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두 개의 양심]㉗ ‘윗분들’ 지적에 연임 걱정한 판사…부끄러움을 말하다

입력 2020.06.24 (06:15) 수정 2020.07.0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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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 일곱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22일 증인으로 나온 정 모 판사(사법연수원 41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정 판사가 증인으로 나오게 된 건, 그가 5년 전 서울남부지법에 근무할 당시 경험한 일 때문입니다. 정 판사는 지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염 모 부장판사(▶관련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㉖ 재판 개입과 우리의 ‘소신’…돌직구 질문 던진 재판장)와 같은 재판부에서 재판장과 좌배석 판사의 관계로 1년 동안 일했는데요. 검찰은 정 판사가 주심을 맡았던 위헌제청 결정이 번복되는 데 법원행정처가 위법·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임 전 차장을 비롯한 행정처 간부들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증인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 구제를 위한 궁리

2015년 2월 인사에서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로 발령이 난 증인.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가 "한참 동안 누락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학연금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해달라고 신청한 사건이었는데,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게 주심인 증인의 판단이었습니다. 나중 일이긴 하지만, 증인 재판부의 결정이 직권취소되고 재결정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습니다. (▶관련 기사: 헌재, "공중보건의 복무 기간, 사립교직원 재직 기간에 합산"…사학연금법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문제가 된 건 당시 증인이 '단순위헌'이 아닌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위헌심판 대상이 되는 법 조항이 "특정한 내용으로 해석돼 적용되는 한" 위헌이 된다는 헌재의 판단을 구한 건데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결정이었습니다. 증인은 이런 이례적 결정을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검사: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게 대법원 입장이라는 걸 (당시) 재판부는 알고 있었습니까?
- 증인: 저는 알고는 있는데 합의를 할 때 (부장님께) 말씀을 드리진 않았어요. […] 종전에 제가 봤을 때는 거의 차이를 모르겠는 사건에서 합헌 결정된 게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단순위헌 취지로 위헌제청을) 올리면은 또 합헌 결정이 나올 거 같았어요.

- 증인: 제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어떤 헌법적인 평소의 견해가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다기보단, 이 사건에서는 사실 입법의 공백에 가까운 거 같기는 한데, 당장 결정으로서 이 당사자를 구제해줄 수 있는 방법은 이거(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가 있지 않나 해서 결정했던 거예요.

증인은 대법원의 입장을 알았기 때문에 "약간 변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법원 판례를 "약간 모른 척"하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당사자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 번 해봤던 것"인데, 합의 과정에서 재판장이 별 문제없이 "OK"라고 넘어가서 오히려 "OK가 된 건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증인이 완성한 결정문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로 보내지기 전 경유지인 법원행정처에 도착했습니다.


#2. 피드백

결정 이틀 뒤, 증인은 법원 기획법관에게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 검사: 기획법관이 증인에게 연락해 뭐라 했었습니까?
- 증인: 이게 지금 대법원... "대법원"이 아니라 "행정처"였던 거 같아요. 행정처에서 (저희 재판부 결정을) 보시고 이거는 대법원에서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형태의 결정이고, 헌재에서는 효력 인정하는 형태의 결정인데. 이런 결정을 우리가 하게 되면, 헌재에서 이런 거를 이용해서 언론으로 "일선 판사도 우리의 입장과 같이 이런 결정을 하는데, 우리의 입장이 맞지 않느냐" 이런 신문 기사를 내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게 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구체적으로 이걸 취소해라 어쩌라 이런 얘기까진 아니었던 거 같긴 한데, 이게 지금 일단은 행정처에서 헌재로 넘기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던 거 같아요.

증인은 통화 뒤 "내가 뭔가 조금 눈에 띄는 행동을 했고, 거기에 대해 지적을 당하니까 당황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컸다"라며 "'언론 플레이' 이런 표현을 들으니까 조금 겁이 나는 측면도 있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판사로서의 신분이 위태롭지 않을지 걱정했다고도 했습니다.

