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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와 두 개의 양심]㉔ 증언대 선 ‘인사모’ 판사…포섭과 불이익의 수수께끼
입력 2020.05.06 (07:01) 수정 2020.05.06 (07:01) 취재K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㉔ 증언대 선 ‘인사모’ 판사…포섭과 불이익의 수수께끼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 네 번째 순서로, 사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재판에 2020년 4월 23일 증인으로 출석한 송오섭 판사(사법연수원 34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송 판사는 판사들의 전문분야연구회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초기부터 활동한 회원으로,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이 연구회 회장을 맡았던 2015년에는 연구회 기획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 중 하나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이하 '인사모')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각각 50번 넘게 등장하는,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단어들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를 와해시키고자 사문화된 법원 예규(연구회 중복가입 금지)를 무리하게 적용하고, 인사모에서 활동한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인사모 판사들이 상고법원에 반대하거나 대법원장의 인사권 등 기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했던 게 문제였다고 검찰은 주장합니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 사법농단 재판에서 직접 증언한 것은 송 판사가 처음이었습니다.


#1. 근심의 시작

증인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획팀장으로 일하던 2015년 7월, 연구회 내에 인사모라는 소모임이 생겼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립 목적은 본래 국제인권법 연구. 하지만 인사모는 법관 인사제도, 상고법원 등 사법제도와 사법행정에 대해 주로 논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사법제도, 법관 인사제도 등은 법관 독립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분"이고, 법관의 독립은 인권 옹호에 있어 "본질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인사모의 활동은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설립 취지와도 맞는 부분"이라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증인은 당시 연구회 회장으로서 대법원에서 일하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을 통해, 인사모에 대한 행정처의 우려섞인 분위기를 접했습니다.

- 변호인: 증인은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해 다소 우려섞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아는 바 있습니까?
- 증인: 음... 뭐, 인사모 만들 당시에 조금 걱정이 있다라는 정도만 당시 알고 있었습니다.
- 변호인: 증인은 2015년 7월 인사모가 출범할 무렵,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내에서 사법행정 및 법관 인사제도를 논하고자 하는 인사모 활동이 연구회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그 활동이 부적절한 거 아닌가하는 지적했던 사실 알고 있죠?
- 증인: 알고 있습니다.
- 변호인: 당시 직접 전해들은 내용입니까? 이 부분을 전해 들었나요?
- 증인: 네.
[…]
- 검사: 앞서 증인은 인사모가 출범할 그 무렵에 행정처에서 걱정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로로 들으셨단 거죠?
- 증인: 제가 들은 거는 처음에 이제, 그때 당시 (이규진 피고인이) 양형위 상임위원하시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님으로도 활동했으니까. 당시 회장이었던 이규진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전 상임위원 본인도 증인에게 인사모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고 했습니다.

- 변호인: 당시 피고인 이규진은 사법행정에 대한 법관의 의사 표명과 의견 개진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고, 인사모가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연구회 명의를 이용해서 그런 활동을 하거나 의사 표명하는 걸 염려했다는데. 그 부분에 관해 피고인에게 이야기 들은 내용은 없습니까?
- 증인: 뭐, 비슷한 취지이긴 한데요. 그게 어차피 인사모를 하고 있는 건 법관이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하는 것도 법관이라, 결국 법관이 법관의 사법행정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거고. 그게 인사모라는 소모임에서 하는 것이다. 인사모의 의견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체 의견으로 확대 해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

