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㉚ “내가 전달책”…‘재판 개입’ 의혹 산증인 된 판사

입력 2020.08.26 (10:10) 수정 2020.08.2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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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서른 번째 순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에 2020년 5~7월 다섯 차례 증인으로 출석한 이민걸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前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2015년 8월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던 이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돼 별도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받고 있는 핵심적인 혐의는 '재판 개입' 의혹. 법원행정처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선 법원의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각 재판부를 접촉했다는 것입니다.

앞선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㉕ ‘진술 번복’ 전문가 등장?…검사 “증인 말 어떻게 믿나” 발끈)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상고심과 관련한 이 부장판사의 증언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이 통합진보당(통진당) 관련 행정소송 재판 개입 문제에 대한 증언을 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접촉의 시작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은 옛 통진당 국회의원들은 서울행정법원에 불복 소송을 냈다가 이듬해 11월 패소합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은 "헌법재판소에 맡겨져 있는 헌법 해석·적용에 근거해 이뤄진 결정인 이상, 법원 등 다른 국가기관은 이를 다툴 수 없고 이에 대해 다시 심리·판단할 수도 없다"라며 소 각하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이고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법원의 관할을 '침범'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이 헌재 결정을 그대로 존중해 옛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을 각하해선 안 된다는 게 당시 행정처 간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이에 행정처는 각하 판결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 중인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 미리 관련 '문건'을 전달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관련 기사: 법원행정처 ‘재판개입’ 의혹 문건 받은 수석판사…“고민 끝에 파쇄”)

결국 행정처의 눈은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게 된 서울고등법원으로 쏠리게 되는데요. 사건이 항소심 법원에 접수된 2015년 12월부터, 기조실장이던 증인이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 검사: 증인은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 재판장 김광태에게 연락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예.
- 검사: […] 2015년 12월 30일 […] 무렵에 (법원 전산에서) 사건 조회 후 김광태에게 연락한 것입니까?
- 증인: 그런 걸로 기억합니다.

증인은 김광태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증인: 아마 저날쯤 차장님 주재 (법원행정처 실장급) 회의에서 차장님인지, […] '뭐 자료 한 번 읽어는 보고, 알고는 재판해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서 […] (재판장이) 김광태 재판장이라고 해서, 다들 뭐 가까운 사람이 저밖에 없기 때문에 저보고... 초임 우배석, 좌배석 관계이고 뭐 오랜 기간 친분이 있어서. 그건 뭐 가볍게 아마 제가 먼저 "그럼 제가 김광태 재판장한테 자료 한 번 볼 건지 물어나 보겠다" 했던 거 같습니다.

여기서 증인이 말한 '자료'는 행정처에서 헌법 문제를 담당하는 사법정책실이 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해 검토해 정리한 10쪽 안팎(추정)의 문건을 뜻합니다. 검찰이 '재판 개입' 문건이라고 보고 있는, 사법농단 사건의 주요 증거인데요. 이 문건에는 국회의원 지위 존부 확인에 대한 재판권이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 있고, 의원들이 직을 유지하거나 상실한다고 판결할 경우 각각 어떤 논거를 들 수 있는지와 각 판단의 장·단점 등이 설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적어도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 '각하' 판결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재한 셈이었죠.

- 검사: 증인은 김광태에게 "통진당 사건에는 헌법적 쟁점이 있다. 헌재와 대법 간의 권한분쟁적 성격이 있다. 행정처에서 검토한 게 있다. 1심에서 각하돼 왔는데 이게 법원 권한인지 헌재 권한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까?
- 증인: 네. 그런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이 사건이 배당됐는지도 잘 몰랐다"라면서 "인사를 앞두고 있어 (사건을) 처리하기 어렵다"라고 답했습니다.

증인은 이런 사실을 보고하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인사 후 사무분담이 정해지면 그때 다시 보자"라고 말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다만 법정에서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차장인지 처장인지 정확하지 않다"라고 말을 조금 바꿨습니다.


