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멈춘’ 섬진강 사람들…원인도 보상도 ‘제자리’

입력 2021.06.23 (21:23) 수정 2021.06.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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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집중호우에 벼락, 우박까지….

오늘(23일) 하루 동안 전국의 하늘 상황입니다.

장마는 늦어진다는데 장마만큼 자주 비가 오고, 왔다 하면 강하게 퍼붓는 예측할 수 없는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50일 넘는 긴 장마에 예측할 수 없는 집중호우로 전국의 인명피해가 46명, 최근 10년 동안 피해의 3배에 달했습니다.

KBS는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어떻게 재난을 대비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기획보도 이어갑니다.

오늘 첫 순서로 지난해 큰 수해를 입은 지역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점검해 봅니다.

먼저,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던 전북 남원으로 갑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8월 8일, 83살 노인은 허리춤 위로 밀려드는 물을 맨발로 헤쳐 피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저기서 터졌어, 물이. 여기 둑이 조금 높잖아. 그리 못 가고 우리 집으로 바로 들어와 버렸어."]

흙탕을 씻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한 달 50만 원으로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형편에 다시 이전 삶을 꾸릴 수 없었던 겁니다.

["(아직 축축하네요.) 이걸 내가 깔았고, 스티로폼 깔아서 안 말라서 그렇지."]

위로금과 재난지원금 4백만 원을 받았지만, 바닥을 뜯어 보일러를 고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돈이 있어야 이걸 고치지. 밑에 걸. 못 고쳤어, 이걸."]

비료 한 포대가 아쉬워 떠내려간 걸 주워놨는데, 지금까지 못 쓰고 있습니다.

["(작년 퇴비인 거예요?) 저 멀리 가 있는 것까지 찾아오고."]

딸기와 수박을 키웠던 농부도 땅을 놀리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네 동을 다시 지으려면 자기부담금 2천4백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두 해째 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김종민/수해민 : "없는 상황에서 하우스를 짓지 못하죠. (가족 생계는 어떻게.) 힘들고 막막하죠. 헤어나올 순 없고 참..."]

집을 고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보상을 먼저 요구해 봤지만, 정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제방이 왜 무너졌는지, 댐 방류 탓인지, 제방이 약했는지, 제방 턱이 낮았던 건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빨리 원인을 밝히면 되는데 하세월입니다.

정부 수해조사위는 주민대표를 뺐다가 파행됐고, 그렇게 원인 조사를 맡길 곳을 정하는 데만 넉 달을 썼습니다.

올봄에 나올 거라던 중간 결과는 또 미뤄지고 있습니다.

원인 규명도, 합당한 보상도 못 한 채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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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에 멈춘’ 섬진강 사람들…원인도 보상도 ‘제자리’
    • 입력 2021-06-23 21:23:50
    • 수정2021-06-30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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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집중호우에 벼락, 우박까지….

오늘(23일) 하루 동안 전국의 하늘 상황입니다.

장마는 늦어진다는데 장마만큼 자주 비가 오고, 왔다 하면 강하게 퍼붓는 예측할 수 없는 여름 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50일 넘는 긴 장마에 예측할 수 없는 집중호우로 전국의 인명피해가 46명, 최근 10년 동안 피해의 3배에 달했습니다.

KBS는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어떻게 재난을 대비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기획보도 이어갑니다.

오늘 첫 순서로 지난해 큰 수해를 입은 지역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점검해 봅니다.

먼저,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겼던 전북 남원으로 갑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8월 8일, 83살 노인은 허리춤 위로 밀려드는 물을 맨발로 헤쳐 피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저기서 터졌어, 물이. 여기 둑이 조금 높잖아. 그리 못 가고 우리 집으로 바로 들어와 버렸어."]

흙탕을 씻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한 달 50만 원으로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형편에 다시 이전 삶을 꾸릴 수 없었던 겁니다.

["(아직 축축하네요.) 이걸 내가 깔았고, 스티로폼 깔아서 안 말라서 그렇지."]

위로금과 재난지원금 4백만 원을 받았지만, 바닥을 뜯어 보일러를 고칠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장순규/수해민 : "돈이 있어야 이걸 고치지. 밑에 걸. 못 고쳤어, 이걸."]

비료 한 포대가 아쉬워 떠내려간 걸 주워놨는데, 지금까지 못 쓰고 있습니다.

["(작년 퇴비인 거예요?) 저 멀리 가 있는 것까지 찾아오고."]

딸기와 수박을 키웠던 농부도 땅을 놀리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네 동을 다시 지으려면 자기부담금 2천4백만 원 정도가 필요한데, 두 해째 돈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김종민/수해민 : "없는 상황에서 하우스를 짓지 못하죠. (가족 생계는 어떻게.) 힘들고 막막하죠. 헤어나올 순 없고 참..."]

집을 고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보상을 먼저 요구해 봤지만, 정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제방이 왜 무너졌는지, 댐 방류 탓인지, 제방이 약했는지, 제방 턱이 낮았던 건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럼 빨리 원인을 밝히면 되는데 하세월입니다.

정부 수해조사위는 주민대표를 뺐다가 파행됐고, 그렇게 원인 조사를 맡길 곳을 정하는 데만 넉 달을 썼습니다.

올봄에 나올 거라던 중간 결과는 또 미뤄지고 있습니다.

원인 규명도, 합당한 보상도 못 한 채 또다시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안광석/그래픽:최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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