증인은 또 이 전 상임위원이 인사모 설립 초기 자신에게 "이걸(인사모를) 왜 굳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안에 두려고 하느냐, 차라리 따로 하는 게 낫지 않냐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인사모가 행정처의 관심사가 된 이후, 이 전 상임위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인사모 모임 후기를 일일이 확인한 뒤 그 내용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논의 보고"라는 문건으로 정리해 법원행정처 차장과 처장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습니다. 연구회 회장이 되려 일종의 '스파이'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증인은 이에 대해 "(이 전 상임위원이 인사모 모임 결과 글을) 보시고 (행정처) 내부에서 이야기를 했을 수는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각 모임마다 해서 보고를 한다든가 이런 것들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2. 돌출행동자 포섭?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2016년 3월)을 보면, "인사모는 문제상황의 집약체이자 핵심" "인사모 결성 전까지 연구회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상황은 발생 X" "최근의 일련의 돌출행동은 대부분 인사모 회원들이 주도 ☞ 컨트롤타워 역할 의심됨"이라는 문구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련의 돌출행동"에는 증인이 관련돼 있습니다. 증인은 2016년 2월 1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법관의 사법행정참여 제도화에 관한 건의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장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위해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코트넷에 발표한 데 대해 증인이 의견을 낸 것이었는데, 3주 뒤 경향신문 보도로 글의 내용이 외부에 일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증인은 이 글을 코트넷에 올리기 전, 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 글을 먼저 봤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연락을 해왔다고 증언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 증인: 뭐... 그냥 보여달라는 건데, 보여달라고 했는데 보여드리면 이거저거 뭐 조금은 과한 표현이 있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 코멘트 주셨을 수 있겠죠. 그건 제가 판단할 몫일 건데, 저는 어쨌든 그전에 이걸 보여드릴 경우 어찌됐든 그때는 같은 건물에 있었고. 결국 제가 하면 결국 바로 법원행정처장님한테 가는 건의니까 그냥 직접 하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죠. 그걸 사전에 그쪽에서 뭐 미리 알고 뭐 이런 것들은 적절치 않겠다고 생각해서 (미리 보여주지 않고) 그냥 올렸던 것입니다.
- 검사: 증인께서 글을 게시하기 전에 이규진 당시 회장에게 보여주면, 결국에는 법원행정처에서 알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어서 안 보여줬다는 건가요?
- 증인: 뭐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 뭐 이거는 제가 쓰는 글이고 제가 (인사모에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 올리는 게 맞다라고 하는 게 주된 생각이고, 거기에 부수적으로... 그런 코멘트도 올 수도 있고 그러면은 다시 또 그걸 고민할 거냐 그런 부분도 있고요.

증인은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올리기 전에 좀 (글을) 줬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약간 섭섭함을 내비치시기는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왜 이 글을 미리 확인하려했던 것일까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으로서, 증인의 글이 올라가면 행정처 간부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핵심 회원인 송오섭 판사가 코트넷에 게시한 판사회의 활성화 관련 문건은 인사모 논의 결과물로 알려짐"이라며 증인의 글을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비정상적 운영 사례"이자 인사모 회원의 "돌출행동"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행정처의 부정적 반응과 달리, 증인은 당시 대법원이 설립을 추진하던 사법행정위원회가 "정말 잘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법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건의문을 쓴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송오섭 판사가 건의문을 올린 지 하루 만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는 “송오섭 판사 건의문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송오섭 판사가 건의문을 올린 지 하루 만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는 “송오섭 판사 건의문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검찰은 건의문 사건 등을 계기로 법원행정처가 "사법 행정에 비판적인" 증인을 행정처에 끌어들이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은 증인의 건의문을 본 뒤 증인과 친분이 있는 김민수, 최누림 심의관을 불러 혼을 내면서 "어차피 1년 지나면 행정처 심의관으로 올 사람인데 유학이나 조용히 갔다오지 왜 이런 글을 올려 가지고 재를 뿌리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2016년 12월 26일자 일정표에서는 "송오섭 판사 연수기간 만료→행정처 포섭"이라는 문구가, 2017년 1월 3일 일정표에서는 "11:50 송오섭 판사(인사모, 지원실)"이라는 문구가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증인은 2017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장으로 발령이 났고, 이듬해에는 법원행정처 지원실(사법지원실) 심의관으로 1년 동안 일했습니다.

