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사냥꾼’ 된 비결은 평정심

입력 2009.08.17 (11:21)

수정 2009.08.17 (15:46)

이제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을 '바람의 아들'이 아니라 '호랑이 사냥꾼'으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양용은이 17일(한국시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자 중계방송을 맡은 CBS는 "양용은이 타이거를 혼내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방송했다.
양용은이 지난 2005년 중국 상하이 서산인터내셔널골프장(파72.7천165야드)에서 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겸 아시아프로골프 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했을 때 준우승 선수가 우즈였다.
그때 "다른 선수를 의식하지 않고 내 플레이에 집중했다"고 말했던 양용은은 이번 대회를 마치고 나서도 "긴장하지 않아서 좋은 플레이가 나왔다"고 밝혔다.
말은 쉽지만 최종 라운드에서 우즈를 상대로 경기를 치르며 위축되지 않는 선수는 거의 없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우승한 29개 대회에서 우즈의 최종 라운드 평균 타수는 68.03타였다.
그런데 우즈와 최종 라운드에서 동반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 평균 타수는 72.5타에 이르러 무려 5타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다.
우즈는 최종 라운드에서 언더파 스코어를 내며 펄펄 날았지만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치른 경쟁자들이 제풀에 무너져 우승컵을 헌납하는 형식이었다.
특히 우즈와 동반 플레이가 낯선 하위 랭커들은 여지없이 '붉은 셔츠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퍼터 로나드(호주)는 2005년 뷰익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에서 77타로 무너졌고 이듬해 로드 팸플링(호주)도 76타를 쳤다.
2007년 PGA챔피언십 때 스티븐 에임스(캐나다)는 4라운드에서 우즈와 맞붙었다가 76타로 망가져 69타를 때린 우즈에게 혼쭐났다.
올해 메모리얼토너먼트에서 마이클 레트직(미국)은 우즈가 65타를 때린 동안 75타를 치는 부진 끝에 10위 이내에도 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양용은은 달랐다. 우즈와 난생 처음 챔피언조에서 최종 라운드 맞대결을 펼치게 된 양용은은 전날 "비록 내일 떨리겠지만 집중하고 내 나름대로 경기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또 "우즈는 (PGA 투어에서) 70차례 우승했지만 나는 단 한 번 밖에 못해 70대 1의 확률"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양용은은 정말 마음을 비우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실천했다.
양용은은 마음을 비웠지만 반대로 우즈는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메이저 우승컵 없는 시즌이 될 지 모른다는 초조감이 그린 플레이에서 드러났다.
퍼팅 라인을 읽을 때 미세한 오차가 생겨났고 볼이 홀을 외면할 때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음을 비운 양용은은 차분했다. 13번홀(파3)에서 티샷이 벙커에 들어가 위기가 찾아왔지만 어려운 파퍼트를 성공시켰다. 우즈가 놓친 버디 퍼트와 거의 비슷한 거리였다.
17번홀(파3)에서 긴장한 탓인지 첫 퍼트가 어이없이 짧았지만 자신을 다독였다. 다음 퍼트를 넣으면 되고, 아니면 보기를 적어낸다는 심정이었다. 보기를 했지만 이런 여유 덕에 웃을 수 있었다.
다행히 우즈도 실수 끝에 보기로 홀아웃했다.
초조해진 우즈는 버디가 꼭 필요한 18번홀에서 1타를 더 잃었고 마음이 편해진 양용은은 1타를 줄였다.
2007년 PGA 투어 퀄리파잉스쿨 때부터 양용은과 함께 했던 캐디 AJ 몬테시노스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지켜보았지만 양용은처럼 정신력이 강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양용은은 더블보기를 하든, 트리플보기를 하든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 기간 양용은과 인생이나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제 한국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워너메이커트로피를 품에 안은 양용은은 "큰 대회라서 해서 긴장하고 그러면 안되더라. 내가 우승한것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경기를 했을 때"라고 '호랑이 사냥법'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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