썼다는 것이고, 그것이 물의야기자로 평가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취지입니다.”

변호인: “인사심의관들은 코트넷이나 SNS에 부적절한 게시글을 올린 것을 물의 야기 보고서 검토대상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 이런 행동이 법관윤리강령이나 집단행위 금지, 정치행위 금지에 위반될 소지가 있고 법관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게시글로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오르는 경우가 생긴다고 진술하는데 이런 논리를 아시나요.”

증인: “그 점은 제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민주적인 절차가 구현되려면 구성원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동안 법원에서는 10년차 미만 판사 인사의 경우 통상 임관 성적이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하고, 10년차 이상 판사 인사는 법관 사회의 형평을 고려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형평 순위’가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해 왔습니다.

형평 순위란 종전 근무지 이력을 고려한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으로, 지역 법원에 오래 근무하면 형평 순위가 높아져 다음 인사 때 서울권에 전보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서울에 근무했다면 형평 순위가 낮아져 지역 발령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식입니다.

그러나 ‘물의 야기 법관’이 된 송 판사에게 이러한 형평 순위에 따른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2015년 법관 정기인사에서 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곳으로 알려진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2017년에도 행정처는 송 판사가 희망원에 1지망으로 적어 낸 안양지원을 임지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2지망인 수원지법으로 그를 배치했습니다.

변호인 :“김연학 전 인사총괄심의관은 증인에게 한 전보 인사 조치는 오히려 당해 법관을 보호할 수 있고 불리한 처분이라 볼 수 없고, 행정법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대법 판결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증인: “계속 거듭 말하는데, 문제가 될 만한 물의야기 사유를 전제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맞지,부적절하다는 사유를 저는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는 입장마다 다르겠지만 인사 순위를 기재했는데 순위 외의 낮은 순위 법원에 가는 건... 비위에 대한 징계라면 청문절차 통해 본인이 소명하고 듣고 하는 것이 보장되지만 김연학 심의관이 말한 절차에 의하면, 본인은 전혀 모르는 절차에 의해서, 갈 수 있는 법원보다 낮은 곳에 간다는 것이어서 (그러한 조치가) 해당 법관을 보호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 못하겠습니다.”

지난해 송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을 비롯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현직 법관 등 9명을 상대로 모두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심리 중입니다.


■ “사법행정에 부담? 사법행정에 도움 줬다고 생각한다”

지난 12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출석한 박노수 부장판사 역시,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코트넷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작성된 법원 내부 문건에는 박 부장판사에 대해 ‘ 사법행정에 대한 불만을 공론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그는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출범에 관여하고, 당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선출되었다는 이유로 법원행정처의 주시 대상이었습니다.

대법원이 자체 조사 이후 공개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 내용 중 일부. '박노수 부장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이 기재되어 있다.대법원이 자체 조사 이후 공개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 내용 중 일부. '박노수 부장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이 기재되어 있다.

법원행정처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을 통해 “박 부장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사법행정위원회에 참여할 위원을 직급별 판사회의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단독판사회의 명의로 ① 그와 같은 주장을 담은 건의문을 채택하거나, ② 만일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법원행정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고, 서울중앙지법 사무분담에 관한 지침 개정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며, 판사회의 중심의 수평적 사법행정 구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법원장의 권한에 속하는 각종 사법행정적 조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다른 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18일 임 전 차장의 공판에 출석한 김예영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 시절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선출돼,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출범을 제안한 인물입니다. 그는 ‘사실상의 집단행위 시도 등 사법행정에 부담 야기’라는 명목으로 2015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습니다.

검사: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이후 어떤 활동을 하였나요.”

증인(김예영 부장판사): “의견수렴 말고는...의견수렴을 많이 했고 사무분담 지침 개정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죠.”

검사: “사무분담 외의 의견 수렴을 한 것이 있나요.”

증인: “초반에 법원장이 자기소개서 양식을 판사들에게 보냈는데, 거기 수집하는 정보가 개인정보나 사생활의 침해가 될 수 있단 의견이 있어서 이를 수렴해서 전달해주었습니다.”

검사: “증인은 사법행정에 부담을 줬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인사조치가 검토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증인: “그건 진짜 몰랐습니다.”

검사: “증인이 부당하게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사실이 있나요.”

증인: “판사들 의견을 수렴하는 건 사법행정이 할 일이고요. 저는 사법행정에 도움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법관에 대한 불이익 처분 “당했다” vs “안 당했다”

일선 법관의 성향과 정보를 파악해 문건으로 기재한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 문건’의 존재. 이는 그 동안 사법농단 사건의 발단이자, 중요한 의혹의 축이었습니다.

