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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㉛ ‘재판 개입’ 행위 있었나, 없었나…3人3色 증언
입력 2020.08.31 (06:05) 수정 2020.08.31 (06:05)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서른 한 번째 순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에 2020년 5~7월 다섯 차례 증인으로 출석한 이민걸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前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증언 이야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㉚ “내가 전달책”…‘재판 개입’ 의혹 산증인 된 판사)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일했던 이 부장판사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을 맡은 재판장이나 법원장을 접촉해 해당 소송과 관련한 발언을 하거나, 행정처에서 만들어진 통진당 소송 관련 문건을 전달한 사실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장판사가 이런 식으로 '접촉'했다고 인정한 재판장 중에는, 그와 전혀 상반된 진술을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관련자들의 엇갈린 증언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내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접촉자로 지목된 이민걸 부장판사의 관련 증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검사: 증인은 전주지방법원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 재판장인 광주고등법원 전주부 노정희 부장판사에 연락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이민걸: 뭐, 제가 전화한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
- 검사: 증인은 노정희 부장에게 전화해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 증인 이민걸: 뭐 내용 이야기는 안 했고, "법원행정처에서 검토한 이 사건(통진당 행정소송) 관한 것이 있는데 보시겠냐" 이 정도 이야기했던 거 같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자신이 전화를 걸게 된 경위에 대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자료 전달' 이야기가 나왔고 "노정희 재판장을 개인 친분으로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아서" 자신이 전화를 해보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장회의에서는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을 맡고 있는 곳, 즉 광주지방법원의 김광태 법원장, 서울고등법원의 이동원 재판장, 광주고등법원의 노정희 재판장 이야기가 "다 같은 시기에" 나왔다고도 말했습니다.

통화 이후 문제가 되는 건 행정처가 검토한 통진당 행정소송 자료가 재판부에 전달됐는 지인데요, 이에 관한 이 부장판사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 검사: 증인은 노정희 부장의 승낙을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전달해서 이규진으로 하여금 노정희 부장에게 자료를 전달하도록 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이민걸: 저는 그 당시(검찰 조사 당시) 그렇게 기억했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이규진 실장한테 이야기는 했겠죠.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 검사: 끊어서 묻겠습니다. 노정희 부장판사의 승낙을 이규진에게 전달한 사실은 있습니까?
- 증인 이민걸: 전 그렇게 기억합니다. 근데 그 부분도 다른 분들 진술을 보니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전 그렇게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통진당 행정소송을 맡고 있는 노 부장판사에게 2016년 3월쯤 전화를 걸어 "행정처에서 검토한 자료를 한 번 보겠냐"라고 물은 뒤 승낙을 받아 냈고, 이에 이규진 당시 상임위원에게 관련 자료를 전달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 측 반대신문에서 이런 증언은 일부 후퇴하기도 했지만, 명확한 진술 번복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 광주고법 2015누1125호 사건 관련해 증인이 노정희 재판장에게 전화한 사실은 정확히 기억 나시나요?
- 증인 이민걸: 뭐 그때 기억도 그렇고 전화할 사람이 저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노정희 재판장이랑 아는 사람이 (실장회의 구성원 중)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그냥 전화는 저밖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다만 검찰 조사에서 "제가 이규진 실장한테 이야기해서 이규진 실장이 (노정희 재판장의) 메일로 (문건을) 보낸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진술한 데 대해서는, "지금 보니까 그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라고 법정에서 말을 좀 바꿨습니다. 실제 문건이 전달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는 "(문건 전달 부분에서는) 이규진 상임위원이나 노정희 재판장 진술이 맞는 거 아니냐 싶어서. 제가 사실은 나중에 '내가 제대로 정확하지도 않은 진술을 해서 괜히 좀 피해를 드린 거 아닌가'라는... 그렇게 생각해서 송구한 생각"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노정희 대법관이 2020년 8월 24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노 대법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니 사실대로 진실되게 진술하겠습니다”라고만 밝히고 법정으로 향했다.노정희 대법관이 2020년 8월 24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노 대법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니 사실대로 진실되게 진술하겠습니다”라고만 밝히고 법정으로 향했다.

#2. "전화 받았지만 '그 사람'은 아니었다"

문제는 전화의 수신자라는 노정희 부장판사(現 대법관)의 입장이, 이 부장판사의 증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겁니다. 노정희 대법관은 2020년 8월 24일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민걸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라고 명확히 증언했습니다.

