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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타자와의 만남, 그 윤리적 전환의 발단 -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입력 2021.08.08 (23:05) 수정 2021.08.08 (23:07) 취재K

김연수의 단편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아마추어 작가이자 아마추어 산악인인 젊은 남자가 1988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산 원정에 나섰다가 자연의 역경과 싸우던 끝에 사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원정대장은 서울올림픽 개최에 즈음하여 산악 등반에 성공함으로써 민족의 위세를 떨친다는 과업을 자임하고 있었고 그러한 욕심 때문에 혹독한 기상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에게 등정을 채근해서 결국 남자의 죽음을 가져왔다.

그 남자가 원정에 참여한 이유는 원정대장이 공표한 민족적 명분과 무관하다. 그에게 낭가파르바트산은 8세기의 신라 승려 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된 서역 세계의 끝이고, 또한 그에게 슬픔과 의문을 함께 남기고 자살한 여자친구가 죽기 전에 심취했던 “이상한 세계”다. 그러므로 그의 등반은 그녀와의 사랑이 한때 그에게 선사했던 특별한 경험 영역으로 다시 나아가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 열망은 그가 살고 있는 19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삼아 살펴보면 당대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인물 유형으로 보면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소설에 그리 많지 않은 낭만적 영웅이다. 서술자는 그의 성격에 걸맞게 그가 가고자 하는 산정을 종종 “꿈”이라는 말로 지시한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 뛰어난 소설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이 소설은 우리가 텍스트들의 매개로 삶을 산다는 생각, 우리가 텍스트들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철학적으로 세련된 이 생각은 작중에서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참조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작중 주요 인물은 모두 그 여행기의 독자다.

1986년 서울 소재 어느 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 그 여자와 같은 대학에 다녔고 특별한 친구 사이였던 남자, 등반 중에 사망한 그 남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서술자 H, 이 세 인물 모두 그 혜초의 기록에 심취한 경험이 있다. 여자는 『왕오천축국전』 한글 역주본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동안 고대 인도의 이상한 세계를 묘사한 여러 문장에 밑줄을 그었고, 여자가 자살하기 전에 탐독했다고 추측되었기에 주의를 기울여 읽은 남자는 그 이상한 세계에 역시 마음을 홀려 낭가파르바트산 등반 중에도 그 세계의 역사와 풍속을 생각하며, 서술 중에 간혹 혜초의 난해한 자구를 설명하곤 하는 H는 여자와 남자가 읽은 『왕오천축국전』 한국어판의 주석자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왕오천축국전』 122행에 대한 주석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텍스트에 대한 참조, 주해, 논평을 반복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그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 즉 메타텍스트(metatext)를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범박한 종류의 낭만적 산악등정기와 구별되게 한다.


둘째, 이 소설은 정치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풍조에 저항한다. 여기서 정치주의란 동지와 적 구별을 다른 어떤 구별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 혹은 그 구별을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다뤄진 1980년대 후반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적 집권 세력과 그에 저항하는 시민 연합 세력 사이의 적대 관계에 따라 동지와 적의 구별이 형성되었고, 그 구별은 본래 영역인 정치는 물론 경제, 도덕, 예술의 영역에서도 관철되다시피 했다. 정치주의에 따르면 적을 섬멸하기 위한 싸움보다 의미 있는 노력은 없고, 그 싸움에 자기 집단의 모든 능력과 자원이 바쳐져야 한다.

소설에 그려진 여자친구의 자살은 바로 정치주의의 압력 아래 피다 말고 시든 젊음을 나타낸다. 그녀는 서로 적대적인 정치적, 사회적 세력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현대 사회의 금기와 압제가 존재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고대에 매혹된 마음의 흔적을 남기고 자살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후에 그녀와 했던 사랑을 확인하려는 남자는 그 언어와 이성 너머의 세계 속으로, 정치 이성이 패권을 가지는 체제 밖으로 가고자 한다.

셋째, 이 소설은 정치적, 세속적 이성의 한계를 넘어 윤리적으로 각성된 삶에 대한 요구를 표현한다. 서술자 H는 남자가 낭가파르바트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죽음 직전에 경험했으리라 짐작되는 바를 이야기하는 중에 “니르바나”라는 말을 쓴다. 혜초의 성지 순례와 겹쳐 있는 그의 산악 등반은 불교적 초월의 삽화처럼 끝난다.


그러나 그 초월의 경험은 삶의 전면적 부정과 거리가 있다. 땅 위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봉우리는 이미지상, 특정 종교의 상징에 국한되지 않는, 성스러운 어머니에 가깝고, “붉은 꽃과 푸른 풀과 하얀 샘”의 출현은 땅 위의 세계와 다른 세계의 현현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혜초가 기록한 이상한 나라들의 실재를 상상하며 남자가 가는 길은, 달리 말해, 그의 동일한 세계의 외부로 열려 있는 길, 그의 타자와의 만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문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는 타자와의 만남, 타자의 경험, 타자에 대한 책임을 사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그 윤리적 전환의 발단에 놓인 작품이다.

(부기: 이 글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필자의 평론 「정치 이성 레짐의 바깥으로」(2020)와 내용상 중복된다는 것을 밝혀둔다.)

