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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⑧ 임종헌 ‘빙의’해 보고서 쓴 판사…“당연히 양승태 보고용이라 생각”
입력 2019.08.12 (06:05) 수정 2019.08.12 (08:28) 취재K
●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재판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여덟 번째 순서로, 7월 19일과 8월 5일 이틀에 걸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건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전 법원행정처 기획제1·2심의관)의 증언 내용을 살펴봅니다.

현재 경남 마산에서 근무 중인 김 부장판사는 서울에서 열리는 재판에 두 번이나 불려나와 총 16시간(점심·저녁식사 시간 제외) 동안 증인석을 지켰습니다. 사법농단 수사 단계에서 검찰에 10번 넘게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증인신문 전 진정성립 절차(증인에 대한 검찰 신문조서와 증인이 작성에 관여한 증거 문서 등이 타인에 의해 위조·변조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절차)에만 43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한 '핵심' 증인이라는 뜻이겠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여러 건의 행정처 대외비 문건을 작성한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상급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혐의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이른바 '판사 뒷조사 문건'을 작성해 법관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김 부장판사의 증언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오늘(12일)과 내일(13일) 두 번에 걸쳐서 그 내용을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 차장님 '빙의'하면 보고서 나왔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 당시에 자신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여러 문건들에 대해, "평소 (내가) 사용하는 워딩으로 쓴 게 아니다", "임종헌 차장에게 빙의"해서 쓴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임종헌이 불러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썼다"는 판사 증인들의 증언은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빙의'라는 건 확실히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보이는데요. 그가 임 전 차장의 내심과 생각을 능숙하게 파악했던 사실은 실제 여러 증언에서 확인됐습니다.

- 검사: 임종헌 차장이 이 보고서(2016년 2월 24일자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방안') 작성을 지시한 이유는 뭐죠?
- 증인: … 아마 근데 송○○ 판사님만 글을 올리고 끝난 게 아니라 다른 판사님들도 이제 연이어서 글을 올리시니까, 임종헌 차장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이게 어떤 계획이 좀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법행정위원회에, 임종헌 차장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문구로는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 (후략)
- 검사: 이 보고서 5쪽을 보면, …(중략)… 여기서 "핵심그룹의 조직적 활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 증인: 엄밀하게 정리하기가 좀... 임종헌 차장님 생각에는 같은 정책이라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한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님께서 하시는 정책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당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임종헌 차장님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현 대법원장께서 하시는 정책은 전부 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라고... (후략)

김민수 부장판사가 2016년 2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도입부에 사법행정위원회 제도에 대한 특정 판사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김민수 부장판사가 2016년 2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도입부에 사법행정위원회 제도에 대한 특정 판사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넣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도 말했습니다.

- 검사: 이 보고서 6쪽을 보면 …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출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목적·의도가 있는 사람이 선출되는 결과가 우려됨" "특정 소수 세력이 위원회 장악할 우려가 있음"이라고 기재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특정 소수 세력"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 증인: … 일단 기존의 다른 보고서가 하나 있는 것을, 내용이 임종헌 차장께서 좋아하실 만한 내용이 있어서 복사해서 붙인 내용입니다. (후략)

빙의라는 비법(?)덕에 김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원하는 보고서를 '찰떡'같이 만들어 왔던 걸로 보입니다. 이렇게 "전문분야연구회 구조 개편 방안",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 "차성안 판사 시사인 칼럼 투고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 등 민감한 대외비 문건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2. 이게 판사가 쓴 글이라니...

김 부장판사가 쓴 문건 중에는 특히 판사가 썼다고 보기에는 다소 믿기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2017년 3월 작성된 '170320 김민수 자료2.hwp' 문건이 대표적입니다. 김 부장판사는 2017년 2월 행정처를 떠난 직후 임 전 차장에게 문건 작성 지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탄희 판사 사직서에 대한 보도가 나온 뒤 '인사모 와해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임 전 차장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겁니다.

- 증인: … 당시에 제가 그걸 작성한 이유가 임종헌 차장님께서 상당히 억울함을 호소하셨고 도와달라 하셔서, 임종헌 차장님께서 법원 내부 진상조사와 관련한 답변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자료를 좀 만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행정처에 근무할 때 항상 차장님, 처장님, 실장님들의 대국회 답변 만들어드리는 것이 주된 저희의 업무였기 때문에, 행정처 나온 지도 얼마 안돼서 그런 관점에서 임종헌 차장님께서 답변하실 수 있는 답변 자료를 만들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김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부탁을 받고 2017년 3월 보고한 170320 김민수 자료2.hwp 문건의 도입부. 제목이 없고, 기사체로 작성된 문장도 보인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법정 스크린에 잠시 띄워진 내용을 기자가 받아적은 것으로, 일부 부정확한 부분은 생략했다. 김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부탁을 받고 2017년 3월 보고한 170320 김민수 자료2.hwp 문건의 도입부. 제목이 없고, 기사체로 작성된 문장도 보인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법정 스크린에 잠시 띄워진 내용을 기자가 받아적은 것으로, 일부 부정확한 부분은 생략했다.