- 검사: (금요일에) 기획법관의 이야기를 듣고 주말 내내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 취소해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기억, 그리고 재판장 입장이 신경 쓰여서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 증인: 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지하철 타고 가면서 이제... 남편한테 전화를 해서, "연임이 안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변호인의 추가 질문에, 증언은 더 분명하고 생생해졌습니다.

- 변호인: 지하철에서 전철타고 가면서 남편 분한테 "혹시 연임 안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말씀을 전화로 하셨다고 하는데, 이게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한 겁니까? 아니면 "내가 뭐 법원에서 한번 사고 함 쳤다~" 이런 취지로 좀 이야기를 한 겁니까?
- 증인: 반반인데요. 사실은 기우라고 말씀하시면은... 뭐 "제 기우였나봐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혹여 제가 헌법적으로 뭔가 잘못된 판단을 한 거였어도 사실 내버려두는 게 맞았잖아요. 근데 "너 뭐 잘못했어"라는 지적을 입사 3년 차(나중에 4년 차라고 정정함)의 판사가 상급... 저는 감히 접근해본 적도 없는 그런 상급기관에서 내려온 지적을 받았다면, 누구나 그런 신분상의 걱정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증인은 또 본인뿐 아니라 재판장에 대해서도 "고법부장이 되실 기회가 아직 있으신 거 같았는데, (이번 결정으로) 약간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염려를 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제가 중앙에 있다가 남부로 왔었는데, 중앙에서는 특히 승진을 앞둔 부장님들이 많이 계셔서 실적이나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쓰시고 항소심에 (자기) 판결이 어떻게 보일까도 조금 신경쓰시는 편이셨던 걸로 기억한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했습니다. '상급기관'에서 받는 압박이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3. 딱 걸렸어?

이런 저런 고민에 휩싸여 주말을 보낸 증인. 월요일 아침 출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재판장의 호출을 받습니다.

- 검사: 4월 13일 월요일 아침에 염○○ 부장이 증인을 불러서 "행정처에서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자꾸 저러니까 어떻게 하겠느냐. 정 판사님이 기분 나쁘겠지만 취소해주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한 사실 있습니까?
- 증인: 네.
[…]
- 변호인: "행정처에서 난리를 피운다"고 표현했던 건 맞습니까?
- 증인: "행정처"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어떤 외부적인 뭔가가 이 사건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셨던 건 확실해요.

증인은 재판장의 말을 듣고는 기존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는 두 개의 결정문을 추가로 작성했습니다. (이 결정문들이 행정처 간부의 말에 따라 법원 내부에서도 전산상 검색이 안되도록 감쪽같이 '블라인드' 처리됐다는 건 앞선 기사들에서 살펴본 대로입니다.)

명색이 판사가 왜 이렇게 쉽게 결정을 번복했을까.

증인은 '상부에서 이걸 봤구나' '빨리 다시해야겠다'는 생각에 "'어, 어' 하는 사이에" 취소하고 재결정을 하게 됐다면서 "애초에 저한테 옵션이 없다고 느꼈다"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이미 사실상 다 결정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계속 주장해봤자 재판장만 난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인정했습니다. 증인은 실제로 결정문에 직권취소의 이유를 쓰지도 못했는데, "제가 뭘 검토해서 결정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정을 뒤집은 것이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인데요. 그러자 임 전 차장이 직접 '출격'했습니다.

- 임종헌 피고인: 염○○ 부장이 원 결정을 취소하고 재결정하자라고 했을 때, 증인의 내심의 의사는 이거는 원 결정이 맞는데,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증인 의사에 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까?
- 증인: 맞다 틀리다까지는... 저는 "어떻게 하면 서울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해서 "이 방법이면 서울에 갈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약간 변칙적 방법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었고, 행정처에서 "너 반칙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럼 서울에 못가든 가든 정도(正道)를 걷겠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이거 원안대로 가자는 생각을 아예 안했던 건 맞아요. 안했던 건지, 못했던 건지는 여러 정황 파악해 판단하실 영역이라 생각하는데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서울"에 비유해, 행정처가 서울로 가는 길을 바로잡아줬다는 취지로 말한 건데요. "상급기관이 나를 교정해주고 있다" "내가 실수할 뻔한 걸 행정처에서 바로 잡아준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증인은 털어놨습니다.


