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⑨ 법정 달군 ‘사실과 의견’ 논쟁…증인 “나도 판사인데” ‘발끈’

입력 2019.08.13 (06:09) 수정 2019.08.13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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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재판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아홉 번째 순서로, 7월 19일과 8월 5일 이틀에 걸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건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전 법원행정처 기획제1·2심의관)의 증언 내용을 어제(12일)에 이어 계속 살펴봅니다.

[연관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⑧ 임종헌 ‘빙의’해 보고서 쓴 판사…“당연히 양승태 보고용이라 생각”

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건물로 향하고 있다.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건물로 향하고 있다.

#1. "그냥 추측 아니냐" 질문에…발끈한 판사 증인

반대신문에서 변호인들은 김 부장판사의 증언을 직접 겨냥했습니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에 보고됐다는 건, 그저 김 부장판사의 의견에 불과한 거 아니냐는 겁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이하 '고 변'): 이런 진술 취지는 증인을 비롯한 심의관들이 작성한 각종 보고서가 처장이나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거라는 그냥 추측 내지 의견을 진술하신 거죠?

그러자 증인석에 앉은 김 부장판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반박했습니다.

- 증인: 근데 제가 검찰에서 진술할 때 나름 객관적인 진실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이야기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혹시라도 피해를 보시는 분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개별 질문에 대해서 신중하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드린 답변이, 제가 작성하거나 보고했던 개별 보고서와의 관계에서 이해가 돼야지, 제가 뭐 함부로 예단이나 추측이나 의견을 말하진 않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하신 것처럼 이해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변호인이 다시 질문을 던지자, 자신이 다름 아닌 현직 판사라는 점을 언급하며 무고한 사람을 어려움에 빠트리는 무책임한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증인: 아까도 재판장님께서 말씀하신 의견과 사실을 분리해야 된다는 것은 저도 판사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요. … 개별 보고서에 대한, 개별 질문에 대한 당시의 생각 내지 의견을 말씀드린 거 같고 … (예를 들어) 김수천 부장 구속에 따른 대법원장 대국민 사과(관련 보고서)도, 대법원장님께서 사과를 하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별로 전례가 없습니다. … 법원장 회의가 소집되어야 할 문제라서 차장님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한테 그런 보고서를 시키셨다면 그건 제 생각에 합리적으로 그런(윗선에 보고했단) 생각 들었단 겁니다. … 제가 추측을 함부로 얘기해서, 제가 그래도 모셨던 처장님께 누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도 추궁이 계속되자, 김 부장판사는 '윗선 보고'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보다 직관적인 근거를 밝혔습니다. 임 전 차장은 다 아는 내용을 굳이 보고서로 '예쁘게' 정리하라고 지시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반문입니다.

- 고 변: 증인, 검찰에서 이 보고서(2016.5.12. 정운호 사건 관련 제도개선 방안)를 토대로 TF가 확대됐다, 그렇기 때문에 처장님, 대법원장님께 보고됐을 거 같다고 진술했는데, 이 진술도 그러면 그냥 본인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한 근거에 대한 추측인가요?
- 증인: … (임종헌 차장님 지시가 '제도개선 방안'뿐 아니라 ) 굳이 '상황 분석'이라는 내용을 그 앞에 집어넣으셨잖아요? 차장님은 이미 다 보고받으신 내용인데 이걸 왜 예쁘게 편집해서 저보고 보고서 갖고 오라고 지시를 하셨겠습니까? … 차장님은 이미 알고 계신 비밀스러운 상황을 보고서에 담으라고 저한테 지시했을 거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바는 처장님과 대법원장님께 보고하기 위해서 저한테 지시하셨다고 당시 저는 이해했습니다.
- 고 변: 그래서 보고가 됐을 거 같다라고 짐작을 했다?
- 증인: 네. 그렇습니다. 제가 뭐 근거 없이 그렇게 이야기한 거 아닙니다.