"행정처 포섭" 문구에 대해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2020년 4월 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송오섭 판사가 워낙 능력 있고 뛰어나다 그래서 행정처로 데려오자는 얘기를 적은 것"이라고 일축하며 "제가 어디서 포섭이란 이야기를 들었는지, 제 생각에 포섭이라고 생각해서 썼는지 모르지만 간단히 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행정처에 있다보면 공격적인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정처 인사', 이렇게 안 쓰고 '포섭'이라고 하면은 누구나 다 알기 쉽게 제가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이라서 그렇게 썼던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또 "송오섭 판사를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내서 송오섭을 회유한다? 그런 공작적인 내용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은 송오섭 판사가 그렇게 포섭이 될 만한 사람은 전혀 아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3. 불이익의 시나리오

법원행정처 문건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의 본문 마지막 줄에는, 인사모 회원에 대한 인사 불이익 검토 내용이 짧게 등장합니다. 검찰이 주요 증거로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앞서 4월 18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형연 전 부장판사는 "인사모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증인은 인사모 회원에 대한 인사불이익 관련 정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다만 증인은 "연구회에 대한 견제에 대해선 연구회 지원금이나 이런 부분들에 대한 축소, 이런 이야기는 좀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검사는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 검사: 연구회 견제를 위해서 (행정처에서) 지원금 축소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그러면...
- 증인: [말 끊으며] 축소를 직접 한다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이런 불이익이 우리가 있을 수도 있지 않냐. 그렇게 축소하겠다 내지는 그렇게 한다는 단정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여러 가능한 그 쪽의 시나리오 중에 혹시나 불이익이 오면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인지 그 부분 관련해서. 지원금 축소라든가, 해외연수 같은 거. 전문분야연구회 연수 법관을 선정함에 있어서 2명이었는데 연구회 인원 많으니까 3명으로 늘려달라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게 2명으로 유지된다거나 줄어든다거나... 그런 취지로 말씀드린 겁니다.
- 검사: 그럼 그 이야기를 연구회 회원 법관들끼리 그냥 상정해서 얘기나눴단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행정처에서 그런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한다는 걸 전해들었단 뜻인가요?
- 증인: 구체적으로 그때 행정처에서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은 바는 없고 이런 저런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냐는 걸 들었고, 그 중에는 이제 (이규진 상임위원이) 우리 회장님이셨으니까. 회장님도 포함되니까, 그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니까 이제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하는 차원으로 제가 생각하진 않았고 뭐 그렇게 할 순 있겠구나 이런 정도로 들어 넘긴 거죠.
- 검사: 피고인 이규진이 한 말 중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겁니까?
- 증인: 있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해 행정처에서 어떤 종류의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예상이 당시에도 존재했다는 취지입니다.

증인은 또 법원행정처가 2017년 2월 13일 공지한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두고, 당시 인사모 회원들 사이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축소하기 위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자신도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인사모 내에서) 개진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법관들의 자율적 커뮤니티 활동을 대단히 축소하는 것"이었다면서, "조금이라도 하고 싶다 한다면 당연히 (전문분야연구회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이 처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건데 그걸 꼭 하나만 선택해서 하나만 하라는 게 무리한 발상이라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증인은 "저 스스로도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으로 가입해 있었다"며 "중복가입이라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 이런 생각들이 (판사들 사이에) 없었다고 알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예규가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는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입니다.


#4. 모쪼록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술술 이어간 증인. 1시간 40분 동안의 증인신문이 끝난 뒤, 재판부는 증인에게 "그밖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증인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짧은 대답만 남기고 법정을 떠났습니다.

