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⑭ 양승태에 꾸벅 인사한 판사 증인…‘임종헌 역정’ 증언

입력 2019.10.15 (10:10) 수정 2019.10.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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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네 번째 순서로, 10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심준보 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前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심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6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일했습니다. 지난해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대법원장의 결정으로 징계가 청구된 판사 13명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합니다. 사유는 법관 품위 손상. 판사들이 만든 전문분야연구회로, 양 전 대법원장이 탐탁지 않아했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압박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심 부장판사에게 해당 혐의가 없다고 보고 최종적으로 징계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는 현재 건설 사건을 주로 심리하는 서울고등법원 민사3부의 재판장을 맡고 있습니다.


#1. 차장님의 역정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 그가 당시 법원행정처의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게 된 건, 판사들의 연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연구회는 양 전 대법원장이 불편해하던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는 일각의 오해를 받았고, 당시 법원행정처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거나 기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이른바 '인사모'는 당시 법원행정처 입장에선 눈엣가시였습니다. 행정처 내부 문건에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반 법관과 인사모 사이에 심리적 거리감, 경계감을 형성함으로써 인사모 활동을 위축시켜야 함"이라는 내용을 비롯해, 인사모를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한 내용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일했던 박상언 판사가 2017년 1월 작성한 ‘인사모 관련 대응방안 검토’ 문건의 일부.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일했던 박상언 판사가 2017년 1월 작성한 ‘인사모 관련 대응방안 검토’ 문건의 일부.

2017년 인사모는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소와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공동학술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시기는 3월 25일로 정해졌는데, 법관의 전보와 사무분담, 고등부장 제도의 문제점,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법관 인사권 문제 등이 구체적 주제로 거론됐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내용들이었지요. 행정처는 이 학술대회 개최가 의결된 1월부터 외부에서 혹시라도 행사에 관심을 가질까 걱정하면서, 이를 취소하거나 연기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노력에 대해 증인인 심 부장판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 증인: 굉장히 많이 만류는 하셨거든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임 회장인 이규진 실장님을 통해서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 그거(학술대회) 지금 꼭 해야 하냐"라고 만류를 많이 하신 건 맞습니다.

- 검사: 시기도 그러하니 이 대회를 하지 말아달라는 뜻을 전했는데도 (인사모가) 말을 안 들었다? 그런 뜻이었다는 건가요?
- 증인: "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좀 늦춰서 하자"라든가 "지금은 별로 좋지 않다"라는 얘기를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행정처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에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놓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 증인: (2017년 1월쯤, 차장 주재 법원행정처 실장급 회의에서) 임종헌 차장께서 조금 화가 나신 거 같은 그런 어조로 얘기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거 뭐, 말려도 듣지도 않고!" 이렇게 좀 화를 슬쩍 내시더니, "아, 이제 이 문제는 더 손대지 맙시다!" 약간 좀 역정을 내듯이 그렇게 얘기하셨던 기억은 갖고 있는데. (…)

- 검사: 그 회의에서, 결국 인사모 공동학술대회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이 났나요?
- 증인: (…) 역정 내시고, 우리랑 상의하신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저희는 그냥 가만히 있었죠.

한 달 뒤, 행정처는 이른바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법원 내부 게시판에 공지합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 수를 감소시키기 위한 다른 방안을 찾은 건데요. 하지만 이 역시 판사들의 반발로 일주일 만에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2016년 4월 법원행정처 명의로 작성된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 대응방안’ 문건 일부.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시행되면 각 연구회 회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구체적 예상치가 나와 있다.2016년 4월 법원행정처 명의로 작성된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 대응방안’ 문건 일부.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시행되면 각 연구회 회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구체적 예상치가 나와 있다.

증인은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예산 배분의 형평성"이나 "연구회의 전문성 문제" 때문에 거론됐을 뿐, 국제인권법연구회 압박 방안이라고는 행정처 재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 원장, 처장 말고 '차장'

검찰이 이 사건에서 문제 삼는 '인사모 압박'이나 재판 개입, '정운호 게이트' 판사 비위 축소 등의 공소사실에 대해, 증인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이 지시하거나 보고 받았는지를 대부분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습니다. 대신 그의 증언은 임종헌 차장에 집중됐습니다.