그런데 짚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법관 리스트가 존재하고, 거기 포함돼 인사 조치가 검토됐다면, 실행 여부를 차치하고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이 불이익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지난 세 차례 공판기일에선 현행 헌법 제106조가 쟁점이 됐습니다. 이 조항은 ‘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세 명의 판사들이 해당 조항에 적시된 ‘기타 불리한 처분’을 당했는지가 쟁점입니다.

더 쉽게 풀면,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증인으로 출석했던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등재 판사들은 ‘실제로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졌다면 물론이고, 해당 문건에 자신의 이름이 등재돼 인사 조치가 검토된 사실 자체로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12일 임 전 차장의 공판에 출석한 박노수 부장판사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보고서, 각급 법원 법관 참고사항 등 행정처가 작성한 보고서들에 대해 ‘ 반헌법적 조치를 검토한 것이므로 그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피고인(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 “(해당 문건들은) 상정 가능한 방안을 열거한 다음 기대 효과와 부정적 파급효과를 검토한 것에 불과한 대외비 보고서인데...‘생각’을 처벌하겠다는 거 아닌가요, 증인의 생각은?”

증인(박노수 부장판사): “상정 가능한 방안의 하나로 그걸 검토하는 것이 놀랍다는 거죠.”

피고인인 임 전 차장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임 전 차장은 다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과거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증언과 현재까지 해당 헌법 조항의 해석을 다룬 판례가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피고인: “인사 실무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징계에 회부하는 것 보다는 부적절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가벼운 조치라고 생각해서 종종 그렇게 해 왔다. 물론 증인은 징계 회부하면 그에 대해 변명의 기회도 있다고. 근데 인사실무자들은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것을 아시나요.”

증인: “모르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인사 실무 하는 게 편법적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헌법에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 없이는 법관에 불리한 처분을 못하게 했는데 그걸 회피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인사하는 것은...그거야말로 반헌법적인 발상이라고...”

피고인: “그럼 증인께서 헌법 106조에 규정된 ‘불리한 처분’을 계속 말씀하셔서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증인이 언급하는 헌법 106조의 ‘불리한 처분’에 대해서는 헌법 교과서나 대법 판례, 헌재결정례에 그 의미에 포섭되는 범위에 대해 아직 해석이 없는 것을 아시나요.”

증인: “정확히는 모릅니다.”

피고인: “크게는 의사에 반하는 모든 처분, 전보 포함시켜야 한다는 설이 있고, 반대로 인사재량권에 포함되므로 그런 것이 포함 안된다는 견해가 입론이 가능하지 않나요.”

증인: “재판부에서 판단하실 사항입니다.”

변호인도 불이익이 맞는지에 대해 증인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변호인: “남성민 전 심의관은 ‘불리한 처분’이란 법관으로서의 업무를 배제하거나 법관징계법에서 정한 것을 말하고, 사실상 이익침해라 생각할지는 몰라도 헌법상 불리한 조치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설령 대상 법관이 불이익을 당했다 생각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헌법 제106조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노재호 전 심의관 역시 헌법 제106조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수십 년 간의 헌법 현실 측면도 있고, 본인 희망과 달리 임지가 정해졌다 해서 불이익한 처분이라 보기 어렵다고 진술했습니다. 김연학 전 심의관도 유사 취지로 증언합니다. 이분들의 생각에 뚜렷한 잘못이 있다고 보는가요.”

증인: “제106조에 인사권자의 인사권이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요. 징계를 회부해서 징계 처분을 하지 그렇게 하지 않고 인사처분을 하는 건 제106조 위반이라는 것이고, 불리한 처분이냐 아니냐 이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설령 제106조 위반이 아니더라도 인사 사유로 삼을 게 아닌데도… 불리한 처분이 아니라면, 재량권의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부장판사의 발언이 자못 신경쓰인 것일까요, 임 전 차장은 그 다음 기일이 시작되자마자 박 부장판사의 증언에 대한 의견을 말하겠다며 발언을 요청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박 부장판사의 증언 내용은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주관적 법적 견해를 진술한 것에 불과해 증거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 “지난해 선고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판결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주심 대법관의 보충의견에, 단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특정안을 검토하게 하거나 그 집행을 위한 준비를 하게 한 것만으로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시가 있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다룬 재판에서 ‘법관에 대해 기타 불이익한 처분’의 의미가 판결문에 어떤 식으로 담길지는 두고봐야 할 부분입니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사법부의 첫 해석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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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㊲ 증언대 선 ‘물의 야기’ 판사들…“반헌법적”
    • 입력 2021-10-29 11:31:15
    • 수정2021-10-29 11:48:11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서른일곱 번째 순서로,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 전 대법원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판사 세 명, 송승용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9기), 박노수(31기)·김예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30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이른바 ‘물의(物議) 야기 법관 인사조치’ 리스트에 올랐던 판사들입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들을 대상으로 ‘물의 야기 법관’ 수십여 명을 선별, 별도의 파일로 관리했습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의 대내외적 비판 세력을 제압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해당 문건을 작성하고, 여기 포함된 대상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가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들은 해당 문건은 양승태 대법원장 이전부터 꾸준히 작성됐던 것이라며, 불순한 동기가 있었다는 검찰 주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물의’란 무엇일까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일 처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하여 비판하는 상태(국립국어원)’를 말합니다.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럼 세 명의 판사는 도대체 어떤 ‘물의’를 일으켰기에 명단에 올랐을까요.