- 증인 노정희: 이민걸 당시 기조실장이 나에게 뭔가 이 건(통진당 소송)과 관련해 전화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있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만 […] 전화를 받거나 뭔가 만나는 기회에 무슨 말을 나에게 했나, 그런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라고 생각도 기억을 되살리려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이민걸 실장으로부터 그런 취지의 말을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 증인 노정희: […] 부러 전화를 해서, 무엇인가를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문건을 보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내가 승낙했다. 이거는 어... 없었다고, 저는 제 기억으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통진당 사건을 맡고 있을 때 전화를 한 건, 이민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이 사건(통진당 행정소송) 관련하여 법원행정처 관계자로부터 연락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노정희: [5초가량 침묵하다] 예. 있습니다.[고개 끄덕임]
- 검사: 어떤 경위로, 누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까?
- 증인 노정희: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전화를 1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통진당 사건 담당 일부 재판부에 접촉했다는 '재판 개입' 의혹 등으로 이민걸 판사와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前) 판사입니다. 그가 일했던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와는 독립된 조직이지만, 실제 이 전 상임위원은 내부적으로는 '양형실장'으로 불리며 법원행정처에서 헌법과 헌법재판소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행정처 실장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바깥사람들에는 숨겨진 '그림자' 같은 행정처 간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노 대법관도 언론 보도 등을 보고 나중에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규진 전 법원행정처 상임위원이 2019년 7월 23일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이규진 전 법원행정처 상임위원이 2019년 7월 23일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검사: 당시 이규진이 증인에게 뭐라고 하였습니까?

노 대법관은 자신이 검찰에 제출했던 진술서를 넘겨보기도 하면서 구체적인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 증인 노정희: […] 전반에는 일상적인 뭐 안부인사나 뭐 지방근무는 괜찮냐는 등의 이야기를 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규진이) "재판부에 통진당 지방의회 의원 사건이 (재판부에) 계류 중이지 않냐"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변했고요. 뭐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이 일이 문제되고 난 다음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당시 본인(이규진)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으로 통진당 사건에 관해서 회원들과 함께 공부를 한 적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사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사실은 바라는 바도 아니었고 적절하지 않은 거 같아서. 그리고 당시 국회의원 사건에 관해서 법원이 본안 판단을 할 것인지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주요한 쟁점이 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 통진당 국회의원 사건에 관해 공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국회의원 사건과 지방의원 사건은 주요한 쟁점이 다르다"라는 식으로 가볍게 대답을 했더니, 사실 뭐 그 이후에는 특별히 더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노 대법관은 당시 통화 시간이 길지는 않았고, 통화 후반부에 이 전 상임위원이 잠깐 통진당 사건 관련 이야기를 꺼냈던 게 전부라고 했습니다. 또 검찰이 의심하는 것처럼 '어떤 결론이 타당하다'는 식의, 재판부에서 통진당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낼 때 "영향을 끼칠 만한" 내용 자체가 (통화 당시) 없었다고 했습니다.

노 대법관은 또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문건을 전달받은 적은 없다며, 공소사실과 상반되는 증언을 했습니다.

- 증인 노정희: 만약 그러한 말('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해 행정처에서 검토한 자료를 한 번 보시겠냐'는 말)을 듣고 제가 그에 대해서 승낙을 했다면, 문건을 받은 것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뭐... 사실 사건을 처리하는 재판장으로서는 음.. 거의 그에 준하는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건이 이렇게 수사가 되고 제가 진술서도 적었습니다만, 당시에 이 사건 관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 두 세달 정도의 일을 다 뒤져서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마치 개인적인 안부전화인 것처럼 전화를 받았는데 뭔가 운을 떼듯이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해내서,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 다음에 그러그러한 저간의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걸 보면, 그런 식으로. "뭐 검토한 자료가 있는데 자료를 보내주겠다, 보내줘도 되겠냐" "그러세요"라고 했다면 제가 그걸 기억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3. "전화한 적도, 전달한 적도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노 대법관이 전화의 발신자로 지목한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입장을 살펴봐야 할 텐데요. 그는 지난 2020년 3~5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모두 6차례 증인으로 나와, 이 사건에 대해 증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 검사: 증인의 2016년 2월 23일 자 업무일지에는 "노정희 부장", 2016년 3월 7일 자 일정표에는 "오전 노정희 부장(박길성 부장) 연락 要", 2016년 3월 14일 자 일정표에는 "실장회의 보고) 노정희 부장", 2016년 4월 24일 자 일정표에는 "P2 광주고등 전주지부 선고(제1행정부, 2015누1125) 14:00 노정희(063-259-5421)"라고 각 기재돼 있는데, 실장회의 등에서 위 사건에 대해 논의한 것인가요?
- 증인 이규진: 노정희 부장, 논의한 것은 기억납니다.

