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㉖ 재판 개입과 우리의 ‘소신’…돌직구 질문 던진 재판장

입력 2020.06.17 (09:03) 수정 2020.06.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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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여섯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16일 증인으로 나온 염 모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재판 개입'을 당한 대표적 판사로 꼽히는 염 부장판사. 그는 이미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재판에 지난해 12월 증인으로 출석했었죠. 당시 그의 증언은 두 번의 기사로 나눠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판사와 두 개의 양심]⑳ ‘재판개입 피해자’ 지목된 판사…“저도 재판장” 소신 강조 / ㉑ “감 없는 판사” 시선 부담…나도 모르게 도둑맞은 소신?)

그런데도 이번에 염 부장판사의 증언을 또 기사로 다루는 것은, 임 전 차장 재판에서 재판장이 그에게 던진 질문들 때문입니다.

#1. 그 전화가 없었더라면

다시 간단히 요약해볼까요. 증인은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에 근무할 당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근무하던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이틀 뒤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 "위헌제청 결정문을 이대로 헌법재판소에 보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대법원 판례는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데, 일선 재판부가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위헌제청을 하게 되면 법원이 헌법재판소 논리를 인정해주는 꼴이라 대법원 입장에서는 좋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증인은 그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 상임위원과 문제 해결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상임위원이 기존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또 기존 결정문과 직권 취소 결정문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이 상임위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검찰은 증인에 대한 이 같은 이 상임위원의 행위를 '재판 개입'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이 상임위원과 임종헌 전 차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공모해, 증인에게 기존 결정을 취소하고 재결정을 내리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이는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가장 중요한 직권남용 혐의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공소사실을 따져보기 위한 재판장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 재판장: 증인께서 검찰 조사 당시, "나름 이론적으로 판단했고 배석판사들과의 논의를 거쳐서 당사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구제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최초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였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이 맞습니까?
- 증인: 네.
- 재판장: 그 진술의 의미는, 그와 같은 최초 결정이 재판부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라고 이해하면 됩니까?
- 증인: 네. 판단에 따라서 했습니다.

증인 재판부가 내린 최초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은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 "소신과 판단", 즉 재판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는 직권남용죄의 요건과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 직무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해야 성립합니다. 과연 이규진 등 행정처 간부들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라는 직권이 있는지가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긴 하지만, 만약 그런 직권이 존재한다면 재판부의 "소신과 판단"은 직권남용으로 인해 행사가 방해된 구체적 권리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토대를 닦은 재판장은 질문을 이어갑니다.

- 재판장: 이후 대법원에 근무하는 이규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으신 거죠? 증인 재판부가 한 그 최초 결정과 관련해서요.
- 증인: 네.
- 재판장: 그 후... 재판부는... 최초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한 것은 맞죠?
- 증인: 네. 맞습니다.
- 재판장: 이규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후 결정문 검색 제외를 요청하는 공문을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에) 보내게 된 것도 사실이지요?
- 증인: 네.

이제 본격적인 질문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 재판장: 그렇다면 당시... 대법원에 근무하는 이규진으로부터 그와 같은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원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거나, 결정문 검색 제외 요청 공문을 보내거나 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까?

증인의 대답은 일단 '긍정'이었습니다.

- 증인: 그렇죠. 몰랐으니까. 그런 사실 자체를, 이규진 부장님이 전화를 해서 (알려준)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그 자체를 저희가 인식을 못했으니까.

그런데 답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 증인: 만약에 저희가 이규진 부장님 전화를 안 받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그걸 알게 됐다면 고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이규진 부장님이 전화해서 그런 문제점 있단 걸 알게 됐고 그 문제점 해결하기 위해서 일련의 조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2. 스스로 알았더라면

이규진의 외부 관여가 없었더라도 "그런 문제점", 즉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관계라는 대법원의 정책적·정무적 입장을 재판부가 '자체적으로' 알았다면, 스스로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인.

재판장은 이 부분이 의아한 듯 재차 질문을 던졌습니다.

- 재판장: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증인 재판부가 소신과 판단에 따라 최초 결정을 한 이후, 증인 재판부가 누구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어떤 갈등 상황 등을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최초의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는 걸로 하였을 것 같습니까?
- 증인: 가정적 답변이긴 한데요. 예컨대 우리 주심 판사가 "부장님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가 결정을 했지만 "다시 검토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검토해서, 그런 단계까지 갔을 수도 있는데. (결정문) 블라인드 처리 그런 건 저희가 못했을 거 같습니다.