■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공판에서, 검찰은 10월 5일부터 18일까지 세 명의 판사를 잇따라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습니다.

세 판사 중 가장 먼저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10월 5일 열린 재판에 출석한 송승용 부장판사입니다.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던 판사가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지난해 퇴임한 권순일 전 대법관.
그는 2012년 7월 김병화 대법관 후보의 임명제청 철회를 요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올린 데 이어, 2014년 권순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대법관 후보자로 직행하자 2003년 사법 파동을 언급하며 ‘인권, 노동, 환경에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이 외에도 2015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주임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됐을 당시에도 ‘대법관 임명 제청에 관한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번 추천 결과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부합하는 것인지 냉철한 자성과 반추가 필요하다”라며 대법관 후보 제청을 위해 법원 안팎의 여론을 다시 수렴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코트넷에 부적절한 게시글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에 송 부장판사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금품 수수나 성추행, 음주운전 등 이론의 여지가 없는 비위 행위자가 아니라, 법관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당 리스트에 오른 겁니다.

2019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출석했던 노재호 전 법원행정처 인사심의관은 이에 대해 “(송 부장판사의) 2015년 보고서의 근무평정란에 보시면 중간에 ‘사회적 민감 이슈에 대한 의견을 여과 없이 표현함으로써 판사로서의 균형감, 정치적 중립성 등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좀 더 신중한 언행이 요구됨’이라고 돼 있는데, 그걸 기초로 물의 야기 내용에 포함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증언했습니다. (관련기사: ‘법관 인사불이익’ 작업한 판사…모든 판사는 동등하다?)

송 부장판사는 자신이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포함된 데 대해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고 검찰 조사를 통해 알게 됐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 변호인(변호인):
“김연학 전 인사총괄심의관은 물의야기 법관 리스트와 관련, 정기인사에 앞서 정례적으로 작성하는 것으로 법원행정처에서 이걸 따로 리스트로 만드는 것은 아니고, 매년 정기인사 시마다 새롭게 작성되는 것으로, ‘블랙리스트는 아니다’라고 증언했는데 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송승용 부장판사(증인):
“블랙리스트라는 단어의 의미 규정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리스트에 자신이 포함된 이유 역시 납득하지 못하겠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변호인: “증인은 2011년도에 법원조직법이 개정돼서 성적 외에 자질도 기준이 됐고, 판사에 대한 평정 결과를 보직 및 전보에 반영한다는 명문 규정이 신설된 것을 아시나요.”

증인: “네.”

변호인: “개정 이후에는 평정 결과의 인사반영이 법적 의무사항이 되었기 때문에 형평인사의 원칙이 유일원칙이자 기준이 아니고, 법원조직법에 따라서 부정적 평정이나 물의 야기 사유 등 소극적 연유를 반영하는 것도 형평인사 원칙과 더불어서 인사원칙이 된 것을 아시나요?”

증인: “알지 못하고요. 전제가 되는 사례로 코트넷 글 쓴 것이 물의야기 사유라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못해서. 근무평정에 반영하고 전보인사 반영하는거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입니다.”

변호인: “전제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빼면요?”

증인: “물의야기라는 표현을 그 당시로는 굉장히 생소한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법관 중에서도 음주운전이나 성비위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건 자질 등으로 포함될 수 있고 일정 부분 인사에 영향 미칠 수 있는데, 저에 대해서 적용했다고 하는 물의야기 사유는 코트넷에 글을 썼다는 것이고, 그것이 물의야기자로 평가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취지입니다.”