황종연/문학평론가·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 [비평] 타자와의 만남, 그 윤리적 전환의 발단 -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입력 2021-08-08 23:05:07
    • 수정2021-08-08 23:07:04
    취재K

김연수의 단편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아마추어 작가이자 아마추어 산악인인 젊은 남자가 1988년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산 원정에 나섰다가 자연의 역경과 싸우던 끝에 사망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원정대장은 서울올림픽 개최에 즈음하여 산악 등반에 성공함으로써 민족의 위세를 떨친다는 과업을 자임하고 있었고 그러한 욕심 때문에 혹독한 기상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에게 등정을 채근해서 결국 남자의 죽음을 가져왔다.

그 남자가 원정에 참여한 이유는 원정대장이 공표한 민족적 명분과 무관하다. 그에게 낭가파르바트산은 8세기의 신라 승려 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된 서역 세계의 끝이고, 또한 그에게 슬픔과 의문을 함께 남기고 자살한 여자친구가 죽기 전에 심취했던 “이상한 세계”다. 그러므로 그의 등반은 그녀와의 사랑이 한때 그에게 선사했던 특별한 경험 영역으로 다시 나아가려는 열망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 열망은 그가 살고 있는 19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삼아 살펴보면 당대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인물 유형으로 보면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소설에 그리 많지 않은 낭만적 영웅이다. 서술자는 그의 성격에 걸맞게 그가 가고자 하는 산정을 종종 “꿈”이라는 말로 지시한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 뛰어난 소설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이 소설은 우리가 텍스트들의 매개로 삶을 산다는 생각, 우리가 텍스트들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철학적으로 세련된 이 생각은 작중에서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참조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작중 주요 인물은 모두 그 여행기의 독자다.

1986년 서울 소재 어느 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 그 여자와 같은 대학에 다녔고 특별한 친구 사이였던 남자, 등반 중에 사망한 그 남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서술자 H, 이 세 인물 모두 그 혜초의 기록에 심취한 경험이 있다. 여자는 『왕오천축국전』 한글 역주본을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동안 고대 인도의 이상한 세계를 묘사한 여러 문장에 밑줄을 그었고, 여자가 자살하기 전에 탐독했다고 추측되었기에 주의를 기울여 읽은 남자는 그 이상한 세계에 역시 마음을 홀려 낭가파르바트산 등반 중에도 그 세계의 역사와 풍속을 생각하며, 서술 중에 간혹 혜초의 난해한 자구를 설명하곤 하는 H는 여자와 남자가 읽은 『왕오천축국전』 한국어판의 주석자이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왕오천축국전』 122행에 대한 주석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텍스트에 대한 참조, 주해, 논평을 반복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그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 즉 메타텍스트(metatext)를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범박한 종류의 낭만적 산악등정기와 구별되게 한다.


둘째, 이 소설은 정치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풍조에 저항한다. 여기서 정치주의란 동지와 적 구별을 다른 어떤 구별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 혹은 그 구별을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다뤄진 1980년대 후반 한국의 경우, 권위주의적 집권 세력과 그에 저항하는 시민 연합 세력 사이의 적대 관계에 따라 동지와 적의 구별이 형성되었고, 그 구별은 본래 영역인 정치는 물론 경제, 도덕, 예술의 영역에서도 관철되다시피 했다. 정치주의에 따르면 적을 섬멸하기 위한 싸움보다 의미 있는 노력은 없고, 그 싸움에 자기 집단의 모든 능력과 자원이 바쳐져야 한다.

소설에 그려진 여자친구의 자살은 바로 정치주의의 압력 아래 피다 말고 시든 젊음을 나타낸다. 그녀는 서로 적대적인 정치적, 사회적 세력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현대 사회의 금기와 압제가 존재하지 않은 유토피아적 고대에 매혹된 마음의 흔적을 남기고 자살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후에 그녀와 했던 사랑을 확인하려는 남자는 그 언어와 이성 너머의 세계 속으로, 정치 이성이 패권을 가지는 체제 밖으로 가고자 한다.

셋째, 이 소설은 정치적, 세속적 이성의 한계를 넘어 윤리적으로 각성된 삶에 대한 요구를 표현한다. 서술자 H는 남자가 낭가파르바트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죽음 직전에 경험했으리라 짐작되는 바를 이야기하는 중에 “니르바나”라는 말을 쓴다. 혜초의 성지 순례와 겹쳐 있는 그의 산악 등반은 불교적 초월의 삽화처럼 끝난다.


그러나 그 초월의 경험은 삶의 전면적 부정과 거리가 있다. 땅 위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봉우리는 이미지상, 특정 종교의 상징에 국한되지 않는, 성스러운 어머니에 가깝고, “붉은 꽃과 푸른 풀과 하얀 샘”의 출현은 땅 위의 세계와 다른 세계의 현현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혜초가 기록한 이상한 나라들의 실재를 상상하며 남자가 가는 길은, 달리 말해, 그의 동일한 세계의 외부로 열려 있는 길, 그의 타자와의 만남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문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는 타자와의 만남, 타자의 경험, 타자에 대한 책임을 사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그 윤리적 전환의 발단에 놓인 작품이다.

(부기: 이 글은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필자의 평론 「정치 이성 레짐의 바깥으로」(2020)와 내용상 중복된다는 것을 밝혀둔다.)

황종연/문학평론가·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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