#2. 복요리집에서 생긴 일

2016년 2월 인사로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의 재판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온 재판장 역시 증인과 친분이 매우 두터운 인물이었습니다. 증인과 사법연수원 당시 짝꿍으로 만나 "아주 친한 형"이었던 이동원 부장판사(現 대법관)가 그 주인공인데요.

증인은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온 이 부장판사에게 "식사나 같이 하자"라며 연락해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2016년 3월 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복 요리를 먹으며, 문제의 행정처 '문건'을 전달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에서, 이동원에게 문건을 전달한 것과 관련해 상급자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주었던 건 맞다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증인: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말이) 나와서 제가 한 것이니, 반(半)자발적, 반(半)지시적이라고 봐야죠.

증인은 2015년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서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해당 사건에) 헌법적 쟁점이 있는 부분을 제대로 알고 판단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에 "주무 부서에서 검토한 자료를 (재판부에) 줘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 처장은 2016년 2월 처장직에서 물러나기 전 실장회의에서, "서울고등법원 통진당 사건에 유의하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증인과 이 부장판사가 밥을 먹은 지 두 달쯤 지나, 서울고등법원에선 통진당 의원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특히 "위헌정당해산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했는지 여부에 대한 사법상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라며 각하 판결을 내렸던 1심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했는데, 이는 증인이 전달한 행정처 문건의 시각과 일치합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실장회의에서) 언제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 증인: 제 생각엔 선고났으면 선고 보고는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헌재에서 오바(over)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전체 대법원 입장이라 생각해서. "제대로 판단한 거 아니냐" 이 정도 얘기가 (실장회의에서) 있었던 거 같습니다.

다만 해당 판결을 선고한 이동원 부장판사와 이인석 판사는 2020년 8월 11일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판결은 재판부가 고민한 결과"였고 "독립돼서 한 판결"이었다고 일관되게 강조했습니다. 행정처의 영향이나 개입은 없었다는 겁니다. 현재 대법관이 된 이 부장판사의 증언은 관련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직 대법관도 ‘사법농단’ 재판 증인석에…이동원 대법관, 임종헌 재판서 증언)

2020년 8월 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동원 대법관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2020년 8월 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동원 대법관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증인이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 감행한 '접촉'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증인은 2016년 3월, 통진당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들을 상대로 낸 퇴직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던 광주지방법원과 광주고등법원 법원장에게 각각 전화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재직 시절에 이어 광주에 법원장으로 와서까지 증인의 전화를 받은 김광태 법원장은, "내 입장에서 재판부에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라는 취지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담당 재판부 재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유남석 당시 광주고등법원장(現 헌법재판소장)이 증인의 전화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재판에서 공개된 바 없습니다.

증인은 또 같은 시기, 자신이 광주고등법원 전주제1행정부 재판장이었던 노정희 부장판사(現 대법관)에게도 통진당 지방의원들의 소송과 관련해 전화를 걸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다만 이 증언은 변호인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일부 변경됐는데, 이 내용은 다음 번 기사에서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3. 금지된 것도 아니고…

특정 사건과 관련해 일선 법원과 재판부를 연쇄적으로 접촉하고도, 증인은 판사로서 찝찝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증인은 이동원 부장판사에게 문건을 전달한 것과 관련해 "전 쉽게 가볍게, 그냥 재판부에서 판단하는 데 자료를 보는 거는 일응은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그게 뭐 금지된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법관윤리강령에는 "법관은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증인이 말하는 금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검찰 조사에서도 증인은 "일선 재판부에 대한 자료 전달은 재판부가 검토하기 힘든 헌법적 자료를 행정처가 제공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저의 선의를 오해없이 들어줄 수 있는 상대방에 한해서 동의하는 경우에만 문건을 전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하리라 생각"했고, "여러 자료를 참고하는데 이런 자료도 참고하라는 거지, 개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라고도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증인의 태도가 다소나마 달라졌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법원행정처가 구체적 사건에 대해 일선 재판부에 연락할 경우, 관여한다기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라면서, 재판 독립을 해할 위험 소지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증인: 네. 검찰 조사 때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먼저 전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일선 재판부에서 깊이 연구할 시간이 없는 현실 하에서, 법원행정처가 재판 업무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검토 자료를 참고자료로 제공할 수 있다고 인식했습니까?
- 증인: 어... 정확한 인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 생각이 재판부가 기본적으로 자기가 담당하는 사건에 대해 법률적 쟁점이 뭔지 파악하고 검토하는 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어서 제가 자료 한 번 주고 읽는 게 금지된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줬는데, 지금 와서 보니 부적절하다는 얘깁니다. […]