당시 증인의 심경이 어땠는지에도 질문이 집중됐는데요. 증인은 당시 소신이 훼손돼 불쾌하다는 생각보다는 '뜨끔'하고 당황스런 느낌이 더 컸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어른들 몰래 뒷문으로 나가려다가, 금지된 행동을 하려다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 검사: (취소하라는 재판장의 말을 듣고) 행정처에서 일선 법원의 판단을 계속 살펴보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까?
- 증인: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저도 약간 임관한 지 얼마 안된 판사이다보니까 "감히 내 결정을 누가 간섭해!" 이런 측면보다는 약간 "어, 내가 뭐 잘못했나봐" 이런 생각이 좀더 강했던 거 같아요. 기분 나쁜 것도 있긴 있었지만.
[…]
- 검사: 재판부 판단이 아닌 행정처 연락을 받고 원 결정을 직권취소한 건데, 그 부분에서 오는 마음의 부담이 없었냐는 겁니다.
- 증인: […] 당시 입장은 […] 합목적적인, 당사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 가장 효율적 결정이 뭔지 생각했던 거였거든요. 그래서 "나의 소신이 꺾였다" 이런 부분보다도, 뭐라고 해야할지[웃음], 당혹스러운 부분이 그땐 좀 컸어요. 내가 대법원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을 했는데, 위에서 보셨구나.

증언 내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계속 "위", "상부"라고 지칭됐습니다.

- 증인: 어쨌건 대법원 입장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이 없다는 건데, 내가 그와 다르게 판결을 한 거를 면전에 들이댄 셈이 됐으니까 그런 부담도 있었고요. 내가 약간 그... 상급기관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법관으로 비쳐지겠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죠. 나를 기억하시면 어떡하지? 약간 이런 생각도 있었던 거 같아요.

증인은 다만 "행정처의 요구를 최고 상급기관의 지시로 받아들였냐"라는 검사의 질문에는 얼마간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을 하지 않다가, "그게 없었다면 취소 결정을 안했을 거는 확실하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4. 판사의 부끄러움

앞서 '법원 내 재판 개입' 사건에 대한 첫 판결로 관심을 끈 임성근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1심 판결문엔 이런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법관의 재판권 행사에 절차상 또는 실체상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사전에 그 오류의 시정을 구할 수 없고, 사후에 심급제도를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심급제도와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근본정신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임 전 차장 측은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일선 법원 결정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는 건 필요한 일이고, 이런 행위가 어떻게 부당한 재판 개입이냐는 주장입니다. 변호인은 이런 입장에서,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을 한 증인 재판부의 결정에 오류와 착각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추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변호인: 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이었던 문성호는, "한정위헌은 해당 법률조항의 다의적 해석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건데 이 사건은 다의적 해석 가능성이 없으므로 설령 한정위헌 결정이 허용된다는 견해를 취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은 불가능하다"고 검토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검토 내용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 증인: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얘기예요. 근데 그거는,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제가 경험으로 알고 있지는 않아요.

당시 행정처 내부 문건을 봐도 재판부가 뭘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을 하는 것은 큰 문제고, 이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재판 간섭이 아니라 정당한 사법행정권의 영역이라고 검토한 기록이 나옵니다(아래).

