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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⑩ 조언인가 재판 개입인가…수석판사실 불려간 ‘베테랑’ 재판장
입력 2019.09.13 (12:03) 수정 2019.10.25 (15:13)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재판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보려 합니다.

열 번째 순서로,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판에 지난 9일 증인으로 소환된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2기)의 증언 내용을 살펴봅니다.

이동근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일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씨를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한 일본 언론인 사건의 재판을 맡았습니다. 다들 기억하실 것 같은데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보도('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했던 카토 타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입니다.

당시 1년 간의 심리를 거쳐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무죄'였습니다. 이 판결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는데요.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뒤,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 중 이 사건이 뜬금없이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가토 전 지국장 재판에 청와대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재판 개입을 시도했다는 게 검찰 주장입니다. 임성근 전 수석판사는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지시를 받아, 재판부에 일종의 '판결 지침'을 내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 지침의 내용이 뭔지는 뒤에서 차차 살펴보겠습니다.)

당사자는 매우 억울하단 입장입니다. 임 전 수석판사는 자신은 단지 후배 법관에게 사건에 대한 의견을 준 것일 뿐이다, 실제 그 이후에 재판부가 판결 이유를 일부 수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재판부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지 재판권 침해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 사건의 피해자라고 적시한 이동근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3시간가량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그가 한 말들을 짚어 봅니다.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1. 재판장은 '피해자'였나

이동근 부장판사는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3번째 재판(공판기일)을 마친 뒤인 2015년 3월, 형사수석부장판사실에 불려 가다음과 같은 취지의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당시 경력 20년 차의 중견 판사였습니다.

- 다음 기일(4회 공판기일) 정도에, 카토 전 지국장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재판장이 먼저 법정에서 정리해 주고 가는 게 어떻겠나. 이 사건은 대통령이 피해자이고 피고인이 일본 언론인이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의 관심도 많다. 이 재판은 국격을 드높일 수 있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여성 대통령이 모처에서 다른 남성 만났다는 부분은 굉장히 치명적 부분이고 국민들의 관심도 많은 사건이니, 이 부분이 재판 과정에서 (허위로) 드러나면 그 부분을 명확히 정리해 주고 가는 게 좋겠다.

이 부장판사는 수석판사가 재판장을 불러 사건 얘기를 하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라고 증언했는데요. 수석판사의 이례적인 신신당부는 실제로 실현됐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3월 30일 열린 카토 전 지국장 사건 4회 공판기일에서 "카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게재한 소문의 내용은 허위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판결이 선고되기도 전에 사건의 핵심 쟁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나온 것을 두고, 당시 여러 언론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수석판사가 재판장에게 특정 방향의 소송지휘권 행사를 요구해,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규정했습니다. 수석판사의 당부 탓에 재판장이 기사의 허위성에 대한 판단을 재판 초반부에 밝히게 됐고, 이는 당초 재판부 계획에 없던 일이니 결국 재판 개입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해 재판권을 방해받은 피해자라는 이동근 부장판사의 입장은 어떨까요?

- 증인: …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 측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증인으로 부르겠다, 각종 사실조회 신청을 하면서 주장하는 바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하겠다'고 하고 있었고 … (저는) 변호인이 일부러 정치적 공방으로 몰고 간단 생각을 했었고 … 변호인의 증거 신청을 채택할지 말지 (주심 판사와) 의견 나눴을 것이고, 적절하지 않다든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증거 신청을 기각해야 할 것인데, 마침 임성근 피고인이 기사가 허위라는 점이 인정되면 좀 밝혀 주면 어떻겠느냐는 취지로 얘기하니, 증거신청 기각하는 김에 (변호인에게) 이 부분은 검찰이 이미 허위임을 입증했으니 당신들이 주장하는 대통령이 대체 뭐하고 있었냐는 적극적 존재의 사실은 필요 없지 않을까 … 그게 제 의견이었고…