'소신과 판단에 따라' 최초 결정을 내렸다고 답했지만, 그 결정에 문제가 있다면 뒤집는 것은 대수롭진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다시 물어도 비슷한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 재판장: 최초 결정이 이미 대법원에 송부된 이후에 재판부가 살펴보니,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싸고 대법원과 헌재 간의 갈등이 있다는 상황을 인지하였더라도!
- 증인: 네.
- 재판장: 최초의 결정을, 최초의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기 위해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라는 그런 취지입니까?
- 증인: 대법원에 문의를 해서 우리의 결정이 법률적으로 직권취소하고 재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더 따져봤겠죠. 근데 이건 전화를 오히려 제가 받아서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거기에 따른 거니까, 선후가 바뀐 거죠. 이거는.


#3. 같은 법원 부장이었다면

그러자 재판장은 당시 전화를 건 사람의 '위치'라는 또 다른 포인트를 꺼냈습니다.

- 재판장: 당시 이규진을... 대법원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잖아요?
- 증인: 그렇죠.
- 재판장: 동료 판사나 또는 동료 선배 법관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 증인: 음... 네, 네. 뭐. 동료 판사, 선배 법관이긴 하지만 대법원에서 헌법 관련 분야에서 그 연구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죠.

여기서 또 하나의 가정이 등장합니다.

- 재판장: 만약 이규진이 대법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법원에 근무하는 부장이었다라고 한다면.
- 증인: 네.
- 재판장: 증인 재판부가 최초 결정을 하고 난 이후에, "한정위헌 둘러 싸고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갈등 상황이 있다고 하는데 그 결정 제대로 된 것이냐"하고 문의를 해온다 한다면, 증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의를 해온다면, 증인의 재판부가 한 최초 결정을 다시 검토해서 원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제청 결정을 했을 수도 있습니까?
- 증인: 그니까 그거를 할 수 있었다, 없었다 제가 단언은 못 하겠지만 다시 검토해서 가능하다면은 아마 재결정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규진의 '위치'도 재판부의 결정 번복에 있어서 큰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입니다. 윗선의 압력으로 느끼지 않았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증인은 당시 이규진의 지적이 스스로 납득이 갔기 때문에 기존 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으로 바꾼 것이라고 여러 차례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마음에 부담이 상당했다" "이규진 부장으로부터 대법원의 입장을 전해 듣고, 대법원의 정책적 판단을 거슬러서 자기 고집을 계속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이규진의 전화를 받고 '대법원에서는 나를 좀 감이 없는 판사로 생각하겠구나'라고 느꼈다고도 법정에서 인정한 바 있습니다.

#4. 소신과 온당함

무엇이 진실일까, 아리송한 증언들. 여기서 재판장의 그야말로 '돌직구' 질문이 나왔습니다.

- 재판장: 재판장이 물어보는 것은. 그 최초 결정이 재판부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고, 이미 결정이 내려진 상태고, 그 결정이 지금 대법원까지 송부되어서 예정대로라면 헌법재판소로 송부가 될 것인데. 누군가로부터 우리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 설령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손 치더라도, 재판부로서는 당초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그 결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온당한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힘주어 말함]

증인은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기존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 증인: 아니 그... 지금 재판장님 말씀하신 뜻은 알겠는데요. 재판의 독립과 관련해 말씀하신 거는 알겠는데. 아까 '소신과 판단'에서 '소신' 부분은... 판단은 저희가 그렇게 내렸는데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만약에 우리가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의 판단이 잘못돼서 우리가 알게 되면 고칠 수 있다면 고치는 거고. 만약 고칠 수 없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죠. 그니까 우리가, 제가 이 사안에 대해 그 부분 놓친 부분에 있어서 그게 잘못됐음을 저희가 인지했다면 그걸 그대로 놔두는 게 오히려 더...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 생각의 문젠데 어쨌든.

이런 대답은 당시 이규진의 전화가 재판부에 대한 '부당 개입'이 아니라, 재판부 결정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려는 시도였다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부합합니다.

증인은 '소신'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린 듯 부연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 재판장: 알겠습니다.
- 증인: 근데 그건 소신하곤 상관 없어요. 저희 재판부가 내린 판단이 잘못됐다라는 걸 저희가 인지했더라면, 뭐 당초 그렇게 판단 안했겠지만은, 인지했는데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저희는 고쳤을 거다라는 거죠. 다른 사람이, 이규진이라는 분이 대법원에서 연락이 와서 고쳤느냐, 동료판사로서 얘기했더라면 안 고쳤을 거 아니냐. 가능한 방법이 없다면, 이규진이 대법원에 있든 누가 어디에 있든 간에 안 고쳤을 것이고요.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이규진이 대법원에 있든, 이규진이 아닌 동료판사가 얘기했든, 우리가 스스로 알았든, 가능하게 고칠 방법이 있었다면 고쳤을 거란 얘기입니다. 제 얘기는.