 2015년 4월 12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작성한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 확인 및 향후 대책(대외비)” 문건. 재판 과정에서 현출된 것을 기자가 받아적고, 일부 내용을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2015년 4월 12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작성한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 확인 및 향후 대책(대외비)” 문건. 재판 과정에서 현출된 것을 기자가 받아적고, 일부 내용을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당시 결정의 오류를 들춰내는 변호인의 여러 지적에, 증인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수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거 보면 그 결정 주문이 약간 잘못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못했던 건 맞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제가 엉뚱한 짓을 한 거다"라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알았고 약간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잘못된 결정이었다면 죄송하다"라는 때아닌 반성의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증인은 그러면서도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 증인: 일선 법원에서 멍청한 결정을 하면 보통 자연스럽게 교정이 되죠. 항소하고 상고하는 과정에서. 그래서 상급법원이 있는 거고. 사실 판사도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있거든요. 잘 몰라서이기도 하고 판단 잘못해서, 사실관계 잘못 파악해서... 근데 이 사건에서는 제가 어떤 법률적 오류를 범했던 거 같은데 지금와서 보니까. 근데 그거를 (행정처가) 교정해주는 방식이 과연 적정했냐 아니냐의 문제인 거 같습니다.

"묻어 놓고 잊어버리고" 살았다던 사건을 5년 만에 돌아본 증인. 3시간의 증인신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지자, 만감이 교차한 듯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 증인: 음... 일련의 사건으로 일선...[울먹임] 죄송합니다. 휴..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판사님들이 약간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거는 사실이에요. 잘 해보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신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조금... 저는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검사에요. 그래서 남편이 임관 초기에 저한테 행정처나 이런 데서 뭐.. 어떤 식으로 일을 한다더라 이런 풍문같은 얘기를 저한테 해줄 때, 저는 "법원은 그런 기관이 아니다"... 법원은 그런 기관이 아니라고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근데 이게 뭔가 일련의 사건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더이상 이제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고, 그냥 그 자리에서 사건을 처리하시는 많은 판사님들이 조금 직업적인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거는 사실인 거 같아요.

당시 판사로서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고도 했습니다.

- 증인: 형사적으로 죄가 안되냐 되냐의 문제는 또 별개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도 사실은 이게 절차적으로는 조금 부적절했던 거는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직권남용이 되냐 안되냐에 대해서는 판단을 재판부에서 해주시겠지만, 저도 거기에서 말하자면 협조를 했던 셈이에요.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했어도 사실은... 제가 아까 말하면서 부끄러웠던 게, 취소 결정을 하면서 행정처나 다른 분이 검토해주셨건 어쨌건 간에 내가 검토를 하고 했어야 맞는 건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상당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어쨌거나.. 앞으로는 이런 법원은 이런 조직이 아니잖아요. 사실은... 제가 임관하고나서부터 상고법원에 관한 이야기나 아니면 뭐 튀는 법관, 튀는 판결에 관한 뭐 일련의 암묵적인 관료적인 분위기라든가 이런.. 이런 것들이 있어서 제가 당시에 제가 그렇게 아니라고 말을 못한 부분도 있고... 그렇게 남편한테 농담처럼 "연임이 안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 것도 있고. 사실은 그 상황에서 제가 기분이 나빴어야지 맞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판사가 무슨 결정을 했는데 잘못됐다고 하면,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가 한 판단에 왈가왈부하느냐"라고 기분이 나빴어야 맞는데, 거기에 대해서 제 안위를 더 걱정했던 부분이 있는 거잖아요. "내가 잘못했나봐" 스스로 약간 이렇게 생각했던 부분이 부끄럽단 생각이 들고. 물론 지금와서 말씀해주신 부분을 보니까 정말 내가 잘못했던 부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도 또 부끄럽지만. 오늘 여러모로 부끄럽기도 하고. […] 갑자기 눈물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증인석에서 눈물을 삼키며 '법관의 독립'을 이야기하고, 그 가치에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뒤늦게 반성하는 판사 증인. 법대에 앉아 그런 동료를 바라봐야 하는 세 명의 판사. 이런 재판을 경험한 판사와 법원의 모습은, 그 전과는 분명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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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㉗ ‘윗분들’ 지적에 연임 걱정한 판사…부끄러움을 말하다
    • 입력 2020-06-24 06:15:16
    • 수정2020-07-07 08:27:21
    취재K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

선서서에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라고 기재하여야 한다. (형사소송법 157조 2항)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들. 최근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최대 100명이 넘는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대에서 이젠 증언대로 내려와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판사들. 이 이례적인 법정에서 나온 '양심적 증언'과, 대화의 요모조모를 기록해 둡니다.

