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꽃가루 알레르기 ‘비상’

입력 2006.04.28 (11:18) 수정 2006.04.2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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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인들이 봄마다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민병으로 불리는 화분증, 즉 꽃가루 병 때문인데요.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이 화분증 퇴치를 위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백출하고 있습니다.

여름,가을이면 태풍, 겨울이면 폭설, 사계절 가리지 않는 지진.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는 일본에서 그래도 봄은 괜찮은 계절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봄이면 나타나는 공포의 대상 꽃가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민병이라고 불리는 꽃가루병 즉 '화분증'과 이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현상 등을 도쿄 양지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봄이 무르익는 도쿄의 거리... 봄감기 유행 경보도 없는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습니다. 봄이면 나타나는 '화분증'이란 질환 때문입니다.

<인터뷰>시민 : "눈이 가렵구요, 한달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인터뷰>시민 : "4월말까지 참으면 되겠지만 싫습니다."

일본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걸려 있어 국민병이라고도 불리는 화분증. 쉴 새 없는 콧물과 재채기, 기침 등이 특징이고,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입원도 합니다. 사람뿐이 아닙니다.

도쿄 인근 군마현의 동물원. 비탄에 잠긴 듯한 이 일본원숭이는 사실 화분증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참을 수 없이 눈이 가렵고,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재채기로 원숭이들이 하루 종일 고생입니다.

<인터뷰>사육사 :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꽃가루 날리는 계절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이 화분증의 원인은 일본 본토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삼나뭅니다. 일본 인공조림면적의 40%를 넘게 차지한다는 삼나무숲. 어디 산 불이 나지 않았나 착각하게 만드는 뽀얀 연기는, 실은 삼나무 꽃가루입니다.

삼나무 꽃가루는 봄에 본격적으로 비산해, 대도시로 날아듭니다. 화분증은 꽃가루가 코 점막 등에 붙으면서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인데, 대도시 공해물질과 결합하면 더욱 심한 증상을 일으킵니다.

꽃가루는 이처럼 맑고 바람이 있는 날 더 많이 발생합니다.

봄 나들이에 딱 좋은 날씨가 화분증 환자에게 밖에 나가기 제일 싫은 날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가루를 들이 마시지 않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사는 후지바라씨는 30년 동안 화분증을 앓아 왔습니다.

꽃가루라면 진저리를 치는 후지바라씨는 집에 들어가기전 항상 몸에 묻은 꽃가루를 털어냅니다.

집에서는 화분증에 좋다는 차를 가족들과 함께 날마다 마십니다. 후지바라씨 부인은 집안에 가라앉은 꽃가루를 없애려고 하루 2번 하는 바닥 청소도 모자라 접착 테이프까지 꺼내듭니다.

이불에 붙은 꽃가루 제거엔 강력 접착 테이프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인터뷰>후지바라 다카시(가나가와현) : "귀찮지만 테이프로 하면 금방 끝납니다. 하지 않으면 눈이 가려워서 밤에 깨 결국 안약을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잠자리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후지바라씨. 좀 유난스럽지 않나 싶지만, 후지바라씨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습니다.

<인터뷰>후지바라 다카시(가나가와현) : "(이렇게 해서)증상이 가벼우면 올해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꽃가루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화분증 환자들은 일본 백화점과 약국 등에서 꽃가루와의 전쟁에 쓸 무기들을 사들입니다. 마스크와 모자, 꽃가루 방지 안경 등은 기본 장빕니다.

코 크기별로 다양하게 규격을 갖춘 코 마스크도 올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도쿄 한즈 담당자 : "어떻게 하면 체내와 방안에 꽃가루를 들여 놓지 않을까를 모두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꽃가루에 민감한 사람들은 화분 예보 서비스도 이용합니다. 기상예보업체와 제약회사가 함께 만든 이 인터넷 사이트는 꽃가루 비산 정보를 시간별로 예보합니다.

4평방킬로미터 구역 단위로 꽃가루 비산량을 예보하니까, 사람들이 외출 시간을 정하는데 참고가 됩니다.

이 서비스는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제공돼, 일단 밖에 나간 사람들도 꽃가루가 심한 지역을 피해갈 수도 있습니다.