당시 수첩에 적어둔 기록도 여럿 발견됐고, 여기까지는 이민걸 부장판사와 증언이 일치하는데요. 그다음을 보겠습니다.

- 검사: (실장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 증인 이규진: 연락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런 논의는 있었지만, 제가 연락한 기억은 없습니다.
- 검사: 당시 노정희 부장에게 연락하기로 결정된 것은 이민걸 기조실장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됐었나요?
- 증인 이규진: 이민걸 기조실장이 그렇게 진술했다고 들었는데,노정희 부장은 저도 알거든요. 만약 연락했다면 저도 연락했을 것 같은데 이민걸 실장은 본인이 연락하기로 했고 본인이 연락했다고 해서. 저는 그게 결정된 것도 사실 기억이 안 납니다.
[…]
- 증인 이규진: 이민걸 실장 진술을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본인이 통화를 하고 제가 메일 보냈다고 하는데. 또 노정희 대법관 진술은 저와 통화했고,자료는 안 받았다고 해서 서로 말이 다릅니다. 저는 노정희 부장과 통화한 기억이 없고,두 번째는 노정희 부장께서 조금 진보적이라는 취지의 말이 실장회의에서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안한 것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통화했을 가능성이 노정희 부장의 경우 확실하게 제로(zero)에 가깝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이규진이 노 재판장에게 문건을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는 이민걸의 검찰 진술은 "제 기억에 반한다"라고도 밝혔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의 메일함에 대한 포렌식에서도, 노정희 대법관에게 발송된 메일이나 문건은 일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또 이민걸 부장판사에게도 해당 문건을 파일로 준 적은 없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통진당 행정소송 항소심을 담당하던 이동원 부장판사(現 대법관)에게 건넬 문건을 인쇄한 뒤 봉투에 밀봉해 건넨 것이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4. 어딘가에 '거짓'이 있다

'광주고법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한 이민걸, 이규진, 노정희 세 증인의 증언은 이렇게 상당 부분 엇갈립니다. 이민걸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입장을 다소 바꾸면서, 일단 노정희 재판장에 대한 행정처의 '문건 전달'은 없었다는 데 좀 더 무게가 실린 상황. 하지만 실제 누가 노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인지, 통화가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어느 쪽 말이 맞다고 확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정희 대법관의 증언이 다른 두 사람에 비해 훨씬 구체적인 점, 이민걸 부장판사와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본인들 역시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심준보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現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은 2019년 10월 11일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광주고등법원 노정희 부장판사에게 행정처 입장을 전달했다고 이민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들은 것 같다'라는 취지로 증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20년 8월 25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행정처에서 검토한 입장이랄까, 그 입장을 노정희 재판장에게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은 어렴풋이 있다"라고 증언하면서,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이) 사실 이민걸이었던 것 같긴 한데 100% 자신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또 다른 증인의 증언을 참고해보자면, 행정처의 검토 내용이 어떻게든 노 재판장에게 전달됐을 가능성 역시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관련자들의 증언이 서로 부딪히는 만큼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최소한 누군가의 기억이 왜곡된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그들이 모두 고등법원 부장판사에서 대법관에 이르는, 30년 안팎의 긴 세월 동안 법정에서 '진실'이나 '정의' 등을 탐구해 온 뛰어난 전·현직 판사들인데도 말입니다. 법원은 세 사람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 나름의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다만 그 결론이 무엇이든 간에 기억돼야 할 중요한 문제는 있습니다. '잘 나가는' 판사들이었던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만든 행정처발 자료를, 일선 재판부에 전달하려는 부적절한 행위를 도모했다는 사실입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㉛ ‘재판 개입’ 행위 있었나, 없었나…3人3色 증언
    • 입력 2020-08-31 06:05:10
    • 수정2020-08-31 06:05:47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서른 한 번째 순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에 2020년 5~7월 다섯 차례 증인으로 출석한 이민걸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前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증언 이야기를 계속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㉚ “내가 전달책”…‘재판 개입’ 의혹 산증인 된 판사)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으로 일했던 이 부장판사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을 맡은 재판장이나 법원장을 접촉해 해당 소송과 관련한 발언을 하거나, 행정처에서 만들어진 통진당 소송 관련 문건을 전달한 사실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부장판사가 이런 식으로 '접촉'했다고 인정한 재판장 중에는, 그와 전혀 상반된 진술을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관련자들의 엇갈린 증언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내가 한 것으로 기억한다"

