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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⑳ ‘재판개입 피해자’ 지목된 판사…“저도 재판장” 소신 강조
입력 2020.02.23 (17:15) 수정 2020.02.23 (17:16) 취재K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⑳ ‘재판개입 피해자’ 지목된 판사…“저도 재판장” 소신 강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무 번째 순서로, 2019년 12월 19일 '사법농단' 사건 공범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염 모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염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장에 재판 개입을 당한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판사로서 소신껏 내렸던 위헌제청 결정(재판권 행사)이,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직권남용 행위로 인해 침해 당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서 재판 개입 피해자로 지목된 판사가 '사법농단'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건, 이날 염 부장판사가 처음이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재판 개입 사건의 당사자인만큼 증언 내용을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어, 기사를 두 차례로 나눠 연재합니다.


#1. 이대로 널 보낼 수는…

2015년 4월 8일. 증인이 재판장으로 있던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재판부는 당시 사학연금법 31조 2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은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할 때에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한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심판을 제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위헌제청이 그냥 위헌이 아닌 법률의 '한정위헌'을 구하는 취지였다는 점입니다. 심판 대상이 되는 법률 조항 자체가 전면 위헌은 아니지만, '특정한 내용으로 해석돼 적용되는 한' 위헌이 된다는 건데요.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은 매우 드문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결정 이틀 뒤인 금요일(4월 10일). 증인은 대법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습니다. 증인은 통화를 한 시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통화 내용은 대체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법원 내에서 헌법연구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일선 법원에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확인해보니 염 부장이라 연락하게 됐습니다.” (이규진)

이어지는 말을 증인은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지금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와 위상·권한 문제를 두고 다툼이 심한데 일선 법원에서 그렇게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일선 법원에서 헌재 논리를 인정해주는 결론이 돼서 대법원 입장에선 매우 좋지 않습니다. (결정문을) 이대로 헌재로 보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한번 (해결책을) 생각해 봅시다.

알쏭달쏭한 말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대법원은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이 오로지 '법원'에 속하는 권한이라고 판시해 왔습니다(대법원 2001.4.27. 선고 95재다14 판결 등). 그런데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 결정은, 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가 법령의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법원의 법령 해석 권한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구애받지(기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법원과 헌재의 권한 분장(分掌)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입니다.

이처럼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법원이 구했다는 점을 이 전 상임위원은 문제 삼았습니다. 증인도 "한정위헌에 그런 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을) 결정했다" "(그런) 결정을 하면 당장 헌재나 이런 데서 뉴스거리가 될 거 아니냐. 그걸 생각 못 했다"면서, 이 전 상임위원의 전화를 받은 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2. 해결사

해결책을 생각해보자던 이 전 상임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와 실제 해결 방안을 제안합니다. 금요일 당일에 다시 전화가 온 건지, 아니면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었는지 증인이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는데요. 증언을 토대로 통화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해결책으로) 원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규진)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증인)
“내가 보기엔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규진)

재판부가 이미 내린 결정을 없던 것으로 하라는 제안인데요.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증인의 재판부는 4월 13일, 기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했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이 전화를 건 지 단 사흘 만에 기존 결정을 번복한 것입니다. 특히 증인은 새로 쓴 결정문에 서명을 하기 전, 이 전 상임위원에게 그 내용을 보내 "컨펌(confirm·확인)"을 구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재판 개입' 논란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전 상임위원은 이 같은 '해결책'을 검토하는 과정에 다른 판사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증인과의 통화 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이었던 문성호 판사를 불렀습니다. 문 판사는 헌재에 일선 법원의 위헌제청 결정문을 송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증인 재판부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문을 처음 확인해 이 전 상임위원에게 보고한 상태였는데요. 그는 지난해 10월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전 상임위원에게 들은 말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위에서 (기존 위헌제청 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결정해서 (헌재에) 보내는 방향으로 결정했어요. 염 부장(증인)하고도 통화했는데, 고쳐서 다시 하겠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더군요. 이 일에 대해 정식 보고서를 작성하세요. 잘 써야 합니다.” (이규진)

한편 이 전 상임위원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던 이 모 판사에게 메일을 보내 "이 결정문(증인 재판부의 위헌제청 결정문)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이 맞는지, 만일 그렇다면 대응방안으로 이 결정을 '직권 취소'하는 게 가능하겠는지, 되는 대로 빨리 검토해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판사는 이에 "위헌제청결정의 기속력"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이 전 상임위원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지난해 9월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출석한 이 판사의 증언은 이러했습니다.