증인은 또 "30년 이상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먼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지인이나 선배 등이 […] 증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재판에 관해 어떤 법리를 알려주거나 관련 자료를 증인에게 제공했던 경험이 있냐"라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증인: […] 제가 물어본 경우에는 도와주는 경우는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 물론 친한 사람 중에서는 제가 무슨 사건을 담당하고 있을 때 평상시에 가까운 사람한테는 재판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까, "지난번에 그 얘기 내가 찾아보니까 이런 게 있더라"하고 주는 경우는 있는 거 같습니다. 그 정도는 있지만, 그건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주는 거지 누가 생뚱맞게 주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증인의 말에 따르면, 결국 재판부에 연락을 취하고 문건을 전달했던 본인의 행동 역시 '생뚱맞다'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생뚱맞은 짓이 '불법적 재판 개입'이라고 평가될 수 있을지가, 증인의 상급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 등 재판의 주요 쟁점입니다.

앞서 사법농단 수사 결과 '재판 개입'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던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1심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가 계속 중인 구체적 사건에 대해 사법지원을 한다는 이유로 참고자료를 전달하고 조언하며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법관의 독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헌법상 법관의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직권남용죄는 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선고했죠.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재판 개입' 의혹을 둘러싼 증인과 노정희 대법관의 엇갈린 진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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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㉚ “내가 전달책”…‘재판 개입’ 의혹 산증인 된 판사
    • 입력 2020-08-26 10:10:33
    • 수정2020-08-26 10:11:22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서른 번째 순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에 2020년 5~7월 다섯 차례 증인으로 출석한 이민걸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7기·前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2015년 8월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맡았던 이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돼 별도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받고 있는 핵심적인 혐의는 '재판 개입' 의혹. 법원행정처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선 법원의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각 재판부를 접촉했다는 것입니다.

앞선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㉕ ‘진술 번복’ 전문가 등장?…검사 “증인 말 어떻게 믿나” 발끈)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상고심과 관련한 이 부장판사의 증언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이 통합진보당(통진당) 관련 행정소송 재판 개입 문제에 대한 증언을 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접촉의 시작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은 옛 통진당 국회의원들은 서울행정법원에 불복 소송을 냈다가 이듬해 11월 패소합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은 "헌법재판소에 맡겨져 있는 헌법 해석·적용에 근거해 이뤄진 결정인 이상, 법원 등 다른 국가기관은 이를 다툴 수 없고 이에 대해 다시 심리·판단할 수도 없다"라며 소 각하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이고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법원의 관할을 '침범'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이 헌재 결정을 그대로 존중해 옛 통진당 의원들의 소송을 각하해선 안 된다는 게 당시 행정처 간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습니다. 이에 행정처는 각하 판결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 중인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 미리 관련 '문건'을 전달하려고도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관련 기사: 법원행정처 ‘재판개입’ 의혹 문건 받은 수석판사…“고민 끝에 파쇄”)

결국 행정처의 눈은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게 된 서울고등법원으로 쏠리게 되는데요. 사건이 항소심 법원에 접수된 2015년 12월부터, 기조실장이던 증인이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 검사: 증인은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 재판장 김광태에게 연락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예.
- 검사: […] 2015년 12월 30일 […] 무렵에 (법원 전산에서) 사건 조회 후 김광태에게 연락한 것입니까?
- 증인: 그런 걸로 기억합니다.