화분증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자, 최근엔 화분증으로부터 입주자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이런 아파트도 등장했습니다.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이 아파트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먼지 제거기입니다. 20초만 서 있으면 꽃가루 90% 이상이 떨어져 나간다는 게 아파트 공급업체의 설명입니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복도엔 문이 2중,3중으로 설치돼 있고, 실내 공기 흡입구 모두엔 필터가 들어가 있습니다. 물도 잘 통과하지 못하는 대형 필터를 방충망에 덧대, 꽃가루를 차단합니다.

<인터뷰>후지오카 유스케(꽃가루 차단 아파트 건설 업체) : "기획부에서 무슨 집을 만들까 생각했던 사람이 화분증 환자였습니다. 사장도 화분증이어서 이런 아파트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른바 '화분증 비즈니스'기회를 십분 활용하는 것은 숙박업계와 관광업계도 마찬가집니다. 도쿄에 있는 이 호텔은 로비에 먼지 제거기를 설치하는 한편, 객실에는 화분 제거 공기 청정기까지 들여 놓았습니다.

<인터뷰>호텔 담당자 : "숙박한 다음날 손님이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충분히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사들은 삼나무 꽃가루가 없는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로 가자며 경쟁적으로 기획 상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꽃가루 비즈니스'가 붐을 일으키면서 지난해 1분기의 경우 화분증 관련 소비가 전년 대비 8.4% 증가했습니다. 그렇다고 화분증이 회복하는 일본 경제에 순풍을 불어 넣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외출을 꺼려 쇼핑이나 외식 소비가 감소하는 바람에, 화분증은 오히려 지난해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0.6퍼센트 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화분증과의 전쟁... 일본인들이 봄마다 치르는 홍역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내 수많은 탈북 여성들의 인권이 인신매매로 유린되고 있습니다. 관련 당사국들이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이 그들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되고 있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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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꽃가루 알레르기 ‘비상’
    • 입력 2006-04-28 10:18:22
    • 수정2006-04-28 11:22:22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일본인들이 봄마다 큰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민병으로 불리는 화분증, 즉 꽃가루 병 때문인데요.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이 화분증 퇴치를 위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백출하고 있습니다. 여름,가을이면 태풍, 겨울이면 폭설, 사계절 가리지 않는 지진. 자연 재해가 끊이지 않는 일본에서 그래도 봄은 괜찮은 계절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봄이면 나타나는 공포의 대상 꽃가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국민병이라고 불리는 꽃가루병 즉 '화분증'과 이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현상 등을 도쿄 양지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봄이 무르익는 도쿄의 거리... 봄감기 유행 경보도 없는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습니다. 봄이면 나타나는 '화분증'이란 질환 때문입니다. <인터뷰>시민 : "눈이 가렵구요, 한달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인터뷰>시민 : "4월말까지 참으면 되겠지만 싫습니다." 일본 국민 4명 가운데 1명은 걸려 있어 국민병이라고도 불리는 화분증. 쉴 새 없는 콧물과 재채기, 기침 등이 특징이고,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입원도 합니다. 사람뿐이 아닙니다. 도쿄 인근 군마현의 동물원. 비탄에 잠긴 듯한 이 일본원숭이는 사실 화분증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참을 수 없이 눈이 가렵고,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재채기로 원숭이들이 하루 종일 고생입니다. <인터뷰>사육사 : "증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꽃가루 날리는 계절이 끝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이 화분증의 원인은 일본 본토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삼나뭅니다. 일본 인공조림면적의 40%를 넘게 차지한다는 삼나무숲. 