- 이 모 판사: […] 이미 재판은 개별 판사가 서명해서 완성한 순간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재판부 스스로도 제도 보완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걸 없던 걸로 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을 해서 (취소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장을 썼습니다.)

이후 이 전 상임위원은 이 판사가 작성한 보고서와, 자신이 쓴 '정리'라는 이름의 5~6쪽짜리 문건을 문성호 판사에게 보내며 보고서 작성에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문제점, 해결방안, 재발방지 방안 등의 목차로 구성된 '정리' 문건은 증인 재판부의 위헌제청에 대한 해결책으로 ▲결정을 직권 취소 ▲경정 ▲방기를 검토하면서, 결론적으로는 결정 취소 안을 지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 판사는 이 지시에 따라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확인 및 향후대책(대외비)"이라는 보고서를 써서, 4월 13일 월요일에 이 전 상임위원에게 보고합니다. 문 판사는 이 보고서가 "사법정책실에 근무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보고서"였다고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말했습니다.

2018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018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3. 우리 사이, 그런 사이?

검찰은 문 판사가 쓴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됐다면서, 결국 증인 재판부에 대한 '재판 개입'에 법원행정처 수뇌부의 결단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법원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을 한 것이 외부로 알려지면 이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한 정당성 논거로 이용될 수 있고, 결국 대외적으로 대법원에 비해 헌재의 위상이 올라가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일선 재판부의 결정을 무마하는 재판 개입을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 상임위원 측은 이런 혐의를 부인하면서, 단순히 '개인적으로' 조언하려는 차원에서 증인에게 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이규진 피고인 변호인: 이규진 피고인은 증인과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증인과 두 기수밖에 차이 나지 않는 선배 법관으로서 일선 법원의 한정위헌 제청 사실을 전해 듣고 증인이 염려되어 곧바로 전화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는데, 증인이 예전부터 피고인과 알고 지냈던 건 맞죠?

증인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 증인: 에... 뭐 사석에서 만나서 이렇게 얘기한 적은 없고. 그냥 대학 선배, 연수원 선배, 선배 부장님이시고 그런, 안면만 서로 아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 당시까지.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고 쐐기도 박았습니다.

- 좌배석 판사: 증인이 인식하기에 당시 피고인이 개인적 차원에서 연락한 거라 인식한 것입니까, 업무상 연락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입니까?
- 증인: 그게 좀 경계가 모호한데요. 개인적 차원으로 연락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왜냐면 본인이 처음에 전화하셨을 때, 대법원에서 내가 헌법 관련 연구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문제 돼서 전화하는 거라고 밝히셨으니까. 공적인 문제로 전화했다고 저는 생각했죠. 개인적으로 조언해서 이걸 고치라 마라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거든요, 저희가.

그러자 이 전 상임위원 측은 전화에 강압성이 없었음을 강조했습니다.

- 변호인: 전화 통화 과정에서 피고인이, 증인 재판부가 내린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에 대해 비난하거나 질책한 사실은 없죠?
- 증인: [웃으며] 그거 뭐.. 저는 질책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그냥 이런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셨고 행정처 쪽의 의견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고 처음에 헌법연구반 얘기부터 하셔서, '아, 이런 문제가 있구나~ 이건 좀 그 부분 놓친 거 같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오히려 뭐랄까... 좀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증인도 "저도 재판하는 재판장인데"라고 강조하며, 일방적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 변호인: 피고인이 증인에게 무조건 원 결정 직권취소, 단순위헌 제청결정하는 방안을 따라야 한다고 지시한 게 아니라, 재결정이 가장 무난한 해결방법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제시해준 거죠?
- 증인: 그렇죠. 근데 아마 일방적인 지시였다면 제가 안 받아들였을 겁니다. 저도 재판하는 재판장인데, 아무리 선배 법관이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다면 저도 저항감을 느꼈을 텐데, 그냥 같이 해결책 모색해보자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냥 별 저항감 없이 논의했던 거 같습니다.