"어... 아닙니다. 특별히 뭐 오늘 이 자리에서 더 드릴 말씀은 없고요, 모쪼록 좀 재판이 잘 마무리가 돼서 법관들이 다시 본래의 재판에 좀더 매진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㉔ 증언대 선 ‘인사모’ 판사…포섭과 불이익의 수수께끼
    • 입력 2020.05.06 (07:01)
    • 수정 2020.05.06 (07:01)
    취재K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㉔ 증언대 선 ‘인사모’ 판사…포섭과 불이익의 수수께끼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 네 번째 순서로, 사법농단 사건의 공범으로 기소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재판에 2020년 4월 23일 증인으로 출석한 송오섭 판사(사법연수원 34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송 판사는 판사들의 전문분야연구회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초기부터 활동한 회원으로,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이 연구회 회장을 맡았던 2015년에는 연구회 기획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 중 하나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이하 '인사모')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 각각 50번 넘게 등장하는,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단어들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를 와해시키고자 사문화된 법원 예규(연구회 중복가입 금지)를 무리하게 적용하고, 인사모에서 활동한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인사모 판사들이 상고법원에 반대하거나 대법원장의 인사권 등 기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했던 게 문제였다고 검찰은 주장합니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 사법농단 재판에서 직접 증언한 것은 송 판사가 처음이었습니다.


#1. 근심의 시작

증인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획팀장으로 일하던 2015년 7월, 연구회 내에 인사모라는 소모임이 생겼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설립 목적은 본래 국제인권법 연구. 하지만 인사모는 법관 인사제도, 상고법원 등 사법제도와 사법행정에 대해 주로 논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증인은 "사법제도, 법관 인사제도 등은 법관 독립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부분"이고, 법관의 독립은 인권 옹호에 있어 "본질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인사모의 활동은 "국제인권법연구회나 설립 취지와도 맞는 부분"이라고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증인은 당시 연구회 회장으로서 대법원에서 일하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을 통해, 인사모에 대한 행정처의 우려섞인 분위기를 접했습니다.

- 변호인: 증인은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해 다소 우려섞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아는 바 있습니까?
- 증인: 음... 뭐, 인사모 만들 당시에 조금 걱정이 있다라는 정도만 당시 알고 있었습니다.
- 변호인: 증인은 2015년 7월 인사모가 출범할 무렵,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 내에서 사법행정 및 법관 인사제도를 논하고자 하는 인사모 활동이 연구회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그 활동이 부적절한 거 아닌가하는 지적했던 사실 알고 있죠?
- 증인: 알고 있습니다.
- 변호인: 당시 직접 전해들은 내용입니까? 이 부분을 전해 들었나요?
- 증인: 네.
[…]
- 검사: 앞서 증인은 인사모가 출범할 그 무렵에 행정처에서 걱정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로로 들으셨단 거죠?
- 증인: 제가 들은 거는 처음에 이제, 그때 당시 (이규진 피고인이) 양형위 상임위원하시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님으로도 활동했으니까. 당시 회장이었던 이규진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전 상임위원 본인도 증인에게 인사모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고 했습니다.

- 변호인: 당시 피고인 이규진은 사법행정에 대한 법관의 의사 표명과 의견 개진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고, 인사모가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연구회 명의를 이용해서 그런 활동을 하거나 의사 표명하는 걸 염려했다는데. 그 부분에 관해 피고인에게 이야기 들은 내용은 없습니까?
- 증인: 뭐, 비슷한 취지이긴 한데요. 그게 어차피 인사모를 하고 있는 건 법관이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하는 것도 법관이라, 결국 법관이 법관의 사법행정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거고. 그게 인사모라는 소모임에서 하는 것이다. 인사모의 의견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전체 의견으로 확대 해석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긴 했습니다.

증인은 또 이 전 상임위원이 인사모 설립 초기 자신에게 "이걸(인사모를) 왜 굳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안에 두려고 하느냐, 차라리 따로 하는 게 낫지 않냐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인사모가 행정처의 관심사가 된 이후, 이 전 상임위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인사모 모임 후기를 일일이 확인한 뒤 그 내용을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논의 보고"라는 문건으로 정리해 법원행정처 차장과 처장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습니다. 연구회 회장이 되려 일종의 '스파이'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증인은 이에 대해 "(이 전 상임위원이 인사모 모임 결과 글을) 보시고 (행정처) 내부에서 이야기를 했을 수는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각 모임마다 해서 보고를 한다든가 이런 것들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2. 돌출행동자 포섭?