접촉자로 지목된 이민걸 부장판사의 관련 증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검사: 증인은 전주지방법원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 의원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 재판장인 광주고등법원 전주부 노정희 부장판사에 연락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이민걸: 뭐, 제가 전화한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
- 검사: 증인은 노정희 부장에게 전화해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 증인 이민걸: 뭐 내용 이야기는 안 했고, "법원행정처에서 검토한 이 사건(통진당 행정소송) 관한 것이 있는데 보시겠냐" 이 정도 이야기했던 거 같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자신이 전화를 걸게 된 경위에 대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자료 전달' 이야기가 나왔고 "노정희 재판장을 개인 친분으로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아서" 자신이 전화를 해보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장회의에서는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을 맡고 있는 곳, 즉 광주지방법원의 김광태 법원장, 서울고등법원의 이동원 재판장, 광주고등법원의 노정희 재판장 이야기가 "다 같은 시기에" 나왔다고도 말했습니다.

통화 이후 문제가 되는 건 행정처가 검토한 통진당 행정소송 자료가 재판부에 전달됐는 지인데요, 이에 관한 이 부장판사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 검사: 증인은 노정희 부장의 승낙을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전달해서 이규진으로 하여금 노정희 부장에게 자료를 전달하도록 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이민걸: 저는 그 당시(검찰 조사 당시) 그렇게 기억했다고 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이규진 실장한테 이야기는 했겠죠.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사실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 검사: 끊어서 묻겠습니다. 노정희 부장판사의 승낙을 이규진에게 전달한 사실은 있습니까?
- 증인 이민걸: 전 그렇게 기억합니다. 근데 그 부분도 다른 분들 진술을 보니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전 그렇게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통진당 행정소송을 맡고 있는 노 부장판사에게 2016년 3월쯤 전화를 걸어 "행정처에서 검토한 자료를 한 번 보겠냐"라고 물은 뒤 승낙을 받아 냈고, 이에 이규진 당시 상임위원에게 관련 자료를 전달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피고인 측 반대신문에서 이런 증언은 일부 후퇴하기도 했지만, 명확한 진술 번복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 광주고법 2015누1125호 사건 관련해 증인이 노정희 재판장에게 전화한 사실은 정확히 기억 나시나요?
- 증인 이민걸: 뭐 그때 기억도 그렇고 전화할 사람이 저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노정희 재판장이랑 아는 사람이 (실장회의 구성원 중)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저는 그냥 전화는 저밖에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다만 검찰 조사에서 "제가 이규진 실장한테 이야기해서 이규진 실장이 (노정희 재판장의) 메일로 (문건을) 보낸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진술한 데 대해서는, "지금 보니까 그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라고 법정에서 말을 좀 바꿨습니다. 실제 문건이 전달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는 "(문건 전달 부분에서는) 이규진 상임위원이나 노정희 재판장 진술이 맞는 거 아니냐 싶어서. 제가 사실은 나중에 '내가 제대로 정확하지도 않은 진술을 해서 괜히 좀 피해를 드린 거 아닌가'라는... 그렇게 생각해서 송구한 생각"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노정희 대법관이 2020년 8월 24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노 대법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니 사실대로 진실되게 진술하겠습니다”라고만 밝히고 법정으로 향했다.노정희 대법관이 2020년 8월 24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노 대법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니 사실대로 진실되게 진술하겠습니다”라고만 밝히고 법정으로 향했다.

#2. "전화 받았지만 '그 사람'은 아니었다"

문제는 전화의 수신자라는 노정희 부장판사(現 대법관)의 입장이, 이 부장판사의 증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겁니다. 노정희 대법관은 2020년 8월 24일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민걸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라고 명확히 증언했습니다.