이 문건에는 "연구회 활동에 당부를 검토한 적은 있으나 이를 넘어서 연구회 활동을 축소하려고 한다는 등의 기사는 근거없는 억측이고 추측에 불과하다" "이미 한 개 연구회에 가입된 법관에 대해 연구회 중복가입이라는 혜택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학문적 결사의 자유를 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등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김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임종헌 차장님의 입장에서 최대한 임종헌 차장님이 방어하시고 답변하실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글을 쓰면서 가상의 법원 관계자의 말을 꾸며내기도 했습니다.

- 검사: 이 문건의 15쪽을 보면 "인사모 활동을 보고 한 법원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사모 활동의 정당성을 두고 또 다른 법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쟁점에 대한 법원행정처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결과는 아래와 같다"라는 식으로 마치 언론 기사, 인터뷰 형식으로 작성됐는데 그 이유는 뭐죠?
- 증인: 임종헌 차장님이 언론에 이거를 줄 생각도 좀 하고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렇게 좀 작성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밖에도 김 부장판사는 '정운호 사건 관련 대응방안'(2016.4.29.)이라는 문건을 작성하면서는, 당시 사건 관련자인 최유정 변호사에 대해 "특유의 감성적 성격으로 현재 정상적인 상황 판단이 어려운 지경이라는 평가(실어증에 걸렸다는 소문)"이라는, 소위 '정보지'에서나 볼 법한 문구를 넣기도 했습니다.

#3. '빙의' 보고서의 최종 수신처는?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시종일관 집중했던 문제 중 하나는 김 부장판사의 '빙의' 보고서들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냐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문건 작성의 1차 지시자인 임종헌 전 차장과 양승태·박병대·고영한 피고인이 범행을 공모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문제의 문건들을 받아봤다고 인정된다면, 공모관계를 입증하는 데 좀더 유리해질 겁니다.


김 부장판사는 문제의 보고서들이 법원행정처장이나 대법원장에게 실제 보고가 됐는지, 그 사실관계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기본적으로 "윗분들"에게 해당 문건들이 보고될 거라고 생각하고 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증인: 당시의 제 생각은 임종헌 차장님이 임종헌 차장님보다 상급자에게 보고를 드리기 위해서... 저를 포함한 기획조정실... 아니 제 보고서만 얘기하는 거니까, 저에 대해서 지시를 한다고 당시 생각을 했고요. 차성안 판사 보고서, 첫 번째 쓴 보고서 정도는 내용이 너무 좀 러프해서 그거는 보고를 안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봤지만, 나머지 보고서는... 당시의 저는 임종헌 차장님이 윗분들께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종헌 차장님의 생각을 풍부하게 문서화시켜드린다는 생각으로... 그 목적은 윗분들께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다고 생각하고 작성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고영한) 처장님이 (정운호 사건 대응방안 문건을) 당연히 보고 받았습니다. 그것을 보고받지 않으면 처장님이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말하는 등, 당시 경험에 비춰볼 때 문건들이 윗선에 보고됐다고 판단하는 게 상식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법정에서도 이런 입장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 검사: … 임종헌 차장이 "대법원장이 이런 말 했으니까 여기에 대해서 검토하고, 그래서 이것을 대법원장에게 다시 보고한다"는 그런 취지로 이야기를 한 것입니까? (후략)
- 증인: "내가 이걸 대법원장님께 보고할 거니까 잘 써와라"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는데... 저는 그때 당연히 차장님이 대법원장님께 보고를 드리려고 저에게 지시한다고 저는 당연히 생각했고요, 그래서 열심히 작성했습니다.


동료 판사에게 전해들은 것이긴 하지만, 임 전 차장이 "보고서를 대법원장님께 보고했다"는 말을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 검사: 증인이 박상언 심의관한테 당시 들었던 얘기를 기억해보면, 임종헌이 "양승태에게 (전문분야 연구회 개선방안 문건을) 보고했다"라고 박상언에게 얘기한 걸, 증인이 박상언 심의관으로부터 얘기 들었다는 것입니까?
- 증인: 네. 저만 들은 건 아니고요, 기조실 심의관 전원이 들었습니다.

피고인들 입장에선 불리한 증언이 계속 나온 셈인데, 이에 변호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 어느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던 김 부장판사의 증인신문 내용은, 내일(13일)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⑧ 임종헌 ‘빙의’해 보고서 쓴 판사…“당연히 양승태 보고용이라 생각”
    • 입력 2019-08-12 06:05:07
    • 수정2019-08-12 08:28:31
    취재K
●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재판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여덟 번째 순서로, 7월 19일과 8월 5일 이틀에 걸쳐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건의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2기·전 법원행정처 기획제1·2심의관)의 증언 내용을 살펴봅니다.

