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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⑰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 우려한 판사…의심의 나비효과
입력 2019.11.28 (11:01) 수정 2019.11.28 (11:48)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일곱 번째 순서로, 11월 1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임효량 수원지법 판사(사법연수원 34기·前 법원행정처 기획 제1·2심의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임효량 판사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기조실)에서 일했습니다. 임 판사가 기조실에 근무한 지 2년째가 되던 2017년 2월, 그와 같이 일할 새로운 기획심의관으로 이탄희 판사(사법연수원 34기·現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령을 받습니다. 이탄희 판사는 사직서 제출로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알린 바로 그 인물이지요.

임효량 판사는 법원행정처 부임을 앞둔 이 판사에게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를 써서, 당시 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판사들의 전문분야연구회) 탄압 의혹 등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탄희 판사는 임 판사와의 대화 후 충격을 받고 사직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늘의 증인인 임효량 판사를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는 데 주요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소모임인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양승태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소모임인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1. 씨앗

증인은 2016년 법원행정처에 부임한 이후, 행정처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한 의심을 조금씩 키워나갔습니다. 그 시작은 행정처 첫 출근 전날인 2016년 2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를 윗분들이 언급하는 발언을 들었나요?
- 증인: 일단 제가 행정처 부임하기 전날입니다. 주말에 나갔을 때 제가 사무실에 갔더니 김민수 판사(당시 기조실 기획제1심의관)가 같이 임종헌 차장한테 인사 가자고. 항상 출근하시니까. 그래서 휴일인데도 갔더니 저보고 "인사모 아냐?" 이렇게 물어보길래, 사실 처음 뵙고 만난 자리인데도 '그것도 모르냐' 이런 취지로 얘기하시길래 '뭔데 이렇게 관심이 있나' 이렇게 생각했었고. […]

첫 출근을 앞두고 인사를 온 증인에게 대뜸 '인사모'를 아느냐고 묻는 차장. 증인의 마음 속에 의혹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이었습니다.

- 우배석 판사: 부임 전날, 가자마자 차장님이 인사모 얘기를 물어봤다는 게 어떤 맥락에서 물어본 건지 기억나시나요?
- 증인: 그런 것도 잘 모르냐,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 우배석: 갑자기 그냥 얘기를 꺼내신 건가요?
- 증인: 저도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새로 온 저한테 '너 이런 것도 모르냐?' 이러는 것처럼, '너 이런 것도 몰라서 어떻게 일할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차장과의 대화 이후. 부임한 지 한 달째 되던 시점에 증인은 "인사모 해소", "인사모 폐지"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법원행정처 보고서들을 접했습니다. 증인은 당시 그런 보고서 내용에 대해 "문제의식이 크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 증인: […] 2016년 3월 당시에는 사실 전문분야연구회라는 곳이나 인사모라든가 이런 거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민수 판사가 나눠준 (보고서) 내용에도 보면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관련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그 당시 정확히 캐치하지는 못했던 거 같습니다.

법원행정처 기조실에서 작성된 ‘전문분야연구회 개선방안 검토’ 보고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제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법원행정처 기조실에서 작성된 ‘전문분야연구회 개선방안 검토’ 보고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제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2. 보이지 않던 것들

하지만 부임 2년 차인 2017년에 접어들면서, 법원행정처의 '인사모 탄압' 의혹에 대한 증인의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다고 합니다.

- 검사: 2016년 3월에는 ('인사모 해소'를 언급한 보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는데, 1년 정도 뒤에는 '아. 이게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하려는 목적이구나'라는 걸 느꼈다는 말씀이십니까?
- 증인: 그렇습니다.