어디 산 불이 나지 않았나 착각하게 만드는 뽀얀 연기는, 실은 삼나무 꽃가루입니다. 삼나무 꽃가루는 봄에 본격적으로 비산해, 대도시로 날아듭니다. 화분증은 꽃가루가 코 점막 등에 붙으면서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인데, 대도시 공해물질과 결합하면 더욱 심한 증상을 일으킵니다. 꽃가루는 이처럼 맑고 바람이 있는 날 더 많이 발생합니다. 봄 나들이에 딱 좋은 날씨가 화분증 환자에게 밖에 나가기 제일 싫은 날이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가루를 들이 마시지 않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사는 후지바라씨는 30년 동안 화분증을 앓아 왔습니다. 꽃가루라면 진저리를 치는 후지바라씨는 집에 들어가기전 항상 몸에 묻은 꽃가루를 털어냅니다. 집에서는 화분증에 좋다는 차를 가족들과 함께 날마다 마십니다. 후지바라씨 부인은 집안에 가라앉은 꽃가루를 없애려고 하루 2번 하는 바닥 청소도 모자라 접착 테이프까지 꺼내듭니다. 이불에 붙은 꽃가루 제거엔 강력 접착 테이프가 최고라는 것입니다. <인터뷰>후지바라 다카시(가나가와현) : "귀찮지만 테이프로 하면 금방 끝납니다. 하지 않으면 눈이 가려워서 밤에 깨 결국 안약을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잠자리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는 후지바라씨. 좀 유난스럽지 않나 싶지만, 후지바라씨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습니다. <인터뷰>후지바라 다카시(가나가와현) : "(이렇게 해서)증상이 가벼우면 올해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꽃가루와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화분증 환자들은 일본 백화점과 약국 등에서 꽃가루와의 전쟁에 쓸 무기들을 사들입니다. 마스크와 모자, 꽃가루 방지 안경 등은 기본 장빕니다. 코 크기별로 다양하게 규격을 갖춘 코 마스크도 올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도쿄 한즈 담당자 : "어떻게 하면 체내와 방안에 꽃가루를 들여 놓지 않을까를 모두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꽃가루에 민감한 사람들은 화분 예보 서비스도 이용합니다. 기상예보업체와 제약회사가 함께 만든 이 인터넷 사이트는 꽃가루 비산 정보를 시간별로 예보합니다. 4평방킬로미터 구역 단위로 꽃가루 비산량을 예보하니까, 사람들이 외출 시간을 정하는데 참고가 됩니다. 이 서비스는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제공돼, 일단 밖에 나간 사람들도 꽃가루가 심한 지역을 피해갈 수도 있습니다. 화분증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자, 최근엔 화분증으로부터 입주자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이런 아파트도 등장했습니다.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이 아파트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먼지 제거기입니다. 20초만 서 있으면 꽃가루 90% 이상이 떨어져 나간다는 게 아파트 공급업체의 설명입니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가는 복도엔 문이 2중,3중으로 설치돼 있고, 실내 공기 흡입구 모두엔 필터가 들어가 있습니다. 물도 잘 통과하지 못하는 대형 필터를 방충망에 덧대, 꽃가루를 차단합니다. <인터뷰>후지오카 유스케(꽃가루 차단 아파트 건설 업체) : "기획부에서 무슨 집을 만들까 생각했던 사람이 화분증 환자였습니다. 사장도 화분증이어서 이런 아파트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른바 '화분증 비즈니스'기회를 십분 활용하는 것은 숙박업계와 관광업계도 마찬가집니다. 도쿄에 있는 이 호텔은 로비에 먼지 제거기를 설치하는 한편, 객실에는 화분 제거 공기 청정기까지 들여 놓았습니다. <인터뷰>호텔 담당자 : "숙박한 다음날 손님이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충분히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사들은 삼나무 꽃가루가 없는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로 가자며 경쟁적으로 기획 상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꽃가루 비즈니스'가 붐을 일으키면서 지난해 1분기의 경우 화분증 관련 소비가 전년 대비 8.4% 증가했습니다. 그렇다고 화분증이 회복하는 일본 경제에 순풍을 불어 넣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외출을 꺼려 쇼핑이나 외식 소비가 감소하는 바람에, 화분증은 오히려 지난해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0.6퍼센트 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화분증과의 전쟁... 일본인들이 봄마다 치르는 홍역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내 수많은 탈북 여성들의 인권이 인신매매로 유린되고 있습니다. 관련 당사국들이 침묵하고 외면하는 사이 그들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 되고 있습니다. 특파원 현장보고 세계를 가다, 오늘 순서 여기서 마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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