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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복합 감정의 성장통 - 오정희 ‘중국인 거리’ 다시 읽기
입력 2021.06.06 (21:30) 수정 2021.06.06 (21:32) 취재K
우찬제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우찬제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복합 감정의 성장통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다시 읽기

오정희는 특별한 만화경을 통해 조망하고 상상한 여성적 글쓰기의 진풍경을 보여준 작가다. 여성 특유의 경험과 감각을 섬세한 미학적 문체로 빚어냈다. 그녀가 발견한 독특한 감각의 프리즘을 통해 한국문학과 한국인은, 여성들이 고단한 20세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했는지, 말할 수 없는 처지의 여성들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의미심장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정희의 상상적 만화경은 세상과 인간의 문제적 심층을 견인하는 역동적 거울이다. 복잡한 욕동(欲動)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한 소용돌이를 묘출하고, 불길한 어둠 속에서 더 깊어서 차라리 환한 어둠을 빚어낸다. 존재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부재하는 것을 돌올하게 부각하며,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꿈꿀 수 있는 가능성과 그 한계를 성찰했다.

기억할 수 없는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추적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안한 기억과 길항하면서, 묘사의 진정성을 통해 여성적 글쓰기의 섬세한 리듬을 알게 했다. 오정희만의 현묘한 연금술에 힘입어 여성은 기존의 가부장적 굴레를 넘어서 새로운 감각적 실존의 지평을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인 거리」(1979 作)는 탁월한 메타포, 서정적인 문체, 구성적 완결성을 바탕으로 여성 의식을 웅숭깊게 보여준 작가의 평판작의 하나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초기 소설을 “청춘기의 참혹한 자화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 소설 역시 소녀 시절의 미묘하면서도 참혹한 자화상에 속한다. 해방 후에 태어나 유년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감정의 성장통을 매우 복합적인 감각으로 다루었다. 전쟁 직후 인천의 차이나타운으로 이사 온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5학년이 될 때까지 거기서 경험한 기억을 중층적으로 구성하여 한국전쟁 이후 한국 여성의 상징적 성장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소설 속의 중국인 거리는 인천 개항 이후 중국인 거주지역이다. 근처에 만국공원이 있고 또 해방 이후 들어온 미군 부대도 있는 것으로 구성되었다(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DNA도 함축되어 있다). 어린 주인공은 최초의 외국인 경험을 거기서 하게 된다. 닮지 않은 다른 이방인에 대한 묘한 이끌림과 기이한 두려움이라는 복합 감정이 부글거리는 경험이다. 일종의 슬럼가인 이 거리에 오게 된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의 시선으로 이 거리 풍경은 우리에게 매우 실감 있게 전달된다. 관찰은 물론 외면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적 현상은 곧 주인공의 내면 성찰로 이어지고, 그 외적 현상과 내면 성찰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키면서 주인공은 상징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성장의 징표는 여럿이다. 편의상 성(性), 출산(탄생), 죽음 등 셋으로 나누어 보자.

주인공은 미군과 동거하는 매기 언니와 길 건너 이층집 젊은 중국인 남자를 통해 각각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관찰하고 발견한다. 먼저 매기 언니에의 이끌림이 주목된다. 그녀의 방에서 “유리병, 화장품, 패티코우트, 속눈썹, 유리알 브로우치, 귀걸이, 진주 목걸이” 따위를 치옥과 함께 훔쳐본 주인공은, 무엇이든 신기하고 비밀스럽다고 느낀다. 이런 비밀의 세계에 치옥이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며 단순 경사되는데 반하여 주인공은 “노오란 햇빛이 다글다글 끓”는 듯한 어지럼증과 비애를 느낀다. 이끌림과 밀어냄이라는 상반되는 심리작용이 길항하는 까닭이다. 눈에 보이는 매기 언니의 방 풍경과 중국인 거리의 이층집 젊은 남자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주인공은 “알지 못할 슬픔이, 비애라고나 말해야 할 슬픔이 가슴으로부터 파상을 이루며 전신으로 퍼져나”감을 느끼고 전율한다.

둘째는 출산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어머니가 임신하자 주인공은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한다. “난 나가서 양갈보가 되겠어”라고 말하는 의붓자식인 치옥이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내가 의붓자식이었기를, 그래서 맘대로 나가 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는 주인공이나 할 것 없이 이 거리의 아이들은 누구나 이미 “여자의 벌거벗은 두 다리 짬에서 비명을 지르며”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서술자는 적는다. 탄생이 “한밤중 천사가 안고 오는” 축복이 아니라 육체의 고통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에게 어머니의 다산(多産)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비통하고 처절한 어머니의 구역질을 보면서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머니는 죽게 될 것”이라며 어머니를 동정하는 것은 어느덧 세상의 비밀을 좀 더 많이 서둘러 알게 된 어린 여성 영혼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머니의 임신에서 아이 출산에 이르는 동안 주인공은 일련의 죽음의 풍경을 체험하기도 한다. 할머니는 병들어 죽고, 매기 언니는 지아이에게 학대당해 죽는다. 미군들이 장난처럼 칼을 던져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도 아찔하다. 어미 고양이가 일곱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낳아 죽이는 삽화 또한 끔찍하다. 성당의 종소리와 더불어 수녀의 죽음도 간접적으로 그려진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간난을 무릅쓰고 여덟 번째 아이를 낳는다.

