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암벽 전문 등반가였던 고미영 대장은 불과 2년여 만에 히말라야의 11개 고봉을 발 아래 둔 국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주자였습니다.
그녀의 생사 확인이 최우선이지만, 일각에선 무리한 경쟁이 이번 참사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황현택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녹취> "예, 출발합니다. 화이팅!"
해발 8126미터, 히말라야의 거대한 설빙을 발 아래 둔 기쁨도 잠시, 캠프에 사고 소식이 전해집니다.
<녹취>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각오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내일 아침에 날 밝는대로 헬기 수색을 의뢰하는 게..."
대원들은 할 말을 잊습니다.
<녹취> "찾았어? 찾았어요? 어떻게? 있어?"
'신들의 정원'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8천 미터급 봉우리는 모두 14개.
지금까지 한국인 3명을 포함해 모두 15명이 '세계의 지붕'에 올랐지만,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전인미답의 기록에 도전했던 게 고미영 씨였습니다.
지난 2006년 10월, 초오유를 처음 정복한 뒤 낭가파르밧까지 11개 봉우리에 서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년 9개월.
<녹취> 고미영(코오롱스포츠/지난 5월, 마칼루 등정 당시) : "적응이 다 돼서 인지 아무튼 잘 왔습니다."
고 씨의 이런 무서운 기세는 앞서 '세계 최초' 타이틀에 도전했던 선배 산악인 오은선 씨와의 속도전에 불을 붙였습니다.
<인터뷰> 고미영(지난 3월) : "서로한테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목표는 같은 거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가니까..."
실제 두 사람은 올해 안에 남은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모두 공략할 계획이었습니다.
<인터뷰> 오은선(블랙야크/지난 5월) : "하고 싶은 마음을 히말라야 신들이 받아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목표를 잡았습니다."
<녹취> 고미영(낭가파르밧 정복 후) : "(한 해) 8000미터 (봉우리) 5개 올라간 박영석 선배님이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는데요. 저는 그 이상 기록을 세워보고 싶어요."
하지만 산악계에선 단기간에 여러 봉우리를 잇따라 공략하는 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녹취> 허영호(산악인) : "1년에 3개, 4개 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남자들도. 체력에 무리가 가니까... 그걸 본인이 감당 못하니까 실족한 거거든요."
고 씨가 실족한 낭가파르밧은 이미 산악인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가 '비극의 산'으로 불리는 곳.
특히 내려올 때 사고가 많았습니다.
하산할 때는 보통 10시간 이상의 정상 공격으로 체력이 거의 바닥나는 데다 무의식 중에 긴장까지 풀리는 탓입니다.
<녹취> 고미영(낭가파르밧 정복 후) : "조금 힘들게 정상에 등정했고요, 내려오는 도중에도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정상 부근에서 설독을 파서 우리가 거기서 자고 가야 되는 게 아니냐..."
더구나 사고가 난 구간은 평소 눈사태와 낙석 때문에 유일하게 고정 로프가 깔리지 않은 칼날 능선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신이 허락한 품에 안기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고미영 대장.
미완의 목표를 남긴 채 결국 신의 품 안에 몸을 누였습니다.
KBS 뉴스 황현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