#4. 납득이 됐다

이 전 상임위원은 자신이 '계기'를 제공해줬을지언정, 기존 결정 취소와 재결정은 재판부의 독자적인 판단이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재판 개입이 있었더라도 그 행위와 재판부의 판단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으니, 직권남용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임성근 판사도 재판에서 같은 취지의 변론을 펼쳤습니다.

- 변호인: 증인이 원 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다시 하기로 판단한 건 증인이 판단하기에 이규진 얘기가 충분히 납득가기 때문이었죠?
- 증인: 네. 납득도 가고 그게 가장 당사자 권익을 구제할 수 있는 빠르다고 할까... 잡음이 없고 다 빨리빨리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서 주심 판사하고 의논해 결정했습니다.
- 변호인: 피고인 의견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의견이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선배이고 행정처 의견이라 하더라도 증인이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 원결정 취소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죠?
- 증인: 당연하죠.

- 변호인: 대법원이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 한정위헌 제청 당시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이런 결정을) 안 했을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 증인: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이걸 고친 거죠.

'재판 개입' 논란을 두고 판사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판사가 자기가 윗선의 '재판 개입'에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을 하겠느냐" "판사로서의 자존감을 생각할 때 그런 진술은 못 할 것"이라는 지적들도 나오는데요. 증인 역시 자신을 '재판 개입'으로 결정 번복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의 '재판 개입' 사건 기소는 터무니없는 일이었을까요? 이어지는 기사에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⑳ ‘재판개입 피해자’ 지목된 판사…“저도 재판장” 소신 강조
    • 입력 2020.02.23 (17:15)
    • 수정 2020.02.23 (17:16)
    취재K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⑳ ‘재판개입 피해자’ 지목된 판사…“저도 재판장” 소신 강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무 번째 순서로, 2019년 12월 19일 '사법농단' 사건 공범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염 모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염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장에 재판 개입을 당한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가 판사로서 소신껏 내렸던 위헌제청 결정(재판권 행사)이,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직권남용 행위로 인해 침해 당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서 재판 개입 피해자로 지목된 판사가 '사법농단'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건, 이날 염 부장판사가 처음이었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재판 개입 사건의 당사자인만큼 증언 내용을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어, 기사를 두 차례로 나눠 연재합니다.


#1. 이대로 널 보낼 수는…

2015년 4월 8일. 증인이 재판장으로 있던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재판부는 당시 사학연금법 31조 2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는 경우,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은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할 때에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한 결정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심판을 제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위헌제청이 그냥 위헌이 아닌 법률의 '한정위헌'을 구하는 취지였다는 점입니다. 심판 대상이 되는 법률 조항 자체가 전면 위헌은 아니지만, '특정한 내용으로 해석돼 적용되는 한' 위헌이 된다는 건데요.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은 매우 드문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결정 이틀 뒤인 금요일(4월 10일). 증인은 대법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습니다. 증인은 통화를 한 시간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통화 내용은 대체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대법원 내에서 헌법연구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일선 법원에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확인해보니 염 부장이라 연락하게 됐습니다.” (이규진)

이어지는 말을 증인은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지금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와 위상·권한 문제를 두고 다툼이 심한데 일선 법원에서 그렇게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일선 법원에서 헌재 논리를 인정해주는 결론이 돼서 대법원 입장에선 매우 좋지 않습니다. (결정문을) 이대로 헌재로 보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문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한번 (해결책을) 생각해 봅시다.

알쏭달쏭한 말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대법원은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이 오로지 '법원'에 속하는 권한이라고 판시해 왔습니다(대법원 2001.4.27. 선고 95재다14 판결 등). 그런데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 결정은, 법원이 아닌 헌법재판소가 법령의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법원의 법령 해석 권한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구애받지(기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대법원과 헌재의 권한 분장(分掌)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입니다.

