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마음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맑은 이야기 - 구효서의 ‘풍경소리’

입력 2021.10.24 (21:31) 수정 2021.10.2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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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맑은 이야기
- 구효서의 「풍경소리」

구효서는 천생의 작가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사실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실험적인 이야기를 두루 망라하다가 이제 그 모두를 넘어 어떤 분야이거나를 막론하고 자유자재의 서술을 자랑한다. 처음부터 촘촘하고 감각적이던 그의 소설 문장은 한결 유장(悠長)하고 글맛의 윤기를 더하여서 일가(一家)의 경지를 보이고 있다. 항차 소설이란 무엇인가, 한 작가가 성취할 수 있는 유다른 소설이란 과연 무엇인가. 구효서는 이와 같은 한 묶음의 질문에 작심하고 답변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작가로 그 명호를 내건 지 34년의 세월을 두고, 이제껏 그가 이룬 것은 한국문학사 그리고 소설사에 유의미한 하나의 단계를 형성했다.

소설가 구효서는 1958년 경기도 강화 출생이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가 상재한 단편집은 9권에, 장편소설은 19권에 이른다. 작품의 수준이 반드시 문학상 수상 실적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나, 무려 10여 개에 달하는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으니 객관적 평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미상불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이병주국제문학상 등 이름 있는 문학상에 그의 이름이 빠진 곳이 없다. 오직 소설만으로 삶을 유지하는, 그 삶이 존재하는 ‘전업 작가’의 대명사가 바로 구효서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마는, 타고난 재능과 영일이 없는 노력이 조화롭게 만난 경우가 곧 그의 세계다.

소설이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문학 장르임을 확인하려면, 그의 소설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소설이 이야기의 재미만을 말하는 문학이 아니라 전위적인 형식 실험, 사회적 압제에 대한 고발, 더 나아가 일상의 작고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부양하는 문학임을 경험하려면, 역시 그의 소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그의 소설은 은은한 서정성을 두르고 있고 동시에 탄탄한 주제의식을 은닉하고 있다. 오랜 창작 기간을 두고 그는 자신의 문장과 문체를 여러 모양으로 가꾸어 왔다. 대사와 지문의 구분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가 하면, ‘다’로 끝나는 종결어미에 완강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그는 현실에의 안주를 내다 버린, 이를테면 ‘유목민 작가’다.


구효서의 중편 「풍경소리」는 2017년 제4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어머니가 죽은 후 환청으로 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 ‘상철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주인공 ‘미와’는, 친구 ‘서경’의 권유로 성불사에 몸을 담는다. 이 묘음(猫音)의 환청은 미와의 삶이 일정한 한계상황에 도달했음을 암시한다. 성불사에서 미와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와 같은 온갖 자연음을 만나고, 소설의 표제로 내세운 풍경소리를 만난다. 이러한 국면에 도달하기 이전에, 이미 이 작품이 ‘소리’에 무게중심을 둘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전혀 작위적인 언술을 동원하지 않고 자연의 소리에 근접하는 평이한 방식을 통해, 이 소설은 인간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문답을 완성한다.

이상문학상 선정이유서에는, “창작 기법과 문체의 실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높은 소설적 성취에 도달”했다고 보고, “인간의 삶과 그 운명의 의미를 불교적 인연의 끈에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성과에 대한 수사(修辭)보다 “가을 산사의 풍경과 사찰을 찾아온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결합시킨 감각적인 문체”가 훨씬 더 독자 친화의 힘을 발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힘은 어떤 면에서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압도하는 수발(秀拔)한 문체의 감각에 기대어 있다. 어지간한 작가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매우 중요한 실험 하나를 수행한다. 서술 시점의 문제다. 소설의 서술은 1인칭이나 3인칭 중 하나를 선택하여 화자를 내세우는 것이 상례다. 이는 다시 전지적 시점과 관찰자 시점으로 구분되며, 통상 이 네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운용한다. 드물지만 2인칭 시점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으나 이는 극히 소수다. 한 작품 안에서 장(章)을 달리하면서 시점을 교차하여 쓰는 경우는 더러 있다.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나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그리고 이문열의 『영웅시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하나의 단편 작품 안에서 주인공을 번갈아 1인칭과 3인칭으로 발화하는 소설은. 그러한 소설적 실험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풍경소리」 이전에 목도한 적이 없다. 어쩌면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에 유사한 모형이 있었을까.