스물 일곱 번째 순서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2020년 6월 22일 증인으로 나온 정 모 판사(사법연수원 41기)의 증언을 살펴봅니다.

정 판사가 증인으로 나오게 된 건, 그가 5년 전 서울남부지법에 근무할 당시 경험한 일 때문입니다. 정 판사는 지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염 모 부장판사(▶관련 기사: [판사와 두 개의 양심]㉖ 재판 개입과 우리의 ‘소신’…돌직구 질문 던진 재판장)와 같은 재판부에서 재판장과 좌배석 판사의 관계로 1년 동안 일했는데요. 검찰은 정 판사가 주심을 맡았던 위헌제청 결정이 번복되는 데 법원행정처가 위법·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임 전 차장을 비롯한 행정처 간부들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증인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 구제를 위한 궁리

2015년 2월 인사에서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로 발령이 난 증인. 사건 기록을 검토하다가 "한참 동안 누락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학연금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해달라고 신청한 사건이었는데,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게 주심인 증인의 판단이었습니다. 나중 일이긴 하지만, 증인 재판부의 결정이 직권취소되고 재결정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습니다. (▶관련 기사: 헌재, "공중보건의 복무 기간, 사립교직원 재직 기간에 합산"…사학연금법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문제가 된 건 당시 증인이 '단순위헌'이 아닌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위헌심판 대상이 되는 법 조항이 "특정한 내용으로 해석돼 적용되는 한" 위헌이 된다는 헌재의 판단을 구한 건데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결정이었습니다. 증인은 이런 이례적 결정을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검사: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는 게 대법원 입장이라는 걸 (당시) 재판부는 알고 있었습니까?
- 증인: 저는 알고는 있는데 합의를 할 때 (부장님께) 말씀을 드리진 않았어요. […] 종전에 제가 봤을 때는 거의 차이를 모르겠는 사건에서 합헌 결정된 게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단순위헌 취지로 위헌제청을) 올리면은 또 합헌 결정이 나올 거 같았어요.

- 증인: 제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어떤 헌법적인 평소의 견해가 있어서 그렇게 결정했다기보단, 이 사건에서는 사실 입법의 공백에 가까운 거 같기는 한데, 당장 결정으로서 이 당사자를 구제해줄 수 있는 방법은 이거(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가 있지 않나 해서 결정했던 거예요.

증인은 대법원의 입장을 알았기 때문에 "약간 변칙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법원 판례를 "약간 모른 척"하면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당사자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 번 해봤던 것"인데, 합의 과정에서 재판장이 별 문제없이 "OK"라고 넘어가서 오히려 "OK가 된 건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증인이 완성한 결정문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소로 보내지기 전 경유지인 법원행정처에 도착했습니다.


#2. 피드백

결정 이틀 뒤, 증인은 법원 기획법관에게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 검사: 기획법관이 증인에게 연락해 뭐라 했었습니까?
- 증인: 이게 지금 대법원... "대법원"이 아니라 "행정처"였던 거 같아요. 행정처에서 (저희 재판부 결정을) 보시고 이거는 대법원에서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형태의 결정이고, 헌재에서는 효력 인정하는 형태의 결정인데. 이런 결정을 우리가 하게 되면, 헌재에서 이런 거를 이용해서 언론으로 "일선 판사도 우리의 입장과 같이 이런 결정을 하는데, 우리의 입장이 맞지 않느냐" 이런 신문 기사를 내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게 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구체적으로 이걸 취소해라 어쩌라 이런 얘기까진 아니었던 거 같긴 한데, 이게 지금 일단은 행정처에서 헌재로 넘기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던 거 같아요.

증인은 통화 뒤 "내가 뭔가 조금 눈에 띄는 행동을 했고, 거기에 대해 지적을 당하니까 당황스러웠던 마음이 조금 컸다"라며 "'언론 플레이' 이런 표현을 들으니까 조금 겁이 나는 측면도 있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판사로서의 신분이 위태롭지 않을지 걱정했다고도 했습니다.