2014년 10월 대법원 국정감사 때 국회에 출석한 판사들. 박병대 당시 처장과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의 모습이 보인다.2014년 10월 대법원 국정감사 때 국회에 출석한 판사들. 박병대 당시 처장과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2. "의견 묻는 거다" "아니다" 변호인-증인 '설전'…승자는?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 자꾸만 문제가 되자, 김 부장판사의 태도는 증인신문 후반부로 갈수록 신중해지고 다소 위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검사나 변호인의 질문에 오히려 "의견을 물으시는 거라..."라며 증언을 아끼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의견이나 추측을 자제하라던 변호인들은 "당시 증인의 입장을 묻는 것이다. 그건 역사적 사실이다" "의견을 묻는 게 아니다" "자꾸 의견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증인의 의견을 듣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며 다시 증언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가장 긴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이하 '박 변'): 각 실국이 대응방안을 기획조정실로 보내기 전에 차장의 결재를 받기도 하고, 위 이메일처럼 차장이 그 내용을 계속 확인한 점 등으로 볼 때 대한변협 압박방안은 강형주 차장이 주로 챙기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증인은 지금도 검찰에서 진술한 것처럼 피고인(박병대)이 검토 지시를 했다고 기억하는가요?
- 증인: 제가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했다는 거죠. 앞에서 여러 번 설명해 드린 내용 비춰봤을 때, 최소한 처장님 지시가 있었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박 변: 지금도 변함이 없는가요?
- 증인: 지금 의견을 물어보신 거 같은데요, 그때 그렇게 생각한 건 사실입니다.

의견을 묻고 있다며 증언을 거부한 증인. 변호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 박 변: 검찰에서 처장이 지시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진술했지 않습니까?
- 증인: 당시 그렇게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 박 변: 그 진술을 한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느냐가 질문입니다.
- 증인: 저는 당시의 의견, 생각을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 박 변: 이때까지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답변을 안하시는 건가요?
- 증인: 그거는 의견을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평가의 문제고 의견의 문제입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또다시 답변을 거부당하자 변호인은 3~4초 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박 변: 이건 의견이 아닌데요?
- 증인: [잠시 주저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저는 의견인 거 같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습니다.

- 재판장: 아니, 좀 직접적으로 그럼 물어보시죠! 증인은 지금, 지금은 대한변협 압박방안을 피고인이 검토, 지시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안 되나요?
- 증인: [작은 목소리로] 저는 의견이라고...
- 박 변: [약간 억울하다는 듯] 의견 물으면 답변 안 할 거라 말입니다.

박병대 피고인의 변호인 말대로, 재판장의 중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 재판장: … 증인은 '지금 기준으로' 대한변협 압박 방안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처럼 피고인이 검토, 지시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은 이렇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 증인: 이제 답변...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질문이 제가 생각하기엔 의견을 물어보시는 거 같아서 특별히 답변 드리지 않겠습니다.
- 재판장: 네. 자, 답변은 증인이 한 거니까요. 그렇게 정리하시죠.

팽팽하던 '의견'과 '사실' 논쟁. 당시의 긴장감을 글로 전달하긴 역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견이냐, 사실이냐...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 차장님이 들려준 대법원장 이야기

김 부장판사는 "주로 임종헌 차장님은 대법원장님 생각을 말씀해주셨습니다"라며, 임 전 차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습니다. 대부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되는 진술과 증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겁니다.

- 양 변: 증인은 검찰에서 당시 임종헌이 말하길, 피고인 양승태가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고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이런 식으로 들이받는 판결이 선고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하였다고 진술하신 바 있으시죠?
- 증인: 네.
- 양 변: 임종헌은 검찰에서 "피고인 양승태가 본인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한 기억은 없다"라고 진술했는데, 임종헌이 당시 증인에게 그런 표현을 하면서 말한 게 정확한 기억입니까?
- 증인: 정확한 기억입니다.

김민수 부장판사가 2015년 9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대외비 문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의 일부분김민수 부장판사가 2015년 9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대외비 문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의 일부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잘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와해를 위한 대응방안 검토 지시" 혐의에 관한 증언도 나왔습니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법원장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지만, 김 부장판사는 단호했습니다.

- 양 변: 증인은 검찰에서, 2003년경 우리법연구회 회원인 판사들이 주도한 사법파동 때 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피고인 양승태가 김명수 판사로부터 비판을 받고 심한 불쾌감을 느꼈고, 이후 차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김명수 판사와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이야기를 임종헌으로부터 들었다는 얘기를 검찰에서 진술한 바 있지요?
- 증인: 네.
- 양 변: 그런데 임종헌은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피고인 양승태의 경우 2003년 사법파동 때 전국법관회의에서 김명수 당시 수원지법 판사가 피고인을 공격한 건 사실이지만 증인의 진술과 동일한 말을 한 건 아니라는 말을 하였는데, 당시 임종헌이 증인에게, 증인이 진술한 바와 같은 워딩을 사용한 것이 정확합니까?
- 증인: 네 정확합니다.
- 양 변: 기억이 정확하게 나십니까?
- 증인: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언젠가 같이 술을 마시던 박상언 부장판사(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에게 "대법원장님께서 '국제인권법연구회 문제는 내 임기 중에 정리를 하겠다. 후임 대법원장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임종헌 차장님이 말씀해주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표현은 검찰 공소장에도 일부 인용됐습니다.

