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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삶…서정인 ‘강’
입력 2022.02.13 (21:24) 수정 2022.02.13 (22:24)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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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순서, 어느덧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13일) 만나볼 작품은 서정인 작가의 단편, '강'인데요.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삶을 담아냈습니다.

9개월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우리 시대의 소설, 정연욱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1962년, 단편소설 '후송'을 시작으로 장장 60년 동안 소설을 써온 노작가.

87살이 된 지금도 낡은 책더미에 둘러싸인 '글 감옥'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마감에 쫓기던 젊은 시절보다는 한결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서정인/소설가 : "그때는 우체국에 가야 되거든요. 그러면 우체국에 막 쫓아가요, 마감 시간에. 그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쓰지, 좀 넉넉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안 돼요. 요즘에는 쓰라는 데가 없으니까 편해요."]

1968년에 발표한 단편 '강'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군하리'란 강변 마을로 향하는 평범한 세 남자의 여정으로 시작합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내리는 진눈깨비를 보고 군에 입대하던 날을 함께 회상하지만, 세 남자의 마음속에선 전혀 다른 생각이 교차합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입니다.

[서정인/소설가 : "옛날에 서울 돈암동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실제로 갔습니다, 그때. 가서 보고 야 이 배경이 참 좋은데..."]

결혼식이 끝난 뒤.

늙은 대학생 김 씨는 여인숙에서 만난 소년이 반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하자, 한때 수재였지만 지금은 낙오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세상을 향해 냉소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감정.

소설은 이렇게 옛날이든 지금이든, 특별하든 평범하든, 언제나, 누구에게나,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대화와 생각들을 생생하게 재현해냅니다.

[서정인/소설가 :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안 썼다.전부 경험한 것을 썼단 얘기에요. 그러나 경험한대로는 한 줄도 안 썼다. 007이 살인면허를 갖고 있다는 데 소설가는 거짓말 면허를 갖고 있어요."]

초기에는 소시민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한 풍속화 같은 단편을 잇따라 발표한 작가는, 주로 격동의 역사와 맞선 개인의 투쟁을 조명한 동시대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각인했습니다.

[신수정/문학평론가 :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 것. 일반인 보통인들의 삶, 그 삶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 아니냐. 60년대의 옹색한 삶을 위안하고 위로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1980년대부터는 판소리와 소설을 접목한 파격적인 형식의 장편 '달궁'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천착했습니다.

[서정인/1994년 인터뷰 : "예술에서 모방이란 것은 아류거든요.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했더라도 다음번에는 또 깨뜨려야 됩니다. 저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지..."]

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가는 어떤 존재인가.

KBS의 연중기획 '우리 시대의 소설'이 9개월에 이르는 여정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서정인 작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서정인/소설가 : "문학, 소설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모습을. 이게 엄청 어려워요. 시지프스 신화처럼. 밀고 올라갔다 또 떨어지고. 불가능해요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단 이야기에요."]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김용모 류재현
  •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삶…서정인 ‘강’
    • 입력 2022-02-13 21:24:57
    • 수정2022-02-13 22:24:43
    뉴스 9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순서, 어느덧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13일) 만나볼 작품은 서정인 작가의 단편, '강'인데요.

소시민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삶을 담아냈습니다.

9개월 여정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우리 시대의 소설, 정연욱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1962년, 단편소설 '후송'을 시작으로 장장 60년 동안 소설을 써온 노작가.

87살이 된 지금도 낡은 책더미에 둘러싸인 '글 감옥'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마감에 쫓기던 젊은 시절보다는 한결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서정인/소설가 : "그때는 우체국에 가야 되거든요. 그러면 우체국에 막 쫓아가요, 마감 시간에. 그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쓰지, 좀 넉넉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렇게 안 돼요. 요즘에는 쓰라는 데가 없으니까 편해요."]

1968년에 발표한 단편 '강'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군하리'란 강변 마을로 향하는 평범한 세 남자의 여정으로 시작합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내리는 진눈깨비를 보고 군에 입대하던 날을 함께 회상하지만, 세 남자의 마음속에선 전혀 다른 생각이 교차합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든,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입니다.

[서정인/소설가 : "옛날에 서울 돈암동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면서 실제로 갔습니다, 그때. 가서 보고 야 이 배경이 참 좋은데..."]

결혼식이 끝난 뒤.

늙은 대학생 김 씨는 여인숙에서 만난 소년이 반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하자, 한때 수재였지만 지금은 낙오자가 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세상을 향해 냉소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감정.

소설은 이렇게 옛날이든 지금이든, 특별하든 평범하든, 언제나, 누구에게나,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대화와 생각들을 생생하게 재현해냅니다.

[서정인/소설가 :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안 썼다.전부 경험한 것을 썼단 얘기에요. 그러나 경험한대로는 한 줄도 안 썼다. 007이 살인면허를 갖고 있다는 데 소설가는 거짓말 면허를 갖고 있어요."]

초기에는 소시민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한 풍속화 같은 단편을 잇따라 발표한 작가는, 주로 격동의 역사와 맞선 개인의 투쟁을 조명한 동시대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각인했습니다.

[신수정/문학평론가 :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 것. 일반인 보통인들의 삶, 그 삶에 대한 인식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 아니냐. 60년대의 옹색한 삶을 위안하고 위로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1980년대부터는 판소리와 소설을 접목한 파격적인 형식의 장편 '달궁'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천착했습니다.

[서정인/1994년 인터뷰 : "예술에서 모방이란 것은 아류거든요.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했더라도 다음번에는 또 깨뜨려야 됩니다. 저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지..."]

소설이란 무엇이고, 소설가는 어떤 존재인가.

KBS의 연중기획 '우리 시대의 소설'이 9개월에 이르는 여정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서정인 작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서정인/소설가 : "문학, 소설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모습을. 이게 엄청 어려워요. 시지프스 신화처럼. 밀고 올라갔다 또 떨어지고. 불가능해요 그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단 이야기에요."]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김용모 류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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