- 검사: (금요일에) 기획법관의 이야기를 듣고 주말 내내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 취소해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기억, 그리고 재판장 입장이 신경 쓰여서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 증인: 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지하철 타고 가면서 이제... 남편한테 전화를 해서, "연임이 안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변호인의 추가 질문에, 증언은 더 분명하고 생생해졌습니다.

- 변호인: 지하철에서 전철타고 가면서 남편 분한테 "혹시 연임 안 되는 거 아니냐" 이런 말씀을 전화로 하셨다고 하는데, 이게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한 겁니까? 아니면 "내가 뭐 법원에서 한번 사고 함 쳤다~" 이런 취지로 좀 이야기를 한 겁니까?
- 증인: 반반인데요. 사실은 기우라고 말씀하시면은... 뭐 "제 기우였나봐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혹여 제가 헌법적으로 뭔가 잘못된 판단을 한 거였어도 사실 내버려두는 게 맞았잖아요. 근데 "너 뭐 잘못했어"라는 지적을 입사 3년 차(나중에 4년 차라고 정정함)의 판사가 상급... 저는 감히 접근해본 적도 없는 그런 상급기관에서 내려온 지적을 받았다면, 누구나 그런 신분상의 걱정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증인은 또 본인뿐 아니라 재판장에 대해서도 "고법부장이 되실 기회가 아직 있으신 거 같았는데, (이번 결정으로) 약간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염려를 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제가 중앙에 있다가 남부로 왔었는데, 중앙에서는 특히 승진을 앞둔 부장님들이 많이 계셔서 실적이나 이런 부분에도 신경을 쓰시고 항소심에 (자기) 판결이 어떻게 보일까도 조금 신경쓰시는 편이셨던 걸로 기억한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했습니다. '상급기관'에서 받는 압박이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3. 딱 걸렸어?

이런 저런 고민에 휩싸여 주말을 보낸 증인. 월요일 아침 출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재판장의 호출을 받습니다.

- 검사: 4월 13일 월요일 아침에 염○○ 부장이 증인을 불러서 "행정처에서 이렇게 난리를 피우고 자꾸 저러니까 어떻게 하겠느냐. 정 판사님이 기분 나쁘겠지만 취소해주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한 사실 있습니까?
- 증인: 네.
[…]
- 변호인: "행정처에서 난리를 피운다"고 표현했던 건 맞습니까?
- 증인: "행정처"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어떤 외부적인 뭔가가 이 사건을 못마땅해하고 있다는 표현을 쓰셨던 건 확실해요.

증인은 재판장의 말을 듣고는 기존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는 두 개의 결정문을 추가로 작성했습니다. (이 결정문들이 행정처 간부의 말에 따라 법원 내부에서도 전산상 검색이 안되도록 감쪽같이 '블라인드' 처리됐다는 건 앞선 기사들에서 살펴본 대로입니다.)

명색이 판사가 왜 이렇게 쉽게 결정을 번복했을까.

증인은 '상부에서 이걸 봤구나' '빨리 다시해야겠다'는 생각에 "'어, 어' 하는 사이에" 취소하고 재결정을 하게 됐다면서 "애초에 저한테 옵션이 없다고 느꼈다" "취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이미 사실상 다 결정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계속 주장해봤자 재판장만 난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인정했습니다. 증인은 실제로 결정문에 직권취소의 이유를 쓰지도 못했는데, "제가 뭘 검토해서 결정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결정을 뒤집은 것이 자발적인 행동이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인데요. 그러자 임 전 차장이 직접 '출격'했습니다.

- 임종헌 피고인: 염○○ 부장이 원 결정을 취소하고 재결정하자라고 했을 때, 증인의 내심의 의사는 이거는 원 결정이 맞는데,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증인 의사에 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까?
- 증인: 맞다 틀리다까지는... 저는 "어떻게 하면 서울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해서 "이 방법이면 서울에 갈 수 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약간 변칙적 방법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었고, 행정처에서 "너 반칙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니까 "그럼 서울에 못가든 가든 정도(正道)를 걷겠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당시에는 이거 원안대로 가자는 생각을 아예 안했던 건 맞아요. 안했던 건지, 못했던 건지는 여러 정황 파악해 판단하실 영역이라 생각하는데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서울"에 비유해, 행정처가 서울로 가는 길을 바로잡아줬다는 취지로 말한 건데요. "상급기관이 나를 교정해주고 있다" "내가 실수할 뻔한 걸 행정처에서 바로 잡아준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증인은 털어놨습니다.