- 검사: 증인이 사법정책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과 관련해 김광태 광주지방법원장과 노정희 광주고등법원 전주제1행정부 재판장과 접촉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네.
- 검사: 증인은 김광태 법원장 접촉과 관련해, 이민걸 기조실장의 보고와 임 차장의 피드백에 대해 기억하는 게 있습니까?
- 증인: 네.
- 검사: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보실 수 있습니까?
- 증인: 김광태 원장님께 "담당 재판부에 행정처에서 검토한 내용을 좀 전달해달라" 뭐 그런 부탁을 했더니, "못하겠다"라고 김광태 원장님이 얘기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은 거 같고. 임 차장님이 역정을 내셨어요. "그 양반은 뭐 항상 그런 식"이라고... 화를 크게 내신 건 아니지만 역정, 짜증을 냈달까? 그러니까 그때 뭐 이규진 상임위원이 "(담당) 재판장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셨던 그 장면만 기억이 납니다.

그간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수많은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하급자인) 임종헌 차장이 알아서 한 일이지 우린 모른다'는 식의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입니다. 제가 챙겨보라는 지시를 별도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피고인 측은 재판에서도 임종헌의 '뛰어난 업무 능력'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검찰에서 "임종헌 차장이 모든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다 알려주지 않는다. 임종헌은 자신이 스스로 모든 걸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라고 진술하신 부분이 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 증인: 문자 그대로입니다. 뭐 본인이 직접 다 챙기는 스타일이고. 일도 뭐라고 할까, 실장들 그냥 건너 뛰고 (심의관들에게) 시키기도 하시고. 심지어는 뭐 여러 사람에게 시키셔가지고 나중에 똑같은 일을 중복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허탈해한다든가.[웃음] 뭐 그런 일들도 있고. 굉장히 꼼꼼하고 매사 만기친람하는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요? 거기 써 있는 그대로입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체적 논의는 없는 경우도 많았다는 뜻인가요?
- 증인: 당신이 굉장히 빨리 달려나가시는 스타일이었죠. 그건 맞습니다만, 그 이상 일반론을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립'(grip, 장악력), '카리스마'라는 단어도 나왔습니다.

- 검사: 아무튼 거기(행정처 심의관 작성 보고서) 보면 대응 방안이 있거든요. 1항, 2항, 3항. 그 중에 어떤 걸 택할지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논의됐던 거 아닙니까?
- 증인: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임종헌 차장님은 굉장히 '그립'(grip)이 센 분이셔서, 사실은 뭐 당신은 '논의했다', '협의했다'라고 얘기하시지만, 조금 약간... 임종헌 차장님의 카리스마에 끌려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항상 있었죠.


#3. 증인의 인사

이날 오후 1시 반 시작됐던 증인신문은 밤 9시가 거의 다 된 시각에 끝났습니다.

- 재판장: 네. 이상으로 증인 심준보에 대한 신문절차 모두 마치겠습니다. 증인, 대단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0분 간 휴정했다가 9시부터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심 부장판사는 재판장의 말에 증인석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며칠 전 밤 9시 이후에는 당사자가 동의하더라도 사건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대검찰청 발표도 있었고", "야간 재판을 하더라도 (밤) 9시까지만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밤) 9시 이후 진행 여부는 재판부가 검토해줬음 좋겠다"라는 양승태 피고인의 변호인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신문이 끝났는데도 증인이 계속 자리를 지키자, 재판장은 "일단 증인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다시 고지했습니다.

그러자 심 부장판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출입문으로 향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가 '꾸벅'하고 인사를 한 곳이 다름 아닌 피고인석이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증인은 신문을 마친 뒤 정면에 있는 재판부에 인사를 하고 퇴정합니다. 하지만 심 부장판사는 재판부에는 인사를 하지 않고, 몸을 피고인석 쪽으로 분명히 튼 다음,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인사했습니다. 두 피고인은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후 재판부가 10분 간 휴정을 공지하고 퇴정하자, 증인은 다시 법정으로 들어오더니 피고인석으로 가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처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고 전 처장과는 악수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10월 2일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증인신문이 끝난 뒤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휴정 시간에 피고인석으로 걸어가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변호인들이 다소 곤란해하면서 말릴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보다 보면, 이렇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일부 판사들의 속마음을 두 눈으로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라고 봐야할지, 비뚤어진 충정이라 봐야할지, 우린 잘못이 없다는 확신의 표현이라고 봐야할지, 그저 경망스런 행동이라 봐야할지, 늘 고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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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⑭ 양승태에 꾸벅 인사한 판사 증인…‘임종헌 역정’ 증언
    • 입력 2019-10-15 10:10:35
    • 수정2019-10-15 10:11:33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네 번째 순서로, 10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심준보 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前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심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6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일했습니다. 지난해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대법원장의 결정으로 징계가 청구된 판사 13명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합니다. 사유는 법관 품위 손상. 판사들이 만든 전문분야연구회로, 양 전 대법원장이 탐탁지 않아했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압박하기 위한 정책을 세우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심 부장판사에게 해당 혐의가 없다고 보고 최종적으로 징계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는 현재 건설 사건을 주로 심리하는 서울고등법원 민사3부의 재판장을 맡고 있습니다.