'마침'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 측의 증거 신청은 사건의 쟁점을 벗어나기 때문에 기각해야겠다는 논의를 재판부가 하던 중, 마침 기사가 허위라는 판단을 밝혀 달라는 수석판사의 당부가 있었고, 이는 변호인 측 증거 신청을 기각하는 사유와도 연관이 되는 내용이라 법정에서 함께 말했다는 설명입니다. 마침 시점이 잘 맞아 떨어졌다는 이야기일 뿐, 재판권 침해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지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확실히 하려는 듯 변호인이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 변호인: 마침 그 무렵에 피고인으로부터 이런 말(기사가 허위라고 밝혀 달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잖아요. 그럼 피고인의 말이 없더라도, 증거채부 결정하면서 그런 취지의 소송지휘를 했을 거라는 말씀으로 보면 될까요?
- 증인: … 재판부에서도 왜 증거 채부를 하지 않는지 얘기를 할 테니까 어떤 식으로든 이유를 고지했을 것이라고 생각은 듭니다만, 허위임이 밝혀졌으므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할지, 아니면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고 할지에 대해서는 가정적 판단이라서 말씀드릴 수 없을 것이고

증인은 그 이후에도 변호인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자, "피고인이 그런 말을 안 했어도 제가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건 제가 답변을 명확히 못 드리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증인의 말에 따르면 수석부장이었던 피고인의 당부와 이후 재판장으로서 증인이 내린 결정을 인과관계로 보기도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어 내기도 어려운 겁니다.

#2. 수정된 판결문, 4시간 미스터리

검찰이 이보다 더 크게 문제 삼은 건 판결문 수정 문제입니다. 증인의 증언을 살펴보기 전, 사건의 경위를 간략히 보겠습니다.

판사들은 판결을 선고할 때 판결문을 그대로 읽지 않고, 내용의 요지만 설명합니다. 판결문 내용을 요약한 '판결 구술본'을 미리 만들어서, 법정에서 그 내용을 대본처럼 읽기도 하는데요.

이동근 부장판사는 판결 선고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인 2015년 11월,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판결 구술본의 일부(끝 부분)를 임성근 수석판사에게 미리 이메일로 보내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수석판사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1월 17~18일 두 차례에 걸쳐 '첨삭'이 담긴 답장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임 수석판사는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 할 듯'이라면서, 기존 구술본 초고 말미에 있던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이 공적 사안에 관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라는 문장 등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의 피해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개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로 나누고, '개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만 비방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죄로 판결한다는 취지로 판결 이유를 바꾼 '구술본 말미 수정판'을 이 부장판사에게 보냈습니다. 이어 다음날인 11월 18일 오전 10시 13분, 일부 수정을 빠트렸다며 재수정판을 보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성립한다고

4시간 쯤 뒤인 오후 2시 29분, 이 부장판사의 메일함에는 배석판사이자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주심을 맡은 임현준 판사의 메일이 도착합니다. '이유 변경'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는 수정된 판결문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수석판사가 수정해 보내준 '판결 구술본 말미'의 취지와 비슷하게, 판결 이유가 바뀐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이렇게 4시간 만에 뒤바뀐 판결문이 '재판 개입'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증인의 증언을 보겠습니다.

- 재판장: … (주심 판사가 작성한) 판결문 초고 10월 21일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 (피고인이) 판결 구술본 말미를 수정한 이후 (주심판사가) 1차 수정한 11월 18일자 판결문이 있습니다. 그게 피고인의 구술본 말미 수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법정에서 설명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증인: 박근혜 개인에 대해서 명예훼손이 안 된다고 했다가, 개인에 대해서 수인 범위(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판결문 내용이... 피고인의 말에 의해서 바뀐 거 아니냐 이 말씀이신 것 같은데...
- 검사: 네. 그런 요구가 당연히 포함돼 있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증인의 대답은 검찰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수석판사가 수정해 보내준 판결 이유는 갑자기 나온 엉뚱한 내용이 아니고, 주심이었던 임현준 판사의 기존 견해와 일치하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 증인: 임현준 판사가 저에게 (판결문 수정본을 첨부해) 보낸 메일에 보시면 "그 전에 써놨던 게 있어서"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존에 이 구조로 써놓은 게 있어서 쉬웠습니다"라고 …