증인은 김광태 당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증인: 아마 저날쯤 차장님 주재 (법원행정처 실장급) 회의에서 차장님인지, […] '뭐 자료 한 번 읽어는 보고, 알고는 재판해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서 […] (재판장이) 김광태 재판장이라고 해서, 다들 뭐 가까운 사람이 저밖에 없기 때문에 저보고... 초임 우배석, 좌배석 관계이고 뭐 오랜 기간 친분이 있어서. 그건 뭐 가볍게 아마 제가 먼저 "그럼 제가 김광태 재판장한테 자료 한 번 볼 건지 물어나 보겠다" 했던 거 같습니다.

여기서 증인이 말한 '자료'는 행정처에서 헌법 문제를 담당하는 사법정책실이 통진당 행정소송에 대해 검토해 정리한 10쪽 안팎(추정)의 문건을 뜻합니다. 검찰이 '재판 개입' 문건이라고 보고 있는, 사법농단 사건의 주요 증거인데요. 이 문건에는 국회의원 지위 존부 확인에 대한 재판권이 헌법재판소가 아닌 법원에 있고, 의원들이 직을 유지하거나 상실한다고 판결할 경우 각각 어떤 논거를 들 수 있는지와 각 판단의 장·단점 등이 설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건에 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적어도 본안 판단을 하지 않는 '각하' 판결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재한 셈이었죠.

- 검사: 증인은 김광태에게 "통진당 사건에는 헌법적 쟁점이 있다. 헌재와 대법 간의 권한분쟁적 성격이 있다. 행정처에서 검토한 게 있다. 1심에서 각하돼 왔는데 이게 법원 권한인지 헌재 권한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까?
- 증인: 네. 그런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에 이 사건이 배당됐는지도 잘 몰랐다"라면서 "인사를 앞두고 있어 (사건을) 처리하기 어렵다"라고 답했습니다.

증인은 이런 사실을 보고하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인사 후 사무분담이 정해지면 그때 다시 보자"라고 말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다만 법정에서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차장인지 처장인지 정확하지 않다"라고 말을 조금 바꿨습니다.


#2. 복요리집에서 생긴 일

2016년 2월 인사로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사건의 재판장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온 재판장 역시 증인과 친분이 매우 두터운 인물이었습니다. 증인과 사법연수원 당시 짝꿍으로 만나 "아주 친한 형"이었던 이동원 부장판사(現 대법관)가 그 주인공인데요.

증인은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온 이 부장판사에게 "식사나 같이 하자"라며 연락해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2016년 3월 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복 요리를 먹으며, 문제의 행정처 '문건'을 전달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에서, 이동원에게 문건을 전달한 것과 관련해 상급자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주었던 건 맞다고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증인: 차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말이) 나와서 제가 한 것이니, 반(半)자발적, 반(半)지시적이라고 봐야죠.

증인은 2015년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에게서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해당 사건에) 헌법적 쟁점이 있는 부분을 제대로 알고 판단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에 "주무 부서에서 검토한 자료를 (재판부에) 줘야 하나"라고 생각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박 처장은 2016년 2월 처장직에서 물러나기 전 실장회의에서, "서울고등법원 통진당 사건에 유의하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확인됐습니다.

증인과 이 부장판사가 밥을 먹은 지 두 달쯤 지나, 서울고등법원에선 통진당 의원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특히 "위헌정당해산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소속 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했는지 여부에 대한 사법상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라며 각하 판결을 내렸던 1심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했는데, 이는 증인이 전달한 행정처 문건의 시각과 일치합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실장회의에서) 언제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 증인: 제 생각엔 선고났으면 선고 보고는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헌재에서 오바(over)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게 전체 대법원 입장이라 생각해서. "제대로 판단한 거 아니냐" 이 정도 얘기가 (실장회의에서) 있었던 거 같습니다.