당시 증인의 심경이 어땠는지에도 질문이 집중됐는데요. 증인은 당시 소신이 훼손돼 불쾌하다는 생각보다는 '뜨끔'하고 당황스런 느낌이 더 컸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어른들 몰래 뒷문으로 나가려다가, 금지된 행동을 하려다가 들킨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 검사: (취소하라는 재판장의 말을 듣고) 행정처에서 일선 법원의 판단을 계속 살펴보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까?
- 증인: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저도 약간 임관한 지 얼마 안된 판사이다보니까 "감히 내 결정을 누가 간섭해!" 이런 측면보다는 약간 "어, 내가 뭐 잘못했나봐" 이런 생각이 좀더 강했던 거 같아요. 기분 나쁜 것도 있긴 있었지만.
[…]
- 검사: 재판부 판단이 아닌 행정처 연락을 받고 원 결정을 직권취소한 건데, 그 부분에서 오는 마음의 부담이 없었냐는 겁니다.
- 증인: […] 당시 입장은 […] 합목적적인, 당사자의 권리 구제를 위해 가장 효율적 결정이 뭔지 생각했던 거였거든요. 그래서 "나의 소신이 꺾였다" 이런 부분보다도, 뭐라고 해야할지[웃음], 당혹스러운 부분이 그땐 좀 컸어요. 내가 대법원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을 했는데, 위에서 보셨구나.

증언 내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계속 "위", "상부"라고 지칭됐습니다.

- 증인: 어쨌건 대법원 입장은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이 없다는 건데, 내가 그와 다르게 판결을 한 거를 면전에 들이댄 셈이 됐으니까 그런 부담도 있었고요. 내가 약간 그... 상급기관의 견해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법관으로 비쳐지겠구나, 라는 생각도 있었죠. 나를 기억하시면 어떡하지? 약간 이런 생각도 있었던 거 같아요.

증인은 다만 "행정처의 요구를 최고 상급기관의 지시로 받아들였냐"라는 검사의 질문에는 얼마간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을 하지 않다가, "그게 없었다면 취소 결정을 안했을 거는 확실하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4. 판사의 부끄러움

앞서 '법원 내 재판 개입' 사건에 대한 첫 판결로 관심을 끈 임성근 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1심 판결문엔 이런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법관의 재판권 행사에 절차상 또는 실체상 오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사전에 그 오류의 시정을 구할 수 없고, 사후에 심급제도를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 심급제도와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근본정신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임 전 차장 측은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일선 법원 결정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는 건 필요한 일이고, 이런 행위가 어떻게 부당한 재판 개입이냐는 주장입니다. 변호인은 이런 입장에서,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제청을 한 증인 재판부의 결정에 오류와 착각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추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 변호인: 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이었던 문성호는, "한정위헌은 해당 법률조항의 다의적 해석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건데 이 사건은 다의적 해석 가능성이 없으므로 설령 한정위헌 결정이 허용된다는 견해를 취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은 불가능하다"고 검토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검토 내용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 증인: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 얘기예요. 근데 그거는,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제가 경험으로 알고 있지는 않아요.

당시 행정처 내부 문건을 봐도 재판부가 뭘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을 하는 것은 큰 문제고, 이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은 재판 간섭이 아니라 정당한 사법행정권의 영역이라고 검토한 기록이 나옵니다(아래).