이 부장판사는 "재판부의 합의와 관련되는 부분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단 생각을 한다"면서도 아무 것도 밝히지 않으면 "합의의 비밀 뒤에 숨는다"는 느낌도 있고, "수석부장판사가 위력, 압력을 가해서 재판에 영향을 끼쳤느냐를 입증하기 위한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 증인: … 여성 대통령의 내밀한 사생활이, 개인 박근혜라고 하는 사람의 측면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고, 그에 대해서 계속 주심 판사님과 얘기를 해 왔고. 그래서 10월 21일자 판결문이 11월 18일자로 바뀌는 과정에 아마 여러 얘기들이 오갔을 것 같은데, 피고인이 지시해서 바꿨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아니라는 게, 재판부가 합의한 건데.
- 재판장: 정리하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 증인: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개인 박근혜에 대해선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수석부장의 판결 이유 수정본을 받은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수정본과 같은 견해를 표명해 왔던 주심 판사의 의견을 반영해 판결문을 수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같은 증언에 대해 재판장은, 판결문 수정을 둘러싼 '4시간 미스터리'에 의문이 남는다는 듯 마지막에 또 질문을 던졌습니다.

- 재판장: 이 부분이 사실 제일 중요한데, 아까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잘 납득이 안 가서 그래요. 피고인으로부터 수정본, 2차 수정본을 오전 10시쯤 받으셨다고 하는데. 그렇죠? 그리고 이제 2차 수정본에 따라서 그와 동일한 2차 수정본 반영한 판결 이유가 4시간 정도의 텀(기간)을 두고 판결문 작성됐는데. 피고인에게 수정본 받으시고 나서 4시간 후에 11월 18일자 판결 이유가 나올 때까지, 수정본을 피고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얘기를 배석 판사에게 안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판결이유 수정에 관해선 어떻게 합의를 했습니까. 그 부분은 좀 말씀해 주셨음 좋겠는데. 뭔가 경위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 전까지는 박근혜가 사인으로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뭐..
- 증인: [말 끊으며] 제 기억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합의 과정이긴 한데 재판장님 명이 있으니까. 제 기억상으로는 … 임 판사는 저희가 마지막에 선고한 그 사인에 관한 유죄 이유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아마도 임 판사 방에 가서, 사인 자체도 아예 (명예훼손) 성립 안 된다는 건 좀 무리일 것 같으니 네 말대로 다시 바꿔 보자 그게 낫겠다...
- 재판장: 그럼 기존에 작성된 게 있으니 그걸로 수정하고.
- 증인: 바로 이제..
- 재판장: (판결문이) 바로 넘어온 걸로 기억한다는 건가요?
- 증인: 네네.

이 부장판사는 증언 과정에서 "재판부 판사한테 '(판결문을) 이렇게 수정해, 이렇게 써'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관여되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법원행정처와 수석부장의 지시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 사건의 판결문이 수정됐다는 검찰의 시각과 배치되는 대목입니다.


#3. 회심의 질문

전체적인 증언을 보면, 이 부장판사는 수석판사의 말을 지시가 아닌 권유, 조언 정도로 받아들였고, 외부인이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준다는 인식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검사가 주신문 말미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 검사: 배석 판사에게, '임성근 수석부장에게 구술본 수정 등에 대해 요구를 받았다' 이런 얘기를 한 사실이 있나요?
- 증인: 없습니다.
- 검사: 왜 안했죠?
- 증인: 배석 판사에게 그런 걸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심의 질문이 일단 먹혔습니다. 곧바로 질문을 이어가는 검사.

- 검사: 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셨습니까?
- 증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검사: 수석부장이 구술본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
- 증인: [말 끊으며] 선고 끝나고 나서 구술본 말미에 추가되는 걸 수석부장이 만들어 달라고 지시했다, 말미를 어떻게 하라고 했다는 내용 자체를 우리 배석 판사에게 얘기한 바가 없는 걸로 기억되고요.
- 검사: 왜 그랬냐고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까?
- 증인: 적절하다고는 생각한 바 없습니다.

팽팽한 질문과 답변 속에서, 검사가 겨냥한 증인의 속마음이 일부 드러났습니다. 신문이 진행됨에 따라 증인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놨습니다.

