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남 1녀 마을’ 잔리촌의 비밀

입력 2006.03.31 (13:21) 수정 2006.03.3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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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중국 남부 산간 오지에 이른바 1남 1녀 촌이 있습니다. 모든 가정마다 자녀가 1남 1녀라는 얘깁니다만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이런 선택 출산을 수백 년 째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태아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1남 1녀 마을, 잔리촌의 비밀을 장한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꾸이저우(貴州)성 성도 꾸이양(貴陽) 에서 자동차로 아홉 시간...안개낀 산길을 곡예하듯 달려야 도착하는 곳.

중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오지마을 잔리촌입니다. 소수민족 '동족' 사람들의 천년 왕국..

물레로 실을 잣고 베틀로 베를 짜는 등 옛 방식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았을 땐 마침 음력 2월에 치르는 민속행사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미혼남녀는 모두 공연에 참여해야 하기에 집집마다 자녀들 꾸미기에 분주합니다. 깨끗한 축제 복장으로 차려입은 다음 아들은 두건, 딸은 은색관을 착용합니다. 18살 누나와 15살 남동생 남매를 둔 우파밍 부부의 얼굴은 흡족해 보입니다.

<인터뷰>우파밍 (잔리촌 주민): "아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딸은 어머니를 도와 가사를 잘 꾸려가기를 바랍니다. "

잘 차린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잔치 마당인 '탑 광장'으로 집결합니다. 가족마다 아들딸이 각각 한명씩입니다.

곳곳에서 오누이,남매들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돼지를 잡고 술도 마련한 다음 축제가 시작됩니다. 마을 장로 12명이 제주가 돼 천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조상들의 공덕을 기립니다. 이어 미혼의 청춘 남녀들이 원형 춤을 추며 옛 노래를 부릅니다.

6절로 된 노랫말은 도둑질과 노름, 벌목을 금하는 등의 마을 법규 여섯 조항을 담았습니다. 가장 독특하기는 제1절.

<자식은 많이 낳아선 안 되고 1남1녀 두 자녀가 가장 좋은 법이다. 많이 낳은 자의 딸은 며느리로 들이지 않아야 하고 많이 낳은 자의 아들에게는 시집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노랫말처럼 잔리촌 사람들은 수 백 년 전부터 두 자녀만 낳았습니다. 어느 해,인구급증으로 생활이 곤란하고 범죄와 다툼이 늘자 마을 장로회의에서 자녀를 2명만 두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가족계획 덕분에 잔리촌은 수 백 년간 160호,770명 전후의 적정 인구를 유지해 왔습니다.

<인터뷰>(우원바오 (잔리촌 장로): "인구를 통제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고 분쟁이 생깁니다. 한정된 땅에서는 많은 인구를 감당할 수 없는 법입니다."

자녀가 둘이란 것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두 자녀의 성별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자녀가 없거나 아직 한 명 뿐인 경우를 제외한 잔리촌의 모든 가족은 1남1녀 입니다.

<인터뷰>우원첸 (잔리촌 담당 공무원): "(우원첸)아들만 둘이거나 딸만 둘인 집은 전혀 없습니다. (전혀 없다고요? 단 한집도 없나요?) 없습니다."

집집마다 아들딸 한명씩 낳아 키우는 만큼 남아선호나 남녀차별이란 없습니다.

<인터뷰>우부저우 (잔리촌 주민): "아들도 좋고 딸도 좋습니다. 모두 같을 뿐, 차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두 자녀의 성별을 달리할 수 있을까? 첫 아이는 자연 출산하지만 둘째의 성별은 첫째와 반대로 조절한다는 얘깁니다. 임신 초기에 꽃을 바꾼다는 뜻을 지닌 '환화초'를 복용해 태아의 성별을 선택한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뷰>우나이저우 (잔리촌 주민): "환화초 끓인 물을 하루 3번 마십니다. 하루에 1병씩,사흘동안 3병을 마십니다."

아들을 원할 때와 딸을 희망할 경우 약초의 성분이 서로 다릅니다. 올해 1월 아들을 출산한 우비윈은 남아용 환화초를 마셨습니다.

<인터뷰>우비윈 (잔리촌 주민): "환화초 물을 마셨기에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일 줄 알았습니다."

마을에는 환화초 책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여자 약사, 임산부가 생기면 산속으로 들어가 환화초를 채취해 제공합니다. 올해 여든 두 살의 노약사는 취재진의 방문은 허용했지만 약제실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녹취>보조 약사: "안됩니다. 들어오지 못합니다."