변호인: “인사심의관들은 코트넷이나 SNS에 부적절한 게시글을 올린 것을 물의 야기 보고서 검토대상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 이런 행동이 법관윤리강령이나 집단행위 금지, 정치행위 금지에 위반될 소지가 있고 법관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서, 게시글로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오르는 경우가 생긴다고 진술하는데 이런 논리를 아시나요.”

증인: “그 점은 제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민주적인 절차가 구현되려면 구성원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동안 법원에서는 10년차 미만 판사 인사의 경우 통상 임관 성적이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하고, 10년차 이상 판사 인사는 법관 사회의 형평을 고려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형평 순위’가 높은 사람부터 희망지에 배치해 왔습니다.

형평 순위란 종전 근무지 이력을 고려한 일종의 마일리지 개념으로, 지역 법원에 오래 근무하면 형평 순위가 높아져 다음 인사 때 서울권에 전보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서울에 근무했다면 형평 순위가 낮아져 지역 발령이 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식입니다.

그러나 ‘물의 야기 법관’이 된 송 판사에게 이러한 형평 순위에 따른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송 부장판사는 2015년 법관 정기인사에서 판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곳으로 알려진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2017년에도 행정처는 송 판사가 희망원에 1지망으로 적어 낸 안양지원을 임지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2지망인 수원지법으로 그를 배치했습니다.

변호인 :“김연학 전 인사총괄심의관은 증인에게 한 전보 인사 조치는 오히려 당해 법관을 보호할 수 있고 불리한 처분이라 볼 수 없고, 행정법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대법 판결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증인: “계속 거듭 말하는데, 문제가 될 만한 물의야기 사유를 전제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맞지,부적절하다는 사유를 저는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는 입장마다 다르겠지만 인사 순위를 기재했는데 순위 외의 낮은 순위 법원에 가는 건... 비위에 대한 징계라면 청문절차 통해 본인이 소명하고 듣고 하는 것이 보장되지만 김연학 심의관이 말한 절차에 의하면, 본인은 전혀 모르는 절차에 의해서, 갈 수 있는 법원보다 낮은 곳에 간다는 것이어서 (그러한 조치가) 해당 법관을 보호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 못하겠습니다.”

지난해 송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을 비롯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현직 법관 등 9명을 상대로 모두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재판은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심리 중입니다.


■ “사법행정에 부담? 사법행정에 도움 줬다고 생각한다”

지난 12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출석한 박노수 부장판사 역시, 2015년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을 코트넷에 게시했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당시 작성된 법원 내부 문건에는 박 부장판사에 대해 ‘ 사법행정에 대한 불만을 공론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문구가 적혔습니다. 그는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출범에 관여하고, 당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선출되었다는 이유로 법원행정처의 주시 대상이었습니다.

대법원이 자체 조사 이후 공개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대외비)' 문건 내용 중 일부. '박노수 부장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이 기재되어 있다.
법원행정처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을 통해 “박 부장판사가 의장으로 선출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사법행정위원회에 참여할 위원을 직급별 판사회의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단독판사회의 명의로 ① 그와 같은 주장을 담은 건의문을 채택하거나, ② 만일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법원행정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고, 서울중앙지법 사무분담에 관한 지침 개정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며, 판사회의 중심의 수평적 사법행정 구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법원장의 권한에 속하는 각종 사법행정적 조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다른 판사가 단독판사회의 의장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18일 임 전 차장의 공판에 출석한 김예영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 시절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선출돼,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출범을 제안한 인물입니다. 그는 ‘사실상의 집단행위 시도 등 사법행정에 부담 야기’라는 명목으로 2015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습니다.

검사: “단독판사회의 의장 선출 이후 어떤 활동을 하였나요.”

증인(김예영 부장판사): “의견수렴 말고는...의견수렴을 많이 했고 사무분담 지침 개정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죠.”

검사: “사무분담 외의 의견 수렴을 한 것이 있나요.”

증인: “초반에 법원장이 자기소개서 양식을 판사들에게 보냈는데, 거기 수집하는 정보가 개인정보나 사생활의 침해가 될 수 있단 의견이 있어서 이를 수렴해서 전달해주었습니다.”

검사: “증인은 사법행정에 부담을 줬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인사조치가 검토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증인: “그건 진짜 몰랐습니다.”

검사: “증인이 부당하게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사실이 있나요.”

증인: “판사들 의견을 수렴하는 건 사법행정이 할 일이고요. 저는 사법행정에 도움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법관에 대한 불이익 처분 “당했다” vs “안 당했다”

일선 법관의 성향과 정보를 파악해 문건으로 기재한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 문건’의 존재. 이는 그 동안 사법농단 사건의 발단이자, 중요한 의혹의 축이었습니다.