#1. 차장님의 역정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 그가 당시 법원행정처의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게 된 건, 판사들의 연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연구회는 양 전 대법원장이 불편해하던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는 일각의 오해를 받았고, 당시 법원행정처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거나 기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이른바 '인사모'는 당시 법원행정처 입장에선 눈엣가시였습니다. 행정처 내부 문건에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일반 법관과 인사모 사이에 심리적 거리감, 경계감을 형성함으로써 인사모 활동을 위축시켜야 함"이라는 내용을 비롯해, 인사모를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한 내용이 다수 발견됐습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일했던 박상언 판사가 2017년 1월 작성한 ‘인사모 관련 대응방안 검토’ 문건의 일부.
2017년 인사모는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소와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공동학술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시기는 3월 25일로 정해졌는데, 법관의 전보와 사무분담, 고등부장 제도의 문제점,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법관 인사권 문제 등이 구체적 주제로 거론됐습니다. 당시 법원행정처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던 내용들이었지요. 행정처는 이 학술대회 개최가 의결된 1월부터 외부에서 혹시라도 행사에 관심을 가질까 걱정하면서, 이를 취소하거나 연기시키고자 했습니다.

그 노력에 대해 증인인 심 부장판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 증인: 굉장히 많이 만류는 하셨거든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임 회장인 이규진 실장님을 통해서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 그거(학술대회) 지금 꼭 해야 하냐"라고 만류를 많이 하신 건 맞습니다.

- 검사: 시기도 그러하니 이 대회를 하지 말아달라는 뜻을 전했는데도 (인사모가) 말을 안 들었다? 그런 뜻이었다는 건가요?
- 증인: "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좀 늦춰서 하자"라든가 "지금은 별로 좋지 않다"라는 얘기를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 건 맞습니다.

하지만 행정처는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에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놓고 화를 냈다고 합니다.

- 증인: (2017년 1월쯤, 차장 주재 법원행정처 실장급 회의에서) 임종헌 차장께서 조금 화가 나신 거 같은 그런 어조로 얘기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이거 뭐, 말려도 듣지도 않고!" 이렇게 좀 화를 슬쩍 내시더니, "아, 이제 이 문제는 더 손대지 맙시다!" 약간 좀 역정을 내듯이 그렇게 얘기하셨던 기억은 갖고 있는데. (…)

- 검사: 그 회의에서, 결국 인사모 공동학술대회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이 났나요?
- 증인: (…) 역정 내시고, 우리랑 상의하신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방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저희는 그냥 가만히 있었죠.

한 달 뒤, 행정처는 이른바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법원 내부 게시판에 공지합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 수를 감소시키기 위한 다른 방안을 찾은 건데요. 하지만 이 역시 판사들의 반발로 일주일 만에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2016년 4월 법원행정처 명의로 작성된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 대응방안’ 문건 일부.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시행되면 각 연구회 회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구체적 예상치가 나와 있다.
증인은 중복가입 해소 조치가 "예산 배분의 형평성"이나 "연구회의 전문성 문제" 때문에 거론됐을 뿐, 국제인권법연구회 압박 방안이라고는 행정처 재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습니다.


#2. 원장, 처장 말고 '차장'

검찰이 이 사건에서 문제 삼는 '인사모 압박'이나 재판 개입, '정운호 게이트' 판사 비위 축소 등의 공소사실에 대해, 증인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이 지시하거나 보고 받았는지를 대부분 알지 못한다고 증언했습니다. 대신 그의 증언은 임종헌 차장에 집중됐습니다.