중요한 사실은 왜 이 작가가 이러한 고행을 사서 하는 터이며, 그것의 소설적 성과가 무엇인가에 있다. 주인공 미와가 ‘나’로서 말하다가, 어느결에 ‘미와’가 되어 전지적 작가의 눈으로 말한다. 작가가 이를 명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작품 속에서 이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는 데서 증명된다. 이 시점 그리고 화자의 지위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시점의 구분과 통합적 적용의 사유에 대해 ‘모든 소리의 근원’이라고 지목했다. “그런 소리를 일컬어 누군가는 천뢰(天籟)라 했고 누군가는 음이라 했고 누군가는 태초의 말이라고 했다”고 썼다. 이때의 ‘천뢰’는 바람소리나 빗소리같이 자연 현상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소리라는 뜻을 가졌다.

두 시점의 교차는 나-미와를 보다 입체적으로 관찰하게 하는 데 유익하고, 말을 바꾸면 나-미와가 안고 있는 곤고한 삶의 무게를 이해하는 데 효험이 있다. 기실 미와가 성불사까지 안고 온 삶의 무게는 만만치 않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일 수도 있다. 성불사의 주승, 수봉스님, 좌자 그리고 함 씨와 영차보살은 모두 이 구조적 동통(疼痛)의 해소에 동참한다. 성불사라는 사찰 자체가 하나의 치유체계인 셈이다. 그런 만큼 여기서는 ‘왜’라는 물음이 금기어다. 이러한 발상의 방식은 언어도단심행처(言語道斷心行處)의 불교적 교리에 맞닿아 있다. 소설의 주제와 환경이 꼭 그만큼의 분량으로 손을 내밀고 맞잡은 형국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볼 수 있는 「성불사의 밤」은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노래다. 이 땅의 곳곳에 성불사란 패찰을 내건 사찰이 즐비하나, 노래의 배경은 황해도 사리원 정방산의 절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작가가 그리는 성불사가 어느 곳에 있는지 특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성불사에서 미와, ‘아름다운 기와’로 짐작되는 미와는 한 단계 승급을 이루고 떠난다. 마침내 소리로써 소리를 치유한, 환청의 중압을 넘어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북돋우는 걸음을 얻는다. 구효서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관해 쓴 ‘감각 5부작’의 중단편 중 하나인 「풍경소리」는 반야심경의 어휘 가운데 ‘성(聲)’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소설을 통해 우리 마음속의 소리를 들을 차례다.

김종회/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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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K
마음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맑은 이야기
- 구효서의 「풍경소리」

구효서는 천생의 작가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사실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실험적인 이야기를 두루 망라하다가 이제 그 모두를 넘어 어떤 분야이거나를 막론하고 자유자재의 서술을 자랑한다. 처음부터 촘촘하고 감각적이던 그의 소설 문장은 한결 유장(悠長)하고 글맛의 윤기를 더하여서 일가(一家)의 경지를 보이고 있다. 항차 소설이란 무엇인가, 한 작가가 성취할 수 있는 유다른 소설이란 과연 무엇인가. 구효서는 이와 같은 한 묶음의 질문에 작심하고 답변이라도 하려는 듯하다. 작가로 그 명호를 내건 지 34년의 세월을 두고, 이제껏 그가 이룬 것은 한국문학사 그리고 소설사에 유의미한 하나의 단계를 형성했다.

소설가 구효서는 1958년 경기도 강화 출생이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가 상재한 단편집은 9권에, 장편소설은 19권에 이른다. 작품의 수준이 반드시 문학상 수상 실적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나, 무려 10여 개에 달하는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으니 객관적 평가에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미상불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이병주국제문학상 등 이름 있는 문학상에 그의 이름이 빠진 곳이 없다. 오직 소설만으로 삶을 유지하는, 그 삶이 존재하는 ‘전업 작가’의 대명사가 바로 구효서다.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으랴마는, 타고난 재능과 영일이 없는 노력이 조화롭게 만난 경우가 곧 그의 세계다.

소설이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문학 장르임을 확인하려면, 그의 소설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소설이 이야기의 재미만을 말하는 문학이 아니라 전위적인 형식 실험, 사회적 압제에 대한 고발, 더 나아가 일상의 작고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부양하는 문학임을 경험하려면, 역시 그의 소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 그의 소설은 은은한 서정성을 두르고 있고 동시에 탄탄한 주제의식을 은닉하고 있다. 오랜 창작 기간을 두고 그는 자신의 문장과 문체를 여러 모양으로 가꾸어 왔다. 대사와 지문의 구분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가 하면, ‘다’로 끝나는 종결어미에 완강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그는 현실에의 안주를 내다 버린, 이를테면 ‘유목민 작가’다.