1년 사이 생각이 바뀐 데 대해, 증인은 "나중의 경험들을 종합"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2017년 1월 당시 기조실 소속으로 증인과 같은 방을 쓰던 박상언, 김민수 판사의 동향을 우선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당시 인사모가 연세대 법학연구원과 함께 '법관 인사제도'를 주제로 준비하던 공동학술대회에 대해, 행정처에서 대응하려는 낌새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 증인: 그 무렵에 김민수 판사나 박상언 판사가 (인사모 학술대회) 관련 검토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김민수 판사가 박상언 판사에게 "3월에 쓴 (인사모 관련) 보고서 있냐. 메일로 좀 보내달라" 얘기하는 걸 제가 사무실에서 들은 적도 있고. 상급자와 전화할 때 그에 관한 언급이 얼핏 얼핏 들렸던 걸로 봐서. […] 당시 이슈가 된 게 (인사모와 연세대의) 학술회의가 있어서, '아, 이제 뭔가 조치하려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증인은 한 달 뒤인 2017년 2월에 이르러서는 의심을 넘어 "확신이 들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2월 13일,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판사들을 상대로 공지한 '중복가입 해소조치' 때문이었습니다. 전문분야연구회 여러 곳에 중복으로 가입한 판사들은, 기존 예규에 따라 가장 관심있는 한 곳만 남기고 나머지 연구회는 모두 탈퇴해야 한다는 게 공지의 요지였습니다. 급성장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 수를 줄여 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표적' 조치가 아니냐는 의심이 판사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2017년 2월 13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올라온 ‘중복가입된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등에 관한 안내 말씀’. 행정처는 일주일 뒤인 2월 20일 이 조치를 철회했다.2017년 2월 13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올라온 ‘중복가입된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등에 관한 안내 말씀’. 행정처는 일주일 뒤인 2월 20일 이 조치를 철회했다.

더욱이 증인은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직전인 2016년, 법원 전문분야연구회 회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니 지원 예산을 늘려달라는 취지의 행정처 서류를 국회에 제출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임종헌 차장이 지시한 일이었습니다. 국회에 연구회 지원 예산을 요청해 실제 예산도 더 많이 확보했는데, 불과 몇 달 뒤에 국회 감사 우려 등을 근거로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보고 증인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 검사: 김민수 판사는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전날인 2017년 2월 12일 밤에 증인에게 해소조치 관련 공지글을 보여준 사실이 있죠?
- 증인: 있습니다.
- 검사: 그걸 보고 당시 김민수에게 어떤 의견을 냈고, 그에 대한 김민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증인: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저 예산 관련된 (국회 제출) 문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민수 판사에게, 우리가 국회에다가 이렇게 연구회 가입 인원 늘었다는 이유로 작년에, 먼 것도 아니고 작년에 이렇게 예산을 늘려놓고는 국회에서의 감사나 그런 우려 때문에 중복가입을 해소한다는 것이 너무. 같은 기관에서 내놓은 입장으로서는 너무 배치되는 거 아니냐, 금반언(禁反言·자신의 선행행위와 정면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모순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반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제가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김민수가 "정책결정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책결정이 되었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했습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뒤에 최소한 법원행정처장 이상급의 결정이 있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김민수 판사는 그러면서 증인이 국회에 제출한 예산 지원 문건에 대해 "그건 일개 심의관인 네가 작성한 거 아니냐"라고 말해,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증인은 회고했습니다.


#3. 이탄희의 사직서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 이틀 뒤인 2017년 2월 15일. 증인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행정처 부임을 닷새 앞둔 이탄희 판사와 사무실에서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시 대화는 이 판사가 사직을 결심한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 검사: 당시 이탄희 판사와 얘기하면서 증인께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한 거"라고 하면서,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들어가면 다 끝장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네, 있습니다.

증인은 "블랙리스트 프레임"이라는 표현이 "외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불이익을 주는 형태"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창 문제되고 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그 프레임에, 사법부도 자칫 잘못되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 증인: […] 겉으로 내세운 중복가입 해소조치라는 […] '외관'은, "예규에 따른 집행이다". "예규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복가입을, 명문화된 것을 이제는 실행한다" […]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증인과 이탄희 판사의 대화 다음날인 2월 16일, 이 판사는 당시 소속돼 있던 수원지법 안양지원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 "판사들 뒷조사를 하고, 예산상의 불이익을 주고, 연구회를 와해시키고" "그런 일들을 나한테 시킬 게 (임효량, 이규진과의 대화 이후) 확실해졌다"라며, '좋은 판사로 남겠다'는 생각으로 사직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 판사는 행정처 겸임해제와 재판부 복귀를 조건으로 당시 사직서를 철회했습니다. 임종헌 차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끊임없이 전화하던 상황에서 일단 의사를 철회했던 것입니다. 올해 2월 말, 그는 두 번째 사직서를 내고 법원을 떠났습니다.