이런 대립적인 서사 상황은 오정희 특유의 색채 이미지나 후각 이미지 등에 의해 잘 직조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는 혼미한 상태에서나마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인생이란?” 놀라운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죽음과 출생의 절실한 체험, 인생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는 가운데 어린 주인공은 여러 차례 환각적으로 마주치던 중국인 남자와 감정적 접합을 하게 된다. 육체적인 여성 성징으로서의 ‘초조(初潮)’의 경험과 더불어 이른바 사춘기에 진입한다.


아까 상징적인 성장이라고 했지만, 그 성장이라는 게 꼭 긍정적인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봉인된 시절이었기에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겹겹의 억압처럼 희망이 닫혀 있던 상황이었기에 긍정적 희망의 방향은 제대로 가늠되기 어려웠다. 회충 구충제로 산토닌이나 해인초 끓인 물을 먹은 다음 황시증(黃視症)에 가까울 정도로 노란 현기증에 시달리는 모습은 그런 처지에 대한 웅숭깊은 메타포다. 그것은 곧 복합 감정의 성장통을 함축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과 죽음, 그러니까 어머니의 출산/다산이나 할머니와 매기 언니의 죽음을 보고하면서 결코 그런 여성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무늬들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오정희가 점묘한 감정의 성장통은 매우 복합적이고 미묘하다.

요컨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는 한국전쟁 이후의 척박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어린 여자아이의 복합 감정의 성장통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여러 면에서 우리 단편소설사의 으뜸 본보기에 속한다. 아이의 연대기로 볼 때 「중국인 거리」 직전의 이야기가 「유년의 뜰」이다.

연작처럼 보이는 이 소설들에서 오정희는 어떻게 아이들이 희망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2003년, 제13회 리베라투르 상(독일) 수상작인 「새」 에서 어린 남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곡진하게 풀어낸 것도 그런 까닭이다. 편안한 둥지를 잃은 채 불안하게 방황하는 어린 새가 깃들 곳은 그 어디인가? 「새」 에서의 이런 서사적 질문 또한 「중국인 거리」의 복합 감정의 성장통을 바탕으로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우찬제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비평] 복합 감정의 성장통 - 오정희 ‘중국인 거리’ 다시 읽기
    • 입력 2021-06-06 21:30:57
    • 수정2021-06-06 21:32:36
    취재K
우찬제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우찬제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복합 감정의 성장통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다시 읽기

오정희는 특별한 만화경을 통해 조망하고 상상한 여성적 글쓰기의 진풍경을 보여준 작가다. 여성 특유의 경험과 감각을 섬세한 미학적 문체로 빚어냈다. 그녀가 발견한 독특한 감각의 프리즘을 통해 한국문학과 한국인은, 여성들이 고단한 20세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워야 했는지, 말할 수 없는 처지의 여성들이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의미심장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정희의 상상적 만화경은 세상과 인간의 문제적 심층을 견인하는 역동적 거울이다. 복잡한 욕동(欲動)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한 소용돌이를 묘출하고, 불길한 어둠 속에서 더 깊어서 차라리 환한 어둠을 빚어낸다. 존재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부재하는 것을 돌올하게 부각하며,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꿈꿀 수 있는 가능성과 그 한계를 성찰했다.

기억할 수 없는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추적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안한 기억과 길항하면서, 묘사의 진정성을 통해 여성적 글쓰기의 섬세한 리듬을 알게 했다. 오정희만의 현묘한 연금술에 힘입어 여성은 기존의 가부장적 굴레를 넘어서 새로운 감각적 실존의 지평을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인 거리」(1979 作)는 탁월한 메타포, 서정적인 문체, 구성적 완결성을 바탕으로 여성 의식을 웅숭깊게 보여준 작가의 평판작의 하나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초기 소설을 “청춘기의 참혹한 자화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이 소설 역시 소녀 시절의 미묘하면서도 참혹한 자화상에 속한다. 해방 후에 태어나 유년기에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감정의 성장통을 매우 복합적인 감각으로 다루었다. 전쟁 직후 인천의 차이나타운으로 이사 온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5학년이 될 때까지 거기서 경험한 기억을 중층적으로 구성하여 한국전쟁 이후 한국 여성의 상징적 성장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소설 속의 중국인 거리는 인천 개항 이후 중국인 거주지역이다. 근처에 만국공원이 있고 또 해방 이후 들어온 미군 부대도 있는 것으로 구성되었다(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DNA도 함축되어 있다). 어린 주인공은 최초의 외국인 경험을 거기서 하게 된다. 닮지 않은 다른 이방인에 대한 묘한 이끌림과 기이한 두려움이라는 복합 감정이 부글거리는 경험이다. 일종의 슬럼가인 이 거리에 오게 된 초등학교 여자 어린이의 시선으로 이 거리 풍경은 우리에게 매우 실감 있게 전달된다. 관찰은 물론 외면적인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적 현상은 곧 주인공의 내면 성찰로 이어지고, 그 외적 현상과 내면 성찰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키면서 주인공은 상징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성장의 징표는 여럿이다. 편의상 성(性), 출산(탄생), 죽음 등 셋으로 나누어 보자.