이처럼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법원이 구했다는 점을 이 전 상임위원은 문제 삼았습니다. 증인도 "한정위헌에 그런 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을) 결정했다" "(그런) 결정을 하면 당장 헌재나 이런 데서 뉴스거리가 될 거 아니냐. 그걸 생각 못 했다"면서, 이 전 상임위원의 전화를 받은 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2. 해결사

해결책을 생각해보자던 이 전 상임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와 실제 해결 방안을 제안합니다. 금요일 당일에 다시 전화가 온 건지, 아니면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었는지 증인이 정확히 기억하진 못했는데요. 증언을 토대로 통화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해결책으로) 원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규진)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증인)
“내가 보기엔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규진)

재판부가 이미 내린 결정을 없던 것으로 하라는 제안인데요.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증인의 재판부는 4월 13일, 기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했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이 전화를 건 지 단 사흘 만에 기존 결정을 번복한 것입니다. 특히 증인은 새로 쓴 결정문에 서명을 하기 전, 이 전 상임위원에게 그 내용을 보내 "컨펌(confirm·확인)"을 구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재판 개입' 논란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전 상임위원은 이 같은 '해결책'을 검토하는 과정에 다른 판사들을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증인과의 통화 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이었던 문성호 판사를 불렀습니다. 문 판사는 헌재에 일선 법원의 위헌제청 결정문을 송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증인 재판부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문을 처음 확인해 이 전 상임위원에게 보고한 상태였는데요. 그는 지난해 10월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 전 상임위원에게 들은 말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위에서 (기존 위헌제청 결정을 취소하고) 다시 결정해서 (헌재에) 보내는 방향으로 결정했어요. 염 부장(증인)하고도 통화했는데, 고쳐서 다시 하겠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얘기하더군요. 이 일에 대해 정식 보고서를 작성하세요. 잘 써야 합니다.” (이규진)

한편 이 전 상임위원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있던 이 모 판사에게 메일을 보내 "이 결정문(증인 재판부의 위헌제청 결정문)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이 맞는지, 만일 그렇다면 대응방안으로 이 결정을 '직권 취소'하는 게 가능하겠는지, 되는 대로 빨리 검토해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판사는 이에 "위헌제청결정의 기속력"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이 전 상임위원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지난해 9월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출석한 이 판사의 증언은 이러했습니다.

- 이 모 판사: […] 이미 재판은 개별 판사가 서명해서 완성한 순간 구속력을 갖기 때문에, 재판부 스스로도 제도 보완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걸 없던 걸로 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고 저는 생각을 해서 (취소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장을 썼습니다.)

이후 이 전 상임위원은 이 판사가 작성한 보고서와, 자신이 쓴 '정리'라는 이름의 5~6쪽짜리 문건을 문성호 판사에게 보내며 보고서 작성에 참고하라고 했습니다. 문제점, 해결방안, 재발방지 방안 등의 목차로 구성된 '정리' 문건은 증인 재판부의 위헌제청에 대한 해결책으로 ▲결정을 직권 취소 ▲경정 ▲방기를 검토하면서, 결론적으로는 결정 취소 안을 지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문 판사는 이 지시에 따라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확인 및 향후대책(대외비)"이라는 보고서를 써서, 4월 13일 월요일에 이 전 상임위원에게 보고합니다. 문 판사는 이 보고서가 "사법정책실에 근무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보고서"였다고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말했습니다.

2018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018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3. 우리 사이, 그런 사이?

검찰은 문 판사가 쓴 보고서가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보고됐다면서, 결국 증인 재판부에 대한 '재판 개입'에 법원행정처 수뇌부의 결단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법원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을 한 것이 외부로 알려지면 이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에 대한 정당성 논거로 이용될 수 있고, 결국 대외적으로 대법원에 비해 헌재의 위상이 올라가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일선 재판부의 결정을 무마하는 재판 개입을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 상임위원 측은 이런 혐의를 부인하면서, 단순히 '개인적으로' 조언하려는 차원에서 증인에게 전화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이규진 피고인 변호인: 이규진 피고인은 증인과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증인과 두 기수밖에 차이 나지 않는 선배 법관으로서 일선 법원의 한정위헌 제청 사실을 전해 듣고 증인이 염려되어 곧바로 전화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는데, 증인이 예전부터 피고인과 알고 지냈던 건 맞죠?