- 증인 노정희: 이민걸 당시 기조실장이 나에게 뭔가 이 건(통진당 소송)과 관련해 전화를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가 있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서 기억을 더듬어 봤습니다만 […] 전화를 받거나 뭔가 만나는 기회에 무슨 말을 나에게 했나, 그런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인가라고 생각도 기억을 되살리려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제 기억으로는 이민걸 실장으로부터 그런 취지의 말을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 증인 노정희: […] 부러 전화를 해서, 무엇인가를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문건을 보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내가 승낙했다. 이거는 어... 없었다고, 저는 제 기억으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통진당 사건을 맡고 있을 때 전화를 한 건, 이민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이 사건(통진당 행정소송) 관련하여 법원행정처 관계자로부터 연락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노정희: [5초가량 침묵하다] 예. 있습니다.[고개 끄덕임]
- 검사: 어떤 경위로, 누구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까?
- 증인 노정희: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전화를 1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통진당 사건 담당 일부 재판부에 접촉했다는 '재판 개입' 의혹 등으로 이민걸 판사와 함께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前) 판사입니다. 그가 일했던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와는 독립된 조직이지만, 실제 이 전 상임위원은 내부적으로는 '양형실장'으로 불리며 법원행정처에서 헌법과 헌법재판소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행정처 실장회의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바깥사람들에는 숨겨진 '그림자' 같은 행정처 간부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노 대법관도 언론 보도 등을 보고 나중에 이같은 사실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규진 전 법원행정처 상임위원이 2019년 7월 23일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이규진 전 법원행정처 상임위원이 2019년 7월 23일 자신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검사: 당시 이규진이 증인에게 뭐라고 하였습니까?

노 대법관은 자신이 검찰에 제출했던 진술서를 넘겨보기도 하면서 구체적인 증언을 이어갔습니다.

- 증인 노정희: […] 전반에는 일상적인 뭐 안부인사나 뭐 지방근무는 괜찮냐는 등의 이야기를 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규진이) "재판부에 통진당 지방의회 의원 사건이 (재판부에) 계류 중이지 않냐"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변했고요. 뭐 사실 특별한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이 일이 문제되고 난 다음에 기억을 되짚어보니, 당시 본인(이규진)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으로 통진당 사건에 관해서 회원들과 함께 공부를 한 적이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사건에 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사실은 바라는 바도 아니었고 적절하지 않은 거 같아서. 그리고 당시 국회의원 사건에 관해서 법원이 본안 판단을 할 것인지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주요한 쟁점이 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 통진당 국회의원 사건에 관해 공부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국회의원 사건과 지방의원 사건은 주요한 쟁점이 다르다"라는 식으로 가볍게 대답을 했더니, 사실 뭐 그 이후에는 특별히 더 중요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노 대법관은 당시 통화 시간이 길지는 않았고, 통화 후반부에 이 전 상임위원이 잠깐 통진당 사건 관련 이야기를 꺼냈던 게 전부라고 했습니다. 또 검찰이 의심하는 것처럼 '어떤 결론이 타당하다'는 식의, 재판부에서 통진당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낼 때 "영향을 끼칠 만한" 내용 자체가 (통화 당시) 없었다고 했습니다.

노 대법관은 또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문건을 전달받은 적은 없다며, 공소사실과 상반되는 증언을 했습니다.

- 증인 노정희: 만약 그러한 말('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해 행정처에서 검토한 자료를 한 번 보시겠냐'는 말)을 듣고 제가 그에 대해서 승낙을 했다면, 문건을 받은 것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뭐... 사실 사건을 처리하는 재판장으로서는 음.. 거의 그에 준하는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건이 이렇게 수사가 되고 제가 진술서도 적었습니다만, 당시에 이 사건 관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 두 세달 정도의 일을 다 뒤져서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마치 개인적인 안부전화인 것처럼 전화를 받았는데 뭔가 운을 떼듯이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해내서, 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 다음에 그러그러한 저간의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전화를 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걸 보면, 그런 식으로. "뭐 검토한 자료가 있는데 자료를 보내주겠다, 보내줘도 되겠냐" "그러세요"라고 했다면 제가 그걸 기억못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3. "전화한 적도, 전달한 적도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노 대법관이 전화의 발신자로 지목한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입장을 살펴봐야 할 텐데요. 그는 지난 2020년 3~5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모두 6차례 증인으로 나와, 이 사건에 대해 증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 검사: 증인의 2016년 2월 23일 자 업무일지에는 "노정희 부장", 2016년 3월 7일 자 일정표에는 "오전 노정희 부장(박길성 부장) 연락 要", 2016년 3월 14일 자 일정표에는 "실장회의 보고) 노정희 부장", 2016년 4월 24일 자 일정표에는 "P2 광주고등 전주지부 선고(제1행정부, 2015누1125) 14:00 노정희(063-259-5421)"라고 각 기재돼 있는데, 실장회의 등에서 위 사건에 대해 논의한 것인가요?
- 증인 이규진: 노정희 부장, 논의한 것은 기억납니다.

