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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㉙ ‘통진당 제소 기획’은 누구 아이디어?…법정 진실게임
입력 2020.07.20 (07:01) 수정 2020.07.20 (09:01)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아홉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30일 증인으로 나온 이진만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現 변호사)의 증언을 계속 살펴봅니다. (▶첫 번째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㉘ 통진당TF 꾸린 판사…‘재판 개입’ 의심에 “답답해” 도리질)

#1. 아이디어의 주인

법원행정처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 TF'(통진당TF)의 활동은 TF 팀장이었던 증인이 2015년 2월 12일자로 인사 발령(서울고등법원으로 복귀)이 나기 전 마무리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증인은 TF 보고서를 모두 취합한 스프링 책자를 2월 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작성일이 2월 12일로 돼 있는 문건 2개가 재판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모두 TF 간사였던 김종복 전 판사가 쓴 내용이었는데요. 그의 진술에 의하면, 실제 문건이 완성된 시점은 2월 12일이 아닌 2월 13일이었다고 합니다.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먼저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대책 검토(내부용·대외비)"라는 첫 번째 문건을 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과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은 의원직을 상실했는데, 통진당 소속 지역구 지방의원 31명은 여전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일관되지 못한 상황을 지적하고는 그 대책을 거론합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의원직위 부존재 확인", 즉 해당 의원들이 더이상 의원직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검찰이 '통진당 제소 기획'이라고 명명한 사건입니다. 아래와 같이 그 후보 지역도 구체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또 다른 문건은 외부 설명자료용으로 작성됐다는 문건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소 제기 방법이 상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기자가 일부분 노란 선으로 강조.기자가 일부분 노란 선으로 강조.

김종복 전 판사는 이 문건들을 완성해 증인에게 메일로 보고하고,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에게는 대면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증인은 "제가 아마 김종복한테 (문건을) 기조실장에게 보고하라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또 강형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 처장도 문건 2개를 모두 받아봤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문건의 내용이 실제 실행되진 않았습니다. 작성자인 김종복은 임종헌에게 문건을 보고하며 "지자체장에게 소를 제기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반대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고, 이에 임종헌이 "그렇죠"라며 수긍해 "2월 12일 문건들이 전부 킬(kill)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검찰 조사 등에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나서서 특정 정당을 탄압하고 특정 정당에 도움을 주려는 시도"를 한 것이라며, 김종복에게 제소 기획을 검토시킨 것을 문제삼아 임종헌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증인은 '제소 기획'이 누구 아이디어였는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임종헌의 말을 듣고 김종복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검사: 이 문건들 내용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 상대로 소송 제기하게 하고, 구체적 소송 제기 형태와 제소 가능 지역을 검토한 내용인데, 그런 방안들은 누구의 생각이었습니까?
- 증인: 그건 정확히 기억 안 나고요. 이 문건을 따로 지시한 게 아니고 아마 시기는 잘 기억 안나지만, (임종헌이) 그 '불일치'가 이상하지 않냐 그래서 그것의 설명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했던 거 아닌가라고 기억이 됩니다.

증인은 임종헌이 2월 초 통진당 TF의 스프링 책을 본 뒤 "그 보고서에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은 안 나오더라" "그건 어떻게 되는지 김종복에게 검토해 달라고 해달라"는 취지로 자신에게 말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말했습니다. 증인은 법정에서도 이를 긍정하면서, 임종헌이 "불일치를 일치시키는 방안" 또는 "불일치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했는데 어느 쪽이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불일치"의 뜻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임종헌 피고인이 "(통진당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는데) 지역구 지방의원들이 그대로 직위 유지하며 혜택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뭔가 일관되지도 않고 이상하지 않느냐"라는 취지의 이야기한 사실이 있다고 답한 사실 있습니까?
- 증인: 워딩이 정확한진 모르지만, "국회의원·지방의원, 지방의원 중 비례대표·지역구 이게 뭔가 지위가 다 다른데 어색하지 않냐"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2. 문자 메시지는 알고 있다?

증인은 다만 임종헌에게 제소 기획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출처를 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증인과 김종복 전 판사가 주고받은 문자를 제시했습니다.


통진당 소속 지방의원 현황과 그 지역의 자치단체장을 파악해 달라고 증인이 김종복에게 요구한 건데, 이런 정보는 제소 기획의 밑바탕이 되는 것들입니다.