현재 경남 마산에서 근무 중인 김 부장판사는 서울에서 열리는 재판에 두 번이나 불려나와 총 16시간(점심·저녁식사 시간 제외) 동안 증인석을 지켰습니다. 사법농단 수사 단계에서 검찰에 10번 넘게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증인신문 전 진정성립 절차(증인에 대한 검찰 신문조서와 증인이 작성에 관여한 증거 문서 등이 타인에 의해 위조·변조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절차)에만 43분이 걸렸습니다. 그만큼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한 '핵심' 증인이라는 뜻이겠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아 여러 건의 행정처 대외비 문건을 작성한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상급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의 혐의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이른바 '판사 뒷조사 문건'을 작성해 법관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감봉 4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김 부장판사의 증언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오늘(12일)과 내일(13일) 두 번에 걸쳐서 그 내용을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민수 부장판사가 지난해 8월 13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1. 차장님 '빙의'하면 보고서 나왔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 당시에 자신이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여러 문건들에 대해, "평소 (내가) 사용하는 워딩으로 쓴 게 아니다", "임종헌 차장에게 빙의"해서 쓴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임종헌이 불러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썼다"는 판사 증인들의 증언은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빙의'라는 건 확실히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보이는데요. 그가 임 전 차장의 내심과 생각을 능숙하게 파악했던 사실은 실제 여러 증언에서 확인됐습니다.

- 검사: 임종헌 차장이 이 보고서(2016년 2월 24일자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방안') 작성을 지시한 이유는 뭐죠?
- 증인: … 아마 근데 송○○ 판사님만 글을 올리고 끝난 게 아니라 다른 판사님들도 이제 연이어서 글을 올리시니까, 임종헌 차장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이게 어떤 계획이 좀 있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법행정위원회에, 임종헌 차장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문구로는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아니냐. (후략)
- 검사: 이 보고서 5쪽을 보면, …(중략)… 여기서 "핵심그룹의 조직적 활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 증인: 엄밀하게 정리하기가 좀... 임종헌 차장님 생각에는 같은 정책이라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한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님께서 하시는 정책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당시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임종헌 차장님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현 대법원장께서 하시는 정책은 전부 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라고... (후략)

김민수 부장판사가 2016년 2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도입부에 사법행정위원회 제도에 대한 특정 판사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김민수 부장판사가 2016년 2월 작성한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 도입부에 사법행정위원회 제도에 대한 특정 판사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넣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도 말했습니다.

- 검사: 이 보고서 6쪽을 보면 … "가장 적합한 사람이 선출되는 게 아니라 특별한 목적·의도가 있는 사람이 선출되는 결과가 우려됨" "특정 소수 세력이 위원회 장악할 우려가 있음"이라고 기재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특정 소수 세력"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 증인: … 일단 기존의 다른 보고서가 하나 있는 것을, 내용이 임종헌 차장께서 좋아하실 만한 내용이 있어서 복사해서 붙인 내용입니다. (후략)

빙의라는 비법(?)덕에 김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원하는 보고서를 '찰떡'같이 만들어 왔던 걸로 보입니다. 이렇게 "전문분야연구회 구조 개편 방안",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검토", "차성안 판사 시사인 칼럼 투고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 등 민감한 대외비 문건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2. 이게 판사가 쓴 글이라니...

김 부장판사가 쓴 문건 중에는 특히 판사가 썼다고 보기에는 다소 믿기지 않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2017년 3월 작성된 '170320 김민수 자료2.hwp' 문건이 대표적입니다. 김 부장판사는 2017년 2월 행정처를 떠난 직후 임 전 차장에게 문건 작성 지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탄희 판사 사직서에 대한 보도가 나온 뒤 '인사모 와해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임 전 차장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겁니다.

- 증인: … 당시에 제가 그걸 작성한 이유가 임종헌 차장님께서 상당히 억울함을 호소하셨고 도와달라 하셔서, 임종헌 차장님께서 법원 내부 진상조사와 관련한 답변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자료를 좀 만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행정처에 근무할 때 항상 차장님, 처장님, 실장님들의 대국회 답변 만들어드리는 것이 주된 저희의 업무였기 때문에, 행정처 나온 지도 얼마 안돼서 그런 관점에서 임종헌 차장님께서 답변하실 수 있는 답변 자료를 만들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김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부탁을 받고 2017년 3월 보고한 170320 김민수 자료2.hwp 문건의 도입부. 제목이 없고, 기사체로 작성된 문장도 보인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법정 스크린에 잠시 띄워진 내용을 기자가 받아적은 것으로, 일부 부정확한 부분은 생략했다. 김 부장판사가 임 전 차장의 부탁을 받고 2017년 3월 보고한 170320 김민수 자료2.hwp 문건의 도입부. 제목이 없고, 기사체로 작성된 문장도 보인다. 증인신문 과정에서 법정 스크린에 잠시 띄워진 내용을 기자가 받아적은 것으로, 일부 부정확한 부분은 생략했다.