당시 수첩에 적어둔 기록도 여럿 발견됐고, 여기까지는 이민걸 부장판사와 증언이 일치하는데요. 그다음을 보겠습니다.

- 검사: (실장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 증인 이규진: 연락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런 논의는 있었지만, 제가 연락한 기억은 없습니다.
- 검사: 당시 노정희 부장에게 연락하기로 결정된 것은 이민걸 기조실장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됐었나요?
- 증인 이규진: 이민걸 기조실장이 그렇게 진술했다고 들었는데,노정희 부장은 저도 알거든요. 만약 연락했다면 저도 연락했을 것 같은데 이민걸 실장은 본인이 연락하기로 했고 본인이 연락했다고 해서. 저는 그게 결정된 것도 사실 기억이 안 납니다.
[…]
- 증인 이규진: 이민걸 실장 진술을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본인이 통화를 하고 제가 메일 보냈다고 하는데. 또 노정희 대법관 진술은 저와 통화했고,자료는 안 받았다고 해서 서로 말이 다릅니다. 저는 노정희 부장과 통화한 기억이 없고,두 번째는 노정희 부장께서 조금 진보적이라는 취지의 말이 실장회의에서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안한 것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통화했을 가능성이 노정희 부장의 경우 확실하게 제로(zero)에 가깝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이규진이 노 재판장에게 문건을 보낸 것으로 기억한다'는 이민걸의 검찰 진술은 "제 기억에 반한다"라고도 밝혔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의 메일함에 대한 포렌식에서도, 노정희 대법관에게 발송된 메일이나 문건은 일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또 이민걸 부장판사에게도 해당 문건을 파일로 준 적은 없고, 서울고등법원에서 통진당 행정소송 항소심을 담당하던 이동원 부장판사(現 대법관)에게 건넬 문건을 인쇄한 뒤 봉투에 밀봉해 건넨 것이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4. 어딘가에 '거짓'이 있다

'광주고법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개입' 의혹에 대한 이민걸, 이규진, 노정희 세 증인의 증언은 이렇게 상당 부분 엇갈립니다. 이민걸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입장을 다소 바꾸면서, 일단 노정희 재판장에 대한 행정처의 '문건 전달'은 없었다는 데 좀 더 무게가 실린 상황. 하지만 실제 누가 노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인지, 통화가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어느 쪽 말이 맞다고 확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노정희 대법관의 증언이 다른 두 사람에 비해 훨씬 구체적인 점, 이민걸 부장판사와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본인들 역시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심준보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現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은 2019년 10월 11일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광주고등법원 노정희 부장판사에게 행정처 입장을 전달했다고 이민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들은 것 같다'라는 취지로 증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2020년 8월 25일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행정처에서 검토한 입장이랄까, 그 입장을 노정희 재판장에게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은 어렴풋이 있다"라고 증언하면서,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이) 사실 이민걸이었던 것 같긴 한데 100% 자신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또 다른 증인의 증언을 참고해보자면, 행정처의 검토 내용이 어떻게든 노 재판장에게 전달됐을 가능성 역시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관련자들의 증언이 서로 부딪히는 만큼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최소한 누군가의 기억이 왜곡된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그들이 모두 고등법원 부장판사에서 대법관에 이르는, 30년 안팎의 긴 세월 동안 법정에서 '진실'이나 '정의' 등을 탐구해 온 뛰어난 전·현직 판사들인데도 말입니다. 법원은 세 사람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 나름의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다만 그 결론이 무엇이든 간에 기억돼야 할 중요한 문제는 있습니다. '잘 나가는' 판사들이었던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만든 행정처발 자료를, 일선 재판부에 전달하려는 부적절한 행위를 도모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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