다만 해당 판결을 선고한 이동원 부장판사와 이인석 판사는 2020년 8월 11일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판결은 재판부가 고민한 결과"였고 "독립돼서 한 판결"이었다고 일관되게 강조했습니다. 행정처의 영향이나 개입은 없었다는 겁니다. 현재 대법관이 된 이 부장판사의 증언은 관련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직 대법관도 ‘사법농단’ 재판 증인석에…이동원 대법관, 임종헌 재판서 증언)

2020년 8월 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등 혐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동원 대법관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증인이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해 감행한 '접촉'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증인은 2016년 3월, 통진당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방자치단체들을 상대로 낸 퇴직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던 광주지방법원과 광주고등법원 법원장에게 각각 전화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고등법원 재직 시절에 이어 광주에 법원장으로 와서까지 증인의 전화를 받은 김광태 법원장은, "내 입장에서 재판부에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라는 취지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담당 재판부 재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유남석 당시 광주고등법원장(現 헌법재판소장)이 증인의 전화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재판에서 공개된 바 없습니다.

증인은 또 같은 시기, 자신이 광주고등법원 전주제1행정부 재판장이었던 노정희 부장판사(現 대법관)에게도 통진당 지방의원들의 소송과 관련해 전화를 걸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다만 이 증언은 변호인의 반대신문 과정에서 일부 변경됐는데, 이 내용은 다음 번 기사에서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3. 금지된 것도 아니고…

특정 사건과 관련해 일선 법원과 재판부를 연쇄적으로 접촉하고도, 증인은 판사로서 찝찝한 마음이 없었을까요?

증인은 이동원 부장판사에게 문건을 전달한 것과 관련해 "전 쉽게 가볍게, 그냥 재판부에서 판단하는 데 자료를 보는 거는 일응은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그게 뭐 금지된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법관윤리강령에는 "법관은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증인이 말하는 금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검찰 조사에서도 증인은 "일선 재판부에 대한 자료 전달은 재판부가 검토하기 힘든 헌법적 자료를 행정처가 제공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다" "저의 선의를 오해없이 들어줄 수 있는 상대방에 한해서 동의하는 경우에만 문건을 전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하리라 생각"했고, "여러 자료를 참고하는데 이런 자료도 참고하라는 거지, 개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라고도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증인의 태도가 다소나마 달라졌습니다.

- 박병대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법원행정처가 구체적 사건에 대해 일선 재판부에 연락할 경우, 관여한다기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라면서, 재판 독립을 해할 위험 소지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맞습니까?
- 증인: 네. 검찰 조사 때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먼저 전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증인은 일선 재판부에서 깊이 연구할 시간이 없는 현실 하에서, 법원행정처가 재판 업무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검토 자료를 참고자료로 제공할 수 있다고 인식했습니까?
- 증인: 어... 정확한 인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 생각이 재판부가 기본적으로 자기가 담당하는 사건에 대해 법률적 쟁점이 뭔지 파악하고 검토하는 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어서 제가 자료 한 번 주고 읽는 게 금지된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줬는데, 지금 와서 보니 부적절하다는 얘깁니다. […]

증인은 또 "30년 이상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먼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지인이나 선배 등이 […] 증인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재판에 관해 어떤 법리를 알려주거나 관련 자료를 증인에게 제공했던 경험이 있냐"라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변호인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증인: […] 제가 물어본 경우에는 도와주는 경우는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 물론 친한 사람 중에서는 제가 무슨 사건을 담당하고 있을 때 평상시에 가까운 사람한테는 재판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니까, "지난번에 그 얘기 내가 찾아보니까 이런 게 있더라"하고 주는 경우는 있는 거 같습니다. 그 정도는 있지만, 그건 제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주는 거지 누가 생뚱맞게 주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증인의 말에 따르면, 결국 재판부에 연락을 취하고 문건을 전달했던 본인의 행동 역시 '생뚱맞다'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생뚱맞은 짓이 '불법적 재판 개입'이라고 평가될 수 있을지가, 증인의 상급자였던 양 전 대법원장 등 재판의 주요 쟁점입니다.

앞서 사법농단 수사 결과 '재판 개입'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던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1심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가 계속 중인 구체적 사건에 대해 사법지원을 한다는 이유로 참고자료를 전달하고 조언하며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법관의 독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것"으로 "헌법상 법관의 독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그러면서도 직권남용죄는 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선고했죠.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재판 개입' 의혹을 둘러싼 증인과 노정희 대법관의 엇갈린 진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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