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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진정성’에 관한 질문…최윤 ‘하나코는 없다’
입력 2022.01.09 (21:22) 수정 2022.01.09 (21:53)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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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 오늘(9일)은 9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최윤 작가의 단편, '하나코는 없다'를 만나봅니다.

남녀 사이 우정을 예리한 시선으로 다루고, 더 나아가 '관계의 진정성'에 관한 묵직한 질문도 던지는데요.

정연욱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에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

소설의 무대는 '물의 도시'라 불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안개 자욱한 이곳에 출장 차 방문한 '그'는 가까운 도시에 머물고 있는 여성 '하나코'를 만나야 할지, 미로를 헤매듯 고민합니다.

하나코는 대학생 시절 '그'의 고교 동창 모임에 종종 함께했던 여성.

그와 친구들은 '코 하나는 정말 예쁘다'는 뜻에서 그녀에게 '하나코'라는 은밀한 별명을 붙여줍니다.

다섯 친구 모두 각자 하나코와 고민을 나누고 소통하며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맺었지만, 공식적으로는 하나코와의 관계를 마치 없는 것처럼 숨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윤/소설가 : "나의 삶은 있지만 언젠가 가서 내 속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위로도 받고 싶고. 그렇지만 공식적인 삶의 현장에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여성, 그런 환상의 여성은 없다는 의미로 하나코는 없는 것이죠."]

이 친구들이 하나코와 헤어지게 된 계기, 모두 함께 떠난 여행지의 술자리였습니다.

만취 상태로 그녀에게 노래를 강요하며 폭력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고, 그날 이후 모임에서 사라진 하나코에 대해 모두가 언급을 회피합니다.

[최윤/소설가 : "이들이 왜 그랬을까. 저는 하나코가 진지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들의 빈자리, 그들의 허점, 이것을 드러내 주는 진지함. 불편한 것이죠."]

그는 베니스에서 오래전 그날을 회상하고 반성한 끝에 하나코에게 전화를 하고, 걱정과 달리 하나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쾌활하고 당당하게 인사를 건네며 오히려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렇게 날 모르느냐고.

[최윤/소설가 : "환상적 도피처로 자신을 삼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그렇게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을 그걸 알고서도 친구로 맞은 케이스거든요."]

여성주의 소설이 문단의 유행을 주도했던 1990년대.

남성들을 압도하는 성숙한 여성 하나코를 통해 관계의 진정성은 결국 성숙한 인간성에서 비롯된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냈습니다.

[김문주/문학평론가 : "남녀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자아나 개인의 탐색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최윤 작가가 통상 추구해왔던 존재론, 혹은 자아탐색의 여정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관계들로부터 소외된 약자들이 나날이 늘어만 가는 요즘.

작가는 특히 젊은 독자들을 향해 28년 전 자신의 작품 속 메시지를 더 확장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최윤/소설가 : "사려 깊은 젊음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거든요. 그들에게는 책임이 있어요. 누린 자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가 만들어낸 이방인(strangerhood)에 대해서 말 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 유용규/그래픽:최창준
  • ‘관계의 진정성’에 관한 질문…최윤 ‘하나코는 없다’
    • 입력 2022-01-09 21:22:30
    • 수정2022-01-09 21:53:59
    뉴스 9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우리 시대의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 오늘(9일)은 94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최윤 작가의 단편, '하나코는 없다'를 만나봅니다.

남녀 사이 우정을 예리한 시선으로 다루고, 더 나아가 '관계의 진정성'에 관한 묵직한 질문도 던지는데요.

정연욱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폭풍이 이는 날에는 수로의 난간에 가까이 가는 것을 금하라. 그리고 안개, 특히 겨울 안개에 조심하라...... 그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을 두려워할수록 길을 잃으리라."]

소설의 무대는 '물의 도시'라 불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안개 자욱한 이곳에 출장 차 방문한 '그'는 가까운 도시에 머물고 있는 여성 '하나코'를 만나야 할지, 미로를 헤매듯 고민합니다.

하나코는 대학생 시절 '그'의 고교 동창 모임에 종종 함께했던 여성.

그와 친구들은 '코 하나는 정말 예쁘다'는 뜻에서 그녀에게 '하나코'라는 은밀한 별명을 붙여줍니다.

다섯 친구 모두 각자 하나코와 고민을 나누고 소통하며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애매한 관계를 맺었지만, 공식적으로는 하나코와의 관계를 마치 없는 것처럼 숨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윤/소설가 : "나의 삶은 있지만 언젠가 가서 내 속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위로도 받고 싶고. 그렇지만 공식적인 삶의 현장에는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그런 여성, 그런 환상의 여성은 없다는 의미로 하나코는 없는 것이죠."]

이 친구들이 하나코와 헤어지게 된 계기, 모두 함께 떠난 여행지의 술자리였습니다.

만취 상태로 그녀에게 노래를 강요하며 폭력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졌고, 그날 이후 모임에서 사라진 하나코에 대해 모두가 언급을 회피합니다.

[최윤/소설가 : "이들이 왜 그랬을까. 저는 하나코가 진지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들의 빈자리, 그들의 허점, 이것을 드러내 주는 진지함. 불편한 것이죠."]

그는 베니스에서 오래전 그날을 회상하고 반성한 끝에 하나코에게 전화를 하고, 걱정과 달리 하나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쾌활하고 당당하게 인사를 건네며 오히려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렇게 날 모르느냐고.

[최윤/소설가 : "환상적 도피처로 자신을 삼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그렇게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들을 그걸 알고서도 친구로 맞은 케이스거든요."]

여성주의 소설이 문단의 유행을 주도했던 1990년대.

남성들을 압도하는 성숙한 여성 하나코를 통해 관계의 진정성은 결국 성숙한 인간성에서 비롯된다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냈습니다.

[김문주/문학평론가 : "남녀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자아나 개인의 탐색이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최윤 작가가 통상 추구해왔던 존재론, 혹은 자아탐색의 여정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관계들로부터 소외된 약자들이 나날이 늘어만 가는 요즘.

작가는 특히 젊은 독자들을 향해 28년 전 자신의 작품 속 메시지를 더 확장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최윤/소설가 : "사려 깊은 젊음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거든요. 그들에게는 책임이 있어요. 누린 자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회가 만들어낸 이방인(strangerhood)에 대해서 말 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이상훈 유용규/그래픽:최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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