- 검사: 이것을 보낸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 증인: 사실 수사과정에서 보고 알았는데, 문자메시지 보고도 경위가 잘 기억 안났습니다. 아마 저건 맞을 겁니다, 문자메시지니까. 근데 사실 저 문자 보냈다는 사실 자체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 검사: "기조실장이 일단 현황부터 파악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김종복에게 제가 현황부터 파악해달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검찰 조사에선 진술하셨는데요.
- 증인: 그 연장선상에서 갔을 거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검사는 이어 2월 13일자 문자를 제시했습니다. 2월 13일은 증인이 이미 대법원 양형위를 떠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자리를 옮긴 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 검사: 이는 아까 봤던 문건들(2월 12일자 문건 2개)에 대해 서둘러 보내달라고 보낸 게 맞습니까?
- 증인: 맞을 겁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조사 당시 그 이유에 대해, "기조실장(임종헌)이 급하게 달라 하니 그렇게 보낸 거 같습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증인 기억에 부합하는 진술이었습니까?
- 증인: 제 기억엔 그랬던 거 같습니다.
- 검사: 피고인이 급하단 이유는 뭐였습니까?
- 증인: 전혀 그런 내용은 모르고요, "빨리 해 달라"라고 했던 걸로만 기억합니다.

증인은 나중에 "뚜렷하진 않지만 2월 13일 아침에 (임종헌에게)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보고서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와서, 김종복한테 빨리 좀 냈음 좋겠다라고 다시 전달한 거 아닌가 싶다"라고도 증언했습니다. 결국 임종헌이 해당 문건 작성과 보고를 지시했고, 본인은 중간자에 불과했다는 주장입니다.

증인은 특히 2018년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막바지에 임종헌과 통화하며 "이 문건을 어디에 쓰려고 했냐"고 물었고, "그냥 이 수석(증인)이 지시해서 만들었는데 자세한 경위는 잘 생각 안 난다고 조사단에 말하면 안 될까"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증인은 당시 임종헌의 말을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너한테 더 이상 말을 못해준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그에 대해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합니까"라고 반응했다고 약간 억울함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증인은 또 당시 문건 내용이 매우 황당하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작성을 지시했을 리 없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 검사: […] 이와 같은 문건에 대해 김종복 심의관에게 부적절성을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 증인: 그게요, 저것을 계속 수사과정에서 그걸 물어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저게 제소한다고 해서 원고(지방자치단체장)가 승소한다는 게 아니라 저희(TF) 연구 결과는 원고 패소한다는 거였어요. […] 그래서 저걸(저 문건을) 보고 오히려 "해봐야 질 텐데"라는 생각을 했을 순 있지만, 저걸 가지고 탄압한다? 그거는 도저히. 저희는 굳이 (각 의원들의 지위를) 일치시키는 방안으로 저런 걸 생각했는데, "저거는 택도 없는데"라는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 검사: 부적절하단 인식은 그 당시 하지 못했습니까?
- 증인: 부적절하다기보단 쓸데없는 짓 아닌가. 왜냐면 저는 지방의회 의원은 (의원직 확인 소송) 승소 가능성이 정말 높다고 봤거든요. 왜냐면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게다가 헌재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고. 근데 결론을 일치시키려다보니 아마 저런 방안이 마련된 거 같은데, 저런 문건 받고 언뜻 든 느낌은 "헐?" 요즘 말로 "헐?" "왜 이런 황당한?" […] 흔히하는 말로 쓸데없는 짓, 속된 말로 '뻘짓', 이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3. 생사람 잡는 증인?

하지만 문제의 문건을 작성한 김종복 전 판사는 증인을 지시자로 지목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이 부정확했지만 증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고 기억이 복원됐다는 건데요. 재판 과정에서 임종헌의 변호인이 언급한 김종복의 검찰 진술은 이렇습니다.

- "이진만 실장님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하여 법원에 소송이 계속되면 모든 의원들에게 일관된 주장, 논리에 따라 당사자들에게 예측 가능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지 않겠냐는 취지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위 쟁점의 전반을 검토해보고 지자체장으로 하여금 소 제기하게 하는 방안도 포함해 연구·검토해보고, 만약 그 방안에 따라 소를 제기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후보 지역 검토와 제소 방법에 관한 설명자료의 작성을 지시했습니다."