주인공은 미군과 동거하는 매기 언니와 길 건너 이층집 젊은 중국인 남자를 통해 각각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관찰하고 발견한다. 먼저 매기 언니에의 이끌림이 주목된다. 그녀의 방에서 “유리병, 화장품, 패티코우트, 속눈썹, 유리알 브로우치, 귀걸이, 진주 목걸이” 따위를 치옥과 함께 훔쳐본 주인공은, 무엇이든 신기하고 비밀스럽다고 느낀다. 이런 비밀의 세계에 치옥이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며 단순 경사되는데 반하여 주인공은 “노오란 햇빛이 다글다글 끓”는 듯한 어지럼증과 비애를 느낀다. 이끌림과 밀어냄이라는 상반되는 심리작용이 길항하는 까닭이다. 눈에 보이는 매기 언니의 방 풍경과 중국인 거리의 이층집 젊은 남자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주인공은 “알지 못할 슬픔이, 비애라고나 말해야 할 슬픔이 가슴으로부터 파상을 이루며 전신으로 퍼져나”감을 느끼고 전율한다.

둘째는 출산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다. 어머니가 임신하자 주인공은 “여자의 동물적인 삶에 대해 동정”한다. “난 나가서 양갈보가 되겠어”라고 말하는 의붓자식인 치옥이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내가 의붓자식이었기를, 그래서 맘대로 나가 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는 주인공이나 할 것 없이 이 거리의 아이들은 누구나 이미 “여자의 벌거벗은 두 다리 짬에서 비명을 지르며”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서술자는 적는다. 탄생이 “한밤중 천사가 안고 오는” 축복이 아니라 육체의 고통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에게 어머니의 다산(多産)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비통하고 처절한 어머니의 구역질을 보면서 “또 아이를 낳게 된다면 어머니는 죽게 될 것”이라며 어머니를 동정하는 것은 어느덧 세상의 비밀을 좀 더 많이 서둘러 알게 된 어린 여성 영혼의 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머니의 임신에서 아이 출산에 이르는 동안 주인공은 일련의 죽음의 풍경을 체험하기도 한다. 할머니는 병들어 죽고, 매기 언니는 지아이에게 학대당해 죽는다. 미군들이 장난처럼 칼을 던져 고양이를 죽이는 장면도 아찔하다. 어미 고양이가 일곱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낳아 죽이는 삽화 또한 끔찍하다. 성당의 종소리와 더불어 수녀의 죽음도 간접적으로 그려진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간난을 무릅쓰고 여덟 번째 아이를 낳는다.

이런 대립적인 서사 상황은 오정희 특유의 색채 이미지나 후각 이미지 등에 의해 잘 직조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아이는 혼미한 상태에서나마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인생이란?” 놀라운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죽음과 출생의 절실한 체험, 인생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는 가운데 어린 주인공은 여러 차례 환각적으로 마주치던 중국인 남자와 감정적 접합을 하게 된다. 육체적인 여성 성징으로서의 ‘초조(初潮)’의 경험과 더불어 이른바 사춘기에 진입한다.


아까 상징적인 성장이라고 했지만, 그 성장이라는 게 꼭 긍정적인 성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봉인된 시절이었기에 특히 여성에게는 더욱 겹겹의 억압처럼 희망이 닫혀 있던 상황이었기에 긍정적 희망의 방향은 제대로 가늠되기 어려웠다. 회충 구충제로 산토닌이나 해인초 끓인 물을 먹은 다음 황시증(黃視症)에 가까울 정도로 노란 현기증에 시달리는 모습은 그런 처지에 대한 웅숭깊은 메타포다. 그것은 곧 복합 감정의 성장통을 함축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과 죽음, 그러니까 어머니의 출산/다산이나 할머니와 매기 언니의 죽음을 보고하면서 결코 그런 여성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무늬들이 일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오정희가 점묘한 감정의 성장통은 매우 복합적이고 미묘하다.

요컨대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는 한국전쟁 이후의 척박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어린 여자아이의 복합 감정의 성장통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여러 면에서 우리 단편소설사의 으뜸 본보기에 속한다. 아이의 연대기로 볼 때 「중국인 거리」 직전의 이야기가 「유년의 뜰」이다.

연작처럼 보이는 이 소설들에서 오정희는 어떻게 아이들이 희망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2003년, 제13회 리베라투르 상(독일) 수상작인 「새」 에서 어린 남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곡진하게 풀어낸 것도 그런 까닭이다. 편안한 둥지를 잃은 채 불안하게 방황하는 어린 새가 깃들 곳은 그 어디인가? 「새」 에서의 이런 서사적 질문 또한 「중국인 거리」의 복합 감정의 성장통을 바탕으로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우찬제 (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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