2018년 여름 자신을 찾아온 MBC PD수첩 제작진을 피해 내달리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 출처 : MBC)2018년 여름 자신을 찾아온 MBC PD수첩 제작진을 피해 내달리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 출처 : MBC)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들은 사람은 확실히 기억한다는데, 왜 얘기를 해줬다는 임종헌 전 차장은 자꾸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는 걸까요? 김 부장판사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습니다.

- 검사: (법원) 자체 진상 조사가 진행 중일 때, 임종헌이 김민수에게 전화해서 "대법원장님이 '내 임기 내에 인사모를 없애겠다'고 나(임종헌)에게 말했고, 그 말을 내가 박상언 심의관에게 해줬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박상언 심의관이 징계 조사 과정에서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피의자: 네, 맞습니다. 당시 임종헌 차장님이 직접 양승태 대법원장 지시에 따라 모든 걸 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고, 그래서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박상언 심의관이 알아서 법원 조사과정에서 그런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취지이셨습니다. 솔직히 임종헌 차장님에게 대법원장님을 원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서증조사 때 검찰이 공개한 김민수 9회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

임 전 차장은 자신이 '모셨던' 대법원장의 언행을 검찰에 일러바치는 듯한 말을 하고 싶지 않을지 모릅니다. 도리가 아니다, 다소 볼썽사납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는 건 너무 억울하니, 후배들이 대법원장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길 바랐던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후배 판사들의 증언으로 임 전 차장의 '빗나간 충심'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사람들의 눈살을 더 찌푸리게 합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의 막바지쯤,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인으로 법정에 서야 하는 임 전 차장. 부디 '증인으로서의 양심'을 제대로 발휘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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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⑨ 법정 달군 ‘사실과 의견’ 논쟁…증인 “나도 판사인데” ‘발끈’
    • 입력 2019-08-13 06:09:05
    • 수정2019-08-13 06:09:34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재판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아홉 번째 순서로, 7월 19일과 8월 5일 이틀에 걸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건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전 법원행정처 기획제1·2심의관)의 증언 내용을 어제(12일)에 이어 계속 살펴봅니다.

[연관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⑧ 임종헌 ‘빙의’해 보고서 쓴 판사…“당연히 양승태 보고용이라 생각”

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건물로 향하고 있다.
#1. "그냥 추측 아니냐" 질문에…발끈한 판사 증인

반대신문에서 변호인들은 김 부장판사의 증언을 직접 겨냥했습니다.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윗선에 보고됐다는 건, 그저 김 부장판사의 의견에 불과한 거 아니냐는 겁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이하 '고 변'): 이런 진술 취지는 증인을 비롯한 심의관들이 작성한 각종 보고서가 처장이나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거라는 그냥 추측 내지 의견을 진술하신 거죠?

그러자 증인석에 앉은 김 부장판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반박했습니다.

- 증인: 근데 제가 검찰에서 진술할 때 나름 객관적인 진실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이야기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혹시라도 피해를 보시는 분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개별 질문에 대해서 신중하게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드린 답변이, 제가 작성하거나 보고했던 개별 보고서와의 관계에서 이해가 돼야지, 제가 뭐 함부로 예단이나 추측이나 의견을 말하진 않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하신 것처럼 이해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변호인이 다시 질문을 던지자, 자신이 다름 아닌 현직 판사라는 점을 언급하며 무고한 사람을 어려움에 빠트리는 무책임한 진술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증인: 아까도 재판장님께서 말씀하신 의견과 사실을 분리해야 된다는 것은 저도 판사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요. … 개별 보고서에 대한, 개별 질문에 대한 당시의 생각 내지 의견을 말씀드린 거 같고 … (예를 들어) 김수천 부장 구속에 따른 대법원장 대국민 사과(관련 보고서)도, 대법원장님께서 사과를 하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별로 전례가 없습니다. … 법원장 회의가 소집되어야 할 문제라서 차장님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한테 그런 보고서를 시키셨다면 그건 제 생각에 합리적으로 그런(윗선에 보고했단) 생각 들었단 겁니다. … 제가 추측을 함부로 얘기해서, 제가 그래도 모셨던 처장님께 누를 끼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도 추궁이 계속되자, 김 부장판사는 '윗선 보고'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보다 직관적인 근거를 밝혔습니다. 임 전 차장은 다 아는 내용을 굳이 보고서로 '예쁘게' 정리하라고 지시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반문입니다.