김종복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제소 기획이라는 아이디어는 증인에게서 나온 셈입니다. 당연히 증인은 발끈합니다. 김종복에게 문건 작성 얘기를 한 건 맞지만 자신은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했고, "임종헌 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다고 증인은 주장합니다. "이진만 실장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김종복의 진술을 접하고 처음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다가, 나중에 문자메시지 이야기를 김종복에게 듣고서 "임종헌 실장이 말씀하셨던 거구나"라고 뒤늦게 기억이 떠올랐다는 겁니다.


변호인은 여러 근거를 들어 증인의 이같은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기조실장은 평소 통진당 행정소송 같은 헌법 관련 업무에 관심이 없었고 ▲통진당 TF 보고서를 엮은 1cm 남짓의 스프링 책 역시 증인이 줘서 받았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 ▲특히 2015년 초는 상고법원 법안이 발의된 직후라 관련 업무에 전력투구 중이었으며 ▲증인은 문제의 문건 2개를 2월 13일 오후 기조실장에게 전달(포워딩)했다고 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기조실장의 메일함에선 포워딩한 메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객관적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증인과 김종복 사이의 문자메시지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 변호인: 문자메시지를 보시면 "급하게 필요합니다. 서둘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재촉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되어 있고, 주어가 피고인(임종헌)으로 돼 있다거나 "급하게 필요하다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전달식으로 기재돼 있진 않잖아요. […]
- 증인: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진 못하지만, 기조실장님이 (문건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제가 아마 이미 (김종복한테) 했었습니다. 그래서 문자에는 생략된 것 같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변호인: 피고인이 진짜 급하게 (문건이) 필요했으면 전화번호도 알고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이고, 이미 전출 간 증인과는 달리 행정처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종복에게 직접 연락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 증인: 그건 제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증인은 그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했습니다.

- 변호인: 앞서 본 문자에 따르면, 증인이 김종복에게 (지방의회 의원 등) 현황을 파악해 달라한 게 2015년 1월 29일 이전이죠?
- 증인: 맞습니다. 근데 기억이 안 나서 애먹었습니다. 지금도 명확히 기억 안납니다.
- 변호인: 증인 진술 내용에 따를 경우, 피고인이 증인에게 통진당 지방의원 현황 파악을 요청한 시점은 스프링철(스프링 책)을 본 2015년 2월 초여야 하는데, 이 문자메시지는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증인의 김종복에 대한 지시 시점인 2015년 1월 29일 이전과 시기적으로 불일치하지 않습니까?
- 증인: 맞습니다. 불일치해서 나도 기억 온전치 않은 거 같아서 아무리 기억을 되살리려 해도 기억이 없습니다.


#4. 사람의 기억이란

증인이 계속 똑같은 답을 반복하자, 결국 피고인이 직접 나섰습니다.

- 임종헌 피고인: 증인과 저는 제가 송무심의관하던 1997년부터 오랜 인연이 있고 두 차례 행정처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데, 현재 상황이 이와 같이 피고인과 증인으로 만나게 되어서, 제가 증인을 신문하게 되어서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다만,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가 증인이 기억에 반하는 그런 진술을 했다는 걸 지적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피고인과 증인, 그리고 관련자인 김종복의 말 사이에 여러가지 불일치하는 점이 있어서 피고인 입장에서는 의문사항 해소 차원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거니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증인을 지시자로 지목한 김종복의 진술을 쭉 인용한 뒤 이렇게 물었습니다.

- 임종헌: 그래서 지금 증인이 조금 전 증언하신 내용과 김종복의 검찰에서의 진술은 다소 일치하지 않는데, 증인은 증언하시는 대로 기억하고 계시는 겁니까?

증인은 망설임 없이 단호했습니다.

- 증인: 그렇게 기억됩니다.

피고인이 알았다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증인은 뭔가 걸리는 듯 재빨리 대답을 덧붙였습니다.

- 증인: 물론 말씀하신 대로, 기억에 자신은 없죠. 사람의 기억이란 게 저 스스로도 답답할 정도로 기억이 안날 때가 많이 있으니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 단어를 주거니 받거니 한 증인과 피고인. 대체 제소 기획이라는 무시무시한 아이디어는 누구한테서 비롯된 것일까요? "사람의 기억"이 갖는 불완전성 뒤에 숨어서 진실을 감추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재판 내내 하소연하듯 증언을 쏟아냈던 증인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는 재판장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 "그거는 특별히 없습니다"라고 답한 채 법정을 떠났습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㉙ ‘통진당 제소 기획’은 누구 아이디어?…법정 진실게임
    • 입력 2020-07-20 07:01:07
    • 수정2020-07-20 09:01:03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아홉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30일 증인으로 나온 이진만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8기·現 변호사)의 증언을 계속 살펴봅니다. (▶첫 번째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㉘ 통진당TF 꾸린 판사…‘재판 개입’ 의심에 “답답해” 도리질)