 2015년 4월 12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작성한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 결정 확인 및 향후 대책(대외비)” 문건. 재판 과정에서 현출된 것을 기자가 받아적고, 일부 내용을 굵은 글씨로 강조했다.
당시 결정의 오류를 들춰내는 변호인의 여러 지적에, 증인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수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거 보면 그 결정 주문이 약간 잘못됐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은 제가 미처 생각못했던 건 맞구나라는 생각은 든다" "제가 엉뚱한 짓을 한 거다"라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심지어는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알았고 약간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잘못된 결정이었다면 죄송하다"라는 때아닌 반성의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증인은 그러면서도 중요한 말을 남겼습니다.

- 증인: 일선 법원에서 멍청한 결정을 하면 보통 자연스럽게 교정이 되죠. 항소하고 상고하는 과정에서. 그래서 상급법원이 있는 거고. 사실 판사도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있거든요. 잘 몰라서이기도 하고 판단 잘못해서, 사실관계 잘못 파악해서... 근데 이 사건에서는 제가 어떤 법률적 오류를 범했던 거 같은데 지금와서 보니까. 근데 그거를 (행정처가) 교정해주는 방식이 과연 적정했냐 아니냐의 문제인 거 같습니다.

"묻어 놓고 잊어버리고" 살았다던 사건을 5년 만에 돌아본 증인. 3시간의 증인신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가 주어지자, 만감이 교차한 듯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 증인: 음... 일련의 사건으로 일선...[울먹임] 죄송합니다. 휴..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판사님들이 약간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거는 사실이에요. 잘 해보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신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조금... 저는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검사에요. 그래서 남편이 임관 초기에 저한테 행정처나 이런 데서 뭐.. 어떤 식으로 일을 한다더라 이런 풍문같은 얘기를 저한테 해줄 때, 저는 "법원은 그런 기관이 아니다"... 법원은 그런 기관이 아니라고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근데 이게 뭔가 일련의 사건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더이상 이제 그렇게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고, 그냥 그 자리에서 사건을 처리하시는 많은 판사님들이 조금 직업적인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거는 사실인 거 같아요.

당시 판사로서의 직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고도 했습니다.

- 증인: 형사적으로 죄가 안되냐 되냐의 문제는 또 별개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도 사실은 이게 절차적으로는 조금 부적절했던 거는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직권남용이 되냐 안되냐에 대해서는 판단을 재판부에서 해주시겠지만, 저도 거기에서 말하자면 협조를 했던 셈이에요. 우리가 잘못된 결정을 했어도 사실은... 제가 아까 말하면서 부끄러웠던 게, 취소 결정을 하면서 행정처나 다른 분이 검토해주셨건 어쨌건 간에 내가 검토를 하고 했어야 맞는 건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상당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어쨌거나.. 앞으로는 이런 법원은 이런 조직이 아니잖아요. 사실은... 제가 임관하고나서부터 상고법원에 관한 이야기나 아니면 뭐 튀는 법관, 튀는 판결에 관한 뭐 일련의 암묵적인 관료적인 분위기라든가 이런.. 이런 것들이 있어서 제가 당시에 제가 그렇게 아니라고 말을 못한 부분도 있고... 그렇게 남편한테 농담처럼 "연임이 안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 것도 있고. 사실은 그 상황에서 제가 기분이 나빴어야지 맞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판사가 무슨 결정을 했는데 잘못됐다고 하면,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가 한 판단에 왈가왈부하느냐"라고 기분이 나빴어야 맞는데, 거기에 대해서 제 안위를 더 걱정했던 부분이 있는 거잖아요. "내가 잘못했나봐" 스스로 약간 이렇게 생각했던 부분이 부끄럽단 생각이 들고. 물론 지금와서 말씀해주신 부분을 보니까 정말 내가 잘못했던 부분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도 또 부끄럽지만. 오늘 여러모로 부끄럽기도 하고. […] 갑자기 눈물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증인석에서 눈물을 삼키며 '법관의 독립'을 이야기하고, 그 가치에 충실하지 못했던 자신을 뒤늦게 반성하는 판사 증인. 법대에 앉아 그런 동료를 바라봐야 하는 세 명의 판사. 이런 재판을 경험한 판사와 법원의 모습은, 그 전과는 분명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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