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모든 걸 가져갔다’

입력 2006.07.10 (07:06)

수정 2006.07.10 (07:28)

이탈리아 다섯 번째 키커 파비오 그로소가 승부차기를 앞둔 순간.
긴장이 극에 달한 듯 벤치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안경을 들어올려 잠시 두 눈을 쓸어 내렸다.
잠시 후 그로소의 슈팅이 프랑스 골 그물을 뒤흔들며 빗장수비로 정평이 난 '아주리군단'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을 알렸다. 리피 감독은 천천히 벤치 한 구석에 놓아두었던 흰색 점퍼 상의를 집어 들었고, 달려든 팀 관계자들에 둘러싸여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로소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동료를 피해 쏜살같이 질주했다.
프랑스 골키퍼 파비앵 바르테즈는 흰 수건을 목에 두르고 골대에 기대 앉아 멍하니 벤치 쪽만 바라 봤다. 프랑스 선수들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비드 트레제게의 큰 눈에서는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반대쪽 골문 뒤 자국 서포터들이 자리한 곳으로 옮겨가 국기를 몸에 두르고 껑충껑충 뛰며 우승 세리머니를 펼쳤다. 하의를 빼앗긴 젠나로 가투소는 속옷 차림이 돼 동료의 놀림을 당하면서도 마냥 좋아했다.
시상 준비를 하느라 라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라운드에 남아있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을 비롯한 프랑스 선수들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탈리아 선수들만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비에라와 교체 출전한 알루 디아라는 결국 분을 삭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준우승 프랑스 선수들이 먼저 시상대에 올랐다. 클로드 마켈렐레는 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메달을 걷어냈다.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짜릿한 승리를 확정지은 순간, 세상 모든 것은 이탈리아였다.
전반 7분 프랑스 지네딘 지단의 페널티킥, 전반 19분 이탈리아 마르코 마테라치의 동점골이 터질 때만 해도 소나기골이 나오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양팀 선수들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고, 후반 들어서는 체력과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잦은 패스 미스 등으로 느슨한 경기가 이어졌다.
지단이 연장 후반 6분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를 들이받아 퇴장당하면서 오히려 경기장 분위기는 프랑스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이때부터 이탈리아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관중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자국 경기 때 인상적인 응원을 펼친 뒤 이날 만큼은 모처럼 느긋하게 경기를 즐기던 독일 팬들도 지단의 퇴장 이후 프랑스 응원에 가세했다.
하지만 야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시상식에서 우승국 이탈리아가 호명되는 순간, 그리고 주장 파비오 칸나바로가 월드컵을 번쩍 들어올리는 순간 축하의 박수가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계속된 프랑스 팬의 야유는 축포와 꽃가루 속에 파묻혔다.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는 세상 모든 걸 얻었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간다(The winner takes it all)'는 노랫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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