이 문건에는 "연구회 활동에 당부를 검토한 적은 있으나 이를 넘어서 연구회 활동을 축소하려고 한다는 등의 기사는 근거없는 억측이고 추측에 불과하다" "이미 한 개 연구회에 가입된 법관에 대해 연구회 중복가입이라는 혜택을 주지 않았다고 해서 학문적 결사의 자유를 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등의 문장이 등장합니다. 김 부장판사는 이에 대해 "임종헌 차장님의 입장에서 최대한 임종헌 차장님이 방어하시고 답변하실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글을 쓰면서 가상의 법원 관계자의 말을 꾸며내기도 했습니다.

- 검사: 이 문건의 15쪽을 보면 "인사모 활동을 보고 한 법원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사모 활동의 정당성을 두고 또 다른 법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쟁점에 대한 법원행정처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결과는 아래와 같다"라는 식으로 마치 언론 기사, 인터뷰 형식으로 작성됐는데 그 이유는 뭐죠?
- 증인: 임종헌 차장님이 언론에 이거를 줄 생각도 좀 하고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렇게 좀 작성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밖에도 김 부장판사는 '정운호 사건 관련 대응방안'(2016.4.29.)이라는 문건을 작성하면서는, 당시 사건 관련자인 최유정 변호사에 대해 "특유의 감성적 성격으로 현재 정상적인 상황 판단이 어려운 지경이라는 평가(실어증에 걸렸다는 소문)"이라는, 소위 '정보지'에서나 볼 법한 문구를 넣기도 했습니다.

#3. '빙의' 보고서의 최종 수신처는?

재판에서 검찰과 변호인이 시종일관 집중했던 문제 중 하나는 김 부장판사의 '빙의' 보고서들이 어느 선까지 보고됐냐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은 문건 작성의 1차 지시자인 임종헌 전 차장과 양승태·박병대·고영한 피고인이 범행을 공모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문제의 문건들을 받아봤다고 인정된다면, 공모관계를 입증하는 데 좀더 유리해질 겁니다.


김 부장판사는 문제의 보고서들이 법원행정처장이나 대법원장에게 실제 보고가 됐는지, 그 사실관계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기본적으로 "윗분들"에게 해당 문건들이 보고될 거라고 생각하고 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증인: 당시의 제 생각은 임종헌 차장님이 임종헌 차장님보다 상급자에게 보고를 드리기 위해서... 저를 포함한 기획조정실... 아니 제 보고서만 얘기하는 거니까, 저에 대해서 지시를 한다고 당시 생각을 했고요. 차성안 판사 보고서, 첫 번째 쓴 보고서 정도는 내용이 너무 좀 러프해서 그거는 보고를 안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봤지만, 나머지 보고서는... 당시의 저는 임종헌 차장님이 윗분들께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종헌 차장님의 생각을 풍부하게 문서화시켜드린다는 생각으로... 그 목적은 윗분들께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한다고 생각하고 작성했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고영한) 처장님이 (정운호 사건 대응방안 문건을) 당연히 보고 받았습니다. 그것을 보고받지 않으면 처장님이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말하는 등, 당시 경험에 비춰볼 때 문건들이 윗선에 보고됐다고 판단하는 게 상식적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법정에서도 이런 입장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 검사: … 임종헌 차장이 "대법원장이 이런 말 했으니까 여기에 대해서 검토하고, 그래서 이것을 대법원장에게 다시 보고한다"는 그런 취지로 이야기를 한 것입니까? (후략)
- 증인: "내가 이걸 대법원장님께 보고할 거니까 잘 써와라"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는데... 저는 그때 당연히 차장님이 대법원장님께 보고를 드리려고 저에게 지시한다고 저는 당연히 생각했고요, 그래서 열심히 작성했습니다.


동료 판사에게 전해들은 것이긴 하지만, 임 전 차장이 "보고서를 대법원장님께 보고했다"는 말을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 검사: 증인이 박상언 심의관한테 당시 들었던 얘기를 기억해보면, 임종헌이 "양승태에게 (전문분야 연구회 개선방안 문건을) 보고했다"라고 박상언에게 얘기한 걸, 증인이 박상언 심의관으로부터 얘기 들었다는 것입니까?
- 증인: 네. 저만 들은 건 아니고요, 기조실 심의관 전원이 들었습니다.

피고인들 입장에선 불리한 증언이 계속 나온 셈인데, 이에 변호인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그 어느때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던 김 부장판사의 증인신문 내용은, 내일(13일)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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