- 고 변: 증인, 검찰에서 이 보고서(2016.5.12. 정운호 사건 관련 제도개선 방안)를 토대로 TF가 확대됐다, 그렇기 때문에 처장님, 대법원장님께 보고됐을 거 같다고 진술했는데, 이 진술도 그러면 그냥 본인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한 근거에 대한 추측인가요?
- 증인: … (임종헌 차장님 지시가 '제도개선 방안'뿐 아니라 ) 굳이 '상황 분석'이라는 내용을 그 앞에 집어넣으셨잖아요? 차장님은 이미 다 보고받으신 내용인데 이걸 왜 예쁘게 편집해서 저보고 보고서 갖고 오라고 지시를 하셨겠습니까? … 차장님은 이미 알고 계신 비밀스러운 상황을 보고서에 담으라고 저한테 지시했을 거 같진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바는 처장님과 대법원장님께 보고하기 위해서 저한테 지시하셨다고 당시 저는 이해했습니다.
- 고 변: 그래서 보고가 됐을 거 같다라고 짐작을 했다?
- 증인: 네. 그렇습니다. 제가 뭐 근거 없이 그렇게 이야기한 거 아닙니다.

2014년 10월 대법원 국정감사 때 국회에 출석한 판사들. 박병대 당시 처장과 임종헌 당시 기조실장의 모습이 보인다.
#2. "의견 묻는 거다" "아니다" 변호인-증인 '설전'…승자는?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 자꾸만 문제가 되자, 김 부장판사의 태도는 증인신문 후반부로 갈수록 신중해지고 다소 위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검사나 변호인의 질문에 오히려 "의견을 물으시는 거라..."라며 증언을 아끼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의견이나 추측을 자제하라던 변호인들은 "당시 증인의 입장을 묻는 것이다. 그건 역사적 사실이다" "의견을 묻는 게 아니다" "자꾸 의견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증인의 의견을 듣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며 다시 증언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도중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가장 긴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시작은 이랬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이하 '박 변'): 각 실국이 대응방안을 기획조정실로 보내기 전에 차장의 결재를 받기도 하고, 위 이메일처럼 차장이 그 내용을 계속 확인한 점 등으로 볼 때 대한변협 압박방안은 강형주 차장이 주로 챙기고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증인은 지금도 검찰에서 진술한 것처럼 피고인(박병대)이 검토 지시를 했다고 기억하는가요?
- 증인: 제가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했다는 거죠. 앞에서 여러 번 설명해 드린 내용 비춰봤을 때, 최소한 처장님 지시가 있었을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박 변: 지금도 변함이 없는가요?
- 증인: 지금 의견을 물어보신 거 같은데요, 그때 그렇게 생각한 건 사실입니다.

의견을 묻고 있다며 증언을 거부한 증인. 변호인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 박 변: 검찰에서 처장이 지시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진술했지 않습니까?
- 증인: 당시 그렇게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 박 변: 그 진술을 한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느냐가 질문입니다.
- 증인: 저는 당시의 의견, 생각을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 박 변: 이때까지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선 답변을 안하시는 건가요?
- 증인: 그거는 의견을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평가의 문제고 의견의 문제입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또다시 답변을 거부당하자 변호인은 3~4초 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어이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박 변: 이건 의견이 아닌데요?
- 증인: [잠시 주저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저는 의견인 거 같습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습니다.

- 재판장: 아니, 좀 직접적으로 그럼 물어보시죠! 증인은 지금, 지금은 대한변협 압박방안을 피고인이 검토, 지시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렇게 물어보시면 안 되나요?
- 증인: [작은 목소리로] 저는 의견이라고...
- 박 변: [약간 억울하다는 듯] 의견 물으면 답변 안 할 거라 말입니다.