#1. 아이디어의 주인

법원행정처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 TF'(통진당TF)의 활동은 TF 팀장이었던 증인이 2015년 2월 12일자로 인사 발령(서울고등법원으로 복귀)이 나기 전 마무리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증인은 TF 보고서를 모두 취합한 스프링 책자를 2월 초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증인신문 과정에서는 작성일이 2월 12일로 돼 있는 문건 2개가 재판의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모두 TF 간사였던 김종복 전 판사가 쓴 내용이었는데요. 그의 진술에 의하면, 실제 문건이 완성된 시점은 2월 12일이 아닌 2월 13일이었다고 합니다.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먼저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 대책 검토(내부용·대외비)"라는 첫 번째 문건을 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과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은 의원직을 상실했는데, 통진당 소속 지역구 지방의원 31명은 여전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일관되지 못한 상황을 지적하고는 그 대책을 거론합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의원직위 부존재 확인", 즉 해당 의원들이 더이상 의원직을 갖고 있지 않음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검찰이 '통진당 제소 기획'이라고 명명한 사건입니다. 아래와 같이 그 후보 지역도 구체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또 다른 문건은 외부 설명자료용으로 작성됐다는 문건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소 제기 방법이 상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기자가 일부분 노란 선으로 강조.기자가 일부분 노란 선으로 강조.

김종복 전 판사는 이 문건들을 완성해 증인에게 메일로 보고하고,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에게는 대면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증인은 "제가 아마 김종복한테 (문건을) 기조실장에게 보고하라 했을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검찰은 또 강형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 처장도 문건 2개를 모두 받아봤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문건의 내용이 실제 실행되진 않았습니다. 작성자인 김종복은 임종헌에게 문건을 보고하며 "지자체장에게 소를 제기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반대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산간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고, 이에 임종헌이 "그렇죠"라며 수긍해 "2월 12일 문건들이 전부 킬(kill)된 것으로 생각했다"라고 검찰 조사 등에서 밝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나서서 특정 정당을 탄압하고 특정 정당에 도움을 주려는 시도"를 한 것이라며, 김종복에게 제소 기획을 검토시킨 것을 문제삼아 임종헌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증인은 '제소 기획'이 누구 아이디어였는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임종헌의 말을 듣고 김종복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검사: 이 문건들 내용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 상대로 소송 제기하게 하고, 구체적 소송 제기 형태와 제소 가능 지역을 검토한 내용인데, 그런 방안들은 누구의 생각이었습니까?
- 증인: 그건 정확히 기억 안 나고요. 이 문건을 따로 지시한 게 아니고 아마 시기는 잘 기억 안나지만, (임종헌이) 그 '불일치'가 이상하지 않냐 그래서 그것의 설명자료를 만들어달라고 했던 거 아닌가라고 기억이 됩니다.

증인은 임종헌이 2월 초 통진당 TF의 스프링 책을 본 뒤 "그 보고서에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은 안 나오더라" "그건 어떻게 되는지 김종복에게 검토해 달라고 해달라"는 취지로 자신에게 말했다고 검찰 조사에서 말했습니다. 증인은 법정에서도 이를 긍정하면서, 임종헌이 "불일치를 일치시키는 방안" 또는 "불일치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했는데 어느 쪽이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불일치"의 뜻에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임종헌 피고인이 "(통진당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잃었는데) 지역구 지방의원들이 그대로 직위 유지하며 혜택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뭔가 일관되지도 않고 이상하지 않느냐"라는 취지의 이야기한 사실이 있다고 답한 사실 있습니까?
- 증인: 워딩이 정확한진 모르지만, "국회의원·지방의원, 지방의원 중 비례대표·지역구 이게 뭔가 지위가 다 다른데 어색하지 않냐"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2. 문자 메시지는 알고 있다?

증인은 다만 임종헌에게 제소 기획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출처를 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증인과 김종복 전 판사가 주고받은 문자를 제시했습니다.


통진당 소속 지방의원 현황과 그 지역의 자치단체장을 파악해 달라고 증인이 김종복에게 요구한 건데, 이런 정보는 제소 기획의 밑바탕이 되는 것들입니다.