- 재판장: … 수석부장실에 불러서 판결 구술본 말미를 추가할 것을 요청한다든지. 그리고 이메일로 그 내용까지 이렇게 수정해 준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도가 넘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 증인: 좀 지나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 변호인: 구술본 말미를 보내 달라는 피고인의 요청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셨습니까? 지나치다?
- 증인: 조금 지나친 면이 있다는 게 1번이고요. 2번이 '관심이 되게 많구나'. 3번이 '도와 주려고 하시는가 보다'. 내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나? 못 믿나? 이런... 평소 물론 원래 자구에 신경 많이 쓰시는 분이긴 한데... 어떤 면에선 나를 실력 없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관심 가지나... 이런 생각 했었고. 뭐 도와 준다고 하니 와이 낫? 뭐 이 정도...
- 변호인: 지나치다는 표현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 증인: 통상 있는 일 아니라는 면에서. 통상 있는 일이라면 옆방 가서 물어보거나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지, 파일 자체를 보내라고 하는 건 잘 없기 때문에...

임성근 전 수석판사가 받고 있는 직권남용 혐의는 직권을 남용해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입니다. 상대방의 의사 결정, 의사 실행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침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인이 내놓은 다양한 갈래의 증언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해집니다.


#4. 벌 세운 적 없다

마지막으로, 카토 타쓰야 사건 판결의 뒷얘기, '비하인드'에 관한 증언을 간단히 적어 두고자 합니다.

2015년 12월 17일 카토 전 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1심 선고는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이때 피고인인 카토 전 지국장이 3시간 내내 선 채로 판결 선고를 들었던 것을 두고, 마치 벌을 서는 것 같았다는 등의 해석이 나와 화제가 됐었는데요.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1심 선고 결과를 다룬 지면 기사 (2015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 12면)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1심 선고 결과를 다룬 지면 기사 (2015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 12면)

검찰은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가 임성근 전 수석판사, 나아가서는 법원행정처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이런 광경이 벌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과정에서 '뒤늦은' 해명을 했습니다.

- 재판장: 카토에게 무죄 판결 선고하면서 질책했다는 내용 저도 언론에서 많이 봤거든요. 유죄 판결하는 경우에도 질책하기가 요새는 쉽지 않은데, 무죄 판결을 하는데 질책했다는 내용 기사에서 봐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재판장 개인의 경험이고요. 증인의 증언에 의하면 질책한 적 없단 말씀이네요. 맞습니까?
- 증인: 제 기억으로는 피고인을 3시간 세워 놓고 혼을 냈다는 취지로 보도됐는데 … 저희 재판부는 항상 피고인을 세워놓은 상태에서 판결을 선고해 왔습니다. 병자이거나 특별한 사정 있어서 서 있을 수 없는 사람 빼고는 다 세워 놓고 선고했고. 판결문이 두꺼워도 다 그렇게 했습니다. … 제 방에서 제가 (판결문을 미리) 쭉 읽었더니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고, 통역 붙으면 2시간 걸리겠구나 생각했고.

피고인을 2시간 동안 세워 놓아야 할지 고민스러워 우연히 만난 선배 판사와 의논을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 증인: 그 무렵 법원 1층에 있는 바로미 카페에서, 선고 얼마 전 12월인데 바로미 카페 갔을 때, 뭐 굳이 이런 거 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선배 법관이 우연히 있어서 하나 여쭤볼 게 있다 말씀드리고, '판결 2시간 걸리는데 세울까요, 앉힐까요?' 물으니 '세우는 게 당연하지'라고 해서 내 생각이 맞구나 해서 세우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2시간 아니고 3시간 가까이 이뤄지게 된 것이고. 피고인이 다리 아프다고 중간에 얘기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앉히기 뭐해서. 나이가 많거나 특별한 사정 없는 한 서서 하는 게 원칙이라 했을 뿐인데, 보는 사람은 해석을 벌 세운다 한 거고. 저는 그 부분 그렇게 생각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벌 세우기' 의혹 3년 9개월 만에 나온 재판장의 절절한 해명. 카토 전 지국장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⑩ 조언인가 재판 개입인가…수석판사실 불려간 ‘베테랑’ 재판장
    • 입력 2019-09-13 12:03:23
    • 수정2019-10-25 15:13:06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재판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보려 합니다.

열 번째 순서로,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판에 지난 9일 증인으로 소환된 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2기)의 증언 내용을 살펴봅니다.

이동근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일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씨를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한 일본 언론인 사건의 재판을 맡았습니다. 다들 기억하실 것 같은데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보도('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했던 카토 타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입니다.