#4. 추측과 추궁

증인은 2017년 3월 꾸려진 법원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는 취지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 이탄희 판사가 사의를 표시하는 거의 상당 부분의 영향은 제가 했던 말이나, 격정적으로 했던 제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어떻게 보면 과장해서 생각했을 수도 있고 본인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서요. […]"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런 증인의 진술 내용을 법정에서 공개하면서, 증인이 이탄희 판사에게 근거가 부실한 부정확한 이야기를 해 '인사모 와해' 의혹을 불필요하게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도 증인의 추측성 발언에 대해 적극 추궁했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이하 '양 변'): 증인은 이탄희에게 "이번에 인권법 소속 판사들 상당수가 인사발령에서 상당히 좋은 보직 받았는데.[…] 그것이 이번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함께 이뤄진 거 아닌가 생각한다. 일부 핵심 인물은 끌어들이고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힘을 빼려는 것 아닌가 한다"라는 의견을 이야기했다는 것인가요?
- 증인: 그렇습니다.
- 양 변: 이탄희에게 말한 이 의견은 순전히 증인 추측에 근거한 의견입니까 아니면...
- 증인: [말 끊으며] 추측입니다.

추궁 과정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양 변: 임종헌 차장이라든가 이런 상급자들한테, 구체적으로 "이 보고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모 겨냥한 거다" 얘기 들은 적은 있으신가요?
- 증인: 그런 적은 없습니다.
- 양 변: 증인이 이런저런 인상 받았다 이렇게 답변했는데, 증인이 결국 행정처에 계시면서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증인이 추측했다 이 정도로 보면 될까요?
- 증인: 보고서에 나와 있는 표현들이나 이런 거 기억 남는 거 있고 그 당시에..
- 양 변: [말 끊으며] 보고서 받을 당시 별생각 없다고 하셨잖아요.
- 증인: 보고서를 받았을 때는 거기에 대한.. 그땐 제 업무가 아니니까 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건 아니지만, 어떤 취지의 보고서인지 정도는 알았습니다.

증인은 다만 당시 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인사모 와해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라면서, "결국 그 당시 '인식의 최고점'까지 가는 과정에서 보고서를 보고, 여러 일련의 과정을 경험한 것인데 그것이 추측이냐 아니면 평가냐, 판단이냐, 이것은 사실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자신의 추측이 컸음을 인정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 목적으로 쓰였다고 증인이 추측했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보고서(2016.3,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작성)의 일부분. “인사모 폐지”를 검토했다.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 목적으로 쓰였다고 증인이 추측했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보고서(2016.3,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작성)의 일부분. “인사모 폐지”를 검토했다.

#5. 그밖에...

○ 신임 대법원장의 지시 = 증인은 2017년 9월 27일 대법원장실의 호출을 받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증인에게 "김민수 판사가 2016년 사용했던 PC를 (증인이 보관해왔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보관하고, 폐기하거나 변경을 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가릴 증거가 될 컴퓨터 보존 조치를 대법원장이 지시한 것입니다. 김 대법원장은 또 "행정처에 기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런 걸 좀 한번 정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라고 증인에게 당부했다고 합니다. 증인은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사법행정)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미완성)를 작성했지만, 대법원장이 더이상 찾지 않아 보고서를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 미완성·미공개 보고서에는 무슨 내용? = 해당 보고서는 법원행정처의 문제점으로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양립할 수 없는 지위의 혼동"을 꼽았습니다. 증인은 '법원행정처나 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이용해 뭔가 하게 되면, 사법부 본연의 업무인 재판은 경시되고 사법행정이 우위에 서게 된다'면서, "법원행정처나 사법행정권자의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는 판사들이 "법관과 행정처 심의관으로서의 지위의 혼동"을 겪는다고 적었습니다. 행정처에서 상·하급자로 일하던 법관들끼리 나중에 대등한 재판부를 구성했을 때, 과거 행정처에서 있었던 위치관계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기재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정처를 법관이 아닌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라고 제언했습니다.