#5. 내가 피해자라니

재판장과 증인의 열띤 주고받기가 10분 가까이 이어진 뒤에도, 증인에겐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습니다.

- 재판장: 알겠습니다. 증인, 그밖에 오늘 신문한 내용과 관련해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십시오.
- 증인: 네. 증인으로서 이제 두 번째 나왔는데요. 재판이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 당초에는 제가 이제 직권남용이다 이런 건 전혀 생각을 못하고, 사실은 그 언론 보도를 통해서 듣고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아, 이게 내가 이렇게 당사자 권익 구제해주신다는 생각에만 앞서서 그렇게 고친 것이, 물론 대법원에 근무하는 어떤 판사의 말을 듣고 그대로... 어떻게 보면 상부의 지시에 의해 고친 것처럼 그렇게 되는데, 그것이 직권남용이라는 이런 죄의 어떤 피해자처럼 되어 가지고... 아, 참, 이게 재판이라는 게 정말 정말 함부로 할 수 없고, 또 누군가에 의해서는 이것이 잘못 해석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앞으로도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도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하고 심사숙고하고 내리고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고요. 여러 가지로 재판하느라고 너무 애쓰시는 재판부와 여러 직원들한테도 참 경의를 표하고,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상입니다.

자신은 소송 당사자를 위해 결정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뿐인데, 이를 두고 자신을 '재판 개입' 피해자로 규정한 공소사실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주장입니다.

다만 직권남용 행위의 영향을 받은 상대방의 인식, 즉 상대가 그 위법성을 인식했는지를 직권남용죄의 주요 구성요건으로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증인의 주관적 인식에 관계없이, 증인이 의무 없는 일을 했다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받았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판장의 끈질긴 질문으로 취지가 보다 명확해진 증인의 증언(혹은 주장)과 별도로,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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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㉖ 재판 개입과 우리의 ‘소신’…돌직구 질문 던진 재판장
    • 입력 2020-06-17 09:03:14
    • 수정2020-06-17 09:09:13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여섯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16일 증인으로 나온 염 모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0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사법농단 사건에서 '재판 개입'을 당한 대표적 판사로 꼽히는 염 부장판사. 그는 이미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재판에 지난해 12월 증인으로 출석했었죠. 당시 그의 증언은 두 번의 기사로 나눠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판사와 두 개의 양심]⑳ ‘재판개입 피해자’ 지목된 판사…“저도 재판장” 소신 강조 / ㉑ “감 없는 판사” 시선 부담…나도 모르게 도둑맞은 소신?)

그런데도 이번에 염 부장판사의 증언을 또 기사로 다루는 것은, 임 전 차장 재판에서 재판장이 그에게 던진 질문들 때문입니다.

#1. 그 전화가 없었더라면

다시 간단히 요약해볼까요. 증인은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에 근무할 당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근무하던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이틀 뒤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 "위헌제청 결정문을 이대로 헌법재판소에 보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대법원 판례는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데, 일선 재판부가 한정위헌 결정을 구하는 위헌제청을 하게 되면 법원이 헌법재판소 논리를 인정해주는 꼴이라 대법원 입장에서는 좋지 않다는 얘기였습니다. 증인은 그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 상임위원과 문제 해결책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상임위원이 기존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또 기존 결정문과 직권 취소 결정문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이 상임위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이행했습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검찰은 증인에 대한 이 같은 이 상임위원의 행위를 '재판 개입'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이 상임위원과 임종헌 전 차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공모해, 증인에게 기존 결정을 취소하고 재결정을 내리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공소장에 적었습니다. 이는 사법농단 피고인들의 가장 중요한 직권남용 혐의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공소사실을 따져보기 위한 재판장의 질문이 시작됩니다.

- 재판장: 증인께서 검찰 조사 당시, "나름 이론적으로 판단했고 배석판사들과의 논의를 거쳐서 당사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구제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최초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였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이 맞습니까?
- 증인: 네.
- 재판장: 그 진술의 의미는, 그와 같은 최초 결정이 재판부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라고 이해하면 됩니까?
- 증인: 네. 판단에 따라서 했습니다.

증인 재판부가 내린 최초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은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 "소신과 판단", 즉 재판부의 독립된 재판권 행사는 직권남용죄의 요건과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 직무권한을 남용해 다른 사람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해야 성립합니다. 과연 이규진 등 행정처 간부들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라는 직권이 있는지가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긴 하지만, 만약 그런 직권이 존재한다면 재판부의 "소신과 판단"은 직권남용으로 인해 행사가 방해된 구체적 권리의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겁니다. 토대를 닦은 재판장은 질문을 이어갑니다.