당시 1년 간의 심리를 거쳐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무죄'였습니다. 이 판결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는데요. 그로부터 3년여가 흐른 뒤, 검찰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 중 이 사건이 뜬금없이 다시 주목받게 됐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가토 전 지국장 재판에 청와대의 입장을 반영하려고 재판 개입을 시도했다는 게 검찰 주장입니다. 임성근 전 수석판사는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지시를 받아, 재판부에 일종의 '판결 지침'을 내린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 지침의 내용이 뭔지는 뒤에서 차차 살펴보겠습니다.)

당사자는 매우 억울하단 입장입니다. 임 전 수석판사는 자신은 단지 후배 법관에게 사건에 대한 의견을 준 것일 뿐이다, 실제 그 이후에 재판부가 판결 이유를 일부 수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재판부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지 재판권 침해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 사건의 피해자라고 적시한 이동근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3시간가량 진행된 증인신문에서 그가 한 말들을 짚어 봅니다.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1. 재판장은 '피해자'였나

이동근 부장판사는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3번째 재판(공판기일)을 마친 뒤인 2015년 3월, 형사수석부장판사실에 불려 가다음과 같은 취지의 얘기를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는 당시 경력 20년 차의 중견 판사였습니다.

- 다음 기일(4회 공판기일) 정도에, 카토 전 지국장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보도가 허위라는 점을 재판장이 먼저 법정에서 정리해 주고 가는 게 어떻겠나. 이 사건은 대통령이 피해자이고 피고인이 일본 언론인이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의 관심도 많다. 이 재판은 국격을 드높일 수 있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여성 대통령이 모처에서 다른 남성 만났다는 부분은 굉장히 치명적 부분이고 국민들의 관심도 많은 사건이니, 이 부분이 재판 과정에서 (허위로) 드러나면 그 부분을 명확히 정리해 주고 가는 게 좋겠다.

이 부장판사는 수석판사가 재판장을 불러 사건 얘기를 하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라고 증언했는데요. 수석판사의 이례적인 신신당부는 실제로 실현됐습니다. 이 부장판사는 3월 30일 열린 카토 전 지국장 사건 4회 공판기일에서 "카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게재한 소문의 내용은 허위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판결이 선고되기도 전에 사건의 핵심 쟁점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나온 것을 두고, 당시 여러 언론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놨습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수석판사가 재판장에게 특정 방향의 소송지휘권 행사를 요구해,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규정했습니다. 수석판사의 당부 탓에 재판장이 기사의 허위성에 대한 판단을 재판 초반부에 밝히게 됐고, 이는 당초 재판부 계획에 없던 일이니 결국 재판 개입이라는 논리입니다.

이에 대해 재판권을 방해받은 피해자라는 이동근 부장판사의 입장은 어떨까요?

- 증인: …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 측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증인으로 부르겠다, 각종 사실조회 신청을 하면서 주장하는 바가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하고 있었는지를 증명하겠다'고 하고 있었고 … (저는) 변호인이 일부러 정치적 공방으로 몰고 간단 생각을 했었고 … 변호인의 증거 신청을 채택할지 말지 (주심 판사와) 의견 나눴을 것이고, 적절하지 않다든지 그렇게 이유를 대면서 증거 신청을 기각해야 할 것인데, 마침 임성근 피고인이 기사가 허위라는 점이 인정되면 좀 밝혀 주면 어떻겠느냐는 취지로 얘기하니, 증거신청 기각하는 김에 (변호인에게) 이 부분은 검찰이 이미 허위임을 입증했으니 당신들이 주장하는 대통령이 대체 뭐하고 있었냐는 적극적 존재의 사실은 필요 없지 않을까 … 그게 제 의견이었고…