박병대 피고인의 변호인 말대로, 재판장의 중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 재판장: … 증인은 '지금 기준으로' 대한변협 압박 방안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처럼 피고인이 검토, 지시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은 이렇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 증인: 이제 답변...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질문이 제가 생각하기엔 의견을 물어보시는 거 같아서 특별히 답변 드리지 않겠습니다.
- 재판장: 네. 자, 답변은 증인이 한 거니까요. 그렇게 정리하시죠.

팽팽하던 '의견'과 '사실' 논쟁. 당시의 긴장감을 글로 전달하긴 역시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견이냐, 사실이냐...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3. 차장님이 들려준 대법원장 이야기

김 부장판사는 "주로 임종헌 차장님은 대법원장님 생각을 말씀해주셨습니다"라며, 임 전 차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습니다. 대부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되는 진술과 증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겁니다.

- 양 변: 증인은 검찰에서 당시 임종헌이 말하길, 피고인 양승태가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고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이런 식으로 들이받는 판결이 선고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하였다고 진술하신 바 있으시죠?
- 증인: 네.
- 양 변: 임종헌은 검찰에서 "피고인 양승태가 본인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한 기억은 없다"라고 진술했는데, 임종헌이 당시 증인에게 그런 표현을 하면서 말한 게 정확한 기억입니까?
- 증인: 정확한 기억입니다.

김민수 부장판사가 2015년 9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대외비 문건,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의 일부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잘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와해를 위한 대응방안 검토 지시" 혐의에 관한 증언도 나왔습니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대법원장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지만, 김 부장판사는 단호했습니다.

- 양 변: 증인은 검찰에서, 2003년경 우리법연구회 회원인 판사들이 주도한 사법파동 때 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피고인 양승태가 김명수 판사로부터 비판을 받고 심한 불쾌감을 느꼈고, 이후 차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김명수 판사와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이야기를 임종헌으로부터 들었다는 얘기를 검찰에서 진술한 바 있지요?
- 증인: 네.
- 양 변: 그런데 임종헌은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피고인 양승태의 경우 2003년 사법파동 때 전국법관회의에서 김명수 당시 수원지법 판사가 피고인을 공격한 건 사실이지만 증인의 진술과 동일한 말을 한 건 아니라는 말을 하였는데, 당시 임종헌이 증인에게, 증인이 진술한 바와 같은 워딩을 사용한 것이 정확합니까?
- 증인: 네 정확합니다.
- 양 변: 기억이 정확하게 나십니까?
- 증인: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언젠가 같이 술을 마시던 박상언 부장판사(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에게 "대법원장님께서 '국제인권법연구회 문제는 내 임기 중에 정리를 하겠다. 후임 대법원장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임종헌 차장님이 말씀해주셨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이 표현은 검찰 공소장에도 일부 인용됐습니다.

2018년 여름 자신을 찾아온 MBC PD수첩 제작진을 피해 내달리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 출처 : MBC)
그렇다면 궁금해집니다. 들은 사람은 확실히 기억한다는데, 왜 얘기를 해줬다는 임종헌 전 차장은 자꾸 그런 적 없다고 부인하는 걸까요? 김 부장판사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습니다.

- 검사: (법원) 자체 진상 조사가 진행 중일 때, 임종헌이 김민수에게 전화해서 "대법원장님이 '내 임기 내에 인사모를 없애겠다'고 나(임종헌)에게 말했고, 그 말을 내가 박상언 심의관에게 해줬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박상언 심의관이 징계 조사 과정에서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피의자: 네, 맞습니다. 당시 임종헌 차장님이 직접 양승태 대법원장 지시에 따라 모든 걸 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고, 그래서 이와 같은 사정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박상언 심의관이 알아서 법원 조사과정에서 그런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취지이셨습니다. 솔직히 임종헌 차장님에게 대법원장님을 원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서증조사 때 검찰이 공개한 김민수 9회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

임 전 차장은 자신이 '모셨던' 대법원장의 언행을 검찰에 일러바치는 듯한 말을 하고 싶지 않을지 모릅니다. 도리가 아니다, 다소 볼썽사납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요.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다 뒤집어쓰는 건 너무 억울하니, 후배들이 대법원장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길 바랐던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후배 판사들의 증언으로 임 전 차장의 '빗나간 충심'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사람들의 눈살을 더 찌푸리게 합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의 막바지쯤,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인으로 법정에 서야 하는 임 전 차장. 부디 '증인으로서의 양심'을 제대로 발휘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도움을 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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