법원행정처 내부 문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2016년 3월)을 보면, "인사모는 문제상황의 집약체이자 핵심" "인사모 결성 전까지 연구회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상황은 발생 X" "최근의 일련의 돌출행동은 대부분 인사모 회원들이 주도 ☞ 컨트롤타워 역할 의심됨"이라는 문구들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련의 돌출행동"에는 증인이 관련돼 있습니다. 증인은 2016년 2월 1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법관의 사법행정참여 제도화에 관한 건의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장이 일선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를 위해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겠다고 코트넷에 발표한 데 대해 증인이 의견을 낸 것이었는데, 3주 뒤 경향신문 보도로 글의 내용이 외부에 일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증인은 이 글을 코트넷에 올리기 전, 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 글을 먼저 봤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연락을 해왔다고 증언했습니다.

- 검사: 증인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 증인: 뭐... 그냥 보여달라는 건데, 보여달라고 했는데 보여드리면 이거저거 뭐 조금은 과한 표현이 있었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 코멘트 주셨을 수 있겠죠. 그건 제가 판단할 몫일 건데, 저는 어쨌든 그전에 이걸 보여드릴 경우 어찌됐든 그때는 같은 건물에 있었고. 결국 제가 하면 결국 바로 법원행정처장님한테 가는 건의니까 그냥 직접 하는 게 낫겠다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죠. 그걸 사전에 그쪽에서 뭐 미리 알고 뭐 이런 것들은 적절치 않겠다고 생각해서 (미리 보여주지 않고) 그냥 올렸던 것입니다.
- 검사: 증인께서 글을 게시하기 전에 이규진 당시 회장에게 보여주면, 결국에는 법원행정처에서 알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어서 안 보여줬다는 건가요?
- 증인: 뭐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 뭐 이거는 제가 쓰는 글이고 제가 (인사모에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 올리는 게 맞다라고 하는 게 주된 생각이고, 거기에 부수적으로... 그런 코멘트도 올 수도 있고 그러면은 다시 또 그걸 고민할 거냐 그런 부분도 있고요.

증인은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올리기 전에 좀 (글을) 줬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약간 섭섭함을 내비치시기는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왜 이 글을 미리 확인하려했던 것일까요?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으로서, 증인의 글이 올라가면 행정처 간부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핵심 회원인 송오섭 판사가 코트넷에 게시한 판사회의 활성화 관련 문건은 인사모 논의 결과물로 알려짐"이라며 증인의 글을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비정상적 운영 사례"이자 인사모 회원의 "돌출행동"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행정처의 부정적 반응과 달리, 증인은 당시 대법원이 설립을 추진하던 사법행정위원회가 "정말 잘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법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건의문을 쓴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송오섭 판사가 건의문을 올린 지 하루 만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는 “송오섭 판사 건의문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송오섭 판사가 건의문을 올린 지 하루 만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는 “송오섭 판사 건의문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검찰은 건의문 사건 등을 계기로 법원행정처가 "사법 행정에 비판적인" 증인을 행정처에 끌어들이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은 증인의 건의문을 본 뒤 증인과 친분이 있는 김민수, 최누림 심의관을 불러 혼을 내면서 "어차피 1년 지나면 행정처 심의관으로 올 사람인데 유학이나 조용히 갔다오지 왜 이런 글을 올려 가지고 재를 뿌리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2016년 12월 26일자 일정표에서는 "송오섭 판사 연수기간 만료→행정처 포섭"이라는 문구가, 2017년 1월 3일 일정표에서는 "11:50 송오섭 판사(인사모, 지원실)"이라는 문구가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증인은 2017년 2월 법원 정기인사에서 대법원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장으로 발령이 났고, 이듬해에는 법원행정처 지원실(사법지원실) 심의관으로 1년 동안 일했습니다.