'마침'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 측의 증거 신청은 사건의 쟁점을 벗어나기 때문에 기각해야겠다는 논의를 재판부가 하던 중, 마침 기사가 허위라는 판단을 밝혀 달라는 수석판사의 당부가 있었고, 이는 변호인 측 증거 신청을 기각하는 사유와도 연관이 되는 내용이라 법정에서 함께 말했다는 설명입니다. 마침 시점이 잘 맞아 떨어졌다는 이야기일 뿐, 재판권 침해 문제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지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을 확실히 하려는 듯 변호인이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 변호인: 마침 그 무렵에 피고인으로부터 이런 말(기사가 허위라고 밝혀 달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잖아요. 그럼 피고인의 말이 없더라도, 증거채부 결정하면서 그런 취지의 소송지휘를 했을 거라는 말씀으로 보면 될까요?
- 증인: … 재판부에서도 왜 증거 채부를 하지 않는지 얘기를 할 테니까 어떤 식으로든 이유를 고지했을 것이라고 생각은 듭니다만, 허위임이 밝혀졌으므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할지, 아니면 소모적 논쟁에 불과하다고 할지에 대해서는 가정적 판단이라서 말씀드릴 수 없을 것이고

증인은 그 이후에도 변호인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자, "피고인이 그런 말을 안 했어도 제가 그렇게 했을 거라는 건 제가 답변을 명확히 못 드리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증인의 말에 따르면 수석부장이었던 피고인의 당부와 이후 재판장으로서 증인이 내린 결정을 인과관계로 보기도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어 내기도 어려운 겁니다.

#2. 수정된 판결문, 4시간 미스터리

검찰이 이보다 더 크게 문제 삼은 건 판결문 수정 문제입니다. 증인의 증언을 살펴보기 전, 사건의 경위를 간략히 보겠습니다.

판사들은 판결을 선고할 때 판결문을 그대로 읽지 않고, 내용의 요지만 설명합니다. 판결문 내용을 요약한 '판결 구술본'을 미리 만들어서, 법정에서 그 내용을 대본처럼 읽기도 하는데요.

이동근 부장판사는 판결 선고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인 2015년 11월,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판결 구술본의 일부(끝 부분)를 임성근 수석판사에게 미리 이메일로 보내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수석판사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1월 17~18일 두 차례에 걸쳐 '첨삭'이 담긴 답장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임 수석판사는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 할 듯'이라면서, 기존 구술본 초고 말미에 있던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이 공적 사안에 관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라는 문장 등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면서 명예훼손의 피해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개인'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로 나누고, '개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만 비방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죄로 판결한다는 취지로 판결 이유를 바꾼 '구술본 말미 수정판'을 이 부장판사에게 보냈습니다. 이어 다음날인 11월 18일 오전 10시 13분, 일부 수정을 빠트렸다며 재수정판을 보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성립한다고

4시간 쯤 뒤인 오후 2시 29분, 이 부장판사의 메일함에는 배석판사이자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주심을 맡은 임현준 판사의 메일이 도착합니다. '이유 변경'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는 수정된 판결문이 첨부돼 있었습니다. 수석판사가 수정해 보내준 '판결 구술본 말미'의 취지와 비슷하게, 판결 이유가 바뀐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이렇게 4시간 만에 뒤바뀐 판결문이 '재판 개입'의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증인의 증언을 보겠습니다.

- 재판장: … (주심 판사가 작성한) 판결문 초고 10월 21일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 (피고인이) 판결 구술본 말미를 수정한 이후 (주심판사가) 1차 수정한 11월 18일자 판결문이 있습니다. 그게 피고인의 구술본 말미 수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법정에서 설명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증인: 박근혜 개인에 대해서 명예훼손이 안 된다고 했다가, 개인에 대해서 수인 범위(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판결문 내용이... 피고인의 말에 의해서 바뀐 거 아니냐 이 말씀이신 것 같은데...
- 검사: 네. 그런 요구가 당연히 포함돼 있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증인의 대답은 검찰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수석판사가 수정해 보내준 판결 이유는 갑자기 나온 엉뚱한 내용이 아니고, 주심이었던 임현준 판사의 기존 견해와 일치하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 증인: 임현준 판사가 저에게 (판결문 수정본을 첨부해) 보낸 메일에 보시면 "그 전에 써놨던 게 있어서"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존에 이 구조로 써놓은 게 있어서 쉬웠습니다"라고 …