○ 행정처 심의관은 '법관' 아닌 '행정공무원' = 증인은 행정처 근무 당시, 자신의 지위를 '독립된 법관'이 아니라 '사법행정 담당 행정공무원'으로 인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정 조직의 일원인 공무원으로 일하면, 상급자 의사가 하급자 의사를 지배하게 돼 있다.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자가 의사 결정 관련해서 지시를 하면 하급자는 복종 의무에 따라 복종하게 돼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정처 심의관이 상급자의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로 '징계사유'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신분이 법관의 지위와는 맞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복종하기 싫었던 일 = 증인은 임종헌 차장의 지시를 받아 2016년 8월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기조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각급 법원에 대한 '비공식적' 정보 수집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증인은 이 보고서에 대해 "작성해서는 안 되는 문건을 작성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무척 쓰기 싫어서 3주 이상을 보고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공개된 정보라도 '사적'인 정보라면, 예를 들어 '판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누가 이런 글을 썼다'는 정보를 행정처 내부 보고서에 적는다면, 그런 정보 수집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증인은 "결국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비공식적으로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 자체가, '사찰'로 인식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습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⑰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 우려한 판사…의심의 나비효과
    • 입력 2019-11-28 11:01:21
    • 수정2019-11-28 11:48:09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보려 합니다.

열일곱 번째 순서로, 11월 1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임효량 수원지법 판사(사법연수원 34기·前 법원행정처 기획 제1·2심의관)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임효량 판사는 2016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기조실)에서 일했습니다. 임 판사가 기조실에 근무한 지 2년째가 되던 2017년 2월, 그와 같이 일할 새로운 기획심의관으로 이탄희 판사(사법연수원 34기·現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령을 받습니다. 이탄희 판사는 사직서 제출로 '사법농단' 의혹을 세상에 알린 바로 그 인물이지요.

임효량 판사는 법원행정처 부임을 앞둔 이 판사에게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를 써서, 당시 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판사들의 전문분야연구회) 탄압 의혹 등을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탄희 판사는 임 판사와의 대화 후 충격을 받고 사직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늘의 증인인 임효량 판사를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는 데 주요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소모임인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양승태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소모임인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해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1. 씨앗

증인은 2016년 법원행정처에 부임한 이후, 행정처의 수상한 움직임에 대한 의심을 조금씩 키워나갔습니다. 그 시작은 행정처 첫 출근 전날인 2016년 2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 고영한 피고인 변호인: […]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를 윗분들이 언급하는 발언을 들었나요?
- 증인: 일단 제가 행정처 부임하기 전날입니다. 주말에 나갔을 때 제가 사무실에 갔더니 김민수 판사(당시 기조실 기획제1심의관)가 같이 임종헌 차장한테 인사 가자고. 항상 출근하시니까. 그래서 휴일인데도 갔더니 저보고 "인사모 아냐?" 이렇게 물어보길래, 사실 처음 뵙고 만난 자리인데도 '그것도 모르냐' 이런 취지로 얘기하시길래 '뭔데 이렇게 관심이 있나' 이렇게 생각했었고. […]

첫 출근을 앞두고 인사를 온 증인에게 대뜸 '인사모'를 아느냐고 묻는 차장. 증인의 마음 속에 의혹의 씨앗이 심어진 순간이었습니다.