그런데 짚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법관 리스트가 존재하고, 거기 포함돼 인사 조치가 검토됐다면, 실행 여부를 차치하고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이 불이익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지난 세 차례 공판기일에선 현행 헌법 제106조가 쟁점이 됐습니다. 이 조항은 ‘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세 명의 판사들이 해당 조항에 적시된 ‘기타 불리한 처분’을 당했는지가 쟁점입니다.

더 쉽게 풀면,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증인으로 출석했던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등재 판사들은 ‘실제로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졌다면 물론이고, 해당 문건에 자신의 이름이 등재돼 인사 조치가 검토된 사실 자체로 불이익한 처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12일 임 전 차장의 공판에 출석한 박노수 부장판사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보고서, 각급 법원 법관 참고사항 등 행정처가 작성한 보고서들에 대해 ‘ 반헌법적 조치를 검토한 것이므로 그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증언했습니다.

피고인(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 “(해당 문건들은) 상정 가능한 방안을 열거한 다음 기대 효과와 부정적 파급효과를 검토한 것에 불과한 대외비 보고서인데...‘생각’을 처벌하겠다는 거 아닌가요, 증인의 생각은?”

증인(박노수 부장판사): “상정 가능한 방안의 하나로 그걸 검토하는 것이 놀랍다는 거죠.”

피고인인 임 전 차장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임 전 차장은 다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과거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증언과 현재까지 해당 헌법 조항의 해석을 다룬 판례가 없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피고인: “인사 실무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징계에 회부하는 것 보다는 부적절하기 때문에 그보다는 가벼운 조치라고 생각해서 종종 그렇게 해 왔다. 물론 증인은 징계 회부하면 그에 대해 변명의 기회도 있다고. 근데 인사실무자들은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것을 아시나요.”

증인: “모르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인사 실무 하는 게 편법적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헌법에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 없이는 법관에 불리한 처분을 못하게 했는데 그걸 회피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부지불식간에 인사하는 것은...그거야말로 반헌법적인 발상이라고...”

피고인: “그럼 증인께서 헌법 106조에 규정된 ‘불리한 처분’을 계속 말씀하셔서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증인이 언급하는 헌법 106조의 ‘불리한 처분’에 대해서는 헌법 교과서나 대법 판례, 헌재결정례에 그 의미에 포섭되는 범위에 대해 아직 해석이 없는 것을 아시나요.”

증인: “정확히는 모릅니다.”

피고인: “크게는 의사에 반하는 모든 처분, 전보 포함시켜야 한다는 설이 있고, 반대로 인사재량권에 포함되므로 그런 것이 포함 안된다는 견해가 입론이 가능하지 않나요.”

증인: “재판부에서 판단하실 사항입니다.”

변호인도 불이익이 맞는지에 대해 증인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변호인: “남성민 전 심의관은 ‘불리한 처분’이란 법관으로서의 업무를 배제하거나 법관징계법에서 정한 것을 말하고, 사실상 이익침해라 생각할지는 몰라도 헌법상 불리한 조치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설령 대상 법관이 불이익을 당했다 생각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헌법 제106조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술했습니다. 노재호 전 심의관 역시 헌법 제106조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수십 년 간의 헌법 현실 측면도 있고, 본인 희망과 달리 임지가 정해졌다 해서 불이익한 처분이라 보기 어렵다고 진술했습니다. 김연학 전 심의관도 유사 취지로 증언합니다. 이분들의 생각에 뚜렷한 잘못이 있다고 보는가요.”

증인: “제106조에 인사권자의 인사권이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고요. 징계를 회부해서 징계 처분을 하지 그렇게 하지 않고 인사처분을 하는 건 제106조 위반이라는 것이고, 불리한 처분이냐 아니냐 이건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설령 제106조 위반이 아니더라도 인사 사유로 삼을 게 아닌데도… 불리한 처분이 아니라면, 재량권의 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부장판사의 발언이 자못 신경쓰인 것일까요, 임 전 차장은 그 다음 기일이 시작되자마자 박 부장판사의 증언에 대한 의견을 말하겠다며 발언을 요청했습니다.

임 전 차장은 박 부장판사의 증언 내용은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주관적 법적 견해를 진술한 것에 불과해 증거가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 “지난해 선고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판결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주심 대법관의 보충의견에, 단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특정안을 검토하게 하거나 그 집행을 위한 준비를 하게 한 것만으로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시가 있습니다.”

임종헌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다룬 재판에서 ‘법관에 대해 기타 불이익한 처분’의 의미가 판결문에 어떤 식으로 담길지는 두고봐야 할 부분입니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사법부의 첫 해석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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