이 부장판사는 "재판부의 합의와 관련되는 부분이라 말씀드리기 곤란하단 생각을 한다"면서도 아무 것도 밝히지 않으면 "합의의 비밀 뒤에 숨는다"는 느낌도 있고, "수석부장판사가 위력, 압력을 가해서 재판에 영향을 끼쳤느냐를 입증하기 위한 국민적 요구"가 있다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 증인: … 여성 대통령의 내밀한 사생활이, 개인 박근혜라고 하는 사람의 측면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고, 그에 대해서 계속 주심 판사님과 얘기를 해 왔고. 그래서 10월 21일자 판결문이 11월 18일자로 바뀌는 과정에 아마 여러 얘기들이 오갔을 것 같은데, 피고인이 지시해서 바꿨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아니라는 게, 재판부가 합의한 건데.
- 재판장: 정리하면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 증인: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개인 박근혜에 대해선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수석부장의 판결 이유 수정본을 받은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수정본과 같은 견해를 표명해 왔던 주심 판사의 의견을 반영해 판결문을 수정했다는 설명입니다. 이 같은 증언에 대해 재판장은, 판결문 수정을 둘러싼 '4시간 미스터리'에 의문이 남는다는 듯 마지막에 또 질문을 던졌습니다.

- 재판장: 이 부분이 사실 제일 중요한데, 아까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잘 납득이 안 가서 그래요. 피고인으로부터 수정본, 2차 수정본을 오전 10시쯤 받으셨다고 하는데. 그렇죠? 그리고 이제 2차 수정본에 따라서 그와 동일한 2차 수정본 반영한 판결 이유가 4시간 정도의 텀(기간)을 두고 판결문 작성됐는데. 피고인에게 수정본 받으시고 나서 4시간 후에 11월 18일자 판결 이유가 나올 때까지, 수정본을 피고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얘기를 배석 판사에게 안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럼 판결이유 수정에 관해선 어떻게 합의를 했습니까. 그 부분은 좀 말씀해 주셨음 좋겠는데. 뭔가 경위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 전까지는 박근혜가 사인으로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뭐..
- 증인: [말 끊으며] 제 기억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합의 과정이긴 한데 재판장님 명이 있으니까. 제 기억상으로는 … 임 판사는 저희가 마지막에 선고한 그 사인에 관한 유죄 이유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아마도 임 판사 방에 가서, 사인 자체도 아예 (명예훼손) 성립 안 된다는 건 좀 무리일 것 같으니 네 말대로 다시 바꿔 보자 그게 낫겠다...
- 재판장: 그럼 기존에 작성된 게 있으니 그걸로 수정하고.
- 증인: 바로 이제..
- 재판장: (판결문이) 바로 넘어온 걸로 기억한다는 건가요?
- 증인: 네네.

이 부장판사는 증언 과정에서 "재판부 판사한테 '(판결문을) 이렇게 수정해, 이렇게 써'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관여되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법원행정처와 수석부장의 지시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 사건의 판결문이 수정됐다는 검찰의 시각과 배치되는 대목입니다.


#3. 회심의 질문

전체적인 증언을 보면, 이 부장판사는 수석판사의 말을 지시가 아닌 권유, 조언 정도로 받아들였고, 외부인이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준다는 인식도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검사가 주신문 말미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 검사: 배석 판사에게, '임성근 수석부장에게 구술본 수정 등에 대해 요구를 받았다' 이런 얘기를 한 사실이 있나요?
- 증인: 없습니다.
- 검사: 왜 안했죠?
- 증인: 배석 판사에게 그런 걸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심의 질문이 일단 먹혔습니다. 곧바로 질문을 이어가는 검사.

- 검사: 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셨습니까?
- 증인: 굳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검사: 수석부장이 구술본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
- 증인: [말 끊으며] 선고 끝나고 나서 구술본 말미에 추가되는 걸 수석부장이 만들어 달라고 지시했다, 말미를 어떻게 하라고 했다는 내용 자체를 우리 배석 판사에게 얘기한 바가 없는 걸로 기억되고요.
- 검사: 왜 그랬냐고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는 겁니까?
- 증인: 적절하다고는 생각한 바 없습니다.

팽팽한 질문과 답변 속에서, 검사가 겨냥한 증인의 속마음이 일부 드러났습니다. 신문이 진행됨에 따라 증인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놨습니다.

- 재판장: … 수석부장실에 불러서 판결 구술본 말미를 추가할 것을 요청한다든지. 그리고 이메일로 그 내용까지 이렇게 수정해 준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도가 넘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 증인: 좀 지나치다고는 생각했습니다.

