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시 한 달을…’ 김연수 작가 “소설은 타인에게 한 발 더 다가서려는 노력”

입력 2021.08.08 (23:05) 수정 2021.08.0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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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소설가

Q.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어떤 이야기?

한강에 투신해서 자살하는 여자가 하나 나옵니다.이 사람은 부조리한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떤 절망에 빠졌기 때문에 자살하는 인물이 되겠고요. 그녀의 연인인 남자가 등장을 하는데 이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있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 하나를 이해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을 한 사람이고 그래서 히말라야 설산까지 올라가게 된 사람입니다.

Q. 사랑 이야기의 배경이 왜 1987년?

1989년에 대학에 들어가게 됐는데요 학교에 입학하니까 학생들한테 수첩들을 나눠주더라고요. 근데 그 수첩의 뒤 쪽에 그동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학생이나 노동자들의 이름들과 그 날짜들이 쭉 적혀있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인상적이어서 1년 내내 그 이름들을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게 궁금했던 거죠.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혹은 마지막 일요일날에는 누구를 만났을까, 무슨이야기를 했을까 그런 것들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Q. 역사가 빠뜨린 이야기란?

(역사에서는 ) 이야기에 맞춰서 개인들의 이야기들은 대개 수정을 하거나 삭제를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이야기는) 불필요하거든요, 큰 이야기에서는. 그래서 제외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소설가의 눈으로 봤을 때는 큰 이야기에는 사람들 개개인의 삶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제가 아주 작은 곳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아주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큰 이야기를 통해서는 저는 남들이 다 해석이 내려진 세계 이야기만 볼 수밖에 없죠.

Q. '작은 이야기'의 의미는?

제가 찾아내는 것은 정말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하찮은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냥 종이 한 장, 낙서한 종이 한 장일지도 모르고요 편지 한 부분일지도 모르고, 이 소설에서는 유서 한 장의 한 구절입니다. 후회는 없다는 구절이었는데, 그래서 아주 작은 부분이고 누구나 신경 안 쓰는 부분일 수 있는데 저는 이것이 작기 때문에 개개인한테는 연결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제가 국가 전체에 말을 걸 수는 없는데, 한 사람 한 사람한테는 말을 걸 수가 있는 거죠.

Q.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중요한 상징인 이유는?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보면, 중간 중간에 빠진 글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석을 다시는 분은 최대한 상상을 해서 이 빠진 글자 중에 이 글자일 것이다 추정을 해 가면서 원문을 상상을 해 가면서 계속 주석을 달고 있어요.

그 부분을 읽다가 약간 무릎을 치게 됐어요. 어쩌면 우리가 타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정확하게 거기에 어떤 글자가 들어가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추측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 봤을 때 적어도 (타인과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왕오천축국전을 읽다가 시작되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어떤 죽음, 사회적인 죽음을 이해하는 문제까지 전개가 된 것 같습니다.


Q. 작가가 직접 뽑은 '결정적인 대목'은?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


황종연/문학평론가·동국대 국문과 교수
그 대목은 보통 숭고라고 하는 부분인데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어떤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있는 세계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우리 이상이 닿지 않는 그 세계인거죠 그 언어와 이성너머의 세계로 지금 작중에 인물이 가고 있는 거예요. 타자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거죠.

그건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에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날그날 살아가는 삶과는 전혀 다른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고 이 소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 세계로 가는 굉장히 용기 있고 열정적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썼지라는 생각 때문에 너무 기뻐서 사실은 춤을 췄습니다. 새벽에 끝마치고 너무 기뻐서 춤을 췄어요. 이것은 전혀 뜻밖의 결말이어서 그렇게 됐는데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이고요, 소설가로서 이것을 독자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겁니다.

Q. 결정적 대목으로 꼽은 이유는?

타인은 이해가 안 되고 저와는 다른 길을 살아 왔습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거죠. 근데 그 세계를 외면하면 그냥 그만입니다. 그 사람들의 고통이나 감정을 외면하고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냥 지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면 그를 이해하려고 하게 되는데,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모르는 것을 채우기 위해서 각자가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길이 저는 열린다고 봐요.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렇게까지 저한테 중요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조금 더 가 보자, 이해하려고.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알던 세계에서 조금 더 가 보자. 그러면 어떤 게 펼쳐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Q. 소설은 여전히 유효한 예술일까?

어떤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그게 우리한테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거기에서 공감이 싹트고 공감이 생기는 행동이 나오는 거죠. 그게 중요한데, 소설을 읽게 되면 완벽한 나로 서술된 어떤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상에 비해서 1인칭 대리 체험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의 내면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어떤 카메라나 엑스레이나 뭘 동원해도 볼 수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소설, 내러티브, 나로 시작되는 것, 여기가 어떤 다른 테크놀로지도 침범할 수가 없구나라는 거죠.

Q. 코로나 시대, 문학의 가치는?

기쁜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모여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그러면 지금 아주 기쁜 일이 있구나. 좋은 일이 있구나 해서,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거죠. 겉으로 해서 보이니까. 근데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사진 찍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우는 표정을 해서 사진을 찍더라도 이게 우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냥 억지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슬플 때는 사람들은 대개 혼자 겪고 글쓰기를 하게 되죠. 글을 써야지만 나오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어쨌든 우리한테는 약간 고통의 시기로 지나가고 있다고 보여요. 놀러도 못 가고,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런 탓에 사람들이 문학에도 조금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동안 해 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생각,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어서 또 도움도 된다고 봐요.

(영상편집: 이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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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8 23:05:03
    • 수정2021-08-09 0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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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소설가

Q.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어떤 이야기?