- 재판장: 이후 대법원에 근무하는 이규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으신 거죠? 증인 재판부가 한 그 최초 결정과 관련해서요.
- 증인: 네.
- 재판장: 그 후... 재판부는... 최초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한 것은 맞죠?
- 증인: 네. 맞습니다.
- 재판장: 이규진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후 결정문 검색 제외를 요청하는 공문을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에) 보내게 된 것도 사실이지요?
- 증인: 네.

이제 본격적인 질문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 재판장: 그렇다면 당시... 대법원에 근무하는 이규진으로부터 그와 같은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원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거나, 결정문 검색 제외 요청 공문을 보내거나 하는 일련의 행위들을 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까?

증인의 대답은 일단 '긍정'이었습니다.

- 증인: 그렇죠. 몰랐으니까. 그런 사실 자체를, 이규진 부장님이 전화를 해서 (알려준)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그 자체를 저희가 인식을 못했으니까.

그런데 답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 증인: 만약에 저희가 이규진 부장님 전화를 안 받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그걸 알게 됐다면 고칠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이규진 부장님이 전화해서 그런 문제점 있단 걸 알게 됐고 그 문제점 해결하기 위해서 일련의 조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2. 스스로 알았더라면

이규진의 외부 관여가 없었더라도 "그런 문제점", 즉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관계라는 대법원의 정책적·정무적 입장을 재판부가 '자체적으로' 알았다면, 스스로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증인.

재판장은 이 부분이 의아한 듯 재차 질문을 던졌습니다.

- 재판장: 다시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러면, 증인 재판부가 소신과 판단에 따라 최초 결정을 한 이후, 증인 재판부가 누구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의 어떤 갈등 상황 등을 (자체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최초의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는 걸로 하였을 것 같습니까?
- 증인: 가정적 답변이긴 한데요. 예컨대 우리 주심 판사가 "부장님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자기가 결정을 했지만 "다시 검토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검토해서, 그런 단계까지 갔을 수도 있는데. (결정문) 블라인드 처리 그런 건 저희가 못했을 거 같습니다.

'소신과 판단에 따라' 최초 결정을 내렸다고 답했지만, 그 결정에 문제가 있다면 뒤집는 것은 대수롭진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다시 물어도 비슷한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 재판장: 최초 결정이 이미 대법원에 송부된 이후에 재판부가 살펴보니,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싸고 대법원과 헌재 간의 갈등이 있다는 상황을 인지하였더라도!
- 증인: 네.
- 재판장: 최초의 결정을, 최초의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하기 위해서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라는 그런 취지입니까?
- 증인: 대법원에 문의를 해서 우리의 결정이 법률적으로 직권취소하고 재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더 따져봤겠죠. 근데 이건 전화를 오히려 제가 받아서 이러이러한 방법이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거기에 따른 거니까, 선후가 바뀐 거죠. 이거는.


#3. 같은 법원 부장이었다면

그러자 재판장은 당시 전화를 건 사람의 '위치'라는 또 다른 포인트를 꺼냈습니다.

- 재판장: 당시 이규진을... 대법원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잖아요?
- 증인: 그렇죠.
- 재판장: 동료 판사나 또는 동료 선배 법관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 증인: 음... 네, 네. 뭐. 동료 판사, 선배 법관이긴 하지만 대법원에서 헌법 관련 분야에서 그 연구관 모임을 이끌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죠.

여기서 또 하나의 가정이 등장합니다.

- 재판장: 만약 이규진이 대법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법원에 근무하는 부장이었다라고 한다면.
- 증인: 네.
- 재판장: 증인 재판부가 최초 결정을 하고 난 이후에, "한정위헌 둘러 싸고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간 갈등 상황이 있다고 하는데 그 결정 제대로 된 것이냐"하고 문의를 해온다 한다면, 증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의를 해온다면, 증인의 재판부가 한 최초 결정을 다시 검토해서 원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제청 결정을 했을 수도 있습니까?
- 증인: 그니까 그거를 할 수 있었다, 없었다 제가 단언은 못 하겠지만 다시 검토해서 가능하다면은 아마 재결정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가능하다면.

이규진의 '위치'도 재판부의 결정 번복에 있어서 큰 고려 요소가 아니었다는 주장입니다. 윗선의 압력으로 느끼지 않았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증인은 당시 이규진의 지적이 스스로 납득이 갔기 때문에 기존 결정을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으로 바꾼 것이라고 여러 차례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마음에 부담이 상당했다" "이규진 부장으로부터 대법원의 입장을 전해 듣고, 대법원의 정책적 판단을 거슬러서 자기 고집을 계속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또 당시 이규진의 전화를 받고 '대법원에서는 나를 좀 감이 없는 판사로 생각하겠구나'라고 느꼈다고도 법정에서 인정한 바 있습니다.