"행정처 포섭" 문구에 대해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2020년 4월 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송오섭 판사가 워낙 능력 있고 뛰어나다 그래서 행정처로 데려오자는 얘기를 적은 것"이라고 일축하며 "제가 어디서 포섭이란 이야기를 들었는지, 제 생각에 포섭이라고 생각해서 썼는지 모르지만 간단히 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행정처에 있다보면 공격적인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정처 인사', 이렇게 안 쓰고 '포섭'이라고 하면은 누구나 다 알기 쉽게 제가 편하게 쓸 수 있는 말이라서 그렇게 썼던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또 "송오섭 판사를 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내서 송오섭을 회유한다? 그런 공작적인 내용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일부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은 송오섭 판사가 그렇게 포섭이 될 만한 사람은 전혀 아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3. 불이익의 시나리오

법원행정처 문건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의 본문 마지막 줄에는, 인사모 회원에 대한 인사 불이익 검토 내용이 짧게 등장합니다. 검찰이 주요 증거로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앞서 4월 18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형연 전 부장판사는 "인사모 활동을 하게 된다면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느낌으로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증인은 인사모 회원에 대한 인사불이익 관련 정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다만 증인은 "연구회에 대한 견제에 대해선 연구회 지원금이나 이런 부분들에 대한 축소, 이런 이야기는 좀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검사는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 검사: 연구회 견제를 위해서 (행정처에서) 지원금 축소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그러면...
- 증인: [말 끊으며] 축소를 직접 한다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이런 불이익이 우리가 있을 수도 있지 않냐. 그렇게 축소하겠다 내지는 그렇게 한다는 단정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여러 가능한 그 쪽의 시나리오 중에 혹시나 불이익이 오면 어떤 불이익이 올 것인지 그 부분 관련해서. 지원금 축소라든가, 해외연수 같은 거. 전문분야연구회 연수 법관을 선정함에 있어서 2명이었는데 연구회 인원 많으니까 3명으로 늘려달라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그런 게 2명으로 유지된다거나 줄어든다거나... 그런 취지로 말씀드린 겁니다.
- 검사: 그럼 그 이야기를 연구회 회원 법관들끼리 그냥 상정해서 얘기나눴단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행정처에서 그런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한다는 걸 전해들었단 뜻인가요?
- 증인: 구체적으로 그때 행정처에서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은 바는 없고 이런 저런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냐는 걸 들었고, 그 중에는 이제 (이규진 상임위원이) 우리 회장님이셨으니까. 회장님도 포함되니까, 그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니까 이제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하는 차원으로 제가 생각하진 않았고 뭐 그렇게 할 순 있겠구나 이런 정도로 들어 넘긴 거죠.
- 검사: 피고인 이규진이 한 말 중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겁니까?
- 증인: 있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국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해 행정처에서 어떤 종류의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예상이 당시에도 존재했다는 취지입니다.

증인은 또 법원행정처가 2017년 2월 13일 공지한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를 두고, 당시 인사모 회원들 사이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축소하기 위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면서 자신도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인사모 내에서) 개진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법관들의 자율적 커뮤니티 활동을 대단히 축소하는 것"이었다면서, "조금이라도 하고 싶다 한다면 당연히 (전문분야연구회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이 처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건데 그걸 꼭 하나만 선택해서 하나만 하라는 게 무리한 발상이라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증인은 "저 스스로도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으로 가입해 있었다"며 "중복가입이라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 이런 생각들이 (판사들 사이에) 없었다고 알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을 금지하는 예규가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다는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입니다.


#4. 모쪼록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술술 이어간 증인. 1시간 40분 동안의 증인신문이 끝난 뒤, 재판부는 증인에게 "그밖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증인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짧은 대답만 남기고 법정을 떠났습니다.

"어... 아닙니다. 특별히 뭐 오늘 이 자리에서 더 드릴 말씀은 없고요, 모쪼록 좀 재판이 잘 마무리가 돼서 법관들이 다시 본래의 재판에 좀더 매진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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