한강에 투신해서 자살하는 여자가 하나 나옵니다.이 사람은 부조리한 1980년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어떤 절망에 빠졌기 때문에 자살하는 인물이 되겠고요. 그녀의 연인인 남자가 등장을 하는데 이 남자는 그녀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왜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놓여있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마음 하나를 이해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절망을 한 사람이고 그래서 히말라야 설산까지 올라가게 된 사람입니다.

Q. 사랑 이야기의 배경이 왜 1987년?

1989년에 대학에 들어가게 됐는데요 학교에 입학하니까 학생들한테 수첩들을 나눠주더라고요. 근데 그 수첩의 뒤 쪽에 그동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학생이나 노동자들의 이름들과 그 날짜들이 쭉 적혀있었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인상적이어서 1년 내내 그 이름들을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게 궁금했던 거죠.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혹은 마지막 일요일날에는 누구를 만났을까, 무슨이야기를 했을까 그런 것들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Q. 역사가 빠뜨린 이야기란?

(역사에서는 ) 이야기에 맞춰서 개인들의 이야기들은 대개 수정을 하거나 삭제를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이야기는) 불필요하거든요, 큰 이야기에서는. 그래서 제외가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소설가의 눈으로 봤을 때는 큰 이야기에는 사람들 개개인의 삶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제가 아주 작은 곳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아주 작은 부분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큰 이야기를 통해서는 저는 남들이 다 해석이 내려진 세계 이야기만 볼 수밖에 없죠.

Q. '작은 이야기'의 의미는?

제가 찾아내는 것은 정말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하찮은 것들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냥 종이 한 장, 낙서한 종이 한 장일지도 모르고요 편지 한 부분일지도 모르고, 이 소설에서는 유서 한 장의 한 구절입니다. 후회는 없다는 구절이었는데, 그래서 아주 작은 부분이고 누구나 신경 안 쓰는 부분일 수 있는데 저는 이것이 작기 때문에 개개인한테는 연결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봐요. 제가 국가 전체에 말을 걸 수는 없는데, 한 사람 한 사람한테는 말을 걸 수가 있는 거죠.

Q.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중요한 상징인 이유는?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보면, 중간 중간에 빠진 글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석을 다시는 분은 최대한 상상을 해서 이 빠진 글자 중에 이 글자일 것이다 추정을 해 가면서 원문을 상상을 해 가면서 계속 주석을 달고 있어요.

그 부분을 읽다가 약간 무릎을 치게 됐어요. 어쩌면 우리가 타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정확하게 거기에 어떤 글자가 들어가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최대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추측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 봤을 때 적어도 (타인과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왕오천축국전을 읽다가 시작되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문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어떤 죽음, 사회적인 죽음을 이해하는 문제까지 전개가 된 것 같습니다.


Q. 작가가 직접 뽑은 '결정적인 대목'은?

여기인가, 아니 저기. 조금 더. 어디. 저기. 바로 저기.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바로 저기. 문장이 끝나는 곳에서 나타나는 모든 꿈들의 케른.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는 수정의 니르바나. 이로써 모든 여행이 끝나는 세계의 끝.


황종연/문학평론가·동국대 국문과 교수
그 대목은 보통 숭고라고 하는 부분인데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어떤 이성의 경계를 넘어서있는 세계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우리 이상이 닿지 않는 그 세계인거죠 그 언어와 이성너머의 세계로 지금 작중에 인물이 가고 있는 거예요. 타자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거죠.

그건 굉장히 중요한 경험이에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날그날 살아가는 삶과는 전혀 다른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고 이 소설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 세계로 가는 굉장히 용기 있고 열정적인 한 인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썼지라는 생각 때문에 너무 기뻐서 사실은 춤을 췄습니다. 새벽에 끝마치고 너무 기뻐서 춤을 췄어요. 이것은 전혀 뜻밖의 결말이어서 그렇게 됐는데요. 이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이고요, 소설가로서 이것을 독자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겁니다.

Q. 결정적 대목으로 꼽은 이유는?

타인은 이해가 안 되고 저와는 다른 길을 살아 왔습니다.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거죠. 근데 그 세계를 외면하면 그냥 그만입니다. 그 사람들의 고통이나 감정을 외면하고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냥 지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을 하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면 그를 이해하려고 하게 되는데,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모르는 것을 채우기 위해서 각자가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길이 저는 열린다고 봐요.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렇게까지 저한테 중요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조금 더 가 보자, 이해하려고.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알던 세계에서 조금 더 가 보자. 그러면 어떤 게 펼쳐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Q. 소설은 여전히 유효한 예술일까?

어떤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그게 우리한테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거기에서 공감이 싹트고 공감이 생기는 행동이 나오는 거죠. 그게 중요한데, 소설을 읽게 되면 완벽한 나로 서술된 어떤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영상에 비해서 1인칭 대리 체험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의 내면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어떤 카메라나 엑스레이나 뭘 동원해도 볼 수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소설, 내러티브, 나로 시작되는 것, 여기가 어떤 다른 테크놀로지도 침범할 수가 없구나라는 거죠.

Q. 코로나 시대, 문학의 가치는?

기쁜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모여서 사진을 찍으면 돼요. 그러면 지금 아주 기쁜 일이 있구나. 좋은 일이 있구나 해서,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거죠. 겉으로 해서 보이니까. 근데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사진 찍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우는 표정을 해서 사진을 찍더라도 이게 우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냥 억지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슬플 때는 사람들은 대개 혼자 겪고 글쓰기를 하게 되죠. 글을 써야지만 나오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어쨌든 우리한테는 약간 고통의 시기로 지나가고 있다고 보여요. 놀러도 못 가고,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래서 그런 탓에 사람들이 문학에도 조금 더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동안 해 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생각,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어서 또 도움도 된다고 봐요.

(영상편집: 이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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