- 검사: 이것을 보낸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 증인: 사실 수사과정에서 보고 알았는데, 문자메시지 보고도 경위가 잘 기억 안났습니다. 아마 저건 맞을 겁니다, 문자메시지니까. 근데 사실 저 문자 보냈다는 사실 자체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 검사: "기조실장이 일단 현황부터 파악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김종복에게 제가 현황부터 파악해달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검찰 조사에선 진술하셨는데요.
- 증인: 그 연장선상에서 갔을 거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검사는 이어 2월 13일자 문자를 제시했습니다. 2월 13일은 증인이 이미 대법원 양형위를 떠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자리를 옮긴 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 검사: 이는 아까 봤던 문건들(2월 12일자 문건 2개)에 대해 서둘러 보내달라고 보낸 게 맞습니까?
- 증인: 맞을 겁니다.
- 검사: 증인은 검찰조사 당시 그 이유에 대해, "기조실장(임종헌)이 급하게 달라 하니 그렇게 보낸 거 같습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증인 기억에 부합하는 진술이었습니까?
- 증인: 제 기억엔 그랬던 거 같습니다.
- 검사: 피고인이 급하단 이유는 뭐였습니까?
- 증인: 전혀 그런 내용은 모르고요, "빨리 해 달라"라고 했던 걸로만 기억합니다.

증인은 나중에 "뚜렷하진 않지만 2월 13일 아침에 (임종헌에게)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보고서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전화가 와서, 김종복한테 빨리 좀 냈음 좋겠다라고 다시 전달한 거 아닌가 싶다"라고도 증언했습니다. 결국 임종헌이 해당 문건 작성과 보고를 지시했고, 본인은 중간자에 불과했다는 주장입니다.

증인은 특히 2018년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 막바지에 임종헌과 통화하며 "이 문건을 어디에 쓰려고 했냐"고 물었고, "그냥 이 수석(증인)이 지시해서 만들었는데 자세한 경위는 잘 생각 안 난다고 조사단에 말하면 안 될까"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증인은 당시 임종헌의 말을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너한테 더 이상 말을 못해준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그에 대해 "아이고,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합니까"라고 반응했다고 약간 억울함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증인은 또 당시 문건 내용이 매우 황당하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이 작성을 지시했을 리 없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 검사: […] 이와 같은 문건에 대해 김종복 심의관에게 부적절성을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 증인: 그게요, 저것을 계속 수사과정에서 그걸 물어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저게 제소한다고 해서 원고(지방자치단체장)가 승소한다는 게 아니라 저희(TF) 연구 결과는 원고 패소한다는 거였어요. […] 그래서 저걸(저 문건을) 보고 오히려 "해봐야 질 텐데"라는 생각을 했을 순 있지만, 저걸 가지고 탄압한다? 그거는 도저히. 저희는 굳이 (각 의원들의 지위를) 일치시키는 방안으로 저런 걸 생각했는데, "저거는 택도 없는데"라는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 검사: 부적절하단 인식은 그 당시 하지 못했습니까?
- 증인: 부적절하다기보단 쓸데없는 짓 아닌가. 왜냐면 저는 지방의회 의원은 (의원직 확인 소송) 승소 가능성이 정말 높다고 봤거든요. 왜냐면 지방의원과 국회의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게다가 헌재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고. 근데 결론을 일치시키려다보니 아마 저런 방안이 마련된 거 같은데, 저런 문건 받고 언뜻 든 느낌은 "헐?" 요즘 말로 "헐?" "왜 이런 황당한?" […] 흔히하는 말로 쓸데없는 짓, 속된 말로 '뻘짓', 이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3. 생사람 잡는 증인?

하지만 문제의 문건을 작성한 김종복 전 판사는 증인을 지시자로 지목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이 부정확했지만 증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하고 기억이 복원됐다는 건데요. 재판 과정에서 임종헌의 변호인이 언급한 김종복의 검찰 진술은 이렇습니다.

- "이진만 실장님이 지방자치단체장으로 하여금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하여 법원에 소송이 계속되면 모든 의원들에게 일관된 주장, 논리에 따라 당사자들에게 예측 가능한 판단이 내려질 수 있지 않겠냐는 취지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위 쟁점의 전반을 검토해보고 지자체장으로 하여금 소 제기하게 하는 방안도 포함해 연구·검토해보고, 만약 그 방안에 따라 소를 제기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후보 지역 검토와 제소 방법에 관한 설명자료의 작성을 지시했습니다."