환화의 비밀은 약사와 보조 약사 등 소수의 여성 외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약사는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인터뷰>우나이인자오 (잔리촌 약사): "(환화초는)임신 3개월 내에 복용해야 약효가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 효과가 없습니다. 딸을 원할 경우엔 가로 뿌리를 복용하고 아들을 원할 때는 세로 뿌리를 먹습니다."

야산에 올라봤지만 환화가 어떤 풀인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환화초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잎이 뾰족한 덩굴식물로 알려져 있을 뿐 나머지 단서는 철저히 감춰져 있습니다. 임신 3개월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상식에 비춰 선뜻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 자녀를 가진 거의 모든 가정이 1남1녀인 만큼 이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또 과장됐다고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잔리촌을 관할하는 총장현을 찾아 가족부를 열람해 봤습니다. 정부 문서를 외국 취재진에 공개하길 꺼려해 무작위로 다섯(5)가구만 선정해 봤지만 결과는 모두 1남1녀 였습니다. 잔리촌에 출산의 비밀이 있음을 행정당국이 간파한 것은 이제 10년 남짓, 아직도 그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양이보 (총장현 인구.가족계획국장): "(잔리촌 사람들은)출산의 비법을 외부에는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밀을 알아내 사회에 공헌하려 했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태아 성별을 선택한다는 잔리촌의 주장을 현대 의학계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베이징의 한 산부인과 병원... 성별은 수정되는 순간 결정되는 만큼 임신 뒤 바꾸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두 자녀의 성별이 달라지는 이유는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천년 동안의 근친결혼에 따른 유전자 변형 가능성을 추정할 뿐입니다.

<인터뷰>천펑린 (신징안타이 산부인과 원장): "(잔리촌 사람들의) X,Y 염색체의 비율은 아주 균형적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유전 정보가 대대로 전해지면서 1남1녀를 낳을 가능성을 추정해 봅니다."