- 우배석 판사: 부임 전날, 가자마자 차장님이 인사모 얘기를 물어봤다는 게 어떤 맥락에서 물어본 건지 기억나시나요?
- 증인: 그런 것도 잘 모르냐,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 우배석: 갑자기 그냥 얘기를 꺼내신 건가요?
- 증인: 저도 약간 뜬금없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새로 온 저한테 '너 이런 것도 모르냐?' 이러는 것처럼, '너 이런 것도 몰라서 어떻게 일할래?'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차장과의 대화 이후. 부임한 지 한 달째 되던 시점에 증인은 "인사모 해소", "인사모 폐지"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법원행정처 보고서들을 접했습니다. 증인은 당시 그런 보고서 내용에 대해 "문제의식이 크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 증인: […] 2016년 3월 당시에는 사실 전문분야연구회라는 곳이나 인사모라든가 이런 거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민수 판사가 나눠준 (보고서) 내용에도 보면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인사모 관련 내용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부분이 의미하는 바를 그 당시 정확히 캐치하지는 못했던 거 같습니다.

법원행정처 기조실에서 작성된 ‘전문분야연구회 개선방안 검토’ 보고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제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법원행정처 기조실에서 작성된 ‘전문분야연구회 개선방안 검토’ 보고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제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2. 보이지 않던 것들

하지만 부임 2년 차인 2017년에 접어들면서, 법원행정처의 '인사모 탄압' 의혹에 대한 증인의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다고 합니다.

- 검사: 2016년 3월에는 ('인사모 해소'를 언급한 보고서들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는데, 1년 정도 뒤에는 '아. 이게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하려는 목적이구나'라는 걸 느꼈다는 말씀이십니까?
- 증인: 그렇습니다.

1년 사이 생각이 바뀐 데 대해, 증인은 "나중의 경험들을 종합"한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2017년 1월 당시 기조실 소속으로 증인과 같은 방을 쓰던 박상언, 김민수 판사의 동향을 우선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당시 인사모가 연세대 법학연구원과 함께 '법관 인사제도'를 주제로 준비하던 공동학술대회에 대해, 행정처에서 대응하려는 낌새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 증인: 그 무렵에 김민수 판사나 박상언 판사가 (인사모 학술대회) 관련 검토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김민수 판사가 박상언 판사에게 "3월에 쓴 (인사모 관련) 보고서 있냐. 메일로 좀 보내달라" 얘기하는 걸 제가 사무실에서 들은 적도 있고. 상급자와 전화할 때 그에 관한 언급이 얼핏 얼핏 들렸던 걸로 봐서. […] 당시 이슈가 된 게 (인사모와 연세대의) 학술회의가 있어서, '아, 이제 뭔가 조치하려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증인은 한 달 뒤인 2017년 2월에 이르러서는 의심을 넘어 "확신이 들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2월 13일,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판사들을 상대로 공지한 '중복가입 해소조치' 때문이었습니다. 전문분야연구회 여러 곳에 중복으로 가입한 판사들은, 기존 예규에 따라 가장 관심있는 한 곳만 남기고 나머지 연구회는 모두 탈퇴해야 한다는 게 공지의 요지였습니다. 급성장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 수를 줄여 세를 약화시키기 위한 '표적' 조치가 아니냐는 의심이 판사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2017년 2월 13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올라온 ‘중복가입된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등에 관한 안내 말씀’. 행정처는 일주일 뒤인 2월 20일 이 조치를 철회했다.2017년 2월 13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 명의로 올라온 ‘중복가입된 전문분야연구회 탈퇴 등에 관한 안내 말씀’. 행정처는 일주일 뒤인 2월 20일 이 조치를 철회했다.