- 변호인: 구술본 말미를 보내 달라는 피고인의 요청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셨습니까? 지나치다?
- 증인: 조금 지나친 면이 있다는 게 1번이고요. 2번이 '관심이 되게 많구나'. 3번이 '도와 주려고 하시는가 보다'. 내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나? 못 믿나? 이런... 평소 물론 원래 자구에 신경 많이 쓰시는 분이긴 한데... 어떤 면에선 나를 실력 없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관심 가지나... 이런 생각 했었고. 뭐 도와 준다고 하니 와이 낫? 뭐 이 정도...
- 변호인: 지나치다는 표현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 증인: 통상 있는 일 아니라는 면에서. 통상 있는 일이라면 옆방 가서 물어보거나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지, 파일 자체를 보내라고 하는 건 잘 없기 때문에...

임성근 전 수석판사가 받고 있는 직권남용 혐의는 직권을 남용해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범죄입니다. 상대방의 의사 결정, 의사 실행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침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인이 내놓은 다양한 갈래의 증언을 재판부가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해집니다.


#4. 벌 세운 적 없다

마지막으로, 카토 타쓰야 사건 판결의 뒷얘기, '비하인드'에 관한 증언을 간단히 적어 두고자 합니다.

2015년 12월 17일 카토 전 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1심 선고는 무려 3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이때 피고인인 카토 전 지국장이 3시간 내내 선 채로 판결 선고를 들었던 것을 두고, 마치 벌을 서는 것 같았다는 등의 해석이 나와 화제가 됐었는데요.

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1심 선고 결과를 다룬 지면 기사 (2015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 12면)카토 전 지국장 사건의 1심 선고 결과를 다룬 지면 기사 (2015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 12면)

검찰은 재판장인 이동근 부장판사가 임성근 전 수석판사, 나아가서는 법원행정처의 지시에 따라 피고인을 '질책'하는 과정에서 이런 광경이 벌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부장판사는 증인신문 과정에서 '뒤늦은' 해명을 했습니다.

- 재판장: 카토에게 무죄 판결 선고하면서 질책했다는 내용 저도 언론에서 많이 봤거든요. 유죄 판결하는 경우에도 질책하기가 요새는 쉽지 않은데, 무죄 판결을 하는데 질책했다는 내용 기사에서 봐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재판장 개인의 경험이고요. 증인의 증언에 의하면 질책한 적 없단 말씀이네요. 맞습니까?
- 증인: 제 기억으로는 피고인을 3시간 세워 놓고 혼을 냈다는 취지로 보도됐는데 … 저희 재판부는 항상 피고인을 세워놓은 상태에서 판결을 선고해 왔습니다. 병자이거나 특별한 사정 있어서 서 있을 수 없는 사람 빼고는 다 세워 놓고 선고했고. 판결문이 두꺼워도 다 그렇게 했습니다. … 제 방에서 제가 (판결문을 미리) 쭉 읽었더니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고, 통역 붙으면 2시간 걸리겠구나 생각했고.

피고인을 2시간 동안 세워 놓아야 할지 고민스러워 우연히 만난 선배 판사와 의논을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 증인: 그 무렵 법원 1층에 있는 바로미 카페에서, 선고 얼마 전 12월인데 바로미 카페 갔을 때, 뭐 굳이 이런 거 말할 필요 없겠지만... 그 당시 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선배 법관이 우연히 있어서 하나 여쭤볼 게 있다 말씀드리고, '판결 2시간 걸리는데 세울까요, 앉힐까요?' 물으니 '세우는 게 당연하지'라고 해서 내 생각이 맞구나 해서 세우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2시간 아니고 3시간 가까이 이뤄지게 된 것이고. 피고인이 다리 아프다고 중간에 얘기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앉히기 뭐해서. 나이가 많거나 특별한 사정 없는 한 서서 하는 게 원칙이라 했을 뿐인데, 보는 사람은 해석을 벌 세운다 한 거고. 저는 그 부분 그렇게 생각 안 했던 게 사실입니다.

'벌 세우기' 의혹 3년 9개월 만에 나온 재판장의 절절한 해명. 카토 전 지국장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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