#4. 소신과 온당함

무엇이 진실일까, 아리송한 증언들. 여기서 재판장의 그야말로 '돌직구' 질문이 나왔습니다.

- 재판장: 재판장이 물어보는 것은. 그 최초 결정이 재판부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고, 이미 결정이 내려진 상태고, 그 결정이 지금 대법원까지 송부되어서 예정대로라면 헌법재판소로 송부가 될 것인데. 누군가로부터 우리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결정이 설령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손 치더라도, 재판부로서는 당초의 소신과 판단에 따른 그 결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온당한 것으로, 이해가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힘주어 말함]

증인은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기존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 증인: 아니 그... 지금 재판장님 말씀하신 뜻은 알겠는데요. 재판의 독립과 관련해 말씀하신 거는 알겠는데. 아까 '소신과 판단'에서 '소신' 부분은... 판단은 저희가 그렇게 내렸는데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만약에 우리가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의 판단이 잘못돼서 우리가 알게 되면 고칠 수 있다면 고치는 거고. 만약 고칠 수 없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죠. 그니까 우리가, 제가 이 사안에 대해 그 부분 놓친 부분에 있어서 그게 잘못됐음을 저희가 인지했다면 그걸 그대로 놔두는 게 오히려 더...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그 생각의 문젠데 어쨌든.

이런 대답은 당시 이규진의 전화가 재판부에 대한 '부당 개입'이 아니라, 재판부 결정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려는 시도였다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부합합니다.

증인은 '소신'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린 듯 부연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 재판장: 알겠습니다.
- 증인: 근데 그건 소신하곤 상관 없어요. 저희 재판부가 내린 판단이 잘못됐다라는 걸 저희가 인지했더라면, 뭐 당초 그렇게 판단 안했겠지만은, 인지했는데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저희는 고쳤을 거다라는 거죠. 다른 사람이, 이규진이라는 분이 대법원에서 연락이 와서 고쳤느냐, 동료판사로서 얘기했더라면 안 고쳤을 거 아니냐. 가능한 방법이 없다면, 이규진이 대법원에 있든 누가 어디에 있든 간에 안 고쳤을 것이고요. 가능한 방법이 있다면 이규진이 대법원에 있든, 이규진이 아닌 동료판사가 얘기했든, 우리가 스스로 알았든, 가능하게 고칠 방법이 있었다면 고쳤을 거란 얘기입니다. 제 얘기는.

#5. 내가 피해자라니

재판장과 증인의 열띤 주고받기가 10분 가까이 이어진 뒤에도, 증인에겐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었습니다.

- 재판장: 알겠습니다. 증인, 그밖에 오늘 신문한 내용과 관련해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십시오.
- 증인: 네. 증인으로서 이제 두 번째 나왔는데요. 재판이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고... 당초에는 제가 이제 직권남용이다 이런 건 전혀 생각을 못하고, 사실은 그 언론 보도를 통해서 듣고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아, 이게 내가 이렇게 당사자 권익 구제해주신다는 생각에만 앞서서 그렇게 고친 것이, 물론 대법원에 근무하는 어떤 판사의 말을 듣고 그대로... 어떻게 보면 상부의 지시에 의해 고친 것처럼 그렇게 되는데, 그것이 직권남용이라는 이런 죄의 어떤 피해자처럼 되어 가지고... 아, 참, 이게 재판이라는 게 정말 정말 함부로 할 수 없고, 또 누군가에 의해서는 이것이 잘못 해석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앞으로도 어떠한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때도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하고 심사숙고하고 내리고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고요. 여러 가지로 재판하느라고 너무 애쓰시는 재판부와 여러 직원들한테도 참 경의를 표하고, 다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상입니다.

자신은 소송 당사자를 위해 결정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뿐인데, 이를 두고 자신을 '재판 개입' 피해자로 규정한 공소사실은 "잘못된 해석"이라는 주장입니다.

다만 직권남용 행위의 영향을 받은 상대방의 인식, 즉 상대가 그 위법성을 인식했는지를 직권남용죄의 주요 구성요건으로 볼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증인의 주관적 인식에 관계없이, 증인이 의무 없는 일을 했다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받았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인정된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판장의 끈질긴 질문으로 취지가 보다 명확해진 증인의 증언(혹은 주장)과 별도로,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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