구효서의 중편 「풍경소리」는 2017년 제4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어머니가 죽은 후 환청으로 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 ‘상철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주인공 ‘미와’는, 친구 ‘서경’의 권유로 성불사에 몸을 담는다. 이 묘음(猫音)의 환청은 미와의 삶이 일정한 한계상황에 도달했음을 암시한다. 성불사에서 미와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와 같은 온갖 자연음을 만나고, 소설의 표제로 내세운 풍경소리를 만난다. 이러한 국면에 도달하기 이전에, 이미 이 작품이 ‘소리’에 무게중심을 둘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전혀 작위적인 언술을 동원하지 않고 자연의 소리에 근접하는 평이한 방식을 통해, 이 소설은 인간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문답을 완성한다.

이상문학상 선정이유서에는, “창작 기법과 문체의 실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높은 소설적 성취에 도달”했다고 보고, “인간의 삶과 그 운명의 의미를 불교적 인연의 끈에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적 성과에 대한 수사(修辭)보다 “가을 산사의 풍경과 사찰을 찾아온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결합시킨 감각적인 문체”가 훨씬 더 독자 친화의 힘을 발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힘은 어떤 면에서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압도하는 수발(秀拔)한 문체의 감각에 기대어 있다. 어지간한 작가로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매우 중요한 실험 하나를 수행한다. 서술 시점의 문제다. 소설의 서술은 1인칭이나 3인칭 중 하나를 선택하여 화자를 내세우는 것이 상례다. 이는 다시 전지적 시점과 관찰자 시점으로 구분되며, 통상 이 네 가지 관점 중 하나를 운용한다. 드물지만 2인칭 시점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으나 이는 극히 소수다. 한 작품 안에서 장(章)을 달리하면서 시점을 교차하여 쓰는 경우는 더러 있다.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나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그리고 이문열의 『영웅시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하나의 단편 작품 안에서 주인공을 번갈아 1인칭과 3인칭으로 발화하는 소설은. 그러한 소설적 실험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풍경소리」 이전에 목도한 적이 없다. 어쩌면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에 유사한 모형이 있었을까.


중요한 사실은 왜 이 작가가 이러한 고행을 사서 하는 터이며, 그것의 소설적 성과가 무엇인가에 있다. 주인공 미와가 ‘나’로서 말하다가, 어느결에 ‘미와’가 되어 전지적 작가의 눈으로 말한다. 작가가 이를 명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작품 속에서 이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는 데서 증명된다. 이 시점 그리고 화자의 지위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시점의 구분과 통합적 적용의 사유에 대해 ‘모든 소리의 근원’이라고 지목했다. “그런 소리를 일컬어 누군가는 천뢰(天籟)라 했고 누군가는 음이라 했고 누군가는 태초의 말이라고 했다”고 썼다. 이때의 ‘천뢰’는 바람소리나 빗소리같이 자연 현상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소리라는 뜻을 가졌다.

두 시점의 교차는 나-미와를 보다 입체적으로 관찰하게 하는 데 유익하고, 말을 바꾸면 나-미와가 안고 있는 곤고한 삶의 무게를 이해하는 데 효험이 있다. 기실 미와가 성불사까지 안고 온 삶의 무게는 만만치 않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일 수도 있다. 성불사의 주승, 수봉스님, 좌자 그리고 함 씨와 영차보살은 모두 이 구조적 동통(疼痛)의 해소에 동참한다. 성불사라는 사찰 자체가 하나의 치유체계인 셈이다. 그런 만큼 여기서는 ‘왜’라는 물음이 금기어다. 이러한 발상의 방식은 언어도단심행처(言語道斷心行處)의 불교적 교리에 맞닿아 있다. 소설의 주제와 환경이 꼭 그만큼의 분량으로 손을 내밀고 맞잡은 형국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볼 수 있는 「성불사의 밤」은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노래다. 이 땅의 곳곳에 성불사란 패찰을 내건 사찰이 즐비하나, 노래의 배경은 황해도 사리원 정방산의 절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작가가 그리는 성불사가 어느 곳에 있는지 특정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성불사에서 미와, ‘아름다운 기와’로 짐작되는 미와는 한 단계 승급을 이루고 떠난다. 마침내 소리로써 소리를 치유한, 환청의 중압을 넘어서 새로운 삶의 의지를 북돋우는 걸음을 얻는다. 구효서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관해 쓴 ‘감각 5부작’의 중단편 중 하나인 「풍경소리」는 반야심경의 어휘 가운데 ‘성(聲)’에서 그 이름을 가져왔다. 이제는 우리가 그의 소설을 통해 우리 마음속의 소리를 들을 차례다.

김종회/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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