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 16세 소녀 책임?’ 무책임한 펜싱

입력 2012.08.01 (00:14)

수정 2012.08.0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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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런던올림픽에서 신아람(26·계룡시청)을 울린 ’멈춘 시간’ 오심은 허술한 펜싱경기 규정과 부실한 운영이 어우러져 빚어진 예고된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아람은 30일(현지시간) 영국 엑셀 런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연장전 1초를 남기고 세 번의 공격을 막아냈으나 네 번째 공격을 허용해 패배했다.



네 번의 공격이 이뤄지는 동안 긴 시간이 흘렀으나 ‘1초’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 팀은 멈춘 시간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으나 1시간 가까운 논의 끝에 발표된 결론은 판정번복 불가였다.



문제는 논란의 핵심이 되는 ‘시간의 흐름’을 관장할 책임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날 경기의 기술위원회(테크니컬 디렉터·DT)는 한국의 항의에 대해 "국제펜싱연맹(FIE)의 테크니컬 규정(t.32.1과 t.32.3)에 따르면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결정할 권한은 심판에게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FIE는 이 조항에서 "시계에 문제가 있거나 타임키퍼가 실수했을 경우 심판은 직접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타임키퍼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심판의 ’알레(시작)’ 신호에 맞춰 시계가 다시 작동되도록 조작하는 진행 요원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시계가 1초에서 멈춰 있는 동안 심판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수십 번이고 다시 공격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심판이 시계에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할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심판은 피스트를 바라보면서 전광판에 표시되는 시계를 보고 경기를 진행한다.



계속해서 빠른 공격이 오가는 긴박한 순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는 자칫 주의를 놓치기 쉽다.



심판이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타임키퍼가 이를 지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실제로 FIE 규정(t.32.2)은 ’시계가 전자판독기와 자동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경기에서 시간이 만료되면 타임키퍼는 큰 소리로 알트(멈춰)를 외쳐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타임키퍼의 자격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김창곤 FIE 심판위원은 "경기를 마치고 타임키퍼가 누구인지 보니 16세 소녀더라"면서 "큰 일이 벌어진 것을 보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더 큰 문제는 상식적으로 볼 때 분명히 잘못된 상황임에도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아람을 지도한 심재성 코치는 "기술위원들과 심판위원들이 모두 개별적으로 나를 만나서는 ‘이해한다’고 말해 놓고 정작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기술위원회는 이에 대해서 "테크니컬 규정(t.122.1)에 따라 기술위원회나 심판위원회는 심판의 판정을 바꿀 권한이 없다"고 발뺌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선수는 심판이 규정을 잘못 적용하는 경우에만 항의할 수 있으며, 그 외의 경우에는 아무런 구제를 받을 수 없다.



실제로 펜싱 사브르와 플뢰레 경기에서는 동시 공격이 적중했을 때 득점자를 가리는 역할 등에 대해 심판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막강한 편이다.



김창곤 위원은 "심판이 대부분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웬만큼 큰 오심이 아니면 기술위원회에서 판정을 뒤집는 일이 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기장을 메운 관중들도 하나같이 야유를 퍼부을 만큼 명백한 오심인 상황에서 기술위원회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은 결국 모든 책임을 심판에 떠넘기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정과 경기 운영에 큰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한결같이 면피로 일관했다.



그 결과로 신아람은 오랜 기간 키워온 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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