- 검사: 증인이 사법정책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과 관련해 김광태 광주지방법원장과 노정희 광주고등법원 전주제1행정부 재판장과 접촉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네.
- 검사: 증인은 김광태 법원장 접촉과 관련해, 이민걸 기조실장의 보고와 임 차장의 피드백에 대해 기억하는 게 있습니까?
- 증인: 네.
- 검사: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보실 수 있습니까?
- 증인: 김광태 원장님께 "담당 재판부에 행정처에서 검토한 내용을 좀 전달해달라" 뭐 그런 부탁을 했더니, "못하겠다"라고 김광태 원장님이 얘기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은 거 같고. 임 차장님이 역정을 내셨어요. "그 양반은 뭐 항상 그런 식"이라고... 화를 크게 내신 건 아니지만 역정, 짜증을 냈달까? 그러니까 그때 뭐 이규진 상임위원이 "(담당) 재판장은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뭐 그런 식의 이야기를 하셨던 그 장면만 기억이 납니다.

그간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수많은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하급자인) 임종헌 차장이 알아서 한 일이지 우린 모른다'는 식의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임 차장이 굉장히 유능한 사람입니다. 제가 챙겨보라는 지시를 별도로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피고인 측은 재판에서도 임종헌의 '뛰어난 업무 능력'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검찰에서 "임종헌 차장이 모든 일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다 알려주지 않는다. 임종헌은 자신이 스스로 모든 걸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라고 진술하신 부분이 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 증인: 문자 그대로입니다. 뭐 본인이 직접 다 챙기는 스타일이고. 일도 뭐라고 할까, 실장들 그냥 건너 뛰고 (심의관들에게) 시키기도 하시고. 심지어는 뭐 여러 사람에게 시키셔가지고 나중에 똑같은 일을 중복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허탈해한다든가.[웃음] 뭐 그런 일들도 있고. 굉장히 꼼꼼하고 매사 만기친람하는 스타일이었다고나 할까요? 거기 써 있는 그대로입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구체적 논의는 없는 경우도 많았다는 뜻인가요?
- 증인: 당신이 굉장히 빨리 달려나가시는 스타일이었죠. 그건 맞습니다만, 그 이상 일반론을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립'(grip, 장악력), '카리스마'라는 단어도 나왔습니다.

- 검사: 아무튼 거기(행정처 심의관 작성 보고서) 보면 대응 방안이 있거든요. 1항, 2항, 3항. 그 중에 어떤 걸 택할지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논의됐던 거 아닙니까?
- 증인: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임종헌 차장님은 굉장히 '그립'(grip)이 센 분이셔서, 사실은 뭐 당신은 '논의했다', '협의했다'라고 얘기하시지만, 조금 약간... 임종헌 차장님의 카리스마에 끌려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항상 있었죠.


#3. 증인의 인사

이날 오후 1시 반 시작됐던 증인신문은 밤 9시가 거의 다 된 시각에 끝났습니다.

- 재판장: 네. 이상으로 증인 심준보에 대한 신문절차 모두 마치겠습니다. 증인, 대단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0분 간 휴정했다가 9시부터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심 부장판사는 재판장의 말에 증인석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며칠 전 밤 9시 이후에는 당사자가 동의하더라도 사건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대검찰청 발표도 있었고", "야간 재판을 하더라도 (밤) 9시까지만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밤) 9시 이후 진행 여부는 재판부가 검토해줬음 좋겠다"라는 양승태 피고인의 변호인의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신문이 끝났는데도 증인이 계속 자리를 지키자, 재판장은 "일단 증인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라고 다시 고지했습니다.

그러자 심 부장판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출입문으로 향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가 '꾸벅'하고 인사를 한 곳이 다름 아닌 피고인석이었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증인은 신문을 마친 뒤 정면에 있는 재판부에 인사를 하고 퇴정합니다. 하지만 심 부장판사는 재판부에는 인사를 하지 않고, 몸을 피고인석 쪽으로 분명히 튼 다음,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인사했습니다. 두 피고인은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후 재판부가 10분 간 휴정을 공지하고 퇴정하자, 증인은 다시 법정으로 들어오더니 피고인석으로 가 양 전 대법원장과 고 전 처장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고 전 처장과는 악수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10월 2일 이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증인신문이 끝난 뒤 방청석에 앉아 있다가, 휴정 시간에 피고인석으로 걸어가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변호인들이 다소 곤란해하면서 말릴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보다 보면, 이렇게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일부 판사들의 속마음을 두 눈으로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라고 봐야할지, 비뚤어진 충정이라 봐야할지, 우린 잘못이 없다는 확신의 표현이라고 봐야할지, 그저 경망스런 행동이라 봐야할지, 늘 고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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