더욱이 증인은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직전인 2016년, 법원 전문분야연구회 회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니 지원 예산을 늘려달라는 취지의 행정처 서류를 국회에 제출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임종헌 차장이 지시한 일이었습니다. 국회에 연구회 지원 예산을 요청해 실제 예산도 더 많이 확보했는데, 불과 몇 달 뒤에 국회 감사 우려 등을 근거로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보고 증인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 검사: 김민수 판사는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전날인 2017년 2월 12일 밤에 증인에게 해소조치 관련 공지글을 보여준 사실이 있죠?
- 증인: 있습니다.
- 검사: 그걸 보고 당시 김민수에게 어떤 의견을 냈고, 그에 대한 김민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증인: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저 예산 관련된 (국회 제출) 문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민수 판사에게, 우리가 국회에다가 이렇게 연구회 가입 인원 늘었다는 이유로 작년에, 먼 것도 아니고 작년에 이렇게 예산을 늘려놓고는 국회에서의 감사나 그런 우려 때문에 중복가입을 해소한다는 것이 너무. 같은 기관에서 내놓은 입장으로서는 너무 배치되는 거 아니냐, 금반언(禁反言·자신의 선행행위와 정면으로 또는 실질적으로 모순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반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제가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응은, 김민수가 "정책결정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책결정이 되었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했습니다.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 뒤에 최소한 법원행정처장 이상급의 결정이 있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김민수 판사는 그러면서 증인이 국회에 제출한 예산 지원 문건에 대해 "그건 일개 심의관인 네가 작성한 거 아니냐"라고 말해, 매우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증인은 회고했습니다.


#3. 이탄희의 사직서

중복가입 해소조치 공지 이틀 뒤인 2017년 2월 15일. 증인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행정처 부임을 닷새 앞둔 이탄희 판사와 사무실에서 긴 대화를 나눴습니다. 당시 대화는 이 판사가 사직을 결심한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 검사: 당시 이탄희 판사와 얘기하면서 증인께서 "중복가입 해소조치가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한 거"라고 하면서, "블랙리스트 프레임에 들어가면 다 끝장이다"라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까?
- 증인: 네, 있습니다.

증인은 "블랙리스트 프레임"이라는 표현이 "외관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불이익을 주는 형태"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창 문제되고 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그 프레임에, 사법부도 자칫 잘못되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 증인: […] 겉으로 내세운 중복가입 해소조치라는 […] '외관'은, "예규에 따른 집행이다". "예규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복가입을, 명문화된 것을 이제는 실행한다" […]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증인과 이탄희 판사의 대화 다음날인 2월 16일, 이 판사는 당시 소속돼 있던 수원지법 안양지원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과의 인터뷰에서 "판사들 뒷조사를 하고, 예산상의 불이익을 주고, 연구회를 와해시키고" "그런 일들을 나한테 시킬 게 (임효량, 이규진과의 대화 이후) 확실해졌다"라며, '좋은 판사로 남겠다'는 생각으로 사직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 판사는 행정처 겸임해제와 재판부 복귀를 조건으로 당시 사직서를 철회했습니다. 임종헌 차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끊임없이 전화하던 상황에서 일단 의사를 철회했던 것입니다. 올해 2월 말, 그는 두 번째 사직서를 내고 법원을 떠났습니다.


#4. 추측과 추궁

증인은 2017년 3월 꾸려진 법원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서,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는 취지로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 이탄희 판사가 사의를 표시하는 거의 상당 부분의 영향은 제가 했던 말이나, 격정적으로 했던 제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어떻게 보면 과장해서 생각했을 수도 있고 본인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서요. […]"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이런 증인의 진술 내용을 법정에서 공개하면서, 증인이 이탄희 판사에게 근거가 부실한 부정확한 이야기를 해 '인사모 와해' 의혹을 불필요하게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증인신문 과정에서도 증인의 추측성 발언에 대해 적극 추궁했습니다.

- 양승태 피고인 변호인(이하 '양 변'): 증인은 이탄희에게 "이번에 인권법 소속 판사들 상당수가 인사발령에서 상당히 좋은 보직 받았는데.[…] 그것이 이번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와 함께 이뤄진 거 아닌가 생각한다. 일부 핵심 인물은 끌어들이고 국제인권법연구회는 힘을 빼려는 것 아닌가 한다"라는 의견을 이야기했다는 것인가요?
- 증인: 그렇습니다.
- 양 변: 이탄희에게 말한 이 의견은 순전히 증인 추측에 근거한 의견입니까 아니면...
- 증인: [말 끊으며] 추측입니다.