김종복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제소 기획이라는 아이디어는 증인에게서 나온 셈입니다. 당연히 증인은 발끈합니다. 김종복에게 문건 작성 얘기를 한 건 맞지만 자신은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했고, "임종헌 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다고 증인은 주장합니다. "이진만 실장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김종복의 진술을 접하고 처음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다가, 나중에 문자메시지 이야기를 김종복에게 듣고서 "임종헌 실장이 말씀하셨던 거구나"라고 뒤늦게 기억이 떠올랐다는 겁니다.


변호인은 여러 근거를 들어 증인의 이같은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기조실장은 평소 통진당 행정소송 같은 헌법 관련 업무에 관심이 없었고 ▲통진당 TF 보고서를 엮은 1cm 남짓의 스프링 책 역시 증인이 줘서 받았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고 ▲특히 2015년 초는 상고법원 법안이 발의된 직후라 관련 업무에 전력투구 중이었으며 ▲증인은 문제의 문건 2개를 2월 13일 오후 기조실장에게 전달(포워딩)했다고 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기조실장의 메일함에선 포워딩한 메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객관적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증인과 김종복 사이의 문자메시지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 변호인: 문자메시지를 보시면 "급하게 필요합니다. 서둘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재촉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되어 있고, 주어가 피고인(임종헌)으로 돼 있다거나 "급하게 필요하다고 합니다"라는 식으로 전달식으로 기재돼 있진 않잖아요. […]
- 증인: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진 못하지만, 기조실장님이 (문건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제가 아마 이미 (김종복한테) 했었습니다. 그래서 문자에는 생략된 것 같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변호인: 피고인이 진짜 급하게 (문건이) 필요했으면 전화번호도 알고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이고, 이미 전출 간 증인과는 달리 행정처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종복에게 직접 연락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 증인: 그건 제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증인은 그저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일관했습니다.

- 변호인: 앞서 본 문자에 따르면, 증인이 김종복에게 (지방의회 의원 등) 현황을 파악해 달라한 게 2015년 1월 29일 이전이죠?
- 증인: 맞습니다. 근데 기억이 안 나서 애먹었습니다. 지금도 명확히 기억 안납니다.
- 변호인: 증인 진술 내용에 따를 경우, 피고인이 증인에게 통진당 지방의원 현황 파악을 요청한 시점은 스프링철(스프링 책)을 본 2015년 2월 초여야 하는데, 이 문자메시지는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증인의 김종복에 대한 지시 시점인 2015년 1월 29일 이전과 시기적으로 불일치하지 않습니까?
- 증인: 맞습니다. 불일치해서 나도 기억 온전치 않은 거 같아서 아무리 기억을 되살리려 해도 기억이 없습니다.


#4. 사람의 기억이란

증인이 계속 똑같은 답을 반복하자, 결국 피고인이 직접 나섰습니다.

- 임종헌 피고인: 증인과 저는 제가 송무심의관하던 1997년부터 오랜 인연이 있고 두 차례 행정처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데, 현재 상황이 이와 같이 피고인과 증인으로 만나게 되어서, 제가 증인을 신문하게 되어서 마음이 좀 그렇습니다. 다만,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가 증인이 기억에 반하는 그런 진술을 했다는 걸 지적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피고인과 증인, 그리고 관련자인 김종복의 말 사이에 여러가지 불일치하는 점이 있어서 피고인 입장에서는 의문사항 해소 차원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거니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증인을 지시자로 지목한 김종복의 진술을 쭉 인용한 뒤 이렇게 물었습니다.

- 임종헌: 그래서 지금 증인이 조금 전 증언하신 내용과 김종복의 검찰에서의 진술은 다소 일치하지 않는데, 증인은 증언하시는 대로 기억하고 계시는 겁니까?

증인은 망설임 없이 단호했습니다.

- 증인: 그렇게 기억됩니다.

피고인이 알았다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증인은 뭔가 걸리는 듯 재빨리 대답을 덧붙였습니다.

- 증인: 물론 말씀하신 대로, 기억에 자신은 없죠. 사람의 기억이란 게 저 스스로도 답답할 정도로 기억이 안날 때가 많이 있으니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 단어를 주거니 받거니 한 증인과 피고인. 대체 제소 기획이라는 무시무시한 아이디어는 누구한테서 비롯된 것일까요? "사람의 기억"이 갖는 불완전성 뒤에 숨어서 진실을 감추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재판 내내 하소연하듯 증언을 쏟아냈던 증인은,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는 재판장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 "그거는 특별히 없습니다"라고 답한 채 법정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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