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발찌 훼손·도주 속출…보완 대책 시급

입력 2010.03.11 (13:06)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사건을 계기로 전자발찌가 성범죄 예방을 위한 대안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최근 들어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강간상해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채 생활해온 윤모(28)씨가 지난달 18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20일 만인 10일 밤 경찰에 검거돼 재수용됐다.

앞서 미성년자 강제추행으로 전자발찌를 착용한 김모(40)씨도 지난해 10월 서울시내에서 이를 훼손하고 도주한 뒤 100일 넘게 도피행각을 벌이다 지난달 10일 경기도 양주에서 검거되기도 했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08년 9월 '특정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관한 법률(전자발찌법)'이 시행된 이래 지금까지 전자발찌 훼손ㆍ도주 사건은 모두 7차례로 해마다 2건꼴로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제기돼 온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성범죄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너무 쉽게 전자발찌를 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10일 검거된 윤씨는 날카로운 흉기로 불과 수분 만에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용되는 전자발찌는 비교적 유연한 우레탄 재질로 제작됐다. 이는 장기간 착용할 때의 피부 손상 문제를 최소화하고 교통사고 등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빨리 절단해 환자를 보호하려는 것인데 오히려 이것이 성범죄자들의 도주 심리를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된다.

법무부는 4억원의 추가 예산을 들여 8월부터 보다 강한 소재인 '스프링강'으로 용접된 전자발찌를 보급할 예정이지만, 이러한 도주 범행을 완전히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자발찌가 성범죄를 예방하는 만능열쇠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범죄 재발을 막는 심리적 억제 효과가 있을뿐 성범죄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끊고 도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성범죄자들이 전자발찌를 끊고 달아났을 때의 비상통보 체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자발찌가 훼손되면 발찌 안에 들어있는 센서가 작동해 즉각 서울보호관찰소의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에 신호가 전달되고, 이후 관제센터에서 경찰 112 신고센터와 범죄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보호관찰소 및 사건발생 지역 보호관찰소로 통보한다.

그러나 관제센터에서 경찰 112, 그 뒤에 관할 지구대에 통보될 때까지 최소 1분 이상 최대 2분이 소요돼 범죄자를 현장에서 체포하지 못할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실제 가장 최근의 도주범 2명은 현장 검거에 실패해 수십일간 거리를 활보하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성범죄 예방 관련 단체들은 "범인 검거는 분초를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낭비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전자발찌 훼손 신호가 경찰에 바로 통보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범죄자의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도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전자발찌 부착자들은 현재 범죄 유형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피해자 접근금지와 출입금지, 외출제한 등의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재범의 우려가 큰 성범죄자들임에도 법원의 판단 여하에 따라 초등학교와 같은 범죄 취약 지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 자칫 재범으로 이어질 우려가 상존한다는 것이다.

윤씨의 경우도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 6시간 동안 외출제한 조치만 내려져 전자발찌를 부착하기만 했지 어디든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몸이었다.

학계에서는 이참에 전자발찌가 아동 성범죄 예방의 유일한 대책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한 박사급 연구원은 "전자발찌로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소급적용 같은 무리한 대책이 나오는 것"이라며 "전자발찌뿐 아니라 감호치료제도의 강화 등 실효성 있는 예방책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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