추궁 과정에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양 변: 임종헌 차장이라든가 이런 상급자들한테, 구체적으로 "이 보고서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모 겨냥한 거다" 얘기 들은 적은 있으신가요?
- 증인: 그런 적은 없습니다.
- 양 변: 증인이 이런저런 인상 받았다 이렇게 답변했는데, 증인이 결국 행정처에 계시면서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증인이 추측했다 이 정도로 보면 될까요?
- 증인: 보고서에 나와 있는 표현들이나 이런 거 기억 남는 거 있고 그 당시에..
- 양 변: [말 끊으며] 보고서 받을 당시 별생각 없다고 하셨잖아요.
- 증인: 보고서를 받았을 때는 거기에 대한.. 그땐 제 업무가 아니니까 거기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건 아니지만, 어떤 취지의 보고서인지 정도는 알았습니다.

증인은 다만 당시 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인사모 와해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라면서, "결국 그 당시 '인식의 최고점'까지 가는 과정에서 보고서를 보고, 여러 일련의 과정을 경험한 것인데 그것이 추측이냐 아니면 평가냐, 판단이냐, 이것은 사실 다른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자신의 추측이 컸음을 인정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 목적으로 쓰였다고 증인이 추측했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보고서(2016.3,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작성)의 일부분. “인사모 폐지”를 검토했다.국제인권법연구회 견제 목적으로 쓰였다고 증인이 추측했다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보고서(2016.3,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작성)의 일부분. “인사모 폐지”를 검토했다.

#5. 그밖에...

○ 신임 대법원장의 지시 = 증인은 2017년 9월 27일 대법원장실의 호출을 받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났다고 증언했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증인에게 "김민수 판사가 2016년 사용했던 PC를 (증인이 보관해왔지만 이제) 공식적으로 보관하고, 폐기하거나 변경을 가하지 말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가릴 증거가 될 컴퓨터 보존 조치를 대법원장이 지시한 것입니다. 김 대법원장은 또 "행정처에 기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런 걸 좀 한번 정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라고 증인에게 당부했다고 합니다. 증인은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사법행정)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미완성)를 작성했지만, 대법원장이 더이상 찾지 않아 보고서를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 미완성·미공개 보고서에는 무슨 내용? = 해당 보고서는 법원행정처의 문제점으로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양립할 수 없는 지위의 혼동"을 꼽았습니다. 증인은 '법원행정처나 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이용해 뭔가 하게 되면, 사법부 본연의 업무인 재판은 경시되고 사법행정이 우위에 서게 된다'면서, "법원행정처나 사법행정권자의 무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는 판사들이 "법관과 행정처 심의관으로서의 지위의 혼동"을 겪는다고 적었습니다. 행정처에서 상·하급자로 일하던 법관들끼리 나중에 대등한 재판부를 구성했을 때, 과거 행정처에서 있었던 위치관계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많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기재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정처를 법관이 아닌 사람으로 채워야 한다"라고 제언했습니다.

○ 행정처 심의관은 '법관' 아닌 '행정공무원' = 증인은 행정처 근무 당시, 자신의 지위를 '독립된 법관'이 아니라 '사법행정 담당 행정공무원'으로 인식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정 조직의 일원인 공무원으로 일하면, 상급자 의사가 하급자 의사를 지배하게 돼 있다. 의사 결정 권한이 있는 자가 의사 결정 관련해서 지시를 하면 하급자는 복종 의무에 따라 복종하게 돼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정처 심의관이 상급자의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로 '징계사유'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신분이 법관의 지위와는 맞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복종하기 싫었던 일 = 증인은 임종헌 차장의 지시를 받아 2016년 8월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기조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각급 법원에 대한 '비공식적' 정보 수집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증인은 이 보고서에 대해 "작성해서는 안 되는 문건을 작성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무척 쓰기 싫어서 3주 이상을 보고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공개된 정보라도 '사적'인 정보라면, 예를 들어 '판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누가 이런 글을 썼다'는 정보를 행정처 내부 보고서에 적는다면, 그런 정보 수집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증인은 "결국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비공식적으로 자료를 수집한다는 것 자체가, '사찰'로 인식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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