증인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 증인: 에... 뭐 사석에서 만나서 이렇게 얘기한 적은 없고. 그냥 대학 선배, 연수원 선배, 선배 부장님이시고 그런, 안면만 서로 아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 당시까지.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고 쐐기도 박았습니다.

- 좌배석 판사: 증인이 인식하기에 당시 피고인이 개인적 차원에서 연락한 거라 인식한 것입니까, 업무상 연락한 것이라고 인식한 것입니까?
- 증인: 그게 좀 경계가 모호한데요. 개인적 차원으로 연락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왜냐면 본인이 처음에 전화하셨을 때, 대법원에서 내가 헌법 관련 연구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문제 돼서 전화하는 거라고 밝히셨으니까. 공적인 문제로 전화했다고 저는 생각했죠. 개인적으로 조언해서 이걸 고치라 마라 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었거든요, 저희가.

그러자 이 전 상임위원 측은 전화에 강압성이 없었음을 강조했습니다.

- 변호인: 전화 통화 과정에서 피고인이, 증인 재판부가 내린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에 대해 비난하거나 질책한 사실은 없죠?
- 증인: [웃으며] 그거 뭐.. 저는 질책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그냥 이런 문제가 있다고 얘기하셨고 행정처 쪽의 의견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고 처음에 헌법연구반 얘기부터 하셔서, '아, 이런 문제가 있구나~ 이건 좀 그 부분 놓친 거 같다.'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오히려 뭐랄까... 좀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증인도 "저도 재판하는 재판장인데"라고 강조하며, 일방적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 변호인: 피고인이 증인에게 무조건 원 결정 직권취소, 단순위헌 제청결정하는 방안을 따라야 한다고 지시한 게 아니라, 재결정이 가장 무난한 해결방법으로 생각된다는 의견을 제시해준 거죠?
- 증인: 그렇죠. 근데 아마 일방적인 지시였다면 제가 안 받아들였을 겁니다. 저도 재판하는 재판장인데, 아무리 선배 법관이라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다면 저도 저항감을 느꼈을 텐데, 그냥 같이 해결책 모색해보자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냥 별 저항감 없이 논의했던 거 같습니다.


#4. 납득이 됐다

이 전 상임위원은 자신이 '계기'를 제공해줬을지언정, 기존 결정 취소와 재결정은 재판부의 독자적인 판단이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재판 개입이 있었더라도 그 행위와 재판부의 판단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으니, 직권남용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임성근 판사도 재판에서 같은 취지의 변론을 펼쳤습니다.

- 변호인: 증인이 원 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다시 하기로 판단한 건 증인이 판단하기에 이규진 얘기가 충분히 납득가기 때문이었죠?
- 증인: 네. 납득도 가고 그게 가장 당사자 권익을 구제할 수 있는 빠르다고 할까... 잡음이 없고 다 빨리빨리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서 주심 판사하고 의논해 결정했습니다.
- 변호인: 피고인 의견이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의견이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선배이고 행정처 의견이라 하더라도 증인이 이걸 그대로 받아들여 원결정 취소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죠?
- 증인: 당연하죠.

- 변호인: 대법원이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 한정위헌 제청 당시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이런 결정을) 안 했을 걸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 증인: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이걸 고친 거죠.

'재판 개입' 논란을 두고 판사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판사가 자기가 윗선의 '재판 개입'에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을 하겠느냐" "판사로서의 자존감을 생각할 때 그런 진술은 못 할 것"이라는 지적들도 나오는데요. 증인 역시 자신을 '재판 개입'으로 결정 번복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의 '재판 개입' 사건 기소는 터무니없는 일이었을까요? 이어지는 기사에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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