성은 임신과 동시에 결정된다는 상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1남1녀 마을 잔리촌... 외부와 단절된 산간 오지에서 수백 년 간 간직해온 선택출산의 비밀은 현대 의학계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 태아 성감별을 통한 선택 출산의 비윤리성을 생각하면 잔리촌의 1남 1녀 비결은 인류가 공유할 만한 비결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과학적인 검증이 선행돼야겠죠?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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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1남 1녀 마을’ 잔리촌의 비밀
    • 입력 2006-03-31 10:32:47
    • 수정2006-03-31 15:34:5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중국 남부 산간 오지에 이른바 1남 1녀 촌이 있습니다. 모든 가정마다 자녀가 1남 1녀라는 얘깁니다만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이런 선택 출산을 수백 년 째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태아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1남 1녀 마을, 잔리촌의 비밀을 장한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꾸이저우(貴州)성 성도 꾸이양(貴陽) 에서 자동차로 아홉 시간...안개낀 산길을 곡예하듯 달려야 도착하는 곳. 중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오지마을 잔리촌입니다. 소수민족 '동족' 사람들의 천년 왕국.. 물레로 실을 잣고 베틀로 베를 짜는 등 옛 방식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찾았을 땐 마침 음력 2월에 치르는 민속행사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미혼남녀는 모두 공연에 참여해야 하기에 집집마다 자녀들 꾸미기에 분주합니다. 깨끗한 축제 복장으로 차려입은 다음 아들은 두건, 딸은 은색관을 착용합니다. 18살 누나와 15살 남동생 남매를 둔 우파밍 부부의 얼굴은 흡족해 보입니다. <인터뷰>우파밍 (잔리촌 주민): "아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딸은 어머니를 도와 가사를 잘 꾸려가기를 바랍니다. " 잘 차린 자녀들은 부모를 따라 잔치 마당인 '탑 광장'으로 집결합니다. 가족마다 아들딸이 각각 한명씩입니다. 곳곳에서 오누이,남매들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돼지를 잡고 술도 마련한 다음 축제가 시작됩니다. 마을 장로 12명이 제주가 돼 천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조상들의 공덕을 기립니다. 이어 미혼의 청춘 남녀들이 원형 춤을 추며 옛 노래를 부릅니다. 6절로 된 노랫말은 도둑질과 노름, 벌목을 금하는 등의 마을 법규 여섯 조항을 담았습니다. 가장 독특하기는 제1절. <자식은 많이 낳아선 안 되고 1남1녀 두 자녀가 가장 좋은 법이다. 많이 낳은 자의 딸은 며느리로 들이지 않아야 하고 많이 낳은 자의 아들에게는 시집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노랫말처럼 잔리촌 사람들은 수 백 년 전부터 두 자녀만 낳았습니다. 어느 해,인구급증으로 생활이 곤란하고 범죄와 다툼이 늘자 마을 장로회의에서 자녀를 2명만 두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가족계획 덕분에 잔리촌은 수 백 년간 160호,770명 전후의 적정 인구를 유지해 왔습니다. <인터뷰>(우원바오 (잔리촌 장로): "인구를 통제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고 분쟁이 생깁니다. 한정된 땅에서는 많은 인구를 감당할 수 없는 법입니다." 자녀가 둘이란 것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두 자녀의 성별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자녀가 없거나 아직 한 명 뿐인 경우를 제외한 잔리촌의 모든 가족은 1남1녀 입니다. <인터뷰>우원첸 (잔리촌 담당 공무원): "(우원첸)아들만 둘이거나 딸만 둘인 집은 전혀 없습니다. (전혀 없다고요? 단 한집도 없나요?) 없습니다." 집집마다 아들딸 한명씩 낳아 키우는 만큼 남아선호나 남녀차별이란 없습니다. <인터뷰>우부저우 (잔리촌 주민): "아들도 좋고 딸도 좋습니다. 모두 같을 뿐, 차이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두 자녀의 성별을 달리할 수 있을까? 첫 아이는 자연 출산하지만 둘째의 성별은 첫째와 반대로 조절한다는 얘깁니다. 임신 초기에 꽃을 바꾼다는 뜻을 지닌 '환화초'를 복용해 태아의 성별을 선택한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뷰>우나이저우 (잔리촌 주민): "환화초 끓인 물을 하루 3번 마십니다. 하루에 1병씩,사흘동안 3병을 마십니다." 아들을 원할 때와 딸을 희망할 경우 약초의 성분이 서로 다릅니다. 올해 1월 아들을 출산한 우비윈은 남아용 환화초를 마셨습니다. <인터뷰>우비윈 (잔리촌 주민): "환화초 물을 마셨기에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일 줄 알았습니다." 마을에는 환화초 책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여자 약사, 임산부가 생기면 산속으로 들어가 환화초를 채취해 제공합니다. 올해 여든 두 살의 노약사는 취재진의 방문은 허용했지만 약제실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녹취>보조 약사: "안됩니다. 들어오지 못합니다." 환화의 비밀은 약사와 보조 약사 등 소수의 여성 외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 약사는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인터뷰>우나이인자오 (잔리촌 약사): "(환화초는)임신 3개월 내에 복용해야 약효가 있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 효과가 없습니다. 딸을 원할 경우엔 가로 뿌리를 복용하고 아들을 원할 때는 세로 뿌리를 먹습니다." 야산에 올라봤지만 환화가 어떤 풀인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환화초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잎이 뾰족한 덩굴식물로 알려져 있을 뿐 나머지 단서는 철저히 감춰져 있습니다. 임신 3개월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상식에 비춰 선뜻 믿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 자녀를 가진 거의 모든 가정이 1남1녀인 만큼 이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또 과장됐다고 치부할 수도 없습니다. 잔리촌을 관할하는 총장현을 찾아 가족부를 열람해 봤습니다. 정부 문서를 외국 취재진에 공개하길 꺼려해 무작위로 다섯(5)가구만 선정해 봤지만 결과는 모두 1남1녀 였습니다. 잔리촌에 출산의 비밀이 있음을 행정당국이 간파한 것은 이제 10년 남짓, 아직도 그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양이보 (총장현 인구.가족계획국장): "(잔리촌 사람들은)출산의 비법을 외부에는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밀을 알아내 사회에 공헌하려 했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태아 성별을 선택한다는 잔리촌의 주장을 현대 의학계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베이징의 한 산부인과 병원... 성별은 수정되는 순간 결정되는 만큼 임신 뒤 바꾸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두 자녀의 성별이 달라지는 이유는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천년 동안의 근친결혼에 따른 유전자 변형 가능성을 추정할 뿐입니다. <인터뷰>천펑린 (신징안타이 산부인과 원장): "(잔리촌 사람들의) X,Y 염색체의 비율은 아주 균형적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유전 정보가 대대로 전해지면서 1남1녀를 낳을 가능성을 추정해 봅니다." 성은 임신과 동시에 결정된다는 상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1남1녀 마을 잔리촌... 외부와 단절된 산간 오지에서 수백 년 간 간직해온 선택출산의 비밀은 현대 의학계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 태아 성감별을 통한 선택 출산의 비윤리성을 생각하면 잔리촌의 1남 1녀 비결은 인류가 공유할 만한 비결인 것 같습니다. 물론 과학적인 검증이 선행돼야겠죠?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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